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박근혜를 만들었는가 - 7. 한겨레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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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박근혜를 만들었는가7. 한겨레라는 방어막이 사라진 박근혜 정권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기 시작한 건 였다. 9월 20일 는 ‘대기업 돈 288억원 걷은 K스포츠 재단 이사장은 최순실 단골 마사지 센터장’이라는 1면 보도를 내보낸다. 최순실이라는 이름 석 자가 처음 전면에 등장하는 순간이었다.사실 TV조선 보도에선 미르 재단과 K스포츠 재단은 등장하지만 최순실이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아직 와 청와대 사이엔 타협의 여지가 남아 있었단 얘기다. 실제로도 8월 이후 한 달 가까이 정가는 숨 고르기에 들어간다. 리우 올림픽까지 겹치면서 국민적 관심이 정치에서 멀어진 탓도 있었다.는 “권력의 핵심 실세는 정윤회가 아니라 최순실이다. 정윤회는 그저 데릴사위 같은 역할을 했을 뿐”이라는 전직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을 보도한다. 최순실이 미르 재단과 K스포츠 재단 설립을 주도했다는 얘기였다.최순실 게이트가 본격 점화되는 순간이었다. 2014년 말 보도로 비선실세로 알려졌던 정윤회 실장은 이미 2014년 5월 최순실과 이혼하면서 사실상 권력 핵심에서 숙청됐다는 것도 이때 확인됐다. 의 보도는 권력의 심장을 향한 한 방의 총성이나 다름없었다.그런데 이때부터 최순실의 정체에 대한 온갖 사실과 거짓과 과장이 시중에 중구난방으로 떠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최순실은 이제까지 공직을 맡은 적이 없는 그야말로 강남 아줌마였기 때문이다. 공식적인 발언이나 자료가 전무했다.“문고리 3인방은 생살이고 최순실은 오장육부다.”는 최순실과 박 대통령의 관계를 이렇게 묘사했다.1987년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된 이래 대통령의 비선실세 논란이 불거진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김영삼 대통령 때는 차남 김현철 씨가 비선실세였다. 김현철 씨의 영향력은 지금의 최순실 못지않았다.노무현 대통령 때는 친형 노건평이 비리에 연루됐다.이명박 대통령 때는 역시 친형 이상득 의원이 게이트를 일으켰다.혈육도 아닌 최순실이 어떻게 대통령의 비선실세가 될 수 있었는지를 놓고 추측이 난무한 건 당연했다.최순실이 무당이고 박근혜 대통령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최태민이 영세교라는 사이비 종교 교주였던 건 역사적 사실이다.위키리크스를 통해 폭로된 버시바우 비밀 보고서에는 “최태민은 박근혜의 몸과 영혼을 완전히 통제했다”라고 기술돼 있다. 이걸 근거로 1994년에 죽은 최태민에 이어 최순실이 박근혜의 몸와 영혼을 통제한다는 주장이 SNS를 중심으로 정설처럼 널리 퍼졌다. 최순실이 최태민의 현몽과 예지력을 이어받았다는 얘기도 나왔다.최태민이 죽은 육영수 여사가 꿈에 나타났다는 걸 구실로 영애 박근혜한테 접근했듯이 최순실도 주술적인 방식으로 대통령 박근혜를 휘두르는 게 아니냐는 말이었다.어쩌면 미르 재단이나 K스포츠 재단 비리보다 최순실 게이트에 서려 있는 이런 혹세무민적 요소가 더 대중을 자극한 측면이 있다. 정치적 혁명은 미르 재단이나 K스포츠 재단 같은 실체적 비리보다는 이런 비과학적 불신이 도화선이 되는 경우가 많다.최순실 게이트는 복잡하기 짝이 없다. 반면에 무녀의 국정 농단이란 프레임은 자극적이며 이해하기도 쉽다. 명성왕후 시대 무속인 진령군의 국정 농단 사건이 갑자기 포털 검색어 1순위에 오른 까닭이다.미시사학자 로버트 단턴은 에서 프랑스 대혁명은 계몽사상에 기반을 둔 정치적 혁명이 아니라 프랑스 왕실에 대한 온갖 유언비어가 촉발한 가치관 혼란이었다고 정의했다. 에서 단턴이 다룬 ‘뒤바리 백작부인에 관한 일화’는 놀라우리만치 최순실 게이트와 닮아 있다.뒤바리 백작부인은 루이 5세의 애첩이었다. 실상은 거리의 매춘부 출신이었다. 당대 뒤바리 백작부인에 관한 가십은 프랑스 왕가의 정통성과 상징성을 무너뜨렸다. 사이비 종교의 교주 최태민의 딸 최순실과 그들한테 놀아난 공주 박근혜에 관한 온갖 가십은 박정희-박근혜 왕조의 정통성과 상징성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설사 그것이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은 유언비어였다고 해도 말이다.대중은 사상이 아니라 상상에 의해 궐기한다.프랑스 대혁명의 도화선이 된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지”라고 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말처럼 말이다. 국민 생활 속에 널리 퍼진 SNS는 이런 최순실 유언비어가 확산되기에 더없이 좋은 토양이었다. 이게 최순실 게이트가 이토록 크게 폭발한 세속적 이유다.이렇게 박근혜 정권은 박근혜와 최태민의 과거 탓에 태생적으로 혹세무민적 위험 요소를 안고 있었다. 자칫 과학적 민주주의 제도 자체를 붕괴시킬 수 있는 화약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가 최순실이란 이름 앞에서 멈칫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자칫하면 박근혜 정권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가 시스템에 대한 국민적 믿음을 붕괴시킬 수도 있었다.최순실 게이트가 박근혜 정권을 붕괴시킨 건 이런 유언비어적 요소가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 기반인 대중적 이미지를 초토화시켜버린 탓이다. 박근혜 권력의 실체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과 어머니 육영수 여사한테 물려받은 산업화 세대의 향수와 아버지의 고향 대구?경북과 어머니의 고향 충청이란 지역 기반에 의 대중 조작이 빚어낸 허상이었다. 이런 허상이 유지될 때는 콘크리트 지지율이 유지됐다.산업화 세대에게 박정희 시대는 정체성의 일부다. 자발적이었든 강요에서였든 세대 정체성이 박정희 시대의 정신을 복제해버렸기 때문이다. 에서 애국가가 등장하면 부부 싸움을 하다가도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식이다.산업화 세대는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박근혜를 지지한다는 건 그렇게 살아온 인생을 정당화해주는 측면이 있다.?박근혜 정부가 아무리 정책적 실패를 거듭하고 무능을 드러내도 콘크리트 지지율이 유지됐던 이유다.정치인한테서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유권자들의 지적 게으름도 한몫했다. 미르 재단이든 K스포츠 재단이든 우병우든 일반 유권자들한테는 어렵기만 한 얘기였다. 아무리 비판 여론이 거세져도 그들은 박근혜한테서 보고 싶은 박근혜만 봤다.아이러니하게도 최순실 게이트의 사이비적 요소는 이런 박근혜 지지층의 지적 게으름과 복제된 정체성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일단 허상이란 게 드러나자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순식간에 5% 이하로 추락해버린 이유다. 그만큼 박근혜 정권이 박정희 신화와 박근혜 환상에 기반을 둔 취약한 판타지 정부였다는 반증이다.구태여 무녀가 국정을 농단하지 않았어도 어차피 박근혜 정부는 허깨비 정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