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바의 시대에 살고 있다. 훌륭한 바가 무서운 속도로 늘고 있다.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2016년 현재 기준 전국 바는 220여 개에 이른다. ‘토킹 바’라고 부르는 예쁜 여성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목적인 곳은 당연히 제외한 수치다. 싱글 몰트위스키와 칵테일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진짜 바만 집계했다. 지난해 말 160여 개였으니 불과 반년 만에 말 그대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올해 말에는 이보다 더 많은 수의 바가 영업하고 있을 것이다.
결코 한때 유행이 아니다. 대부분이 2010년 이후 문을 열었고 그중 폐업한 바는 스무 군데도 안 된다. 장사가 된다. 바는 다른 업종과 다르게 너도나도 창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더 의미가 깊다. 술을 잘 알아야 하고 진심으로 좋아해야 도전할 수 있다. 위스키나 칵테일은 취향을 대변하는 도구다. 어줍지 않게 진입했다가는 소비자의 외면을 받기 십상이다. 괜찮은 바가 늘어난다는 것은 관련 저변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과 같다. 그만큼 애호가도 전문가도 늘어나는 것이다.
‘부어라 마셔라’를 지양하는 음주 문화의 변화도 바가 성장하는 데 한몫하고 있다. 여전히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술은 소주다. 이는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소주 외의 술을 즐기는 일이 별로 어색하지 않게 됐다. 상대의 취향을 무시하기라도 했다간 크게 질타를 받는다. 술을 권하고 서로 따라주는 것보다 각자 마시고 싶은 술을 적당히 마시는 문화가 정착되어가는 중이다. ‘혼술족’의 증가도 바가 늘어나는 데 한몫한다. 혼자 술 한잔하고 싶을 때 바를 찾는 것보다 나은 대안은 없다.
몇 년 전만 해도 바 특집의 목적은 독자의 ‘아는 척’을 돕기 위함이었다.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에스콰이어>를 읽는 독자가 ‘그런 것도 모르는 놈’이 되지 말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번 기사를 준비했다. 그만큼 더 필사적이었다.
[things number="9" thing_title="플로팅" thing_title_2nd="서울시 중구 퇴계로 137"]
갈 이유 L7 호텔의 루프톱 바 플로팅을 방문해야 하는 이유는, 국내 루프톱 바의 선택지가 좁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곳은 진에 특화된 곳으로, 세계 각국에서 온 36가지 종류의 진을 맛볼 수 있다. 기존의 진토닉을 스페인식으로 변형한 ‘진토니카’가 이곳의 대표 메뉴다. 각 진의 특성을 잘 살릴 수 있는 캐머마일, 커민, 녹차, 재스민 등을 이용해 칵테일의 맛과 향을 극대화한다. 무엇을 마실지 고민이겠지만 어떤 것도 실패는 없다. 모두 정답이다.
마실 것 스타 오브 봄베이 진토니카-스타 오브 봄베이 45ml를 넣고 우린 히비스커스 차 1티스푼 넣는다. 오렌지 껍질과 과육을 넣고 주니퍼 베리 5~6알을 함께 넣는다.
먹을 것 버섯을 이용한 미니 버거 ‘머쉬룸 슬라이더’는 한 입에 먹기에 부담 없다. 이 밖에도 간단한 스낵과 한 끼 식사로도 훌륭한 디너가 준비되어 있다.
황금 시간대 해가 떨어지면 서울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금요일과 토요일은 디제잉 파티가 있으니 주목할 필요가 있다.
플로팅이 추천하는 집에서 만들기 좋은 칵테일
블랑 드 아 - 청포도 8~10알을 넣고 보드카 45ml에 레몬 주스 15ml를 넣는다. 여기에 설탕시럽 10ml를 넣고 살짝 찧는다. 과육은 걸러도 되고, 우걱우걱 씹어 먹어도 좋다.
[things number="10" thing_title="낫심플" thing_title_2nd="서울시 강북구 노해로8가길 31"]
갈 이유 이제껏 괜찮은 칵테일 바는 강남에 집중되어 있었던 게 사실이다. 강북이라 하더라도 한강과 인접한 곳에 머물렀다. 낫심플은 이 같은 양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강북 중의 강북 수유동에 가게를 열었다. 강북구에서 40종이 넘는 몰트위스키를 접할 수 있는 곳은 낫심플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편안한 동네 바를 지향하면서도 갖춰놓은 술 종류와 퀄리티는 여느 강남 바 못지않다. 재야의 고수 같은 느낌이다. 먹고 죽자는 식이 아닌, 술 한잔을 느긋하게 즐기는 문화를 강북에도 확산시킬 전진 기지가 마련된 셈이다.
황금 시간대 비 오는 날, 커버 차지 1만원만 내면 모든 메뉴를 50퍼센트 할인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things number="11" thing_title="올드패션드" thing_title_2nd="서울시 마포구 동교로46길 29"]
갈 이유 연남동에서 가장 수준 높은 바다. 바텐더 이한별은 고집이 상당히 세다. 경험상 고집 있는 오너가 운영하는 공간은 정체성이 분명하다. 거짓 친절이 아닌 고집과 철학이 담긴 진정한 서비스에서 고객이 더 큰 만족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은 이름처럼 옛날 느낌을 고수하려고 노력한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의 미국 바와 비슷한 방식으로 칵테일을 내고 가게를 운영한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3층에 위치해 높은 직선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수고쯤은 여기서 얻는 만족감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마실 것 퀸즈 파크 스위즐-1920년대 트리니다드의 퀸즈 파크 호텔에서 탄생한 스위즐 스타일의 클래식 칵테일. 데머레라 럼 60ml, 프레시 라임 주스 25ml, 케인 슈거 시럽 15ml, 스피아 민트 잎 적당량, 앙고스투라 비터 10방울을 하이볼 잔에 얼음과 넣고 잘 저으면 완성.
올드패션드가 추천하는 집에서 만들기 좋은 칵테일
콜드 브루 네그로니-콜드 브루 커피 45ml, 캄파리 30ml, 스윗 머부스 30ml를 온더록스 잔에 얼음과 넣어 잘 저은 후 오렌지 필을 얹어 마무리.
[things number="12" thing_title="키퍼스" thing_title_2nd="서울시 강남구 선릉로152길 18"]
갈 이유 키퍼스는 계절마다 테마를 정해 메뉴와 인테리어를 모두 바꾼다. 7월까지의 테마는 ‘이탈리아’로 바질 같은 식재료를 이용한 칵테일을 선보였다. 인테리어 또한 테마에 충실해서 이탈리아 국기와 스쿠터 베스파로 실내 장식을 했다. 8월에 선보일 테마는 페스티벌이다. 축제를 즐기며 꿀떡꿀떡 마시기 좋은 가벼운 칵테일이 주를 이룰 예정이다. 갈 때마다 달라지는, 끊임없이 진화하는 바의 표본이다.
마실 것 키퍼스 허리케인 오렌지 주스 30ml와 라임 주스 30ml를 섞는다. 패션푸르츠 퓌레 60ml를 넣고 보드카 60ml, 그리고 비트를 넣어 만든 그레나딘 시럽을 넣고 흔들어준다. 끝으로 말린 파인애플 한 조각을 얹어 장식한다.
피에몬테 스프리처 피에몬테 스프리처키퍼스가 추천하는 따라 하기 쉬운 칵테일
피에몬테 스프리처-월계수 잎을 넣어 48시간 동안 우린 보드카 30ml에 아페롤 10ml를 넣는다. 여기에 산도를 맞추기 위해 레몬 주스 10ml를 넣는다. 마지막으로 무스카토 스파클링 와인으로 잔을 가득 채운다.
[things number="13" thing_title="더 캐스크" thing_title_2nd="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대방로 375"]
갈 이유 조용하게 낮술을 마실 수 있다. 요즘 생기는 바와 더 캐스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영업시간이다. 보통 바가 밤에 열고 새벽이나 아침에 닫는 것과 달리 더 캐스크는 오후 3시에 문을 열어 밤 12시에 닫는다. 문 닫을 때까지 술을 마셔도 지하철 타고 집에 들어갈 수 있는 바라니, 왠지 산뜻한 기분이 든다. 위치가 여의도라 일부러 찾는 사람이 있지 않는 한 늘 한가하다는 점도 좋다. 평일 오후에 조용히 한잔할 수 있는 바에 대한 판타지가 있는 사람에게 특히 좋겠다.
마실 것 위스키 종류가 많은 편이다.
황금 시간대 역시 오후 3시.
[things number="14" thing_title="스틸" thing_title_2nd="서울시 강남구 선릉로 152길 7"]
갈 이유 스틸은 ‘월드 베스트 바 50’에 이름을 올린 ‘르 챔버’의 캐주얼한 버전이다. 반바지 같은 편안한 차림의 고객에게도 너그럽다. 그래서 처음 만나거나 사업적으로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보다는, 술을 마시며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는 사람들과 방문하기에 알맞다. 면적이 넓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 분위기가 주는 아늑하고 느긋한 맛이 있다. 방문하는 손님들의 인상착의와 마시는 술을 고려해 그때그때 음악을 바꾸는 섬세함도 있다.
[things number="15" thing_title="돈패닉" thing_title_2nd="서울시 종로구 사직로12길 2"]
갈 이유 경복궁역 근처 서촌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위치 큰길가 1층에 덩그러니 바가 있다. 아침 9시부터 영업을 시작하고 커피와 위스키를 판매한다. 칵테일은 없다. 출근길에 커피 한잔하듯 퇴근길에 위스키 한잔하기 좋은 곳이다. 조만간 공사를 시작해 2층은 보다 전문적이 바와 레스토랑으로, 옥상은 루프톱 라운지로 거듭날 예정이다.
황금 시간대 이른 저녁이나 늦은 오후에 잠깐 들러 낮술 하기 참 좋다.
[things number="16" thing_title="무디" thing_title_2nd="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 29안길 26"]
갈 이유 입구가 매력적이다. 간판이 없지만 지하 업장이 살짝 보일 듯 말 듯한 구조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싱글 몰트위스키 케이스가 입구 옆에 쌓여 있어 바일 것이라 추측하고 들어가면 상당히 매력적인 인테리어의 공간이 펼쳐진다. 싱글 몰트위스키 종류도 제대로 갖춰놨고 칵테일도 수준급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뭐 하는 곳인지 궁금해서 내려왔다가 그대로 자리에 앉아 술을 몇 잔 마신 뒤 단골이 된다. 확장된 연남동 상권의 거의 끝자락에 있기 때문에 아직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위치다. ‘나만 아는 가게’가 필요하다면 무조건 추천이다.
황금 시간대 8시부터 오픈인데 가능하면 해 지기 전에 찾아가길 권한다. 한잔 걸치고 어두워진 후 계단을 올라오면 어디론가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온 기분이다. 입구는 물론 동네 분위기도 해 지기 전후가 확연히 다르다.
[things number="17" thing_title="소하" thing_title_2nd="서울시 용산구 대사관로12길 3"]
갈 이유 새롭고 완성도가 높다. 이 두 가지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사람들의 시선을 받을 수 있다. 각종 주류 리스트가 풍부한 건 기본이고, 르 챔버와 스틸에서 경력을 쌓은 월드클래스 우승자 바텐더가 둘이나 있다. 이들이 시즌별로 3개월에 한 번씩 바뀌는 칵테일 메뉴를 만든다. 오래된 배의 선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인테리어도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난다. 요즘 어디가 뜨는지를 기준으로 저녁 행선지를 고르는 사람에게 소하는 2016년의 모범 답안이 될 수 있다.
마실 것 소노마 벨리-페어 보드카 45ml, 화이트 그레이프 프루츠 주스 30ml, 라임 주스 15ml를 넣고 토닉 워터를 30ml 붓는다. 마지막으로 민트를 올려 장식한다.
먹을 것 다이닝 메뉴가 풍성하다. 분위기 좋은 야식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이쪽이 더 매력적일 수도 있다. 스테이크처럼 분위기 있는 요리 사이로 해물 라면이 눈에 띈다.
황금 시간대 조용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흥겨운 분위기를 원한다면 밤 11시쯤.
소하가 추천하는 집에서 만들기 좋은 칵테일
벨리니-당도 높은 복숭아를 갈거나 으깨서 샴페인 글라스에 넣는다. 샴페인으로 잔을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