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성과 음악성은 공존할 수 있을까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위켄드의 신보 'Starboy'가 남긴 고찰. | 음악,앨범,뮤직,위켄드

'위켄드(The Weeknd)'를 처음 알게 된 건 2011년이다. PBR&B라는 새로운 조류가 밀려올 때 가장 눈에 띄는 존재였다. 당시 내놓은 세 장의 믹스테이프( )는 아직도 마음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Wicked Games’를 처음 들었던 때를 잊지 못한다. 이보다 음울하고 퇴폐적인 R&B가 있었던가. 자랑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취향을 저격당했기에 위켄드의 팬이 되고 말았다. 얘들아, 새로운 게 밀려온다!하지만 위켄드가 지금처럼 이렇게 뜰 줄은 정말 몰랐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믹스테이프 세 장’ 시절의 위켄드와 마주하고 있을 때 실제로 이런 생각을 했다.‘이런 음울하고 퇴폐적인 음악으로 슈퍼스타가 된다면 그건 기적일 거야.’ 동시에 또 이런 생각도 했다.‘위켄드는 절대 음악적 타협 같은 건 하지 않아. 얘가 그런 애처럼 보이니?’ 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듯 위켄드는 타협도 했고 슈퍼스타도 됐다. 내가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두 가지를 모두 했다. 그 후로 나는 예언이나 전망 같은 건 하지 않는다.(2013)까지는 변화의 기미가 크지 않았다. 내가 알던 위켄드였다. 그러나 (2015)에서부터 낌새가 보이기 시작했다.특히 맥스 마틴과의 작업은 상징적이었다. 멀게는 브리트니 스피어스부터 가깝게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히트곡을 만들어낸 맥스 마틴과 위켄드의 작업이라.... ‘Can’t Feel My Face’를 듣는 순간 직감했다. 미처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고.이런 맥락에서 위켄드의 최신작 는 변화의 완성이다. 훌륭한 작품이라는 뜻이기보다는 커리어를 통틀어 초창기 스타일에서 가장 멀어진 작품이라는 뜻이다. 그만큼 대중적·상업적 성공은 거대해졌다.이제 위켄드는 다프트 펑크와 작업하고, 연간 수백억원을 벌어들이며,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에도 선다. 트레이드마크였던 드레드 헤어스타일을 단정하게 다듬은 건 그래서 더 상징적이다. 마치 과거와 냉정한 결별을 한 것 같다. 뒤돌아보지 않는.상상하지 못했던 일이긴 해도 기시감은 가득하다. 마니아의 지지를 받던 지역구 뮤지션이 전국구 뮤지션이 되며 거대한 부와 명예를 얻는 동시에 음악은 스타일을 잃었다거나 개성이 없어졌다는 평가를 받는 광경 말이다.물론 음악의 완성도에 관해서는 더 정밀하게 따져봐야 할 일이지만 적어도 초창기 팬들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변모한 것은 확실하다. 다시 말해 는 음악의 완성도와 별개로 팬들이 위켄드를 좋아하고 지지했던 이유를 잃어버린 작품이다. 는 위켄드만이 만들 수 있는 앨범이었지만 는 누구의 작품도 될 수 있다.하지만 위켄드의 커리어 변화를 패배적으로만 보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것은 비당사자의 오만일 수도 있다.또한 ‘하고 싶은 음악’과 ‘인기’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늘 많은 논박이 있었다. 인기를 얻어 영향력을 키우고 나면 하고 싶은 음악을 더 마음껏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는 반면, 누군가는 그것은 변명일 뿐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라고 말한다.그렇다면 상업적 성공 이후 그다음 단계로 넘어간 사례는 없을까? 거대한 부와 명예를 얻은 후에도 자신의 예술 자체로 까다로운 마니아와 평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사례 말이다.다행히 있다. 비욘세다. 비욘세의 최근작 는 확실히 훌륭한 작품이다. 좋은 기획과 음악적 야심이 거대한 자본을 통해 머릿속 생각 그대로 현실의 결과물로 태어났고, 동시대의 가장 뜨거운 화두인 여성주의와 인종 문제를 자신의 정체성에 투영해 음악에 섞어냈다.비욘세를 통해 우리가 보는 풍경은 부와 명예를 가진 뮤지션이 안일하거나 평범한 음악으로 커리어를 연장하는 모습이 아니다. 우리는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팝 스타라도 도전과 실험을 지속할 수 있음을, 또 그런 음악도 충분히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모양새를 갖출 수 있음을 보았다.더불어 영향력을 가진 개인이 음악을 통해 수많은 사람에게 가치 있는 메시지를 전파할 수 있다는 사실을, 궁극적으로 자본과 예술이 꼭 적대 관계가 아님을 확인했다. 위켄드가 참고하면 참 좋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