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고 질서 정연한 웅변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카라얀이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었다. | 음악,클래식,음반,앨범,뮤직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 빈 필드보르작 교향곡 9번 , 도이체 그라모폰누가 이 교향곡을 싫어할 수 있을까? 낯설고 새로우며 희망으로 가득하다. 세상이 온통 이렇게 새로운데 지치는 일이야말로 죄라는 듯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쓸쓸할 틈이 없다.1893년 고향 체코에서 막 미국에 도착한 드보르작의 마음이 이랬을까? 그럼 2악장 라르고의 평온은 돌이켜 생각하는 고향일까?회상이 늘 따뜻한 건 아니지만, 고향의 이미지 만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평화로울 수 있다. 고향에서 우린 어렸으니까. 엄마, 아빠와 떨어지기 전이니까. 그 부드러움 안에서 세상이 이렇다는 걸 미처 알기 전이라서.어떤 멜로디는 가요처럼 익숙하다. 듣다가 가사를 붙이거나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순간이 생각보다 자주 생길지도 모른다.3악장의 에너지와 활기야말로 긍정적이고, 4악장에는 이 교향곡의 모든 승리와 쾌락이 집중돼 있다. 그 의지만으로 모든 배경을 초월한다. 집중해 들을 수만 있다면 거기가 황야이거나 우주라도, 내 작은 방이거나 콘서트홀이라도 괜찮다.카라얀이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질서 정연하다. 그러다 갑자기 펑, 차마 예측 못 했던 순간에 터지는 거대한 힘. 낯선 것과 더 낯선 것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아주 가끔 뒤돌아보면서 위안을 얻을 수 있으니 괜찮다고 긍정하는 웅변 같다.고향은 떠날 수 있으니까 고향이니, 승리한 자여, 다시 돌아갈 수도 있는 거라는 우렁찬 주장 같기도 하다. 의지도 힘도 바닥난 것 같은 새벽에 가끔 이 곡을 찾는다. 온통 낯선 것들의 파티 같은 이 도시와 세상을 다시 한번 긍정하자는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