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박근혜를 만들었는가 - 13. 박근혜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누가 박근혜 를 만들었는가 ... | 박근혜,최순실,우병우,정윤회,탄핵

누가 박근혜를 만들었는가13. 박근혜JTBC에서 스모킹 건, 그러니까 결정적 증거를 확인된 뒤에도 청와대는 아직 패배를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박근혜 대통령은 10월 25일 오후 4시 1차 대국민 사과를 한다. 사전 녹화였다. 단 95초였다.“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은 일부 자료에 대해 의견을 물은 적은 있으나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습니다.” 사과가 아니었다. JTBC 보도 내용을 축소하려는 또 다른 프레임 전환 시도였다. 청와대의 마지막 저항이었다.JTBC에 스모킹 건이 있었다면 에는 디프 스로트가 있었다. 디프 스로트는 결정적 증인을 뜻한다.는 10월 25일 오후 3시 38분에 인터넷판에 ‘최순실, 정호성이 매일 가져온 대통령 자료로 비선 모임’이라는 기사를 내보낸다. 의 디프 스로트는 이성한 전 미르 재단 사무총장이었다. 최순실의 비선 조직 한가운데에 있어서 박근혜-최순실 커넥션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인물이었다. 이성한 사무총장은 이렇게 증언했다.“최순실 씨의 사무실 책상 위에는 항상 30센티미터 두께의 대통령 보고 자료가 놓여 있었다.” “자료는 주로 청와대 수석들이 대통령한테 보고한 것으로 거의 매일 밤 청와대 정호성 제1부속실장이 사무실로 들고 왔다.” “이런 얘기는 통념을 무너뜨리는 건데, 사실 최 씨가 대통령한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시키는 구조다. 대통령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없다. 최 씨한테 다 물어보고 승인이 나야 가능한 거라고 보면 된다. 청와대의 문고리 3인방도 사실 다들 최 씨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다.”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 녹화방송을 하러 청와대 춘추관에 입장한 시점은 정확하게 10월 25일 오후 3시 43분이었다. 청와대가 오후 4시까지 엠바고를 요청하는 바람에 2분이 채 안 됐던 대국민 사과 녹화방송은 20분 가까이 지난 다음에야 국민들한테 전달됐다. 그런데 정작 춘추관에 앉아 있던 기자들조차 대통령 사과 기자회견이 아니라 의 치명적인 폭로 기사를 읽고 있었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마찬가지였다.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하던 그 시각에 박근혜 정권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