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져야 한국이 산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우리에겐 운명을 거슬러 제자리에 돌려놓고 싶은 게 있는가? | 일본,한국,경제,FTA,세금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에서 두 주인공 타키와 미츠하는 서로의 몸이 바뀌는 현상을 경험한다. 간헐적으로 일어난 일이지만 꿈이 아닌 현실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두 사람은 몸이 바뀌는 현상을 두고 교감한다.시골에서 사는 여학생 미츠하는 도쿄에서 남자아이로 사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시골에서 할머니, 여동생과 사는 미츠하의 몸으로 바뀌게 되는 타키는 신사를 지켜온 미츠하의 할머니 히토하에게서 시간과 운명에 대한 영적인 이야기를 듣게 된다.그리고 타키는 그 마을이 3년 전 혜성의 충돌로 사라진 이토모리이고 자신이 교감하던 미츠하는 3년 전의 존재였으며 이미 500명의 다른 주민들과 함께 혜성의 충돌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타키는 미츠하와 마을 주민들을 살리기 위해서 동분서주한다.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태평양 연안에서 진도 9.0의 일본 지진 관측 사상 최고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한 달간 여진이 발생하면서 약 1만5000명이 사망했고 2600명이 실종되었다.도호쿠 대지진은 지진의 규모가 유례없이 컸지만 정치적 리더십이 적절하게 발휘되었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원자로를 해수로 식힐 것인지 여부를 놓고 망설이다가(해수를 끌어와 원자로를 식히면 원자로는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다)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했으며 주변 지역은 방사능으로 오염되었다.일본은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에 빈발하게 노출된 나라라 재해에 대한 매뉴얼이 비교적 잘 마련되어 있었다. 지진 초반만 해도 일본의 매뉴얼은 비교적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간 나오토 수상은 5만 명의 자위대 병력을 현장에 급파했다.그러나 사건의 규모가 매뉴얼의 수준을 넘어서고 급박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당면하자 민주당의 리더십은 실종되었다. 사라진 리더십 앞에서 국가 전체가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불타는 마을이 쓰나미에 떠내려가고, 사람들이 실종되고, 정부 구호는 중단되고, 전화와 전력이 끊기고, 원전이 폭발하고 방사능이 유출되는 모습을 TV를 통해 지켜본 일본 국민들의 슬픔과 좌절은 이토모리가 혜성에 부딪쳐 사라진 사실을 발견한 타키가 느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1979년부터 1987년까지 미국 연방준비은행 이사회를 이끈 폴 볼커 의장은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역사상 유례없는 강력한 긴축 통화정책을 실시했다. 금리 인상과 함께 강력한 추가 인상 의지를 통해 강력한 인플레이션 억제 의지를 표현했다.시장 금리가 폭등했고 달러는 급격한 강세가 이루었다. 달러 강세는 미국으로 하여금 수출 감소와 수입 증가로 인한 무역 수지 적자를 감당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1980년부터 1985년까지 미국 통화는 주요 통화에 대해 50퍼센트 가까이 절상되었다. 미국은 막대한 무역 수지 적자와 재정 수지 적자를 동시에 경험하게 되었다.이 상황을 해결한 것은 극단적인 통화정책이나 환율 시장 개입이 아닌 국가 간 합의였다. 소위 ‘플라자 합의’를 통해 선진국은 달러 가치를 하락시키고 엔화와 마르크화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에 합의했다. 플라자 합의 전후로 235엔이었던 달러엔 환율은 1년 후 120엔대까지 하락하면서 엔화 가치가 급등했다.엔화 강세로 경기가 하락할 것을 우려한 일본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고 환율 하락으로 생기는 환율 차익을 기대한 해외 자금의 일본 유입이 급증하면서 일본은 유례없는 자산 가격의 상승을 경험했다. 주식시장은 급등했고 부동산 가격 역시 유례없는 수준으로 급등했다.소위 ‘헤이세이 버블’로 불리는 거대한 거품이 발생했다. 엔화 강세가 이어지면서 달러로 표시된 일본 경제의 규모는 급속히 커졌고 일본인들의 구매력은 자산 가격의 확대와 더불어 엄청나게 강해졌다.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1990년대 거품 경제가 붕괴되기 전까지의 5년은 높은 저축률, 높은 투자율, 경상 수지 흑자, 재정 수지 흑자를 누린 일본 경제의 최대 황금기였다.1990년대에 들어서자 일본의 높은 자산 가격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하락하기 시작했다. 주식시장의 하락은 그래도 일본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 평가한 외국인들의 투자 자금이 유입되면서 어느 정도 제어되었다. 하지만 외국인들의 투자 자금 유입이 제한되고 자국민들이 관심을 끊은 골프장이나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끝을 모르고 하락했다.을 쓴 이코노미스트 리처드 쿠에 따르면 2003년과 2004년의 골프장 회원권과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고점 대비 각각 93퍼센트, 83퍼센트 하락했다. 1990년부터 시작된 토지와 주식 가격 하락이 야기한 자산의 하락은 1500조 엔에 달했다.쿠에 따르면 제품 개발과 마케팅 그리고 기술이란 핵심 역량이 건재하고 영업 이익을 통한 현금 흐름도 양호했으나 자산 가격의 폭락으로 대차대조표상의 순자산이 마이너스가 된 일본 기업들은 이윤의 극대화가 아닌 부채의 최소화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조용히, 그러나 맹렬하게 채무를 상환하기 시작했다.1998년에는 기업 부문 전체가 순 저축자가 되었다. 기업은 가계로부터 자금을 조달하지 않았고 그 후 20년 동안 일본 경제는 시간을 잃어버렸다. 그 시간을 되찾기 위해서 고이즈미를 비롯한 많은 정치 지도자가 등장했고 잠시 반등하는 듯하던 시기가 있었지만 일본 경제는 다시 깊은 침체에 빠졌다.그 와중에 한국과 중국의 약진이 전개되었다. 의 저자 강상중의 말처럼 “황금의 광채를 잃어버리고 상하이나 싱가포르, 서울 같은 아시아의 신흥 도시에 그 압도적인 지위를 물려주고 있는” 도쿄의 모습을 보면서도 일본인들은 어쩔 도리가 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노무현은 재임 시절 추진한 한미 FTA 때문에 진보 진영으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았다. 이라크에 자이툰 부대를 파병한 결정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진보적 신념을 국민의 이익을 위해 접었지만 결과는 국민의 외면이었다. 부동산 가격의 정상화를 위해서 추진한 종합부동산세는 중산층의 지지를 완전히 잃게 만들었다.종부세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가격은 계속 올랐다. 집이 없는 사람들은 정부가 가격 상승을 방치한다고 비난했고 세금 인상과 마주한 중산층은 노무현에 대한 지지를 접었다.노무현은 자기 언어로 국가와 사회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2003년 일본 국회에서 했던 연설의 아름다움은 14년이 지난 지금도 영롱하게 빛난다.그는 한일 간의 역사적 문제를 정확히 인식했고, 일본에게 과거의 잘못을 인식할 것을 촉구하면서도 그것이 현재의 관계를 훼손시키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한일 간의 관계가 아시아에서 한국의 비전을 실현하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이다.그럼에도 노무현 정부는 실패했다. 공부와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인위적 부양 정책이야말로 경기가 침체될 때 정부가 선택해야 하는 가장 필수적인 정책이라는 것을 노무현 정부는 이해하지 못했다.한미 FTA로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있지만 국가가 얻을 이익의 총량이 더 크다면 한미 FTA는 수용하되 피해를 본 이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이라고 설득하는 적극성을 보여주기엔 시간과 능력 모두 모자랐다. 한미 FTA가 체결된 지 10년이 지났고, 일부 내용은 바뀌었지만 지금 협정 내용을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한국이 아니라 미국이다.우리는 세금을 적게 걷어 복지 지출도 적게 하는 나라다. 미국과 비슷한 구조다. 하지만 우리의 노인 빈곤은 심각한 수준이고 고령화와 인구 감소의 초기 단계에 있기 때문에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복지 지출의 증가는 불가피하다.이런 상황에서 복지 지출을 늘리는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세금을 더 걷거나 부채를 늘리는 것이다. 문제는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는 곳은 법인세와 재산세가 아닌 소득세와 부가세뿐이란 것이다.한국의 법인세 실효세율이 OECD 국가 중에서 높은 것인지 낮은 것인지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실효세율을 국가적으로 동일한 기준으로 맞추면 한국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높은 편이며, 전체 GDP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으로 보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다.작년 3분기까지 30퍼센트 가까이 증가한 초과 세수의 대부분도 법인세에서 나왔다. 게다가 해외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법인세를 인하하는 분위기를 감안하면 법인세 인상은 공약이 될 수는 있어도 정책이 되기는 어렵다. 이미 노무현 정부에서 정치적으로 실패한 재산세 인상을 시도할 정권은 이제 없다.한국이 너무 적게 걷고 있는 세금은 부가세와 소득세다. 부가세 인상은 경기 위축 때문에 일본도 몇 년째 연기하고 있는 정책이다.소득세의 경우 소득세 세수를 늘리려면 대부분의 세금 인상이 세율이 낮은 연소득 4600만원에서 8800만원 사이에서 오거나 세금을 거의 내지 않는 4600만원 이하에서 시행돼야 한다. 1억5000만원 이상의 소득에 대한 과세는 이미 40퍼센트에 가깝기 때문이다.하지만 과연 복지 혜택 증가를 이유로 중산층에 대한 소득세율을 인상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가능할까?나는 향후 늘어날 한국의 복지 재원 마련의 대부분은 세금이 아닌 국채 발행으로 조달될 수밖에 없다고 본다. 논리적으로 모순처럼 보이는 저부담 중복지인데 잃어버린 20년 동안 일본이 택한(실은 택할 수밖에 없었던) 정책이며 우리의 미래다.일본의 정부 부채는 20년 전 GDP 대비 50퍼센트에서 현재는 200퍼센트까지 증가했다. 재정 지출이 아니었다면 일본 국민의 생활수준은 그야말로 곤두박질쳤을 것이다.나는 세금을 인상해서 복지를 늘리겠다는 야당 지도자를 뽑아보았자 우리의 미래는 암울하다고 생각한다. 할 수 없는 일을 하겠다는 지도자는 잘 모르고 있거나 알고도 거짓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 부채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하고 “자, 그럼 당신은 재정을 어디다가 어떻게 쓸 건가요?”라고 묻고 똑똑하게 말하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나는 다음 대선에서 야당으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분노하고 좌절할 것이나 박근혜도 뽑은 이 나라가 더 나쁜 후보인들 뽑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대개 망하는 나라는 큰 실패를 경험한 다음에 더 나쁜 선택을 통해 더 나쁜 실패로 나아가는 것이다.야구 경기를 보다 보면 약팀은 실점 이후 급격히 무너진다. 대개 인간은 인생의 실패를 만회하지 못하고 다음 실패를 향해 나아간다. 벼랑 끝 전술은 결국 벼랑에서 뛰어내리는 걸로 끝난다. 실점 후 경기를 뒤집는 팀은 멘탈과 실력 모두 강한 팀이다.1997년 외환 위기를 겪은 한국은 위기에서 성공적으로 빠져나왔다. 을 쓴 고베 대학교의 오니시 유타카 교수는 한국이 김대중 대통령 이후 지속적인 개혁으로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것으로 평가한다. 오니시 교수는 한미 FTA를 체결하는 한국을 보면서 일본 기업들이 느낀 위기감이 얼마나 컸는지 그 책에서 설명하고 있다.상처와 트라우마 속에 빠진 일본을 변화의 방향으로 돌려놓은 것은 도호쿠 대지진이었다. 무엇인가 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을 사람들의 가슴속에 던져놓았다. 지금의 일본은 타키의 친구들처럼 대학생들이 여러 회사 중 어느 회사를 가야 할지 고민하고 알바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일당이라면 코웃음을 치는 곳이다.이제는 다시 우리 차례다. 우리는 운명을 거슬러서라도 제자리에 돌려놓고 싶은 것이 있는가? 언제 사라질지 몰라 가슴 졸이는 것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