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메타버스의 세상'은 오기는 하는 것일까?
전체 페이지를 읽으시려면
회원가입 및 로그인을 해주세요!

20여 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아재’가 된 나는 통신사를 거쳐 금융회사의 신사업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모든 업계의 화두는 ‘메타버스’였다. 아니, 잠깐. 옛날의 그 선배가 열심히 하던 리니지가 메타버스 아니냐고 묻고 싶었지만 속으로 꾹 눌러 담았다. 저명하신 교수님들이 연일 4차 산업혁명과 메타버스를 강조하고 계신데 내가 뭐라고 의심을 품을까. 하루가 멀다 하고 메타버스에 대한 책과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지난해에는 페이스북이 아예 사명을 ‘메타’로 바꿔버렸다. 세상은 열광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메타버스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에 가득 차서 말이다. 내가 모르는 엄청나고 대단한 무언가가 숨어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 난리가 날 리가 없었다.
이렇게까지 메타버스가 핫해지니 신규 사업 아이템으로 검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메타버스란 무엇이고, 어떻게 사용되고 있으며, 어떤 기술을 쓰고 있는지 꼼꼼하게 따져보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 저명하신 교수님들도, 메타버스에 대한 기사를 낸 기자들도 자꾸 게임을 메타버스로 지칭하고 있었다. 초등학생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는 로블록스(Roblox)와 포트나이트(Fortnite)가 메타버스라는 것이다.
먹고살기 바빠 잊고 지냈던 게임을 스마트폰에 설치하고 실행해봤다. 둘 다 그냥, 자유도 높은 오픈월드 게임이었다. 사람들이 모여서 사회를 이루고 관계를 맺는 건 맞지만 굳이 다운로드해서 열심히 수행해야 할 이유를 찾진 못했다. 메타버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그 유명한 제페토(Zepeto)도 설치해서 써봤다. 아바타를 꾸미고 여러 곳을 방문할 수 있는 것은 재미있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을 이용하는 내 지인들이 굳이 제페토로 넘어올 이유는 없어 보였다.
메타버스가 급격히 회자되는 배경에는 코로나19가 있다. 현실 세계가 암울하니 비대면을 넘어 가상 세계로 이어진다는 논리는 꽤 그럴듯했다. 팬데믹 기간 동안 대기업들은 기업 설명회를, 대학생들은 신입생 환영회를 유행처럼 메타버스에서 했다. 무슨 브랜드가 어떤 메타버스와 제휴해서 신제품을 론칭하고 쇼룸을 구성했다는 건 이제 대단한 뉴스도 아니다. 그런데 메타버스가 활용되는 사안은 딱 그 정도였다. 보도자료를 만들기 위해 하는 건가 싶은 이벤트들, 사람을 모으기 위해 참석자들에게 별다방 기프티콘을 뿌리지만 언급되는 건 딱 그때뿐인 행사들.
IT를 오랫동안 봐온 입장에서 강렬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2014년, 애플은 아이비콘(iBeacon)이라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블루투스 저전력 기술로 전파를 쏘는 ‘비콘’을 요소요소 설치해 근처의 고객에게 광고나 서비스를 쉽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게 골자였다. 이때도 세상은 열광했다. 당장이라도 마케팅의 신세계가 다가올 것처럼 기사가 쏟아졌고 비콘과 관련된 책이 서점가를 덮었다. 그때도 신사업 아이템으로 깊이 검토했는데, 문제가 있었다. 아이비콘을 여러 곳에 설치하는 것도 일단 문제였지만, 그건 거대 자본의 투입으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었다. 진짜 문제는 고객이었다. 고객은 사업자가 보내는 무분별한 마케팅 푸시(Push)를 받고 싶어 하지 않았다. 관련 앱을 설치하는 것도 귀찮아했다. 이런 장치를 활용하면 고객들이 좋아할 거라는 생각은 사업자들만의 착각이었던 셈이다. 이제는 비콘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메타버스의 가장 큰 문제도 여기에 있다. 만들어놓으면 대중이 좋아할 거라는 공급자 마인드! 우리는 지금도 PC와 모바일에서 사회를 형성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자기가 할 일을 한다. 카카오톡과 줌(Zoom), 구글 닥스(Google Docs) 등이 그 도구다. 완벽한 도구라고는 말 못 하겠지만, 딱히 불편하다고 하기도 어렵다. 이를 두고 왜 메타버스에서 신입생 환영회를 해야 하고, 아바타를 끌고 다니며 미팅을 해야 할까? 줌으로 PPT 화면을 공유하며 말하는 회의와, 메타버스 안에서 아바타들이 앉아 있는 가운데 PPT 화면을 띄워놓고 이야기하는 회의 간에 얼마나 대단한 차이가 있을까? 이를 수행한 총무팀이나 경영기획팀에서는 올해의 성과로 사장님께 ‘메타버스 도입을 통한 업무효율 강화’를 적어 냈을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메타버스 사업자들이 돈을 벌고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제페토를 운영하고 있는 네이버제트는 2021년 말 매출액 379억원, 당기 순손실은 1129억원을 기록했다. 메타, 로블록스, 리얼리티 랩스 등 해외의 메타버스 기업들도 주가 하락과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메타버스 플랫폼 기업들의 수익 요인을 살펴보면 기업 광고 및 행사 협찬, 아이템 판매, 그리고 가상 세계의 부동산 판매라는 세 가지에서 더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놀랍게도 2003년 출범한 온라인 가상현실 플랫폼 ‘세컨드라이프’의 비즈니스 모델(BM)과 동일하다. 20년 전의 BM에서 조금도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메타버스의 BM이란 애초에 없었던 건 아닌지 의심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결국 메타버스는 완전히 허황된 것일까. 영화 <레디플레이어 원>처럼 되는 게 인류의 미래라는 걸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영화 <매트릭스>는 어떤가? 그야말로 메타버스 그 자체 아닌가. 영화와 2022년 현실의 결정적 차이점은 바로 디바이스다. <레디플레이어 원> 초반에는 메타버스 ‘오아시스’에 접속하는 장비가 등장한다. 360도 어느 방향으로도 움직일 수 있는 러닝머신,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잡아내는 장갑, 온몸에 붙이는 센서, 그리고 VR 헤드셋까지. <매트릭스>에서는 아예 목 뒤에 케이블을 연결해서 뇌신경에 직접 연결한다. 조그만 터치스크린을 통한 접속과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메타의 ‘오큘러스(Oculus) 헤드셋’이 메타버스 시대의 핵심 디바이스가 될 것처럼 언급되지만 성능과 가격, 휴대성을 고려하면 아직은 시기상조인 것처럼 보인다.
얼마 전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2를 착용하고 깜짝 놀랐다. 대두에 안경까지 착용한 나에게도 완벽한 증강현실 경험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안경을 벗지 않고 바로 머리에 쓰는 방식이라 편리했고, 현실감은 이전까지의 기기들과 차원이 달랐다. 그 자리에서 사려다 500만원이라는 가격 앞에 애써 태연한 척 발걸음을 돌려야 했지만, 이 정도 디바이스가 확산된다면 메타버스 시대가 언젠간 올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중저가 스마트폰이나 휴대용 게임기가 20만~30만원 전후이니 그 정도 가격대에 휴대가 간편하고 적어도 시각과 청각을 커버할 수 있다면 어떨까. 신체 움직임까지 정확히 잡아내는 센서가 달린 글러브 같은 것도 옵션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스마트폰의 발전 덕분에 MSN 메신저가 카카오톡으로 대체된 것처럼, 디바이스가 혁신적으로 발전하면 써야 하는 이유도 생겨난다. 사람들이 헤드셋을 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메타버스 시대는 빠르게 다가올 것이다.
다만 그때까지는 제발, 메타버스를 냉정하게 평가하자. 권위자 행세를 해야 하는 교수, 클릭 수를 올려야 하는 기자, 눈먼 돈을 투자받아야 하는 사업가들을 제외한 평범한 우리 모두에게 메타버스는 아직 먼 이야기니까.
길진세는 통신회사를 거쳐 금융회사에 재직 중인 회사원이다. <왜 지금 핀테크인가> <더 이상 무리하지 않겠습니다>를 썼고 <아웃스탠딩> <ㅍㅍㅅㅅ> <모비인사이드>의 필진으로 활동 중이다.
Credit
- EDITOR 김현유
- WRITER 길진세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WATCH
#워치스앤원더스, #반클리프아펠, #파네라이, #피아제, #에르메스, #샤넬, #까르띠에, #예거르쿨트르, #몽블랑, #불가리, #위블로, #프레드릭콘스탄트
이 기사도 흥미로우실 거예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에스콰이어의 최신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