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이기는 법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트럼프는 어떻게 승리했는가. <거래의 기술>에 답이 있다. | Book,트럼프,거래의 기술

“그들은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다.” “나는 곧 내가 현대의 개발업자들에 대한 모든 악의 상징이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는 사설에서 대중의 감수성을 깔아뭉개는 타산적 현금 범람이라 묘사했다.”뉴욕의 부동산 개발업자였던 도널드 트럼프는 그랜드 하얏트 호텔 개발과 트럼프 타워 개발에 성공하면서 거부가 됐다. 1987년 11월 출간한 은 트럼프가 자신의 성공 비결을 정리한 책이다.은 출간한 지 30년 가까이 됐지만 어떻게 워싱턴의 아웃사이더 도널드 트럼프가 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됐는지를 이해하는 데는 여전히 중요한 시사점을 주는 책이다. 선거는 구도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는 크게 보면 엘리트 대 비엘리트의 구도로 전개됐다. 힐러리 클린턴은 워싱턴과 월가의 엘리트 집단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인사이더다. 사실 트럼프도 엘리트다. 뉴욕 군사학교를 나왔고 MBA 명문 와튼에 편입했다.트럼프는 엘리트였지만 비엘리트의 언어를 썼다. 대선 기간 중에 트럼프가 쏟아낸 막말이 전부 전략적이었다고 할 순 없다. “캘리의 눈에서 피가 났다. 신체 어디에서도 피가 났을 것”이라는 식의 막말은 죽어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폭발한 것이라고밖에 설명하기 어렵다. 캘리는 트럼프의 여성 비하 발언을 공격했던 의 여성 앵커다. 반면에 ‘한국은 미쳤다’거나 ‘멕시코 이민자들은 성폭행범’이라거나 오바마를 향해 “너는 해고야”라고 외치거나 오바마 대통령의 출생지가 하와이가 아니라는 이른바 버서 논쟁에 동참한 것은 분명 비엘리트적 언어로 선거 구도를 뒤흔든 발언이었다. 정치적 금기를 깨는 발언이었기 때문이다.정치 엘리트들은 정치적으로 올발라야 한다는 자기 검열에 얽매여 있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건 올바른 일이다. 언어만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면 그건 위선이다. 미국의 다수 대중은 워싱턴의 위선에 신물이 나 있었다. 오바마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연설은 황홀할 만큼 멋졌지만 비엘리트 입장에서 보자면 그도 정치 엘리트 집단의 간판일 뿐이었다. 그런데 트럼프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지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말해버렸다. ‘왜 미국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걸고 한국을 지켜줘야 하는가’나 ‘왜 이민자들한테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겨야 하는가’ 같은 서민적 의견을 대신해서 여과 없이 배출해버렸다. 이렇게 비엘리트들을 자극하는 트럼프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막말 전략은 제대로 먹혔다. 대부분의 예상을 깨고 경선에서 이겼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대선에서도 이겼다.은 트럼프가 엘리트 대 비엘리트 구도를 이용한 게 이번 대선이 처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뉴욕 부동산업은 신도시 개발과는 다르다. 뉴욕이란 도시는 현대건축 박물관이나 다름없다. 건축물 하나하나가 박물관의 소장품이란 말이다. 건축 평론이 부동산 개발의 성패에 이렇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도시는 또 없다. 트럼프는 일찍부터 엘리트 건축 평론가들과 대립각을 세웠다. 그랜드 하얏트 호텔의 유리 커튼월은 인접한 그랜드 센트럴 스테이션의 클래식한 벽돌 외벽과 충돌했다. 혹평을 해대는 건축 평론가들 앞에서 트럼프는 “그들은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다”고 맞섰다. 트럼프 타워의 로비는 아랍인이나 중국인 취향의 휘황찬란한 금빛으로 유명했다. 촌스럽다는 혹평이 쏟아졌지만 역시 트럼프는 일전을 불사했다. 이때 트럼프는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곤 했다. 엘리트들이 자신을 우습게 보게 만드는 전략이다.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지적 허영을 뽐내며 트럼프를 때릴 때마다 엘리트에 대한 반감이 가득했던 비엘리트들은 난타당하는 트럼프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트럼프를 응원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줄곧 트럼프의 거래의 기술이었고 승리의 기술이었고 대선에서도 이긴 당선의 기술이다.대중과 시장은 트럼프의 손을 들어주곤 했다. 그랜드 하얏트 호텔은 대박을 쳤고 트럼프 타워는 초대박을 쳤다. 트럼프는 자신을 천박한 부동산업자로 매도하는 엘리트 건축 평론가들을 상대로 싸우면서 비엘리트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성공했다. 뉴욕의 건축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정치적 올바름 따위는 무시하고 대중이 지닌 자본주의적 속물성을 건드리고 만족시킨 덕분이었다. 의 이런 장면을 읽다 보면 기시감이 느껴진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벌어진 일과 놀랍도록 흡사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정치 평론가들의 십자포화 속에서 위선적 올바름에 안주한 공화당과 민주당의 대선 주자들을 차례로 무너뜨린 끝에 대권을 차지했다. 다수 대중이 지닌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진심을 꺼내 든 덕분이다.을 보면 트럼프는 평생 이기려고 기를 써온 싸움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대선도 트럼프에겐 승패의 전장일 뿐이었다. 트럼프는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음으로써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 민주적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흑인이 대통령이고 유색인종이 잘사는 게 아니꼬운 백인 노동자 계층의 비뚤어진 열등감을 자극했다. 자본주의의 실패를 교정해야 할 민주주의의 지도자가 자본주의의 찌꺼기를 권력 쟁취에 역이용했다. 트럼프의 당선이 트럼프의 승리이자 미국 민주주의의 패배인 이유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훌륭한 정치를 보여줄지는 속단하기 이르다.적어도 은 트럼프가 평생 그렇게 이겨왔다는 걸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