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날카로움은 자유에서 온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정치인에서 벗어난 유시민은 더욱 날카롭고, 유연해졌다.

유시민의 날카로움은 자유에서 온다 - 에스콰이어 Esquire Korea 2017년 2월호

유시민은 보기에 따라 좀 묘한, 경우에 따라 파격적인 국회의원이었다. 거의 모든 미디어가 사사건건 트집이었다.

2003년이었다.

등원 첫날 국회에 나오면서 정장을 입지 않았다. 면바지에 티셔츠와 재킷을 입었다. 그것이 ‘국회의원 복장 논란’이 됐다. 몇몇 국회의원은 퇴장했다.

‘국기에 대한 경례는 파시즘의 잔재’라는 내용의 발언도 여지없이 논란이 됐다. 미디어가 논란이라고 하니 급속도로 논란이 됐고, 논란 자체로도 충분히 논란이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에 대한 발언은 사실 이랬다.

“애국이라는 것은 매우 소중한 내면적 가치인데 그 가치를 공개적인 장소에서 주권자인 국민 개개인으로 하여금 국기 앞에서 충성을 맹세하게 만들고 그걸 강제로 듣게 만드는 것이 우리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것 아니냐.”

한 대학 신문과의 인터뷰에서였다. 실은 오래된 논쟁이기도 했다.

국회에서 그런 옷을 입은 사람도, 그런 말을 한 사람도 유시민 전에는 없었다. 여야를 불문하고 비판의 대상이 됐다. 마무리는 이랬다.

“소신에는 변함이 없지만 ‘국기에 대한 경례는 파시즘’이라는 표현으로 상처받은 사람이 있다면 정중히 사과드린다.”

자유주의자의 대처였다. 어쩌면 시작부터 끝까지 유시민은 사랑받지 못한 정치인이었는지도. 굳을 대로 굳어 있는, 너무 뻣뻣해서 쩍 갈라지는 줄도 모르는 한국 국회가 품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똑똑하지만 괜히 얄밉다’는 인상 비평 앞에서야 허허, 웃는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유시민의 한마디 한마디가 해석의 기준이 되었다. 그가 방송에서 하는 말이 지금 정치권을 읽는 거의 완벽한 가이드로 작용하는 중이다.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와의 인터뷰에선 이렇게 말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풍찬노숙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전망이 뚜렷하고 거기로 가는 길이 탄탄해 보일 때 나서는 분이거든요.”

‘풍찬노숙’은 곧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에 올랐다. <썰전>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총리를 하라면 하겠다. 대신 조건이 있다. ‘모든 행정 각 부의 임무를 총리에게 넘겨주겠다’는 대통령의 조건이 있으면 국민과 국가를 위해 1년 4개월 정도 희생할 의향이 있다.”

이 발언 이후에 ‘유시민을 책임 총리로’라는 제목의 온라인 서명 운동이 벌어졌다. 이 인기에는 근거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발언.

“박근혜 정부가 집권 초기 9개월 동안 보여준 모든 모습은 한 정권이 몰락해갈 때 보여준 가장 추악한 모습입니다. 지금 박근혜 정부는 ‘이념 전쟁을 통해서 권력을 유지하고 단맛을 누린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4년 동안에도 다른 것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없는 것 같습니다.”

2013년 12월 9일 자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였다. 2003년부터 10년간의 정치 활동을 마무리한 즈음이었다. 정계 복귀 가능성에 대해선 “흘러간 물로는 물레방아를 못 돌린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해 누구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으로 말하고 쓴다.

게다가 2013년 겨울의 발언과 2003년 인터뷰에서의 발언 사이에는 어떤 철학적 배신도 없다. 어떤 가치를 과연 치열하게 추구해온 사람의 말이라는 뜻이다. 가혹할 정도로 일관된다.

2003년의 절필, 정계 입문과 2013년의 정계 은퇴 그리고 작가로의 복귀까지. 한결같이 날카롭게, 하지만 가장 쉬운 언어로 세상 모든 당연한 것에 질문을 던지는 것이 그가 지금껏 해온 일이다.

그러니 작가로서의 유시민과 정치인으로서의 유시민을 가르는 데도, 둘 다 직업이라는 담백한 사실 외에는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것이 자유주의자의 삶이고, 그가 스스로를 자유주의자라고 주저 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4년 봄 <대학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개인의 삶, 개인과 타인, 개인과 국가와의 관계를 살필 때 제일 중요하게 보는 것이 이 자유의 원리라는 점에서 저 자신을 자유주의자라고 하는 겁니다.”

앞서 말한 자유의 원리라는 건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근거 삼았다.

“사회와 국가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제한하는 것이 정당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밀의 대답.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않는 한 누구라도 개인의 선택에 간섭하거나 제약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한국은 자유주의가 제대로 뿌리내린 적이 없는 나라다. 심지어 무턱대고 배척당하기 십상이었다. 이런 나라에서 ‘개인’과 ‘자유’야말로 살면 살수록 잊히는 단어라는 걸 우리는 겪어서 안다.

유시민은 그 세속을 유유히 거슬러 시간이 흐를수록 자유로워지고 있다. 정치인으로서 10년의 치열함과 슬픔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후, 주체적 선택으로의 자유를 과연 유연하게 쟁취하는 중이다.

자유로운 사람의 말과 글에는 힘이 있다. 물러설 이유도 기댈 필요도 없어서다. 모든 날카로움이 거기서 나온다. 게다가 요즘의 부드러움이야말로 시간이 유시민에게 준 선물 아닐까? 어쩌면 그것만이 필연이다.

정치인에서 벗어난 유시민은 더욱 날카롭고, 유연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