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FA 대박은 거품일까?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프로야구 선수들의 몸값 인상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다. | 야구,프로야구,스포츠,FA,연봉

프로야구 세계에서 끊이지 않고 되풀이되는 불변의 사이클이 있다.1. 시즌이 끝난다.2. 관계자들이 슬슬 난롯가에 몰려든다.3. 선수들(특히 자유계약 선수들)과 구단 사이에서 계약 액수와 관련한 밀고 당기기가 거듭된다.4. 계약이 매듭지어지고 언론에 내용이 속속 발표된다.여기까지는 이상하거나 잘못된 구석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규약의 맹점을 파고든 구단들의 변칙 계약이나 템퍼링(사전 접촉 금지) 조항 위반 따위가 비난의 과녁이 되기도 한다.이 경우는 간단하다. 구단은 규칙을 지켜야 하고 KBO는 철저히 감시해야 하며 어겼을 때는 처벌해야 한다. 원칙이 자명하므로 굳이 이를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진짜 문제는 이어지는 제5의 과정이다.팬들 사이에서 어김없이 논란이 무성해진다. 프로야구의 발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그와 같은 논란이 빨리 정리돼야 한다고 생각한다.쟁점은 크게 셋이다.첫 번째는 거품론이다. 적자투성이인 우리나라 프로야구의 현실에서 선수의 연봉이 너무 높다는 지적이다.두 번째로 연봉 인상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주장이 붙는다.세 번째는 그렇게 비싼 선수들이 제 몫을 했는가, 혹은 할 것인가.첫 번째와 두 번째 쟁점이 경제적으로 접근해야 할 의문이라면, 세 번째 쟁점은 프로야구 전문가 또는 팬의 시선으로 접근해야 할 논란이라고 하겠다. 하나씩 짚어보자.1. 우리나라 프로야구 현실에서 선수 연봉이 너무 높다.한국 프로야구 구단의 장부상 적자는 부인할 수 없다.지난해 금융감독원 공시 재무제표와 손익계산서에 따르면 2015년 시즌에 10개 구단 가운데 흑자를 기록한 구단은 없다. 대표적 인기 구단으로 꼽히는 롯데 자이언츠(당기 순손실 159억원)를 비롯해 10개 구단 모두가 적자를 봤다.특히 삼성 라이온즈의 당기 순손실 칸에는 246억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이 기록돼 있다. ‘짠돌이’ 구단 넥센 히어로즈도 2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2015년 이전도 크게 다르지 않다.이쯤 되면 구성원 어느 누구도 이익을 남기지 못한 산업이 어떻게 30년 이상 지속될 수 있었는지가 진짜 수수께끼다. 그 해답은 프로야구가 출범할 당시에 있다.한국 프로야구의 출발점은 군사독재 정권의 스포츠 장려 정책이다. 박문각의 을 보자.“프로야구는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발생한 후 전두환 정권이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 시작한 3S(screen, sex, sports) 정책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 통설이다.”프로스포츠 시장은 돈이 많이 든다. 이 시장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OECD 수준 살림살이에 인구가 1억 명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 프로스포츠 산업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 미국, 일본 또는 유럽연합 정도의 경제 규모나 되어야 지탱할 수 있다는 것이다.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한국은 그 조건에 미치지 못했다(지금도 아슬아슬하다). 재벌들은 독재 정권의 압박에 못 이겨 프로야구단을 울며 겨자 먹기로 창단했다. 그 결과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흑자를 못 봤다.여기서 떠오르는 의문. 재벌들은 왜 손해를 보면서도 프로야구를 포기하지 않는가? 심지어 NC나 KT 등은 기꺼이 새롭게 구단을 창단하기까지 했다. 왜?이 의문에 대한 정답은 하나밖에 없다. 그들이 생각해낸 해결책은 단 하나, 좋은 성적, 더 정확히 말해 한국시리즈 우승이었다. 군사독재 정권의 압력으로 적자투성이 구단을 만들었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던 구단들이 만든 나름의 자구책이다.적자 운영은 쓰라리지만 우승이 가져다주는 열매는 실로 다디달다. 국민체육진흥공단 스포츠산업본부와 경희대학교 스포츠산업경영연구소는 2009년 기아 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면서 누린 경제적 파급효과를 계산했다. 그들이 도출해낸 액수는 약 2022억원, 실로 막대한 액수였다.구단들이 프로야구를 포기하지 못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번 우승하기만 하면 10년 적자가 한 방에 만회된다. 롯데 자이언츠의 전직 구단주는 구단주 시절 “우승하지 못하는 구단은 존재 가치가 없다”는 황당무계한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이 배경에는 한국 프로야구 산업의 기형적 구조가 깔려 있다.첫 번째 의문의 정답은 거의 도출됐다.적자투성이인 한국 프로야구의 현실에서 선수 연봉이 너무 높지 않느냐고? 그렇지 않다. 적자이기 때문에 FA 선수의 계약금과 연봉이 더 오른다고 볼 수도 있다. 적자를 만회할 방법은 성적밖에 없고, 그 성적을 올려줄 사람은 선수밖에 없다.2. 연봉 인상 속도가 너무 빠르다.일각에서는 FA 제도 도입 이후 연봉이 너무 빨리, 너무 많이 오른다고 말하기도 한다. 가파른 연봉 인상 그래프가 프로야구의 발전을 저해하다 못해 결국 수렁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전망과 함께.나는 그 모든 주장이 헛소리라고 생각한다.FA 제도 시행 첫해의 최고액은 2000년 포수 김동수와 투수 이강철이 삼성에서 받은 8억원(3년)이었다.2015년 최정이 SK에 잔류하며 챙긴 돈은 86억원. 박석민은 2016년 NC와 계약하며 96억원을 손에 쥐었다. 최형우는 기아 타이거즈와 계약하며 끝내 100억원이라는 상징적 금액에 도달하고 말았다.17년 동안 자유계약 선수들의 계약 금액이 10배 넘게 오른 것이다.이를 두고 빠르다면 빠르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을 보며 혀를 차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경제성장률, 물가 상승률, 그리고 프로야구계 전체의 발전 속도다.지난 17년 동안 대한민국은 GDP(국내총생산)가 세 배쯤 올랐다. 실질적 물가 상승률은 한 해 평균 10퍼센트가 넘는다. 무엇보다 프로야구 산업 자체가 무섭도록 발전했다. 입장권 가격이 오르고 관중도 늘어났으며 중계권료도 뛰었다.입장권 판매액을 따져보자. 2006년 106억원이던 프로야구 전체 입장권 판매액은 2016년 870억원으로 증가했다. 10년 동안 8배 이상 늘어났다.중계권료를 따져보자. 추정치지만 2005년 79억원이던 중계권료가 2016년 360억원까지 뛰었다. 약 4.5배 늘어났다.상황이 그렇다면, 전부도 아닌 일부 선수의 연봉 인상 폭이 10배라는 게 걱정할 만큼 치명적인 속도라고 보긴 힘들다.고액 연봉이 구단 재정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예상도 섣부르다.어느 인터넷 경제 전문 매체가 2011년 각 구단의 경제적 가치를 평가했다. 당시 NC를 제외한 8개 구단의 가치는 총 2조354억원이었다. 롯데 자이언츠가 3509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가 각각 2932억원과 2744억원으로 뒤를 이었다.경제 매체 의 평가는 그보다 좀 짜다. 2015년 10개 구단 가운데 가장 가치가 높은 구단을 두산 베어스와 LG 트윈스로 평가하며 평가액을 1539억원으로 잡았기 때문이다.2015년 제일기획이 삼성 라이온즈 주식 12만9000주(전체 발행 주식의 64.5퍼센트)를 약 6억7600만원에 사들였다는 기사가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실질적 구단 가치는 그보다 100배는 더 높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그런데도 연봉 인상 속도가 빠르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최형우가 100억원 시대를 열었다니 뭔가 엄청난 것처럼 느껴질 수는 있다. 하지만 제반 상황을 따져보면 17년 전 김동수와 이강철의 계약 금액에서 크게 늘어난 게 없다(당시 두 선수의 계약 기간은 3년으로 최형우보다 1년 짧았다).더불어 실질적 구단 가치를 생각하면 4년간 100억원이 구단을 망하게 할 정도의 대형 투자도 아니다. 애초에 그처럼 부담이 크다면 구단 운영자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투자할 리도 없다.첫 번째와 두 번째 쟁점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줄 만하니 주는 것이고 받을 만하니 받는 것이다.3. 그처럼 비싼 선수들이 과연 제 몫을 했는가, 또는 할 것인가?야구팬들이 모여 앉아 두런두런 얘기 나누기에 좋은 화제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한마디로 결론 내리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쟁점이다. 시각에 따라 평가가 다르기 때문이다.최근 투수 김승회가 친정 팀 두산 베어스와 연봉 1억원에 계약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두산 베어스가 좋은 선택을 했다고 믿는다. 두산의 약점으로 꼽히는 불펜에 어떻게든 도움이 될 것이고, 베테랑으로서 젊은 선수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장점까지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극단적으로 “썩은 퇴물에게 1억원이 웬 낭비냐?”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실제로 김승회의 역량은 해가 갈수록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다. 부상 등으로 마운드에 제대로 서지도 못하고 은퇴할 수도 있다. 누가 알겠는가?지금 시점에서 자유계약 선수들을 둘러싼 논란에 정답은 없다. 최형우도 양현종도 마찬가지다. 아직 계약 체결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정성훈, 이진영, 조영훈 등도 그렇다.황재균은 특히 더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황재균에게 100억원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주위에는 가격 대비 황재균보다 이원석이 백배 낫다고 주장하는 친구도 있다. 그냥 팬이 아니라 프로야구 관계자다. 지금은 어림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하지만 혹시 또 모른다. 1년이 지나 내가 그 친구에게 술을 사고 있을지도.팬이라면 당연히 구단과 선수의 계약 내용에 관심이 간다. 특정 구단을 응원하며 아무나 계약하라고 주장하는 팬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라는 게 내 추측이다. 팬이라면 응당 구단의 계약 내용에 이러쿵저러쿵 비판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모든 환경이 어설프던 프로야구 초창기의 선수들은 그야말로 노예 계약에 시달려야 했다. 그라운드의 진정한 주인공임에도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심지어 ‘딴 팀에 가면 날아다닐 것’이라고 찍혀 팀에 설 자리가 없어도 묶여 있어야 하기도 했다(이건열이라는 선수를 검색해보시길. 대표적인 예니까).덕분에 팬들은 팬들대로 더 좋은 경기를 관전할 기회를 놓쳤다. 지금의 프로야구는 그 모든 악조건을 이겨내고 도달한,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오른 산 중턱이다.앞으로 더 올라야 한다. 그래서 정상에 이르러야 한다. 선수들은 더 좋은 조건에서 경기를 해야 한다. 팬들은 더 좋은 조건에서 더 좋은 경기를 관전해야 한다.‘거품이 끼어 있다’거나 ‘흥청망청하다가는 한 방에 훅 간다’는 식의 근거 없는 악담은 그들의 발걸음에 족쇄가 될 뿐이다. 머슴에게 좋은 새경을 치르기 싫은 악덕 지주의 심보가 아니라면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