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박근혜를 만들었는가 - 2. 최순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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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박근혜를 만들었는가2. 최순실우병우가 아니라 최순실이었다.세월호 참사 직후인 2014년 5월 청와대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으로 발탁될 때까지 1년 동안 우병우는 야인이었다.우병우가 민정비서관으로 발탁되는 데 영향을 미친 사람은 이른바 ‘할매’로 알려져 있다.절대 권력 주변에선 은어가 난무하기 마련이다. 재벌 그룹에선 흔한 풍경이다. 누군가 은어로 불린다는 건 그에게 권력이 있다는 뜻이다. 청와대에서 할배는 김기춘 비서실장을 일컫는 은어다. 박 대통령은 VIP다.할매는 최순실이다.우병우-최순실 커넥션 의혹이다. 실제로 최순실과 우병우의 장모 사이에도 인맥이 닿아 있다는 설이 있다.최순실 비선 권력의 본질은 여인 천하식 안방 인맥이다. 남성 천하의 공적 인맥은 드러나 있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견제하기 쉽다. 안방 인맥은 마치 계 모임처럼 사적인 탓에 공적 견제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른바 팔선녀 얘기가 시중에 흘러다니지만 실체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 것도 그래서다.최순실 비리는 단순한 대통령 비리가 아니다.돈과 인맥과 기업과 사치로 연결된 음험한 안방 그림자 권력이 함께 저지른 비리다. 투명한 공적 권력의 정점이어야 할 대통령 권력까지 그림자 권력에 오염돼 있었다.우병우가 민정수석실에 합류하고 반년 만에 터진 사건이 정윤회 게이트다. 2014년 11월 28일 는 ‘정윤회의 국정 개입은 사실’이라는 특종 기사를 내보낸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2014년 1월에 작성한 ‘청와대 비서실장 교체설 등 VIP 측근(정윤회) 동향’이라는 감찰 보고서가 근거였다. 기사로 정윤회와 문고리 3인방과 십상시의 존재가 처음 세상에 드러났다.청와대는 처음엔 허둥댔다.당시 김영한 민정수석은 뾰족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김기춘 비서실장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김 실장은 하극상의 당사자였다. 부속실 3인방이 비선실세인 정윤회의 지령에 따라 직속상관인 비서실장을 치려고 했다는 게 문건의 요체였다. 자칫 청와대가 자중지란에 빠질 수 있었다.이때 내부 회의에서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앞장선 사람이 우병우 민정비서관이었다. 우병우는 문건 내용의 진위를 무시하고 문건 유출 경로만 따지자고 주장했다. 묘책이었다.이때 처음으로 우병우 대응 매뉴얼이 등장한다.일단 청와대는 ‘찌라시 수준의 문건을 동향 파악 차원에서 보고받았던 것뿐’이라고 입장을 정리했다. 뒤이어 에는 의혹의 당사자인 정윤회의 인터뷰가 실렸다. 정윤회는 말했다.“7년간 야인으로 살며 3명의 비서관과 연락하지 않았다.”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을 때 청와대의 대응 수순과 판박이다. 당사자 최순실이 와의 인터뷰에서 해명했던 것까지 똑같다. 마무리는 박근혜 대통령의 몫이었다.박 대통령은 의 보도가 있고 일주일가량 지난 2014년 12월 7일 새누리당 지도부와 오찬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잘라 말했다.“찌라시에나 나오는 그런 얘기에 이 나라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대한민국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동시에 문건 유출자에 대한 색출 작업이 시작됐다. 반격 명령도 박 대통령이 직접 내렸다.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 문란 행위입니다.” 이때부터 검경의 대대적인 색출 작업이 시작됐다.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행정관과 최경락 경위와 한일 경위가 토끼몰이식 포위망에 갇혔다. 박관천 행정관이 작성한 문서를 한일 경위가 복사해서 최경락 경위한테 넘겨줬고 최경위가 기자한테 유포했다고 결론 내려졌다.2014년 12월 13일 최경락 경위는 ‘자신은 유출과 무관하다’고 억울함을 호소하며 자살했다. 최종 문건 유출자로 지목된 최 경위가 자살하면서 사건 수사는 그렇게 종결됐다.이 모든 판의 연출자가 바로 우병우였다.문건의 진위 여부를 파고들려는 언론의 산발적인 도전에도 불구하고 정윤회 문건은 지금처럼 최순실 게이트로 비화하지 않고 진화됐다.?우병우-최순실 커넥션이 없었다면 우병우가 문건의 진위 여부는 지우고 유출 경로만 따지자는 정무적 해법을 제시하긴 어려웠다.분명한 건 2014년 5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합류한 직후부터 우병우가 빠르게 문고리 3인방과 가까워졌다는 사실이다. 저녁 회동도 잦았다. 서로 연배까지 비슷했다. 소외돼 있던 김영한 수석이나 하극상의 당사자인 김기춘 실장과 달리 문고리 3인방을 통해 박 대통령의 복심을 빨리 파악할 수 있었던 우병우 민정비서관은 순식간에 청와대 권력의 중심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