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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 철길을 따라
경춘선 폐선 길을 걷는다. 끊긴 철길 너머 역사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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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기동역에서 고려대학교 정문 부근 사이의 구간 지난 세월을 느끼게 하는 도시 화석 들.
경춘선은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부설한 국철이 아니라 춘천 지역 유지들이 자금을 모아 개설한 사철(私鐵)이다. 식민지 시기에는 사철 노선이 적잖이 건설되었고 현재도 몇몇 공업 시설에는 사철이 남아 있다. 오늘날의 일본처럼 식민지 시기의 한반도에도 사철이 적지 않았으나 분단 이후 한국 측 사철은 미군정에 의해 모두 국유화되었다.
식민지 시대의 사철 가운데에서 가장 독특한 것이 오늘의 테마인 경춘선이다. 일설에 따르면 춘천에 철도가 없는 것을 불편하게 여긴 총독부에서 철도가 놓인 철원 등으로 강원도청을 옮기려 하자 춘천 유지들이 강원도청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사철을 부설했다고 한다. 그래서 경춘선의 경성 쪽 출발지는 청량리역과 같은 국철 철도역이 아니라, 서울지하철 1호선 제기동역의 동북쪽에 위치한 오늘날의 한솔동의보감 건물 자리에 있던 성동역으로 결정되었다.
2. 청량리 부흥주택 6·25 전쟁 이후 조성된 집단 주택.
1946년에 경춘선이 국유화된 뒤에도 지역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1971년까지 운행하던 경춘선 성동-연촌 구간의 흔적은, 철로가 걷힌 지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뚜렷이 남아 있다. 특히 오늘날의 제기동역에서 고려대학교 정문 부근 사이의 구간(1)에는 철로가 놓여 있던 좁은 도로 옆으로 2~3층 건물이 길게 늘어서 있어서 이곳이 한때 철길이었음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이 구간에는 1960~1970년대 즈음에 개업했을 ‘새마을’이라는 용어가 들어간 가게를 비롯해 지난 80년의 세월을 느끼게 하는 도시 화석이 산재해 있다.
구경춘선 고상전역의 동남쪽과 서북쪽에는 각각 독특한 공간이 존재한다. 동남쪽의 청량리 부흥주택은 6·25 전쟁 이후 대량으로 발생한 월남민·피난민과 이촌향도민을 수용하기 위해 1957년에 조성한 집단 주택(2)이다. 근대화수퍼, 무궁화슈퍼 등은 현대 한국이 경험한 근대화와 애국주의의 역사를 상징하는 듯하고, 개량 한옥에 들어선 점집, 홍릉교회, 고층 아파트 단지는 훌륭한 삼문화광장을 이루고 있다. 이곳은 현재 재개발이 예정되어 있어서 언제 헐려도 이상하지 않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가급적 빨리 답사할 것을 권한다. 하긴 지금 대서울에서 몇몇 고층 아파트 단지를 제외하고 재개발, 재건축이 예정되어 있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랴.
한편 고상전역 서북쪽에는 1977년에 종암동 건어물 도매시장이 들어섰다가 1981년에 폐쇄되었다. 당시 상가 건물로 쓰던 8개의 건물은 현재 고려시장상가라는 이름으로 남아서 봉제 공장 단지로 기능하고 있다. 쌀과 소금을 판다는 것을 간판에 내걸고 있는 ‘양곡소매업 제250호 / 고려상회’는 이 블록의 역사를 증언하는 도시 화석이다. 도매시장은 구경춘선 성동-연촌 노선이 폐쇄된 1971년으로부터 6년 뒤에 개설한 것이다. 하지만 구경춘선이 통과했고 여러 개의 학교가 자리한 이 일대가 또 하나의 상업 거점으로 기능할 수 있을지를 실험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서 설치한 도매시장은 결국 4년 만에 폐쇄되었다. 실험이 실패한 것이다.
3. 석관동의 새석관시장 구경춘선이 폐선된 1971년에 개업했다. 지금은 그 기능을 다하고 재건축을 앞두고 있다.
특히 이 고려시장상가 블록을 답사하면서 나는 회한에 잠겼다. 1994년부터 고려대학교에 다니면서 십수 년간 종암로를 지나다니면서도, 종암로에서 1분만 들어가면 있는 이 블록에 이와 같은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사실이 한탄스러웠다. 이런 놀라움과 자괴감은 대서울의 어디를 답사하든 느끼는 바이지만, 특히 구경춘선 노선과 고려시장상가 블록을 답사할 때는 그 충격의 정도가 컸다. 내가 어떤 지역에 살거나 오랫동안 드나들었다고 해서 반드시 그 지역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내가 대서울을 걸으며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다.
4. 인도교 중랑천을 건너는 다리. 철교를 재활용했다.
돌곶이시장을 지나 석계역을 지나면 연촌역→성북역→광운대역이 나타난다. 1939년에 개통해 2010년 복선화 사업이 완료되기까지 연촌역→성북역→광운대역과 퇴계원역 사이에는 신공덕역, 화랑대역, 갈매역이 있었다. 구경춘선 노선 가운데 광운대역-화랑대역 구간에는 현재 경춘선 숲길이 조성되어 있어서, 구용산선 노선을 재활용한 서울 서북부의 경의선 숲길이나 남부순환선 철도 부설 예정지를 활용한 서울 동남부의 문정근린공원과 비슷한 풍경을 볼 수 있다.
5. 담터마을 구경춘선 노선 동쪽 끝. 당시 마을 모습이 그대로다.
하지만 산책이나 데이트가 아니라 대서울 길을 답사한다는 목적으로 경춘선 폐선을 걷는 분들은 육군사관학교 정문을 지나 계속 동쪽으로 가도록 하자. 정문을 지나서 조금 더 걸어가면 철길이 사라지고 구리갈매공공주택지구로 지정된 담터마을(5)이 나타난다. 남북으로 고층 아파트 단지 사이에 끼여 구경춘선 철길 변 마을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담터마을은 황량하면서도 아련한 느낌을 준다. 화랑대역을 지나 담터마을 구간에서 사라졌던 구경춘선 노선의 철로는, 현재의 경춘선 별내역 서남쪽에 자리한 구갈매역 자리의 군부대에서 다시 시작돼 퇴계원역에서 현재의 경춘선과 합류한다. 그러므로 진지하게 대서울 길을 답사하는 분이라면 폐선인 구경춘선 노선 동쪽 끝에 자리한 담터마을까지 가서 이곳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이 좋겠다. 그것이 대서울의 과거, 현재, 미래를 직시하는 서울 답사가의 진면목이다.
Credit
- EDITOR / 김은희
- WRITER / 김시덕(<서울선언>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 저자)
- WEB DESIGNER /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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