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한반도를 미사일로 위협하는 과정에서 이득을 본 것은 김정은 뿐만이 아니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사드) 개발을 주도한 미국 최대 방위산업체 록히드마틴도 큰 이익을 봤다. 한때 거액의 개발비로 사장될 위기에 처했던 프로젝트가 북한의 위협과 함께 다시 양지로 급부상한 것이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처럼 우리는 북측의 적당한 도발에 맞춰 항상 새로운 대비책이 필요했다. 대잠 초계기인 ‘P-8 포세이돈’을 도입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지난해 8월 북한은 김정은이 지켜보는 가운데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에 성공했다. 실현하기 힘든 일이라고 치부했던 북한의 SLBM 발사는 우리 안보 당국을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국민은 불안해했고 국회와 언론은 안보 당국의 안일함에 대한 질타와 함께 발 빠른 대응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사회적 요구와 위기의식은 미국 애리조나 사막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S-3 바이킹’으로 향하던 시선을 자연스레 현존하는 가장 우수한 대잠 초계기인 ‘P-8 포세이돈’으로 돌려놓았다.
안보 위협 상황의 구원투수
2015년 북한의 DMZ 지뢰 도발 사건 이후 긴장 상황에서 국방부를 당황케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북한 해군이 보유한 70여 척의 잠수함 중 50여 척이 일순간 우리의 레이더망에서 사라진 것이다.
우리 군은 사실상 50여 척에 이르는 북한 잠수함의 행방을 찾는 데 실패했다. 한번 잠수하면 좀처럼 찾기 힘든 잠수함의 위력이 여실히 드러나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2016년, 북한의 SLBM이 해수면을 뚫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미사일의 사거리나 완성도 면에서는 여전히 의구심이 있지만 그간 실험 성격으로 해오던 바지선에서의 사출이 아닌 잠항 중인 잠수함에서의 발사는 의미하는 바가 달랐다.
미국과 우리 군이 레이더와 인공위성을 통해 식별하는 북한의 기습 도발 징후에 대해서 북한이 완벽히 속일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한 것이었다. 북한의 핵 개발 역사에서 가장 위협적인 타격 수단이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드넓은 바다에서 깊숙이 잠항 중인 잠수함을 모두 찾아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가장 효과적인 잠수함 탐지 수단을 빠르게 획득하는 것이다. 그 결과물이 바로 현존하는 최고의 대잠 초계기 P-8 포세이돈이다.
절대자를 대신하다
한국은 P-3C 계열 대잠 초계기를 이미 16기 보유하고 있다. P-3C는 긴 냉전 기간 동안 소련을 위시한 공산권의 잠수함을 잡아내는 잠수함 킬러로 명성을 쌓은 역전의 용사였다. 한 시대를 풍미한 대잠 초계기의 지존이었다.
하지만 이런 위상은 과거형이 된 지 오래다. 최초 개발 시기가 1950년대인 구식 기체를 기반으로 해 아무리 기골을 보강하고 최첨단 전자 장비로 개수해도 한계는 명확했다. 신규 기체 생산이 중단된 지 오래여서 부품 수급과 유지·보수도 갈수록 힘들어졌다.
P-3C를 400기 이상 가동하는 미국은 대체재를 애타게 기다렸다. 그러나 두 번째로 많은 P-3C를 보유한 일본은 기다리지 못하고 자신들이 사용할 대잠 초계기를 스스로 개발해 실전 배치하기에 이르렀다.
냉전 이후 예산 삭감으로 몇 차례 좌초되기도 했지만 더 이상 경운기 소리 나는 비행기에 고등교육을 받은 우수 인력을 태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2004년 차기 대잠 초계기 사업을 통해 보잉사가 제시한 새로 개발한 바다의 신을 선정했다.
내부 무장 장착대 및 소노부이 투하구. 잠수함을 타격하는 어뢰와 폭뢰를 탑재. 내부 무장 장착대 및 소노부이 투하구. 잠수함을 타격하는 어뢰와 폭뢰를 탑재.
이미 충분히 검증된 성능과 안정성
P-8 포세이돈은 최신 도입 기종이다. 그런데 새롭게 도입한 기체임에도 어딘가 낯이 익다. 자세히 보면 우리가 인천, 김포, 제주공항에서 자주 목격하는 보잉 737에 회색 군복만 입혀놓은 모습이다.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에 친근감이 절로 든다.
하지만 6000여 기를 제작해 보잉사 최장수, 최다 판매 기록을 세웠고, 세계 곳곳으로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승객을 나르면서도 큰 사고 한 번 나지 않은 안정성이 군에서도 먹혔다. 그래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몇몇 국가에서는 이미 보잉 737을 기반으로 군용기를 제작해 도입하고 있다.
한국 공군의 E-737 피스아이가 대표적이다. 보잉 737이 P-8이 되면서 세부적인 변화가 있었다. 737-800의 동체에 737-900의 날개를 달아 연비와 비행 효율을 높이고, 2만7300파운드 추력(thrust)을 발휘하는 한 쌍의 터보팬 엔진(CFM 56-7B)을 달아 힘과 안정성의 이상적인 균형을 이뤘다. 군용으로 쓰기에 적합한 구성이다.
신형이 구형의 성능을 넘어서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P-3C와 P-8의 50년이 넘는 세대 차이만큼이나 성능의 격차도 크다.
P-3C가 1977년 등장한 애플 II PC라면 P-8은 OLED 터치 바가 달린 최신형 맥북 프로로 볼 수 있다. 최고 비행 속도가 시속 907킬로미터로 시속 750킬로미터인 P-3C를 압도한다. 그런데도 동체가 2만2000킬로그램 더 무거워 P-3C보다 3900미터 더 높이 날 수 있다. 이처럼 스펙상으로는 두 기체를 비교하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다.
AN/APY-10 레이더는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잠수함의 잠망경과 스노클을 탐지해내고 예민한 ECM 센서로 통신 전파도 분석해낸다. 특히 일반적인 초계기에는 없는 자기 변화 탐지기(MAD)를 이용해 깊은 바닷속 잠수함을 족집게처럼 찾아낸다.
무인기(UAV)를 활용해 특정 지역에 대한 정밀한 탐색과 지속적인 관찰도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이런 모든 정보를 종합적으로 컨트롤하고 각종 신호 정보의 통합적 해석과 대응을 체계화하는 것이 P-8의 최대 장점이다. 물론 자동차를 살 때도 그렇지만 옵션에 따라 모든 기능이 부여될 수도, 일부가 빠질 수도 있다. 당연히 옵션은 모두 돈놀이다.
동해의 지배자
한국 해군이 우선적으로 도입할 예정인 P-8 포세이돈은 총 6척이다. 1차적 타깃은 북한의 SLBM을 비롯한 대규모 잠수함 집단에 있다. 인공위성으로 신포에서 북한의 신형 잠수함이 출항하는 것이 확인된다면 아마도 P-8은 분주해질 것이다.
물론 바닷속에서는 말 못 할 추격전이 벌어질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더욱 중요한 사실도 밝혀질 것이다. 동해 바다에 꼭 한국과 북한의 잠수함만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미국 7함대를 비롯해 러시아 태평양함대와 일본의 한 개 이상의 호위대군도 동해에서 은밀히 움직일 가능성이 있다.
물론 우리 해군이 마음 넓게 앞마당을 내줄 리 만무하다. 동해의 주인으로서 주권을 지키려면 그에 걸맞은 실력이 있어야 한다. 소수의 P-8 도입으로 만사가 해결되지는 못하겠으나 적어도 외국 잠수함이 더 이상 마음대로 동해에 드나들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라고 구입한 포세이돈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