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신선놀음, 경원재 앰배서더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과거에 누워 미래를 바라보며 잠을 잤다. | 호텔,경원재,앰배서더,송도,인천

원래 인천 송도를 좋아했다.처음 송도를 가본 건 어느 자동차 잡지의 특집 기사 때문이었다. 송도에 마련된 대규모 시상 행사에 참석하려고 송도까지 갔다.첫눈에 반해버렸다. 여기가 미래 도시였다. 사방에선 높다란 마천루 공사가 뚝딱뚝딱 진행 중이었다. 광활한 수평선 위로 아찔한 수직선이 세워지고 있었다.송도를 좋아하는 건 서울 여의도를 좋아하는 것과 같은 취향이었다. 가끔 여의도 윤중로를 거닐다 여의도가 처음 조성됐을 때를 상상하곤 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허허벌판의 기상이 느껴졌다. 만주에서 말 달리는 기분이 이런 것이겠구나 싶었다.인간은 그 위에 빌딩의 산과 공원의 계곡을 만들었다. 인조적 지형지물이 지닌 미래성이 그렇게 좋았다.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미래였다. 지금도 부산 해운대에 가면 늘 좋다. 그랜드캐니언에선 자연의 위대함이 느껴진다면 송도 같은 신도시에선 인간의 웅대함이 느껴진다.그 뒤로 가끔 송도에 갔다. 송도는 갈 때마다 달라져 있었다.2009년에 더 샵 퍼스트 월드 타워가 세워졌다. 2010년엔 송도 포스코 사옥이 완공됐다. 2011년엔 더 샵 센트럴 파크가, 2013년엔 GCF가 입주한 G타워가 문을 열었다. GCF는 녹색기후기금의 약자다.2014년엔 마침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동북아무역타워가 완성됐다. 동북아무역타워는 지상 305미터 68층 규모다. 이미 롯데월드타워가 완공 단계지만 어쨌든 준공일 기준으론 아직까진 대한민국 최고층 빌딩이다.날 잡아서 송도 호텔에서 하룻밤 머물러보고 싶었다. 건축도 좋아하고 호텔도 좋아하니 안성맞춤 여행이겠다 싶었다.송도엔 쉐라톤도 있다. 오크우드도 있다. 오크우드는 동북아무역타워에 있다. 전망이 탁월할 게 틀림없었다. 기묘하게 제3의 호텔에 먼저 눈길이 갔다. 경원재 앰배서더였다.경원재 앰배서더는 한옥 호텔이었다. 게다가 송도의 중심지인 센트럴파크 한가운데에 터를 잡고 있었다. 센트럴파크 서쪽엔 G타워가, 동쪽엔 동북아무역타워가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 경원재 앰배서더가 있었다. 미래 도시에서의 첫날 밤은 고색창연한 한옥 호텔에서 보내고 싶었다.이런 게 한옥의 풍류였다. 늦은 밤 경원재 앰버서더 중정에서 동북아무역타워를 바라봤다. 수평의 한옥 지붕 위로 수직의 마천루가 솟아올라 있었다.한옥의 진가는 바깥문을 열었을 때 드러난다. 조상들은 바깥의 산수를 한옥에 앉은 채로 바라볼 수 있게 설계를 했다. 문을 열어서 자연을 한옥의 정원으로 끌어들여 감상하고 문을 닫아서 산수를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게 한옥적 미학이었다.경원재 앰버서더에서도 한옥적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조상들이 감상했던 산을 초고층 빌딩이 대신하고 있었지만 느껴지는 풍류는 같았다. 갑자기 조선 시대 한량처럼 산수화라도 그려보고 싶어졌다. 휴대폰을 꺼냈다. 찰칵. 사진을 찍었다. 디지털 시대의 산수화였다.경원재 앰버서더는 겉모습만 한옥인 호텔이 결코 아니다. 몸은 양옥인데 지붕만 기와인 가짜가 아니란 얘기다.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인 최기영 대목장이 기둥을 세우고 서까래를 올렸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21호인 이근복 번와장이 기와지붕을 올렸다. 옻칠부터 가구 하나까지도 모두 명장의 손길을 거쳤다.대신 최고급 호텔답게 한옥의 불편함은 말끔하게 해소했다. 욕실엔 히노키탕까지 있다. 한옥의 장점과 호텔의 장점만 모아놓았다. 게다가 객실은 고작 30개뿐이다. 수영장은 애들로 붐비고 아침 식사는 줄서서 해야 하는 시내 호텔과는 다르다. 고즈넉하다. 도심의 고요를 즐기기에 이보다 더 좋은 호텔이 또 없다.경원재 앰배서더는 산책하기에 좋은 호텔이다. 호텔 주변으로 센트럴파크와 호수가 이어져 있다. 호숫가 주변을 걷다 보면 송도 주변의 마천루를 하나하나 살펴볼 수 있다. 문득 깨닫게 된다. 경원재 앰배서더는 서쪽으론 G타워, 북쪽으론 더 샵 센트럴파크, 동쪽으론 동북아무역센터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내사산에 둘러싸인 서울의 풍경이다.경원재 앰배서더는 입지적으론 경복궁 자리에 해당된다. 그쯤 되면 경원루가 달리 보인다. 경원루는 결혼식 같은 연회가 열리는 경원재 앰배서더의 그랜드볼룸이다. 경복궁과 경원재가 겹치고 경원루와 경회루가 겹친다.경원재 앰배서더는 단순한 한옥이다. 궁궐이다. 호텔 서비스가 유럽의 왕과 귀족에서 비롯됐고 현대의 호텔은 궁의 대중화라는 걸 고려하면 경원재 앰배서더의 존재감은 더욱 커진다. 단순히 한옥 모습의 호텔이 아니라 현대에 왕궁을 재현해놓은 셈이기 때문이다.고택에서 한옥 스테이를 경험한 적이 몇 번 있다. 산으로 둘러싸인 한옥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건 그저 현재에서 과거로 여행하고 돌아오는 기분이었다.경원재 앰배서더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는 건 단지 과거로의 시간 여행이 아니었다. 경원재 앰배서더에서 송도를 바라보는 건 현재에 새롭게 부활한 과거에서 새로운 미래를 바라보는 것과 같았다. 21세기 신선놀음이었다. 조상들도 한옥 툇마루에 앉아 산을 바라보며 몽유도원을 상상했다.동창이 밝았다. 잠이 깬 그녀가 배고프다고 우짖었다. 시중 드는 컨시어지를 상기시켰다. 아침 수라 시간을 물었다. 오랜만에 바닥에 이불을 펴고 잤더니 허리가 좀 아팠다. 물론 허리가 아픈 게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한옥 호텔이라고 일부러 온돌방을 선택했다. 경원재 앰배서더에도 온돌방은 두 개밖에 없다. 솔직히 침대가 훨씬 편했다. 여러모로 말이다.대신 한옥의 정취는 만끽할 수 있었다. 요 위에 누웠더니 천장이 한 뼘은 높았다. 물론 바로 잠들지는 않았다. 어쨌든 허리는 좀 아파도 몸은 가벼웠다. 과거 위에 누워 미래에서 잠을 잤기 때문이다. 이런 게 진짜 한옥 힐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