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치기 좋은 시계가 따로 있을까?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시계도 어쩔 수 없이 고장나기 마련이다.

고치기 좋은 시계 - 에스콰이어 Esquire Korea 2017년 2월호

기계식 시계는 개념적으로 귀금속인 동시에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다. 시계를 팔거나 사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건 이 물건의 귀금속적 가치다. 기계적 관점으로 본 시계는 어떨까? 고치기 좋은 시계가 따로 있을까? 고치기 좋은 시계로는 뭐가 꼽힐까?

“많이 팔리고 무브먼트가 검증된 시계가 수리하기 좋죠. 부품 조달도 쉽고요.”

홍성시계부품 최진기 이사의 말이다. 그는 시계업계에서 30년 이상 일했다.

“기어가 크고 두툼하면 문제 생길 게 별로 없어요. 토크가 제대로 전달된다는 이야기죠. 롤렉스 시계가 두께를 유지하는 이유 중 하나는 부품을 그 정도 두께로 유지해야 힘이 정확히 전달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기술자 100명한테 고치기 좋은 시계를 물어보면 1등이 롤렉스일 거예요. 수리하면 잘 돌아가니까. 잘 맞으니까. 2등은 파텍 필립.”

기계식 시계 애호가에서 전문 테크니션이 되어 M워치를 운영하는 이태주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롤렉스 시계를 열어 보면 무브먼트 안의 금속공예적 장식은 전혀 없어요. 그런데 태엽이 풀려나가며 동력이 전달되는 기능은 확실해요. 추가 무거우니까 자동 무브먼트의 동력 저장도 잘돼요. 잘 만든 공산품이에요.”

괜히 잘 팔리는 게 아닌 모양이다.

고치기 나쁜 시계도 있을까?

“기술자들이 짜증 내는 시계 많아요.”

최진기의 말은 시원시원했다.

“요즘은 사람 손으로 못 하는 건 기계를 돌려서 목업을 크게 만들어요. 그걸 가상으로 돌려보고 축소해서 시계로 만들어요. 하지만 검증이 안 되죠. 검증이 안 되면 고장률이 높아지겠죠.

요즘 범용 무브먼트 대신 많이 나오는 자사 무브먼트도 검증이 안 됐어요. 어떤 브랜드는 무브먼트가 무진장 많아요. 수정해서 오차를 줄이는 게 아니라 계속 새로운 것만 만들어내요.”

시계 수리 전문가의 논리가 기계식 시계가 주장하는 혁신과 반대라 흥미롭다. 고회전 시계는 톱니바퀴의 마모도 빠르다. 두께가 얇으면 동력 전달이 약해질 수 있다. 자사 무브먼트는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았다. 긴 파워리저브를 쓸 거면 쿼츠를 쓰지 뭐하러 복잡하게 만드나. 누가 맞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관점의 차이라고 보는 게 좋겠다.

실제로 가장 많은 시계 고장은 뭘까?

“자성에 노출된 시계가 고장이 많은 편입니다.”

리치몬트 그룹 테크니션 명신우 차장의 말이다.

“자성을 제거하는 탈자기가 있어서 자성 노출이 큰 무리는 아니에요. 그걸 제외하면 시계에 가장 취약한 영향은 충격과 습기라고 할 수 있어요. 충격을 받으면 얇은 무브먼트의 부품이 영향을 받을 수 있어요.”

얇은 쿠키가 잘 부러지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손목시계에 물이 들어가면 체온으로 온도가 올라갔을 때 다이얼에 김 같은 게 낀다. 미세하게 수분이 들어갔다는 신호다. 시계를 풀어두면 시계 온도가 낮아진다. 그러면 다시 수분이 안 보인다. 한번 들어간 물은 빠져나가지 않고 온도에 따라 무브먼트 안에서 계속 돈다.

“그러다 보면 무브먼트가 썩는 거죠.”

최진기의 말이다.

비싼 기계식 시계가 고장 나면 “스위스에 보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왜 못 고칠까? 기술이 모자랄까? 부품이나 특수 공구가 없을까?

“무브먼트 수리 승인 라이선스가 있습니다. 칼리버 라이선스를 안 주면 부품도 안 와요. 그 범위는 브랜드마다 다르고 매번 바뀔 수도 있습니다. (일선에서) 수리를 하고 못 하고의 차이는 아닌 것 같아요.”

명신우의 말이다.

이런 말도 들었다.

“브랜드의 스위스 본사만 유리한 시스템이에요. 부품 풀어서 일반 기술자가 수리하게 해도 좋을 텐데 자기들만 하는 거죠. 뭐 대단한 기술이겠습니까? 시계를 만드는 것도 아닌데. 부품 공급이 어렵다면 교육을 시켜서 교육받은 사람에겐 나눠줄 수도 있을 텐데 전혀 안 그래요. 깡패처럼. 기술자들은 동업자 역할을 할 수도 있는데 최근엔 그렇지 않아요.”

미사일 사정거리 제한 같은 일이 시계업계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시계도 어쩔 수 없이 고장나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