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바람과 물과 건축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서울 사대문 안에 처음으로 세워진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을 소개한다. | JCC 아트센터,건축,안도 다다오,르코르뷔지에,JCC

이른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서울 혜화동 혜화문 길에 위치한 JCC 아트센터와 JCC 크리에이티브센터도 비에 흠뻑 젖어들고 있었다.JCC 아트센터는 클래식 전용 공연장이다.JCC 크리에이티브센터는 건물주인 재능교육의 연구개발 시설이다.사유지인 적벽돌 주택 몇 채를 사이에 두고 5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두 형제 건물을 묶어서 간략하게 JCC라고 부른다. 거장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JCC를 설계했다.제주도에는 안도 다다오의 작품이 꽤 있다.섭지코지에 있는 글라스 하우스가 유명하다. 명상갤러리 지니어스 로사이도 잘 알려져 있다. 둘 다 안도 특유의 노출 콘크리트 건축물이다.서울 사대문 안에서는 JCC가 최초다. JCC 역시 은회색 노출 콘크리트가 특징적이다. 콘도 선명하다. 콘은 콘크리트 타설을 할 때 거푸집이 벌어지지 않도록 나사못으로 조이면서 생겨난 구멍을 말한다. 바둑판처럼 질서 정연한 콘들은 안도 건축의 인장과도 같다.거장 건축가에게는 저마다 상징물 같은 건축 재료가 있다. 건축의 거장은 자신이 선택한 재료의 물성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아는 마법사다.안도 이전에 콘크리트의 대마법사는 르코르뷔지에였다. 르코르뷔지에는 철근 콘크리트라는 재료를 재창조해서 현대 건축의 아버지가 됐다.르코르뷔지에가 아버지라면 미스 반데어로에는 어머니다. 반데어로에의 주재료는 유리였다. 반데어로에가 설계한 뉴욕 시그램 빌딩은 철과 유리로 세운 모더니즘 건축의 기념비다. 20세기 건축사는 콘크리트와 유리의 시빌 워로 요약할 수 있다.말년의 르코르뷔지에도 콘크리트의 폐쇄적 비인간성에 대해 고민했다. 르코르뷔지에의 유니테 다비타시옹의 조악한 복제물인 콘크리트 아파트가 현대 도시를 콘크리트 더미로 전락시키고 있었다. 다종다기한 건물이 공존했던 도시 건축 생태계는 파괴됐다.1955년에 지은 롱샹 성당은 르코르뷔지에가 후대 건축가에게 남긴 유언이다. 콘크리트로 지은 성당 내부로 외부의 자연광을 끌어들이면 재료의 불투명성과 공간의 비인간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영감을 줬다.안도 다다오는 르코르뷔지에의 고민을 이어갔다.안도에게 프리츠커상을 안겨준 1989년 작 ‘빛의 교회’는 외부의자연광을 교회 내부로 끌어들여 불투명한 콘크리트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점에서 르코르뷔지에의 롱샹 성당과 일맥상통한다. 둘 다 콘크리트를 투명화시켰다. 안도는 그렇게 르코르뷔지에가 멈춘 곳에서 시작했지만 이내 선배를 능가했다.우선 콘크리트 건축의 기하학성을 극대화시켰다. 안도 건축물은 수직선과 수평선으로만 이뤄져 있다. 자연계에는 직선이 없다. 건축의 본질은 곡선의 세계에 인위적 직선을 긋는 일이다. 대신 안도는 콘크리트 건축물을 자연적 요소로 에워쌌다. 빛과 바람과 물이다.강원도 오크밸리에 있는 한솔뮤지엄은 이런 안도 건축의 특징이 몽땅 담긴 교과서다. 한솔뮤지엄은 직선의 콘크리트 건물이 사선의 산 위에서 물과 바람과 빛을 만나는 구조다. 이렇게 인공과 자연이 만나 미래적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야말로 안도 건축의 정수다.바꿔 말하면 안도를 콘크리트 건축가로만 이해해선 안 된다는 말이다. 안도의 강건한 콘크리트 직선 건축에 진정한 의미를 담으려면 풍만한 자연미가 필수다. 그래서 안도는 때때로 자연적 요소까지 인위적으로 설계한다.미국 텍사스 주 포트워스 현대미술관이 대표적이다. 낮은 인공 연못을 만들고 그 위에 직육면체의 콘크리트 건물 5채를 지어 올렸다. 빛과 물과 바람이 많은 삼다도에 안도 건축물이 적잖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 건축가라는 이유 말고도 안도의 건축물이 서울 도심에 이제야 들어선 이유도 어쩌면 이것이다.서울은 거대한 잿빛 콘크리트 도시다. 안도한테 긴요한 자연적 요소가 희귀하다. 이래선 안도식 콘크리트 건축물을 서울이 집어삼켜버릴지도 모른다. JCC도 그렇다. 건축의 문외한한테는 또 하나의 회색 콘크리트 건물로 비칠 수 있다.비가 내리고 있었다. 빗물이 흘러서 JCC의 옥상 정원부터 계단을 타고 지하층까지 흘러내렸다. 빗물은 JCC가 자리한 혜화동 길까지 흘러내렸다. 물이었다.JCC의 옥상 정원에 올라섰다. 높은 건물이 별로 없었다. 일대가 지구 단위 상세 계획에 따라 엄격하게 개발이 제한돼 있는 탓이다. 사대문의 내사산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산이었다.점심 무렵이 되자 세차게 내리던 비가 그쳤다. JCC 이곳저곳으로 햇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JCC는 안도 다다오의 작품답게 자연광을 내부 공간으로 풍성하게 끌어들이고 있었다. 옥상 층에서부터 비치기 시작한 서광은 어느새 지하 1층까지 스며들었다. 빛이었다.주차장 입구를 표시하는 노란색 삼각형 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수직과 수평으로 이뤄진 안도의건축 세계에서 삼각형은 드물다. 그때 산들 바람이 불어왔다. 삼각형은 바람이었다. 물과 산과 빛과 바람이었다.여기에 안도는 자연적 요소를 하나 더 가미했다.옥상 정원에 올라가면 환풍기가 두 개다. 지하에 내려가면 배수관도 두 개다. 둘 중 하나는 모형이다. 생태계에서는 모든 종이 암수 서로 정답게 짝을 지어 다닌다.안도는 JCC의 모든 건축 요소를 쌍으로 설계했다. 당장 JCC 크리에이티브센터와 JCC 아트센터부터가 단짝 건물이다. 안도는 기어코 서울에서 자연을 찾아냈다. JCC에 적용시켰다.사실 안도가 JCC로 끌어들인 진정 자연적인 요소는 따로 있다. 혜화동 길이다. 혜화동 파출소에서 혜화문까지 이어지는 언덕길이다.혜화동 길의 역사는 500년 가까이 된다. 동소문이라고도 부르던 혜화문이 생기면서 함께 난 길이다. 한양 도성 지도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혜화동 길은 혜화로터리에서 한신대 방향으로 나 있는 시끌벅적한 아스팔트 길과는 격이 다르다. 사람이 만들었지만 이젠 자연의 일부가 된 도시의 역사다.게다가 혜화동 길 주변엔 오랫동안 이 길에서 서식해온 사람들의 흔적이 흩어져 있다.우선 연우소극장이 있다. 를 초연한 대한민국 연극의 산실이다. 맞은편엔 대학로에서 활약하는 뮤지컬 배우들의 합숙소가 있다. 뼈대 있는 가문의 기와집도 있고 높으신 회장님과 정치인의 본가도 있다. 이제는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 된 옛 서울시장 공관도 있다. 조선 시대에 말을 매놓던 흔적도 발견됐다.혜화동 길에는 서울에 살았고, 살고 있고, 살아갈 사람 냄새가 가득하다.JCC에는 유달리 사선이 많다. JCC 크리에이티브센터와 JCC 아트센터를 떠받치는 중심 기둥부터가 V자 모양이다. 다른 안도 건축물에선 찾아보기 힘든 요소다.수직선도 사선이지만 수평선도 사선이다. JCC의 지붕은 혜화문까지 올라가는 혜화동 길의 각도와 일치하게 설계돼 있다. JCC와 혜화동 길은 그렇게 조화를 이룬다.사실 JCC는 양도 2차선인 혜화동 길에 들어서기엔 육중한 건축물이다. 은회색 콘크리트 건물이라 붉은 벽돌이 주를 이루는 주택들 사이에서는 비대해 보일 수도 있다. 안도는 JCC를 한껏 낮춰서 혜화동 길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설계했다.여기서 서울의 JCC는 도쿄의 오모테산도 힐스와 이어진다. 안도는 유서 깊은 아파트 단지였던 오모테산도 힐스를 재개발하면서 과거의 역사를 보존하려고 사투를 벌였다. 아파트 주민들과 4년 넘게 협상을 벌였을 정도다. 안도는 오모테산도 힐스의 높이를 주변 가로수보다 낮게 설계했다. 예전 동네의 풍경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다.삭막한 도시에서 가장 자연적인 존재는 어쩌면 인간이다. 인간이 남긴 역사 속 흔적이야말로 자연의 물과 바람과 빛과 같다. 안도는 도시에선 인간이 남긴 역사의 흔적을 건축물에 끌어들인다. 그것이 콘크리트 더미인 도시 안에서 안도의 콘크리트 건물이 스스로를 차별화하고 살아남는 방법이다.안도는 JCC를 설계하기 전에 여러 차례 대학로와 혜화동 길을 답사했다. 도시의 빛과 바람과 물과 사람의 흔적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진정한 거장은 도시에 단순히 건축물을 지어 올리지 않는다. 도시의 맥락 안에서 건축물을 발견해낸다. 도시와 어우러지는 점과 면과 색을 찾아낸다. 그렇게 안도 다다오는 혜화동 길에서 JCC를 발견해냈던 것이다.안도 다다오는 스스로를 도시의 게릴라라고 부른다. 권투 선수 출신인 안도에게 꽤 어울리는 별명이다. 안도는 게릴라처럼 도시에 도전하는 건축가다.안도의 출세작이라고 할 수 있는 1976년 작 스미요시 연립주택도 획일화돼 가는 도시와 싸우기 위한 안도식 게릴라전이었다. 스미요시 연립주택은 도시의 삭막함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해주는 단단한 코쿤 같은 주택이다. 안도는 이런 건축적 혁신이 점조직처럼 퍼져나가면 도시의 건축 생태계가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JCC도 안도가 벌이고 있는 게릴라전의 일부다. JCC와 인접한 대학로는 어쩌면 서울에서 최초의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났던 거리다. 연극인의 거리가 먹자판이 됐다.반면에 혜화동은 여전히 고색창연하다. 골목 하나 모퉁이 하나에도 문화·예술의 추억이 어려 있다. 오래된 터줏대감들이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안도는 JCC가 길의 생태계를 지켜주는 보루가 되길 원했다.이건 JCC 건축주인 박성훈 재능교육 회장도 처음부터 원했던 방향이다. 박성훈 회장은 스스로 학습법을 개발해 재능교육을 대표적인 학습지 회사로 키워냈다. 박 회장의 자택이 혜화동 길 주변에 있었다. 혜화동 길에서 스스로 학습하면서 교육적·사업적 영감을 얻었다. 동네 이곳저곳에서 문화적 교류를 하면서 유명한 스스로 학습법을 개발했다.조선 시대 사교육이 번성했던 곳이 혜화동 길이었다는 뒷얘기도 있다. 재능교육 본사도 마침 JCC 맞은편에 있다. 박 회장은 JCC가 재능교육을 키워준 혜화동 길을 부활시키는 촉매가 되길 원했다. 안도의 게릴라 전략과도 맞아떨어졌다.안도도 박 회장도 JCC가 혜화동 길을 침범하는 건 극도로 경계했다. JCC 크리에이티브센터 부지는 ㄱ자로 돼 있다. 사각형 대지가 더 쓸모 있다는 건 부동산 상식이다.ㄱ자 대지의 귀퉁이에는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주택이 있었다. 이젠 퇴락해서 건축적 가치는 낮아졌지만 엄연한 혜화동 길의 역사였다. 그냥 뒀다.맞은편엔 수녀원의 기숙사가 있었다. 낮고 작은 주택이었다. 건축주도 건축가도 수녀원을 애지중지 배려했다. 공사 기간 중에 소음 때문에 기도가 방해받지 않게 애썼다. 수녀원에 창문을 달아 프라이버시를 지켜줬다. 이런 태도 덕분에 혜화동 길 주민들도 JCC를 반겨줬다.JCC 아트센터의 공연장은 백건우 선생도 최종 리허설을 하러 올 만큼 수준 높은 음향 설비를 갖추고 있다. 돈 자랑하는 미술관도, 돈 벌고 싶어 하는 뮤지컬 공연장도 아닌 품위 있는 클래식 전용 공연장이다. 수녀님들은 JCC 아트센터에서 열리는 클래식 공연의 VVIP다.안도의 건축물은 보기는 단순해도 실제로는 시공하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콘크리트의 부분부분은 작은 오차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종이에 펜을 대고 한 번도 떼지 않고 그림을 그려내는 일과 비슷한 난이도다.안도 특유의 은회색 콘크리트색도 난제다. 안도와 오래 일해온 70대 엔지니어가 반드시 공정 마무리를 한다. 70대 노엔지니어가 나무망치로 콘크리트 거푸집을 두드리고 다니면서 감각적으로 적절한 때를 찾아낸다. 콘크리트는 도시에서는 흔한 건축 재료지만 안도의 콘크리트는 특별하다.JCC는 길을 향해 열려 있는 건축물이다.안도는 내·외부도, 층도 구분이 없는 열린 콘크리트 건축물을 설계했다. 거대한 유리창조차 병풍식으로 설계해 완전히 열리게 만들었다. 안도에게 유리는 열린 척할 뿐 진정 열려 있지는 않은 건축 재료다.보행자는 혜화동 길을 걸어 올라가다가 불현듯이 JCC 크리에이티브센터의 옥상까지 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 안도는 오모테산도 힐스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길이 건축이 되고 건축이 길이 되는 작품을 설계했다. 바람과 물과 빛과 사람을 다시금 콘크리트 도시 속으로 끌어들였다. 게릴라적 태도로 서울에 변화의 한 점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