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선을 잘랐나?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아이폰7에서 이어폰 단자가 사라진 건 일시적인 해프닝이 아니다. | 애플,아이폰,아이폰7,스마트폰

애플에서 새로운 아이폰이 등장할 때마다 언론은 혁신은 없다고 보도한다. 아이폰7의 등장에도 분위기는 비슷했다.하지만 아이폰7은 큰 변화를 가지고 태어났다. 바로 이어폰 단자의 삭제다. 이를 혁신이라 말하는 이는 드물고 인터넷 여론이 들끓었다. ‘장삿속’이라는 이유에서다.애플이 이렇게 과감한 결정으로 소비자들의 원성을 들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1998년 선보인 아이맥에서는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를 없애고 각종 주변기기 포트를 정리하면서 USB 포트를 넣었다. 2007년에 나온 아이폰은 탈착이 불가능한 일체형 배터리를 장착했고 2008년엔 맥북 에어에 광학 디스크 드라이브나 모니터용 RGB, 유선 랜 포트를 모두 삭제했다.아이팟 셔플 3세대(2009년)는 3.5밀리미터 이어폰 단자를 제외한 모든 버튼을 없애 리모트 이어폰으로만 조작하게 만들었다. 2015년, 두께가 13.1밀리미터에 불과한 새로운 맥북을 선보일 때도 전원 단자와 공유하는 USB 타입-C 단자 하나만을 남겼다.그동안의 이런 전략을 보면 아이폰7에 이어폰 단자가 사라진 것이 당연해 보인다. 오히려 라이트닝 잭에 이어폰을 연결할 수 있는 어댑터를 살려준 관대함(?)에서 애플답지 않아 보일 정도다.하지만 돌아보면 애플의 이런 행보는 결과적으로 업계를 변화시켰다. 아이맥에 USB를 넣었던 것이 업계의 포트 표준 트렌드를 이끌었고, 아이폰의 일체형 배터리처럼 다른 브랜드가 따라오게 한 적이 있다. 물론 4세대 아이팟 셔플에서 버튼을 부활시킨 것처럼 소비자의 원성에 항복한 적도 있지만 말이다.그럼 새로운 아이폰의 이어폰 단자 삭제는 어떤 운명을 암시할까? 애플의 한 임원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이폰7을 설계할 때 공간 확보 때문에 단자를 없앴다”는 공학적인 대답을 내놓았다.게다가 애플은 2014년 헤드폰 회사인 비츠(Beats)를 인수했다. 그러니 블루투스 헤드폰과 이어폰을 더 많이 팔고자 이어폰 단자를 삭제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둘 다 맞는 말일 수도, 틀린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새로운 제품에서는 이어폰 단자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것이다.이어폰 단자를 없애면서 애플이 선보인 해결책은 에어팟(Airpods)이다. 에어팟은 애플의 이어폰인 이어팟에서 귀에 꽂는 부분만 남긴 무선 이어폰이다.에어팟은 애플의 독자적인 W1 칩을 사용해 블루투스 연결 없이도 페어링 속도가 빠르고 음질이 좋으며 전력 소모가 적은 디바이스다. 게다가 애플의 개인 비서인 시리(Siri)와 의사소통이 가능하다.즉 독자적인 기술과 간편한 페어링, 소프트웨어(시리)까지 활용하면서 기존 블루투스 이어폰의 의미를 넘어선 것이다. 귀에 에어팟만 꽂고 돌아다니면 스마트폰의 서비스를 대부분 제공받을 수 있다. 이것은 애플이 그린 큰 그림의 한 조각이다.그동안 애플은 눈에 보이지 않게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구축해왔다.스마트폰을 들고 애플이 만든 차에 접근만 하면 문이 열리고 주행 준비가 완료된다. 애플 홈키트와 연동해 현관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전등이 켜지며 온도가 조절된다. 애플 TV를 보다가 잠자리에 들면 조명이 꺼지고 커튼이 자동으로 드리워진다.이게 애플이 그리는 현실적인 사물 인터넷 세상이다. 그리고 여기서 사용자와 가까운 디바이스가 바로 에어팟이다.물론 ‘이 모든 것을 애플이 해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컴퓨터의 주변기기나 포트의 변천사, 기술의 발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마우스를 예로 들면 예전엔 동그란 PS/2 포트에서 USB를 거쳐 블루투스를 사용하는 무선 방식으로 진화했다. 포트를 중심으로 보면 모뎀이나 이더넷 단자도 무선 방식인 와이파이로 진화했다.이런 변화가 필요했던 것은 노트북 컴퓨터의 슬림화 전략도 있었지만 결국은 무선화가 목표였다. 무선화가 가능해진 이유는 무선 전송 속도의 향상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근거리 무선 기술 표준인 블루투스나 와이파이 전송 속도는 짧은 시간에 눈부시게 발전했고 지금도 계속해서 빨라진다.이렇게 노트북 컴퓨터의 무선화에서 발전한 기술이 스마트폰을 포함한 모바일 디바이스로 옮겨지면서 더욱 강한 소비자 니즈가 생겼다. 거슬러 올라가면 전화는 꼬부랑 줄로 연결된 유선 방식에서 시작했다.통신망의 무선화가 진즉에 이뤄졌고 이젠 이어폰 단자가 없어졌다. 가까운 미래엔 무선 충전이 가능할 것이며 그때쯤엔 단자가 아예 없는 스마트폰도 탄생할 것이다. 어쩌면 그 최초의 무단자 스마트폰을 애플이 만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혁신’은 묵은 관습,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애플은 과감히 이어폰 선을 잘랐다. 과정이 어떻든 이를 설명하는 단어는 ‘혁신’이 가장 적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