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박근혜를 만들었는가 - 3. 정윤회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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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박근혜를 만들었는가3. 정윤회2015년 1월 김영한 민정수석의 항명 파동은 우병우의 커진 존재감과 청와대 내부의 권력 구도 변화를 알리는 파열음이었다.김영한 수석은 국회에 출석해 정윤회 게이트에 대해 답변하라는 김기춘 실장의 명령을 거부한다. 허수아비 수석인 것도 억울한데 총알받이까지 되라는 얘기였다.우병우는 곧바로 후임 민정수석으로 임명됐다.?민정비서관에서 민정수석으로 승진한 건 전례가 없었다.?역대 최연소 민정수석이었다.2015년 2월17일엔 김기춘 비서실장까지 전격 사임한다. 사적으론 2013년 12월 31일 교통사고를 당해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장남의 간호를 위해서였다. 김 실장이 청와대에 들어가고 불과 5개월여 만에 일어난 의문의 사고였다.공적으론 청와대 안에 김기춘 실장의 대안이 등장했기 때문이었다.우병우였다.바깥에선 기춘대원군이라고 불리면서 청와대 내 실세처럼 비쳤다. 실제론 청와대 안팎 비선의 흔들기 속에서 불안한 자리를 유지해야 하는 할배였다. 정윤회 문건 파동도 따지고 보면 기춘대원군과 비선실세 간 권력 다툼의 단면이었다.정윤회 게이트 때 검찰 조사를 받던 박관천 경정은 이런 말을 흘렸다.“우리나라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 최순실 씨가 1위, 정윤회 씨가 2위,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 정작 우병우와 김기춘은 권력의 진상 앞에서 다른 선택을 한다. 그 자신이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던 7인회의 일원인 김기춘 실장은 대통령과 비선실세를 구분하고 청와대 권력의 균형추를 유지해보려고 샅바 싸움을 벌였다.반면에 우병우 수석은 권력의 풍향에 순응했다. 우병우는 기꺼이 테크노크라시가 됐다. 최순실과 박근혜를 그냥 하나의 대통령 세력으로 간주한 셈이었다. 덕분에 우 수석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대통령의 뜻을 내세우며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다.안 그래도 민정수석은 광범위한 권한 때문에 왕수석이라고 불린다.우병우 민정수석의 권한은 사실상 비서실장급이었다. 각종 정책과 부처별 인사에까지 깊숙하게 간여했다. 이 시절 우병우 수석이 사실상 대통령을 대신해 국정을 대리 통치했다는 말까지 나오는 이유다.박근혜 청와대에서는 낮엔 우병우가 실세였고 밤엔 최순실이 실세였다.지난 11월 11일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검찰의 우병우 사단 리스트를 공개했다. 최순실 게이트 수사팀이 모조리 우병우 사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만큼 막강했다. 대통령은 가 저격한 우병우를 안 친게 아니라 못 친 걸 수도 있다.가 우병우를 치려고 했던 건 이래서였다. 박근혜 대통령과 일심동체인 최순실이란 안방 권력을 직접 저격하긴 쉽지 않았다.박근혜 청와대의 내부 권력 구조는 구중궁궐과 흡사하다. 치맛자락 속의 은밀한 발걸음처럼 권력의 움직임이 바깥으론 잘 보이질 않는다.이런 비선 권력을 공적 권력화시키는 기술자인 우병우를 청와대에서 숙청하면 최순실 비선 권력이 국정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을 효과적으로 차단할 수 있었다. 최순실이란 비선실세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견제할 수 있었다.이것이 가 아우르는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과 집권 세력인 보수 우파의 전반적인 공감대였다.최순실의 정체가 드러나는 건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치명타지만 재집권을 노리는 보수 세력에게도 악재였다.지난 11월 7일 는 ‘팔짱 낀 채 웃으며 조사받는 우병우’라는 제목의 사진을 1면에 실었다. 거의 저격총 수준의 망원 카메라로 검찰 청사 안에서 조사받는 우병우 전 수석의 모습을 촬영한 정밀 타격 컷이었다. 상징적이었다. 가 우병우를 저격한 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