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미국식 영어', 그런데 그게 뭐죠?

진짜 미국식 영어, 그런데 그게 뭐죠?

프로필 by 김현유 2022.02.09
 
영어회화에 대한 우리의 근본적인 콤플렉스는 교과서에 대한 불신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싶다. “How are you?” “I am fine, thank you. And you?”를 외우던 학생 때부터 줄곧 들어온 말은 이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그렇게 말 안 한대.” 아니 대체 이 문장들이 무슨 죄라고, ‘하와유-앤쥬’는 ‘영어 잘알못’을 인증하기 위한 진담 섞인 농담거리가 됐다. 사실 이는 영어 교과의 문제는 아니다. 공교육의 목적이 ‘좋은 대학 가기’에만 치중해 있는 동안에는 그 어떤 교육과정도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기는 어려웠으니까. 고등학교를 벗어나고 나서야, 혹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야 우리는 언어영역에서 배웠던 소설을 차분히 읽었고, 윤리 수업에서 배운 철학자의 말을 되새겼으며, <남한산성> 같은 영화를 통해 국사책 속 한 줄에 숨겨진 거대한 이야기를 비로소 이해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우리가 영어 리딩(reading)도 아니고 라이팅(writing)도 아닌 회화를 학교 수업에서 배운다는 건 애초에 판타지였다.
 
문제는 영어가 다른 교과과정과는 그 예후가 다르다는 점이다. 영어는 보다 현실 밀착적이고 실용적이다. 21세기,  4차산업혁명과 메타버스의 시대에는 어쩔 도리 없이 영어와 마주하는 순간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 그럴 때마다 ‘하와유, 아임파인 땡큐 앤쥬?’의 변명 뒤에 숨을 수도 없다. 리딩, 라이팅과 달리 회화는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는 커뮤니케이션이라, 특히 원어민 수업을 받지 못했던 세대는 대부분 회화의 공포에 시달렸다.
 
한동안 영어회화 교육업계 마케팅의 기본은 “네가 배운 영어는 실전에서 쓸모가 없다”는 것이었다. 독해가 아니라 좀 더 현실적인 영어를 배워야 한다는 요구를 반영한 것이었고, 문법에 치중한 영어가 아닌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영어를 배우는 것은 실제로 필요했다. 하지만 원어민 수업을 받고 자란 세대가 성인이 되고 어학연수나 유학을 일찌감치 다녀온 사람들이 더욱 많아진 최근에는 오랫동안 변하지 않았던 ‘실전 영어’ 마케팅도 크게 변화했다.
 
요즘 영어회화 유튜브와 앱을 장악하고 있는 마케팅은 ‘진짜 네이티브처럼 말하는 법’이나 ‘진짜 미국 영어 배우기’와 같은 ‘진짜 영어’다. 외국인처럼 보이지 않도록 트렌디한 미국식(혹은 영국식) 영어를 배우라는 것이다. 우리의 영어가 그들에게는 ‘어색하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미국인의 현재 영어와 완벽한 싱크로율을 만들어보라는 조언. 그들은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 선생님이거나,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아 ‘진짜’ 미국인들이 쓰는 영어를 안다는 한국인이기도 하다. 그들은 최근 미국에서는 ‘He is handsome’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He is cute’를 쓴다든지, 요즘 Z 세대들이 쓰는 슬랭이나 표현들을 알아야 진짜 영어를 아는 거라고 설명하며 미국 현지인의 언어 트렌드를 따라잡아야 외국인들과 제대로 대화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진짜’ 영어는 도대체 무엇일까. 현지에서 미국인들과 부딪히며 배우지 않은 영어는 ‘가짜 영어’라는 걸까. 도대체 어느 정도로 유창해야 주눅이 들지 않고 영어를 잘해낼 수 있는 걸까. 그들은 우리의 하와유-앤쥬 콤플렉스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완벽하지 않으면 주눅이 들어야 한다고 속삭이는 것 같은 ‘진짜 영어’ 마케팅이 불편한 건 나뿐일까?
 
영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나라는 미국이나 영국이 아니더라도 많다. 인도, 싱가포르, 필리핀에서도 영어는 공용어다. 호주나 뉴질랜드 등 영연방에 포함되는 나라들과 아프리카의 일부 국가들도 영어를 사용한다. 이 중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진짜 영어’는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정도가 아닐까. 한마디로 백인들이 사용하는 언어야말로 진짜 영어라 생각하는 인종차별이 그 바닥을 메우고 있다는 걸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당신은 영어를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이기 때문에 새로운 트렌드를 알고 싶어 할 수도, 미국 대중문화에 나오는 표현을 배우고 싶어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 라디오 프로그램의 짤막한 회화 배우기 코너에 ‘진짜 미국 영어’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때로 호스트나 게스트가 ‘미국인은 그런 표현 안 써요’라며 우리를 놀릴 때 쪼그라드는 우리의 자존심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는 ‘후진’ 교과서로 배웠으니까, 우리는 영어를 잘 못하니까, 당연히 언제나 미국인들이 호령하며 알려주는 영어를 존중하고 존경하며 ‘세련되지 못한’ 표현을 쓰지 않았던 스스로의 게으름을 탓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를 배우는 이유는 보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함이고, 의사소통이란 결국 대화의 당사자 모두 ‘동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교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 어떤 지역의 영어도 ‘궁극적인 최고의 영어’의 지위를 갖지 않아야 한다. 조금 더 확장하면 ‘콩글리시’도 무식한 한국식 영어가 아니라, 영어의 지역화를 의미하는 것이 옳다. 미국에서 나이지리아 출신의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소설 <아메리카나>가 출간돼 한창 입에 오르내릴 때, 미국인 친구들이 그녀의 소설에 대해 논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인의 입장에서 그녀가 구사하는 나이지리아식 영어는 스타일이나 단어에서 많이 달랐고, 그래서 그녀의 문장이 더 독특하고 신선했다는 것이다. ‘의사소통’의 의미에서 콩글리시가 다 틀린 표현은 아니다. 영어권에서 쓰지 않는 표현이나 단어를 우리 스스로가 무시하는 대신 오히려 신선한 표현으로 이끌어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말이다.
 
진보적인 영어교육학에서는 ‘언어적 제국주의’에 대해 이미 많은 논의가 이루어진 편이다. 개인적으로 미국에 살면서 가장 풀어내기 어려웠던 것은, 원어민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소통 사이에서 생성되는 권력 관계였다. 상대가 나의 영어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지 걱정하고 주눅 들었던 건 네이티브 같은 ‘진짜 영어’를 하지 못하는 나를 끊임없이 채찍질했기 때문이다. ‘원어민의 진짜 영어’를 배우려고 달려드는 대신, ‘의사소통 언어’로서의 영어면 괜찮다는 배짱이 생기면서 이 불편한 권력은 서서히 줄어들었고, ‘진짜 영어’를 배우기도 조금 더 쉬워졌다. 진짜 영어는 미국 영어가 아니라 ‘English as a Lingua Franca’, 즉 ‘공용어로서의 영어’라고 생각하면 영어를 배우기도, 영어를 당당하게 사용하기도 편해진다.
 
우리 모두가 샤론 최처럼 세련된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샤론 최의 지적인 영어가 빛을 발했던 건 ‘미국이라고 반드시 영어로 소통을 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봉준호의 매력적이고 당당한 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짧은 영어 수상소감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그는 좀 더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단상에 샤론 최와 함께 올라갔고, 영어 대신 한국어로 수상소감을 준비해 통역이 이뤄질 때까지 그 유명한 할리우드 백인들을 숨죽여 기다리게 했다. 그가 영어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의사소통 권력을 전복시키는 장면에선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돋았다.
 
영어 교육이 언어적 제국주의에서 탈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보다 다양한 언어권의 영어를 끌어안는 공용어로서의 영어를 발전시키는 가운데, ‘미국적인 영어’를 담아내라며 한국인의 인종적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타이틀과 콘텐츠는 어떤 의미에서 시대착오적이다. 우리의 영어가 그들의 입장에서 조금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고, 지나치게 단도직입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는 내가 완벽하게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고 주눅 드는 것은 적절지 못하다. 커뮤니케이션의 근본은 한쪽이 아닌 상호 간의 예의를 갖추는 일이다.
 
예전에 외국인 뮤지션을 인터뷰했을 때의 일이다. “제가 영어를 잘 못해서 죄송해요” 하고 말문을 떼자 그녀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한국말을 못하는걸요. 영어로 인터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의 사과는 적절하지 않았고, 그녀의 감사는 적절했다.
 

 
Who's the writer?
손혜영은 <마리끌레르> <인스타일> 등에서 피처 에디터로 재직했으며, 9년 전 느닷없이 미국으로 이주해 비영리기업, 광고회사 등에서 일했다. 현재는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테크 기업에서 콘텐츠 프로모션과 크리에이티브 프로듀싱을 담당하고 있다.

Credit

  • EDITOR 김현유
  • WRITER 손혜영
  • illustrator VERANDA STUDIO
  • DIGITAL DESIGNER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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