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살아 있는 동상들의 나라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모든 위인의 동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동상을 세웠다고 갑자기 위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한국은 살아 있는 누군가의 동상을 기꺼이, 다양한 형태로 만드는 나라다. 관(官)과 민(民)이 충돌하는 그 지점에 한국의 맨 얼굴이 있다. | 반기문,싸이,평화의 발,동상

첫 번째 장면. 충북 음성군으로 접어드는 길목이다. 직진하면 충청대로다. 좌회전하면 반기문 로에 접어든다. 인근에 서 있는 거대한 야립 간판에는 “미래를 창조하는 중부권 핵심 도시! 음성” 이라고 쓰여 있다. 그 위에 “반기문 UN 사무총장의 고향 음성”이라는 작은 글씨가 있다. 반기문로로 좌회전해 들어가면 오른쪽에 반기문기념광장이 있다. 수많은 국기가 2열로 도열해 있는 길을 걸어 지나면 초대 UN 사무총장 트리그브 할브란리부터 8대 반기문 사무총장까지 8명의 흉상이 은색 지구 조형물을 둘러싸고 있다. 뒤에는 역대 UN 사무총장의 간단한 약력과 반기문 사무총장의 주요 경력, 수상 경력을 적어놓았다. 체감온도가 섭 씨 40도를 넘나들던 날, 그 광장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 택시 기사는 이렇게 말했다.“여- 맞은편 아파트 사는 사람들은 그래도 해 떨어지면 나와 앉아 있고 그래요.” 그가 말을 이었다. “새로 길 내면서 반기문로라고 붙인 거예요. 음성하고 충주하고 서로 시샘을 하고 있어요. '태어난 곳이 고향이다', '아니다, 자란 곳이 중요하다'는 거죠. 거기는 충주고등학교 나오시고 그래서 꼭 음성 왔다가 충주로 가시더라고. 한번 오시면 기자들하고 무지하게 북적거리더라고요. 여기서 10분 정도 가면 ‘반기문 생가 마을’이에요. 그냥 다 세금으로 하는 거 아니에요? 우리 같은 개인들이야 뭐, 그러나보다 하는 거죠.”충주도 반기문 사무총장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7월 26일에는 반 총장이 밀짚모자를 쓰고 수건을 두르고 벼를 들고 있는 그림을 논에 그렸다. 크기는 9917제곱미터, 네 가지 다른 종의 벼를 옮겨 심어 완성했다. 3000만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반 총장이 1971년 결혼 전까지 생활했던 주택을 복원해 ‘반선재(반기문의 선한 집)’라는 이름을 붙였다. 여기에 3억3000만원을 썼다.다시 음성, 반기문 생가 마을에는 2002년 3월에 철거했던 것을 2010년에 복원한 생가가 있다. 반기문 기념관으로 가는 길에는 반 총장이 의자에 앉아 있는 형태의 동상이 있다. 옆에는 빈 의자가 있다. 음성군의 반기문 알리기는 반기문 기념관에서 절정을 이룬다. 반기문 내외의 핸드프린팅, UN 텀블러, UN 수건, UN 시계가 전시돼 있다. 벽에는 포스트잇이 가득 붙어 있다. 성기현 학생은 “반기문 선생님은 항상 저의 모델이었습니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라고 썼다. 통영 영운 초교 8회 동창 모임은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멋지십니다”라고 썼다. 반기문 지지자인 듯한 누군가는 “대통령 반기문 2017.12.20”이라고만 써놓 고 갔다. 이런 포스트잇이 벽마다 가득이다.기념관의 면면은 더 노골적이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외교관”, “철저한 자기 관리로 외교부의 전설이 되다”, “따뜻한 카리스마의 외교관”, “책을 좋아하던 소년”, “장래 희망이 외교관인 노력파”, “충청도 식 고집과 양반 기질”,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되어 준 영어”, “고교생 반기문, 케네디를 만나다”…. 반 총장의 태몽까지 정리돼 있다. 반기문기념관에는 지금 한국을 구성하는 대표적인 욕망이 모조리 담겨 있다. 미국, 출세, 영웅, 영어 같은 단어. 기념관에서 나왔을 때 한 아버지가 아들 둘을 기념관 앞에 세워두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빨리 서봐. 너도 영어 공부 열심히 해서, 응? 이렇게 잘해야지!” 섭씨 40도를 넘나들던 날 오후 세 시 즈음이었다. 관람객은 평일 150명, 주말에는 300명 쯤이라고 한다.두 번째 장면은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평화 누리공원이다. 하늘이 잔뜩 흐렸던 날, 높이 11 미터의 ‘평화의 발’ 동상 앞에서 군인 몇 명이 의자를 설치하고 있었다. 8월 3일 오후 다섯 시 즈음이었다. “내일이 북한 비무장지대 지뢰 도발 1주기 기념행사라서 지금 그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군인이 말했다. 딱 1년 전이었다. 2015년 8월 4일, 김정원 당시 하사와 하재헌 당시 하사가 목함 지뢰를 밟고 다리를 잃었다. 그해 12월 23일이 ‘평화의 발’ 제막식 이었다. 사고로부터 1년 후 하재헌 하사는 “지난 1년 동안 정말 많이 힘들었고, 아팠고, 고통스러운 순간이 많았지만 멀리서 응원해준 국민 여러분, 가까운 곳에서 도움을 준 가족이 있어 이 자리에 서게 됐다”고 말했다. 김정원・하재헌 중사는 지난 제막식에도 참석했다. 조각가 왕광현의 이름이 써 있는 머릿돌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DMZ에 맨발로 첫발을 살포시 내딛는 형상으로 북한의 8・4 DMZ 지뢰 도발로 잃은 장병의 다리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세 번째 장면은 서울 강남 코엑스 앞에 있는 ‘말춤 동상’이다. 8월 13일 오후 네 시 즈음 말춤 동상 앞에 도착했을 때 몇몇 중국인 관광객이 사 진을 찍고 있었다. 부모님이 카메라를 들고 딸들은 싸이를 흉내내고 있었다. 유난히 뜨거웠던 주말 오후, 약 한 시간 동안 여섯 팀, 22명의 관광객이 그 앞에 머물다 갔다. 두 개의 손목은 지구를 형상화한 구조물 위에 놓여 있었다. 왼쪽 손목에는 ‘GANGNAM STYLE’이 라고 음각돼 있었다. 지구 부분에는 스피커가 내장돼 있었다. ‘강남 스타일’이 계속해서 들렸다. 높이 5.3미터, 폭 8.3미터의 청동 동 상이었다. 서울시가 7억여원의 예산을 편성해 계획한 ‘스토리텔링 랜드마크’ 사업의 일환이었다. 2016년 4월에 공개됐다. 영화 동상도 같은 사업의 결과물이다. 가격은 2억원. 한강공원에 있다.첫 번째 장면, 음성의 반기문 동상은 여지없이 노골적이다. 음성군은 반 총장 마케팅에 총력 을 기울이는 것 같았다. 8월 7일부터 8일까지는 음성체육관에서 제1회 반기문컵 국제 오픈 태권도 대회가 열렸다. 매년 5월에는 반기문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음성군은 반기문 아카데미라는 명사 특강 프로그램을 2013년부터 운영하고 있었다. 끝이 아니다. 음성군청 민원과에 있는 입간판은 반기문 교육랜드 조성(1092억원)과 UN평화관 건립(125억원) 등의 계획을 현안 사업으로 알리고 있었다. 군 안에 있는 두 개의 동상이 끝이 아니라는 뜻이다. 충북 참여연대 오창근 사무국 장은 이렇게 말했다.“동상은 신중해야 합니다 . 이미 돌아가신 분의 동상도 처음에는 선의로 세웠는데 친일 행적이 밝혀진다거나 하는 식으로 문제 될 때가 있죠. 평가가 완료된 후에 세워도 늦지 않아 요. 게다가 아직 정치적 논쟁이 있는 분인데, 문제가 있죠. 한마디로 지역 브랜드예요. 공주가 박찬호 선수를 활용하는 것처럼요. 전적으로 관이 주도하는 거죠. 정말 중요한 인물이라면 시민들이 기념하고 추모할 거예요.” 음성군의 반기문 마케팅은 관이 주도하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는, 체계적인 구조와 규모로 진행되고 있었다. 군청 1층 로비에는 반 총장과 음성장학회 UN 방문단이 같이 찍은 사진과 음성군수가 같이 찍은 사진이 또 몇 장 걸려 있었다.두 번째 장면, 파주의 ‘평화의 발’ 동상은 잔인하다. 동상 제막식은 지난 12월 23일, 크리스 마스이브를 앞둔 날이었다. 두 다리를 잃은 하 중사는 12월 29일에 중앙보훈병원에서 의족을 달고 퇴원했다. 국군수도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이어갈 예정이었다. 23일은 퇴원 전이었다. 치료 중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맨 앞줄에 앉아서 제막식에 참가했다. 동상의 형태만 봐도 잔인하기는 마찬가지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안주연은 이렇게 말했다. “그분들의 희생과 헌신을 다 이해하더라도 그 형태 자체가 그로테스크 했어요. 백번 양보해서, 잘려서 없는 부분이 아니라 차라리 그분들의 몸을 동상으로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없어진 부분을 마치 일종의 제물처럼 전시하는 것은 이 나라가 공감 능력이 너무 떨어지는 게 아닌가. 지도자, 행정가, 관료들의 판단이 곧 국가의 인격일 거예요. 끔찍했죠.” 작년 12월 29일 에 실린 기사 ‘잘린 발이 평화의 발이라고?’에서, 행사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잘린 다리를 상징물로 만든 조각을 당사자가 보고 내 색은 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자신의 다리를 생각 하지 않았겠느냐.” 동상은 쉽게 없앨 수 있는 게 아니고, 이 잔인함 또한 영영 눈 돌릴 수 없는 것 이 되었다.세 번째 장면은 무턱대고 촌스럽다.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기리고 관광 자원으로 활용 하기 위한 거라고 해도, 그 미학적 가치는 논할 여유도 없이 일단 좀 곤란하다. 그게 벌써 4년 전이다. 동상 앞 에는 유튜브 조회 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 는 전광판도 설치돼 있었다. 그날은 26억2483만549회였다. 굉장한 숫자이긴 하지만, 동상으로 기려 마땅한 일일까? 이 동상을 보려고 코엑스를 찾는 관광객이 있나? 월스트리트에 있는 황소 동상과 말춤 동상의 맥락은 같을까, 다를까? 가까이서 본 말춤 동상은 손가락은 지나치게 비장하고, 흥 같은 건 느껴지지도 않는다. 기념을 위한 동상이 아니었다. 박제를 위한 박제 같았다.세 개의 동상은 각각 노골적이고 잔인하며 촌스럽다. 게다가 모두 살아있다. 반 총장은 살아 있다. 하 중사와 김 중사도 떳떳하고 치열하게 살아 있다. 싸이도 살아 있다. 한국은 살아 있는 사람을 노골적이고 잔인하며 촌스러운 방식으로, 관이 주도하는 사업의 일부로서의 동상으로 기념하고 기리는 나라라는 뜻이다. 관광을 위한 거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매력이 없다. 누굴 위로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럼 여기서, 이 세 가지 곤란한 동상의 반대편에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는 생각은 어떨까? 그로부터 한국을 생각할 수 있다면?평화의 소녀상은 시민이 주도했다. 주축은 한국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였다. 돈은 시민 모금으로 모아서 종로구 일본 대사관 앞에 세웠다. 2011년 11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 집회 1000회를 맞은 날이었다. 높이는 130센티미터. 소녀상은 치마저고리 차림에 단발머리를 하고 일본 대사관을 응시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도 더없이 중요하다. 위안부 피해자 중 지금 생존 해 있는 할머니는 총 39명이다.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 숫자는 모두 238명이었다. 지난 12월 28일 정부끼리 합의한 결과에 의해 철거가 언급되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 관과 민, 정부와 시민은 어떤식으로 엇갈리고 있는 걸까? 반기문 동상도, 평화의 발과 말춤 동상도 한국이다. 평화의 소녀상도, 피할 수 없고 피해선 안 되는 한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