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예쁘고 낯선 것들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

프로필 by 김현유 2023.10.06
 
지난 여름에 있었던 일이다. 나는 돔 페리뇽의 초대로 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교토에 가 있었다. 돔 페리뇽은 1년에 한 번 전 세계 라이프스타일 기자들과 VIP들, 또 미슐랭 스타급 셰프들을 모아 그해의 샴페인을 공개한다. 이를 자신들 나름의 타이틀인 ‘레벨라시옹(Re`ve`lations)’, 즉 ‘발현’이라 부르며 그날 공개하는 샴페인을 주제로 다양한 전시를 기획한다. 이번 호 다른 기사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했지만, 올해를 예로 들면 교토의 기원이 된 쇼군즈카 세이류덴이라는 신사를 통째로 빌리고 그 본당에 2022년의 포도와 와인메이킹의 과정을 담은 아티스틱한 사진들을 전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 행사에서 만난 다른 사람과 나눈 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참이다.
앨리스, 그녀의 이름은 앨리스가 아니었으나 여기서는 앨리스라고 하자. 앨리스는 기자들이 묵는 포시즌스 호텔에서 쇼군즈카 세이류덴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역할을 맡았다. 포시즌스는 기온 거리를 기준으로 동편에, 목적지인 신사는 한참 서편에 있어 우리는 한적한 교토의 외곽 도로를 타고 시내를 우회해 갔다. 한참을 가던 중 앨리스가 말했다. “소 뷰티풀”이라고. “교토는 정말 너무 아름다워. 그렇지 않아?”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조금 당황해서 고개를 들어 앞뒤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우리가 지나던 곳은 수백 년쯤 돼 보이는 교토의 목조주택이 즐비한 곳도, 고즈넉한 신사의 진입로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쇠락해가는 도시에서 종종 볼 수 있는, 타일로 뒤덮인 2~3층짜리 저층 빌딩들이 길가에 듬성듬성 뿌리를 내리고 있는 거리였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진짜야? 이게 예쁘다고?” 그녀가 대답했다. “응 예뻐. 너무 예뻐.”
아주 비슷한 장면을 발견한 건 최근 내 친구의 사진첩에서였다. 뉴욕 출신은 아니지만, 뉴욕에서 20년이 넘게 거주한 내 친구의 이름이 로버츠는 아니지만 로버츠라고 하자. 로버츠가 한국 출장을 오면 우리는 종종 바에서 만나 맥주를 마시는데, 그날은 너무 예쁜 곳에 다녀왔다며 사진을 보여줬다. 그의 사진에는 을지로 골목들이 있었고, 사람들이 산책 중인 여름밤 청계천의 모습이 있었다. 그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작은 공업사들이 모여 있고 길거리에 쇠붙이들이 나뒹구는 을지로 골목의 모습은 서울 사람인 내게도 종종 드라마틱하니까. 수십 명의 사람들이 거리를 점령하고 빨간 국수를 먹으며 맥주를 들이켜는 장면은 누가 봐도 다이내믹하니까. 그러나 왜 찍었는지를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것들도 있었는데, 그건 종로 3가 파고다공원 뒤쪽에 있는 온갖 간판이었다. OO 노래타운과, △△ 양꼬치, 곱창□□의 간판들이 내 친구의 어떤 미적 감흥을 건드린 걸까? “예쁘지 않아? 이런 화려한 핑크색 간판은 미국에선 본 적이 없어. 한국은 정말 간판 천국이야.” 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최대한 숨기려 애썼다. “왜 예뻐?”라고 묻자 “그냥 너무 예뻐”라는 답이 돌아왔다. 대체 이런 미적 감각의 차이, 내 입장에서 보면 미적 편견은 왜 일어날까?
나는 미적 편견 덩어리다. 러닝을 좋아하는데, 특히 여행으로 간 낯선 도시에서 달리는 걸 즐긴다. 그중에서도 최고는 도쿄다. 주오구의 호텔에서 숙박을 할 때면, 아침마다 도쿄만의 가로를 달린다. 자주는 못 하지만, 할 때마다 극상의 기분이 든다. 특히 보드워크가 아름답다. 일본 강변의 보드워크는 수면에 바싹 붙어 있어 바로 물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보기에 예쁘지 않은가? 시멘트가 아니라 나무 데크로 되어 있다는 점도 러닝을 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다. 이제 슬슬 지나친 뜀뛰기가 주는 무릎의 충격을 조심해야 할 나이니까. 그래서 나는 종종 사람들을 만날 때면 우리나라의 한강시민공원을 욕했다. “도쿄만에 있는 보드워크처럼 좀 예쁘게 못 만드나?”라며. 그 넓은 땅덩이를 왜 다 시멘트로 덮어놓았느냐며 불평 불만을 늘어놨다. 그러나 지난해 도쿄에 사는 일본인 친구를 잠원동 한강공원에 데려갔을 때는 전혀 다른 말을 들었다. “무슨 말이야. 내 눈에는 여기가 훨씬 예쁜데? 이렇게 널찍한 잔디밭이 강 바로 옆에 있다니 정말 근사하다고 생각해.”
앞서 얘기한 교토의 앨리스는 당시엔 프랑스에서 살고 있었으나 이탈리아 출신이다. 도시는 잊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앨리스에게 8년 전쯤 찍은 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그건 내가 아내와 함께 갔던 로마 여행에서 묵은 에어비앤비 숙소의 모습이었다. 1층에는 가공육도 파는 정육점과 타바키(작은 상점)가 있고 그 뒤로 돌아가면 거대한 출입문을 지나 2층부터 들어차 있는 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었다. ‘ㅁ’ 자형 건물의 중간에는 작은 공용 공간이 있었는데 중정 구조의 주상복합 7층 빌딩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언제 지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꽤 낡은 그 석조 건물이 나는 너무 멋져 보여 그런 건물에서 잘 수 있다는 게 대단한 특권처럼 여겨졌다. 그건 사진을 꽤 여러 장 찍은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사진을 보여주자 앨리스는 “맞아. 로마에는 이런 불편하고 더러운 숙소들이 참 많지. 엘리베이터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나중에 만든 거라 사람 두 명 타면 꽉 차는 것들이 대부분이고 말이야. 어쩔 수 없지 뭐. 재개발을 할 수가 없으니까”라며 나를 측은하게, 그러나 자신의 나라에서 불편을 겪게 해서 미안하다는 듯이 바라봤다. “그러니까 말이야. 정말 신기하지? 나는 이 건물이 너무 예뻐서 여러 장 찍었다니까?”
최근에는 그런 얘기들이 들렸다. 외국인들이 한국의 간판을 보고 예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들이 우리의 문자를 모르기 때문이라는 말. 유현준 교수 역시 비슷한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홍콩에도 간판이 정말 많고, 라스베이거스에 가면 더 많거든요. 그런데 거슬리지 않죠. 우리가 그걸 정보로 인식하지 않고 장식으로 인식하기 때문이에요.” 유현준 교수가 한 유튜브 방송에서 간판에 대해 한 말이다. 그런데 이 말만으로는 앨리스와 나의 엇갈린 미감을 설명할 길이 없지 않은가? 어쩌면 우리는 그저 낯선 것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낯선 것들은 낯익은 것들보다 항상 조금 더 예뻐 보이는 건 아닐까? 북한의 건물들이 우리에게 주는 감흥이 바로 그런 격차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나는 나의 이론을 시험해보기 위해 아주 오래전에 지어진 우리 집, 빨간 벽돌 빌라의 사진을 앨리스에게 보여줬다. “이 건물은 어때?” 앨리스가 말했다. “와! 한국적이야. 너무 예쁜데? 지붕에 있는 저건 기와 맞지?” 우리 집이 있는 빌라는 창덕궁이 근처라는 이유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기와를 지붕에 얹어야 했다. 그러나 그건 진짜 기와도 아니고 그저 시멘트로 구워낸 가짜일 뿐이다. 게다가 빨간 벽돌 빌라라 전혀 예쁘지 않다. 그러니 조심할 것. 당신의 눈에 아름다워 보이는 낯선 것들은 가짜일 수 있다. 아사쿠사의 상점에서 만난 낯선 유리공예품은 어쩌면 베트남의 공장에서 찍어낸 제품일 것이다. 베네치아에서 만난 특이한 형태의 가죽 가방은 어쩌면 베네치아가 아니라 중국에서 만들었지도 모른다. 참고로 한강시민공원을 예전에는 ‘고수부지’라 불렀다. 고수부지의 통행로가 강 바로 옆에 붙어 있지 못하고 계단형의 사면으로 연결된 데는 이유가 있다. 고수부지(floodplain)는 말 그대로 물에 잠기도록 계획된 땅이다. 애당초 하상계수(연간 최소 유량과 최대 유량의 차)가 엄청나게 큰 한강은 강변에 붙여 보드워크를 만들 수가 없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나무로 만들었다면, 매년 물에 젖어 썩었을 것이다. 그러니 또 조심할 것.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것들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이니까. 한강아 내가 미안하다.
 
박세회는 <에스콰이어 코리아>의 피처 디렉터이자 소설가다. 

Credit

  • EDITOR 김현유
  • WRITER 박세회
  • ILLUSTRATOR MYCDAYS
  • ART DESIGNER 주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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