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유감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갑자기 어느날 계란을 구하기가 힘들어졌다. | 미식,음식,계란,달걀,식품

주문한 계란이 안 들어왔다고, 주방을 지키는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어디 있었느냐고? 낮술로 계란 어미, 치킨과 방자하게 놀고 있었다.후배는 울상이었다. 제 애인이 다른 남자랑 모텔 들어가는 걸 목격한 것처럼 거의 숨이 넘어가고 있었다. 인마, 별 걱정을 다한다. 계란이 없으면 타조알을 쓰면 되지. 마리 앙투아네트의 현신인가. 하긴 어느 나라 ‘말이 안 통하네트’는 그랬다고 한다. 구명조끼를 입었는데 왜 아이들이....말해봤자 속 터지니 이하 생략.농담이 아니라, 요새 냉면에 삶은 계란 대신 메추리알 넣어주는 집이 꽤 많다. 하여튼 나는 문제의 계란 도매상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그런 장면 있지 않은가. ‘꼬붕’들이 수금을 못 해서 쩔쩔맬 때 중간 보스나 ‘오야붕’이 척 나서서 해결하는 분위기 말이다. 나는 갑답게 무게를 잡았다.“아저씨, 거참, 아무리 계란이 없기로서니 우리 집에 어떻게 안 넣어줄 수가 있소.”을인 도매상은 을답게 대응해야 한다. 말하자면 이래야 했다.“아이고 사장님, 죄송합니다요. 글쎄, 요새 계란을 걷어 올라믄 현금 다발을 선금으로 땡겨줘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쉽습니까. 조그만 기다려주시면....”그런데 실제로는 이랬다. 그냥 단말마였다.“계란이 없어요. 끝!”나는 이 아저씨에게 뇌물을 쓰기로 했다. 판당(30구가 한 판이다. 업자들은 ‘개’라고 안 하고 ‘구’라고 한다. 참고로 닭은 ‘마리’가 아니라 ‘수’다) 2000원씩 웃돈을 얹어주겠다고 했다.“글쎄 웃돈이고 나발이고 올릴 계란이 없어, 계란이. 산지에서는 그렇답니다. 닭이 똥을 눠도 계란인 중 알고 받을 판이라고.”계란이 없어도 그냥 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는 독자도 많을 것이다. 계란 없으면 말지 뭐. 그러나 그게 아니다.자, 우선 애들 하드나 아이스크림을 못 만든다. 얼음 버석거리는 보석바 빼면 대개 계란이 들어간다. 과자치고 계란 안 들어가는 게 드물다. 계란이 들어가야 부풀고 맛도 좋다.거개의 빵도 마찬가지다. 빵과 과자의 제왕 앙투안 카렘도 계란이 없었으면 아마 동네에서 통밀빵이나 만들고 있었을 거다. 오죽하면 파리바게트 직원들이 아주 자발적으로, 진짜로 회사나 간부의 어떤 지시도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동네 마트를 돌아다니며 계란을 수집해서 회사에 갖다 줬겠는가.아침에 달그락거리며 기분 좋게 잠을 깨우는 계란찜도 없다. 그래서 마누라에게 화를 내게 되고, 지각을 해서 월급이 깎인다. 내가 만드는 노른자만 넣은 생면 파스타도 메뉴에서 빠진다. 아이들 도시락 반찬은 뭘로 만드나.계란말이, 계란 프라이, 티라미수, 인기 가수의 성대 결절 예방용 날계란, 여자 친구에게 얻어터졌을 때 눈탱이의 멍을 가라앉히는 날계란의 대체품은 또 어디서 구하는가.재수 없는 인간에게 던질 날계란 세례는 또 뭘로 하는가. 대체품인 메추리알은 타격력이 아주 낮으며, 터진다고 해도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효과가 미미하다. 타조알은 구하기 힘들고, 오리알도 역시 AI 위험으로 시중에서 실종되었다. 역시 대체품으로는 왕년의 협객 김두한이 국회에서 썼던 파고다공원 인분이 최고다.농담을 했는데, 정색해서 말하면, 진짜 계란 없으면 큰일 나는 게 우리 식탁이다. 계란이야말로 가장 완벽하며 값도 싸고 맛도 좋은 최고의 식품이기 때문이다. 어미 몸에서 며칠을 머물면서 성장한 후 지상에 나와 팔리는 계란은 온갖 영양의 보고다.콜레스테롤 위험도 과장되었음이 밝혀졌다. 게다가 한 개에 겨우 200원 미만이었다. 모든 물가가 올랐지만 계란은 거의 10년 동안 제자리에 가까웠다. 물이나 공기처럼 싸고 흔한 것일수록 사라졌을 때 결핍이 절실한 법.있을 때 잘하자, 아니 아껴 먹고 사랑해주자. 그리고 머지않아 계란 공급이 정상화되면 우리 도매상 아저씨에게 한마디 해야겠다.“아저씨, 반말도 끝!”추신: 그렇다고 미국산 계란을 항공으로 운송한 당국의 처사는 또 뭐냐. 식량 떨어진 김에 다이어트하고 있는데 갑자기 도넛이랑 치킨, 햄버거에 밀크셰이크 사가지고 온 전 애인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