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빅 히어로, '재심'의 박준영 변호사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대한민국 사법 체계와 맞선 박준영 변호사는 본래 세속적이었다고 말했다. | 칼럼,재심,박준영,변호사,사법

지난 8월 5일 아침 7시, 박준영 변호사한테 문자가 날아왔다.“메일을 하나 보냈으니 확인하세요.” 박 변호사한테 사건을 맡기려고 한 의뢰인이었다. 메일을 열었다. 충격을 받았다. 내용은 이랬다.어젯밤에 종편을 봤다. 패널이 마음에 안 든다. 고소해달라. 고소장이 들어가면 30만원. 한 번 수사받으러 갈 때마다 일당 20만원. 기소되면 100만원.박변은 의뢰인한테 전화했다.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변호사로서 회의가 밀려왔다. 내심 최후의 보루라고 믿었던 일거리였다.의뢰인은 과거에 큰 송사에 휘말린 적이 있었다. 대법원까지 가는 재판 끝에 전과가 하나 생겼다. 박변이 봐도 억울할 만했다. 의뢰인은 박 변호사가 재심을 이끌어내주기를 원했다.재심은 3심까지 올라가서 최종 확정 판결이 난 사건을 다시 재판하는 걸 말한다. 한국 사법 체계에선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형사사건에서 재심이 받아들여지고 무죄판결까지 난 경우는 박변이 맡았던 ‘수원 노숙 소녀 살인 사건’이 유일하다.몇 건의 재심 사건도 연달아 진행하면서 박준영은 재심 전문 변호사로 불리게 됐다. 의뢰인이 박변한테 접근해온 것도 그래서였다. 재심 수임료로 1억원을 제시했다.솔직히 거절할 처지가 아니었다. 하루하루 2억짜리 마이너스 대출 통장의 만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박준영 변호사 사무실은 수년째 매출이 없었다. 은행이 대출 연장을 거부하는 것도 당연했다. 9월 1일부턴 분할상환하라는 통지를 받았다.사무실 월세가 밀린 지도 10개월이 넘어가고 있었다. 8월 29일이 월세 만기일이었다. 보증금은 진즉에 바닥났다. 이젠 나가줘야만 했다. 파산 직전이었다. 박변은 보증금 3000만원에 월세 55만원짜리 집에서 식구들과 산다. 박변한테 1억원은 큰돈이었다.그런데도 미뤄뒀었다. 맡고 있는 재심 사건들이 걱정돼서였다. 돈을 받고 재심 사건을 수임해버리면 다른 재심 사건들이 우선순위에서 밀릴 게 뻔했다.현재 박변이 맡고 있는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 기사 살인 사건’이나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 치사 사건’은 모두 진범이 따로 있는 억울・절통한 사건이다. 의뢰인들은 범인으로 몰려 몇 년씩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전과자로 낙인찍힌 채 살아온 탓에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못하다.박변은 수임료 한 푼 안 받고 이런 사건에만 매달렸다. 재심은 한마디로 돈 안 되는 사건이다. 돈 되는 사건을 맡아버리면 돈 안 되는 사건을 미뤄둘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될까 봐 미뤄뒀었다.박변은 1억원짜리 의뢰 관련 서류를 금고 안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다. 정말 이것밖엔 길이 없다 싶을 때 수임할 작정이었다. 그러다 수임을 하기보다 차라리 의뢰인한테 돈을 빌리는 건 어떨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의뢰인은 금전적 여유가 있는 재력가였다. 돈을 빌리는 대신 다른 재심 사건과 동등하게 무료로 수임해주는 조건이었다. 궁여지책이었다. 돌아온 건 집사 변호사가 돼달라는 요구였다. 약점을 보이자 하인으로 부리려고 들었다. 박 변호사는 당장 금고에서 관련 사건의 서류를 꺼내 퀵으로 보내버렸다. 박 변호사의 멘탈은 붕괴돼버렸다.0018월 5일, 박준영 변호사는 하루 종일 페이스북만 조몰락거렸다. 어디 하소연할 데가 필요했다. 문득 한 달여 전에 장성근 경기중앙지방변호사회 회장이 에 자신에 대해 썼던 칼럼 하나가 생각났다. ‘박준영 변호사 바라기’라는 칼럼이었다. 장 변호사 사무실은 박 변호사 사무실과 이웃하고 있다.“저의 상황에 대해 써도 되느냐고 묻길래 쓰라고 했던 기억이 났어요. 칼럼이 나온 건 알았는데 페이스북으로 한 번도 공유를 못 해드렸더라고요. 페이스북에 접속한 김에 그 칼럼을 공유해드렸어요. 덧붙여서 글을 하나 썼어요.” 덧붙인 내용은 이랬다.“자초한 일이고, 결국 이리 될 줄 알았지만, 현실은 참으로 냉혹하다. 그나마 나름의 위안은 내 의지로 망했다는 것, 그리고 바라던 대로 성과를 냈다는 것. 또 함께했던 온정이었다.”8월 6일이었다. 라는 법조계 전문 인터넷 신문이 페이스북에서 박준영 변호사의 사연을 보고 기사화했다. 기사 제목은 ‘변호사공익대상에 빛나는 박준영이 월세 못 내 사무실 빼는 사연’이었다. 이 기사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엄청나게 확산됐다. 이게 발화점이었다.박준영 변호사는 에서 일했던 박상규 기자와 함께 재심 사건에 관한 스토리펀딩을 진행해오고 있었다. 스토리펀딩은 자신의 사연을 기사로 올리면 사람들이 이야기를 읽고 십시일반 돈을 모아주는 크라우드 펀딩이다. 분야는 다양하다.성공한 스토리펀딩들은 대체로 공익적인 내용이다. 스토리펀딩을 통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 기사 살인 사건’이나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 치사 사건’ 같은 재심 사건이 세간에 알려졌다.박 변호사는 박 기자와 함께 새로운 스토리펀딩을 하나 준비하고 있었다. 박준영에 관한 스토리펀딩이었다. 박변은 두려웠다. 앞선 스토리펀딩은 재판 자금을 모으자는 목적도 있었지만 재심 사건 자체를 공론화한다는 공익적 목적이 컸다. 빗발치는 여론 앞에선 아무리 뻣뻣한 사법 당국이라도 긴장한다.이번엔 사건이 아니라 사람에 관한 크라우드 펀딩이었다. 변호사 박준영을 믿어달라는 얘기였다. 박 변호사는 미담을 팔아 돈벌이하려는 사람처럼 비칠까 봐 노심초사했다.원래 박준영 스토리펀딩은 8월 말에나 진행할 예정이었다. 8월 초는 여름휴가 기간이었다. 리우 올림픽도 있었다. 이것저것 걸리는 게 많았다. 그러다 의 기사가 이슈화됐다. 주변에선 이때라고 난리였다.8월 9일 화요일, 다음 스토리펀딩 관계자를 급하게 만났다. 디데이를 앞당겼다. 이틀 뒤인 8월 11일 목요일에 스토리 펀딩에 기사를 올리기로 했다.박상규 기자가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를 마감한 건 8월 11일 목요일 아침 9시였다. 스토리펀딩이 개시되기 불과 6시간 전이었다. 밤을 새워서 썼다.스토리펀딩은 목표액을 설정하게 돼 있다. 박변은 2000만원 정도를 얘기했다. 박 기자와 스토리펀딩 담당자는 1억원을 얘기했다. 박변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한다지만 서민들한테 1억원은 너무 큰돈이다 싶었다. 의뢰인과 독지가한테 연거푸 상처받은 탓도 컸다.주변에서 박변을 설득했다.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했던 사건의 수임료가 1억원이었다는 생각이 났다. 그래서 1억원이었다.0028월 11일 당일 박준영 변호사가 전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전주 KBS에서 녹화 방송이 하나 잡혀 있었다. 박상규 기자한테서 카톡이 왔다. 기사 제목 3개를 보여줬다.‘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소금 같은 변호사’,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 ‘시민 변호사 만들기 프로젝트’. 박변은 여전히 자신이 없었다. 이번에도 사람한테 기대했다가 또 상처받게 될까 봐 두려웠다.방송을 하면서도 온통 머릿속은 스토리펀딩 생각뿐이었다. 마지막 희망이었다. 스토리펀딩은 8월 11일 오후 3시에 시작됐다. 녹화 중간에 짬이 났다. 스토리펀딩에 접속해봤다. 박상규 기자가 정한 제목은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였다. 박변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솔직히 액수부터 보였어요. 후원자 숫자가 보인 게 아니라. 돈이 모이는 게 눈에 보였어요. 성공했다는 걸 직감했죠.”‘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의 스토리펀딩은 8월 11일 당일에만 5500만원을 넘어섰다. 그때까지 가 제작한 영화 의 스토리펀딩이 하루 3900만원을 올린 게 최고액이었다. 기사가 올라간 게 오후 3시였으니까 사실상 반나절 만에 5000만원을 넘긴 셈이었다. 시작에 불과했다.‘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의 펀딩액은 이튿날인 8월 12일엔 8000만원을 넘겼다. 정확하게 한 달이 지난 9월 11일 현재 후원 금액은 3억7000만원을 넘어섰다. 후원자 수는 1만1300명이 넘는다. 원래는 11월 11일까지 93일 동안 1억원을 모으는 게 목표였다. 이젠 얼마까지 모금될지가 관건이다.세상은 박준영한테 죽어라 죽어라 했다. 사무실에서 나가라고 했다. 대출 연장 신청은 거절당했다. 마지막으로 믿었던 사람들한텐 배신당했다. 죽으란 법은 없었다.8월 5일의 실망과 절망이, 페이스북의 공유와 공감으로 이어졌고, 의 기사 하나가 확산되면서, 여론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는 부글거리던 여론이 폭발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시사적 상황도 겹쳤다. 그새 눈만 뜨면 법조 비리 사건이 터져 나왔다. 홍만표, 진경준, 우병우, 김형준, 김수천까지 흙탕물 같은 법조계에 박준영처럼 소금 같은 변호사도 있다는 게 극적인 대비를 이뤘다.김수천 부장판사가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되자 양승태 대법원장이 사과했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사위 김형준 부장검사가 스폰서 검사로 도마 위에 오르자 김수남 검찰총장까지 대국민 사과를 했다.대법원까지 가서 확정 판결이 난 다 끝난 사건에 수임료 한 푼 받지 않고 매달려서 결국 재심을 이끌어내고 무죄까지 받아내는 변호사의 이야기는 영웅적이고 신화적이었다. 사무실 임대료도 못 낼 정도로 경제적으로 궁핍해져서 파산 직전이라는 서민적, 신파적 요소까지 더해졌다. 그렇게 박준영 현상이 만들어졌다.방송 3사와 주요 일간지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매체가 박준영을 취재하는 상황이다.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5분에 한 번씩 전화벨이 올린다. 일은커녕 대화를 나누기조차 어려울 지경이다. 국회에서도 시민단체에서도 박준영만 찾고 있다.는 스토리펀딩의 모금 추세까지 보도했다. 스토리펀딩은 10억원을 향해 치닫고 있다. 마감일인 11월 11일까지 7억원 정도는 무난히 넘길 거라는 게 솔직한 기대다.003박준영 변호사한테 궁금했던 건 어쩌면 단 한 가지였다. 도대체 돈도 안 되는 일에 왜 그렇게 애타게 매달리나. 정작 인터뷰를 위해 마주한 박준영한테서 돌아온 대답은 이거였다.“뜨고 싶었습니다.”첫 재심 사건인 ‘수원 노숙 소녀 살인 사건’을 맡았던 것도 뜨고 싶어서였다. 10년 가까이 지나 재심 전문 변호사로 불리는 지금도 박준영은 “사람이 뜨는게 하루아침이네요”라고 말한다.박준영을 제2의 노무현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처럼 박준영도 고졸 출신 변호사다. 노무현이 정권의 폭력에 희생당하는 대학생들을 변호했던 것처럼 박준영도 사법의 폭력에 희생당하는 사회적 약자들을 변호하고 있다. 다들 박준영한테서 의 송강호를 기대하는 것도 사실이다.얼마든지 자신을 송강호로 포장할 수도 있는 분위기다. 지금은 위선을 떨어도 된다. 그런 위선도 세련으로 봐줄 만큼 정말 뜬 상황이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자신의 고난을 신화화하고 대중의 지지를 정치화하고 의뢰인들의 고통을 신파화해서 말할 수 있다.대한민국 사법 체계를 비판하는 근엄한 말 한마디쯤 던질 수도 있다. 지금은 그래도 될 때다. 언론과 대중의 열정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니까 말이다. 여느 정치인이라면 자기가 안 한 일도 자기가 한 일로 만들고 싶어 한다.마주 앉은 박준영은 도무지 그럴 줄 모르는 위인이었다. 지나치게 솔직하고 너무하게 위선이 없었다.박준영은 2006년에 수원에서 개업했다. 미국으로 유학 간 변호사가 쓰던 사무실을 월세만 내는 조건으로 임대했다. 그때도 지금처럼 돈이 없긴 매한가지였다. 그때부터 박준영은 걸신들린 듯 국선 변호를 도맡기 시작했다. 한 달에 많게는 100건까지 국선 변호를 했다.국선 변호사비는 건당 30만원 정도다. 많게는 한 달에 3000만원을 국선 변호로 벌었다는 말이다. 이런 변호사를 법조계 안에선 흔히 국선 재벌이라고 부른다. 비아냥대는 표현이다. 박준영은 서류만 보고 사람은 보지 않는 돈만 밝히는 변호사였다.2007년 ‘수원 노숙 소녀 살인 사건’을 맡게 된 것도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국선을 많이 하려면 판사한테 잘 보여야 한다. 국선 변호인은 판사가 지정한다. 판사가 박준영한테 떠맡긴 사건이 ‘수원 노숙 소녀 살인 사건’이었다.무슨 사건인지도 몰랐다. 가출 청소년 5명과 노숙자 2명이 가출 소녀를 살해한 전형적인 길거리 범죄 정도로 이해했다. 검찰과 경찰은 처음엔 노숙자 2명을 범인으로 체포했고 나중엔 가출 청소년 5명까지 공범으로 몰았다.처음엔 귀찮았다. 청소년상담지원센터 선생님들이 전화하고 찾아왔다. 아이들은 무죄라고 주장했다. 못된 박변은 착한 선생님들한테 자기 할 일을 떠넘겼다. 사건을 분석하고 관계도를 그려보라고 시켰다.선생님들은 퇴근하고 변호사 사무실로 출근해서 자정까지 일을 하고 돌아갔다. 박변은 국선 하느라 너무 바빴다. 의뢰인을 헷갈릴 정도였다. 당사자한텐 인생이 걸린 일일지 몰라도 박준영한텐 30만원짜리일 뿐이었다.박준영도 국선 재벌에 머물 생각은 아니었다. 국선을 하다가 큰 사건 하나 걸렸을 때 전국적으로 뜨고 싶었다. 박준영은 선생님들이 정리한 사건 개요를 살펴봤다. 기다리던 대박 사건이라는 걸 깨달았다. 청소년 5명 모두가 범인이라고 자백한 사건이었다. 자백은 증거의 왕이다. 게다가 5명이 모두 같은 자백을 했다면 명명백백한 증거가 된다.아이들을 만나봤다.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어떤 아이는 죽였다고 했다. 어떤 아이는 안 죽였다고 했다. 박준영은 이상하게 안 죽인 것 같았다. 범행 장소와 증언 내용을 비교해봤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거짓 자백일 가능성이 높았다. 확신이 섰다.그런데 박준영 변호사가 맨 먼저 한 짓은 자랑질이었다. 주변에 이 사건이 내 인생을 바꿔줄 거라고 으스대고 돌아다녔다. 박준영은 말한다.“전형적인 속물 변호사였죠. 그래도 돈만 밝혔던 건 아니에요. 좋은 일도 가끔씩 하면서 좋은 얘기도 듣고 적절하게 유명해지고 그러길 바랐죠. 누구나 그러는 것처럼. 남들은 제가 불우한 환경을 겪었기 때문에 이런 억울한 사건에 관심을 가졌다고 얘기하는데요, 솔직히 이건 저한텐 제 인생을 바꿔버릴 만한 사건이었어요. 인생을 바꿔줄 사건인데 어떻게 잠을 자요?” 마침내 뜰 기회가 찾아왔다. 실제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5명의 아이들은 모두 무죄가 됐다. 2명의 노숙자까지 재심이 됐다. 형이 확정된 사람들까지 뒤집어지면서 헌정 사상 최초로 재심이 무죄가 된 형사사건으로 기록됐다. 박준영은 이 사건으로 전국적 스타가 될 거란 기대감에 부풀었다.004못 떴다.무죄 판결이 났지만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기는커녕 금세 잊혔다. 연쇄살인마 강호순이 잡히고 용산 참사가 일어나고 설 연휴까지 이어졌다. 세상은 무명 변호사 박준영한테도, 억울한 누명을 썼던 청소년들한테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노숙자들한테도 별 관심이 없었다.대신 박준영한텐 강렬한 기억 몇 가지가 남았다. 수원 사건을 처음 조사하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당시 수사 검사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에 가 있었다. 재심이 진행되자 특수부로 와서 차나 한잔 나누자는 연락이 왔다. 보안 시설을 몇 개씩 거치고 나자 주눅이 들었다.“넥타이 매고 저와 달리 머리숱도 많아서 멋지더라고요.” 주눅이 든 박준영 변호사는 특수부 검사 앞에서 몇 마디 묻지도 못했다. 겨우 질문 하나를 던졌다.“검사님이 아이들을 유죄라고 본 결정적인 근거가 무엇이었나요?"박준영은 검사의 대답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검사가 말했다.“범죄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그 아이들의 눈빛이 그랬습니다.” 솔직히 박변 자신도 편지의 절박함이나 만났을 때의 느낌이나 이런 것들 때문에 아이들의 무죄를 믿기 시작했다. 엘리트 검사도 별다를 게 없었다. 유죄를 확신하게 만든 것도 눈빛이었고 무죄를 의심하게 만든 것도 눈빛이었다. 고작 눈빛에 의존하는 게 법이었다. 박변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박준영은 서로 최선을 다해보자고 인사하고 특수부를 떠났다. 마지막 최종 변론은 더 기가 막혔다. 검사 측은 아이들을 ‘들고양이’라고 표현했다. ‘노숙하는 청년들한텐 야생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수사 과정에서 자신을 얼마나 할퀴었는지 모른다’고 웅변했다.검사는 사건에 대해 논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법정에서 자기 합리화에 급급했다. 법은 비겁한 변명을 하고 있었다.이때부터 박준영은 자신이 믿었던 대한민국 사법 체계에 관해 본질적인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자연히 수원 사건 말고도 익산 사건이나 삼례 사건처럼 억울한 누명을 쓴 사건을 알게 됐다.물론 그때도 이 사건까지 하면 좀 뜨겠다는 기대가 더 컸다. 재심 사건을 파고들면 들수록 대한민국 사법 체계가 완전무결하지 않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됐다. 심지어 시스템의 명백한 잘못이 드러났는데도 잘못을 인정하거나 진정성 있는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 게 법이었다.박준영은 재심 사건을 준비하면서 형사소송법 교수들한테 도움을 청하는 메일을 수도 없이 보냈다. 단 한 통의 답장도 받지 못했다. 법의학자들한테도 도움을 청했지만 답이 오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재심은 3심제 사법 체계의 완전무결함에 흠집을 내는 일이다. 관련 판사와 검사와 변호사와 경찰의 실수를 밝혀내는 일이다. 모두가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박준영은 대한민국 사법 체계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게 느껴졌다.“정말 세상이 왜 이러느냐는 생각만 계속 들었어요. 그러면서 생각이 계속 바뀌는 겁니다.”자신이 뜨겠다는 생각보단 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기 시작했다. 이런 사법 시스템 속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는 사람들이 너무 불쌍했다.수원 사건에서 소녀를 죽였다고 누명을 썼던 청소년과 노숙자들도 너무 불쌍했다. 익산 사건에서 택시 기사를 죽였다고 누명을 썼던 청년도 너무 불쌍했다. 삼례 사건에서 할머니를 죽였다고 누명을 썼던 3인조 청년도 불쌍했다.지금도 박준영 변호사한테 왜 파산 지경에까지 몰리면서 이 일을 하느냐고 물어보면 결국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다. 불쌍해서다. 뜨고 싶었던 속물 변호사가 어느새 불쌍해서 일하는 인간 변호사로 변해 있었다.법은 명백한 법의 잘못조차 인정하지 않으려고 들었다. 억울한 피해자들이 신음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사실 법의 잘못이 아니라 사람의 잘못을 인정하는 게 부담스러워서였다.005처음엔 박준영도 자신이 사실상 법조계 전체를 대적하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그저 개별 사례의 무죄를 입증하는 게 목표였다.재심 사건을 파고들수록 법조계의 인맥과 학맥을 건드리게 된다는 걸 체감했다. 재심 사례가 자꾸 부각되면 사법 개혁의 단초가 될 수도 있었다.모두가 법적 안정성을 얘기했다. 국민들이 3심제의 완결성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법적 혼란이 초래된다는 논리였다. 그래서 명백한 법의 잘못조차 인정하지 않으려고 들었다. 억울한 피해자들이 신음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사실 법의 잘못이 아니라 사람의 잘못을 인정하는 게 부담스러워서였다.수원과 익산과 삼례 사건의 담당 판사와 검사와 변호사들은 대부분 박준영을 죽이고 싶을 만큼 싫어했다. 그들은 사실상 법조 카르텔의 은근한 동업자들이었다.반면에 박준영은 동업자 의식이 없는 괘씸한 배신자였다. 박준영도 처음 수원 사건을 맡았을 땐 담당 판사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하나 걱정했다. 수원지방법원은 박변의 출입처였다. 박준영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담당 판사한테 잘 보여서 국선 수임을 많이 받으려고 애쓰던 국선 재벌이었다.그런 박준영의 소심함을 완전히 깨버린 사건이 삼례 사건이었다.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 치사 사건’에선 진범이 스스로 진범이라고 밝혔다. 그런데도 경찰과 검찰은 진범의 존재를 무시했다. 진범은 억울한 누명을 벗겨줄 유리한 증거가 아니라 자신들의 잘못을 입증해주는 불리한 증거였다.박준영은 삼례 사건 뒤에 얼마나 많은 유력 법조인들이 연루돼 있는지 통감했다. 다들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당시 수사과장은 경찰 안에서 진급을 거듭했다. 당시 검사는 지검장이 됐다. 당시 변호사는 대형 로펌 변호사가 됐다. 당시 판사는 고등법원장이 돼 있었다.삼례 사건 이후 16년 만에 모두가 조직의 정점에 올라서 있었다. 관련자 중 한 사람은 국회의원이 됐다. 정치권에서도 논평을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오히려 진범이 사법 피해자들의 구명에 앞장섰다. 심지어 삼례 사건 희생자인 할머니의 유족들도 피해자들을 구명하기 위해 앞장섰다. 할머니의 딸과 사위까지 진범을 용서했다. 기구한 상황이었다.죄를 밝혀야 할 사법 당국은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고, 죄를 숨겨야 할 죄인이 자기 죄를 밝히고, 죄를 미워해야 할 유족이 죄인을 용서하는 진풍경이었다.“측은지심 때문입니다.” 박준영은 말한다.“유족은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족이라는 피해자지만 동시에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아이들에게 미안한 감정도 계속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재심 과정에서 진범이 나타나고 양심 고백을 해주니까 고맙단 얘기까지 나오는 겁니다.” 사실 진범이 흔들렸던 것도 측은지심 때문이었다. 숨어 있던 진범은 스토리펀딩에 실린 박준영 변호사와 박상규 기자의 글을 보고 자기 대신 억울한 옥살이를 한 세 청년에 대해 죄책감을 느꼈다. 그들이 너무 불쌍했다.그때 마침 박변이 진범을 수소문하고 있었다. 2015년 12월 29일에 겨우 연락이 닿았다. 2016년 1월 2일 진범과 만났다. 박변이 진범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만들었다.진범 역시 편하게 살았던 건 아니었다. 삼례 사건의 진범은 세 사람이었다. 그중 한 사람은 자살했다. 박변과 만난 다른 진범은 일생을 허비했다. 결혼도 못했다. 평생 술만 마셨다. 공소시효는 지났다. 지옥은 끝나지 않았다.박변이 진범 중 한 사람과 연락이 닿았던 건 진범 중 한 사람이 자살한 직후였다. 법의 잘못은 억울한 피해자만 양산하는 게 아니다. 법의 단죄를 피했던 진범들도 불행했다. 박준영은 말한다.“세상을 바꾸는 게 대단한 게 아니거든요. 유족의 마음이, 진범의 마음이, 제 마음이, 사람들의 마음이 세상을 바꿔요.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씩 움직이면 세상이 바뀌는 겁니다. 마음이 움직인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아세요?”반면에 법의 잘못을 저지른 사법 당국은 마음이 없었다. 그들에게 여러 사람의 인생을 비극으로 뒤바꿔놓은 사건은 그저 시일 안에 처리해야 했던 여러 사건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박준영은 미국의 마티 스트라우스 전 검사가 자신의 잘못된 기소 때문에 30년간 옥살이한 피해자 글랜 포드를 찾아가 사과한 사례를 이야기한다.ABC 은 마티 스트라우스가 글랜 포드에게 사과하는 장면을 방송했다. 글랜 포드는 끝내 마티 스트라우스를 용서하지 않았으며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마티 스트라우스 검사는 이런 글을 남겼다. “당시 서른세 살의 젊은 검사였던 내게 다른 한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는 판단 능력이 없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나는 오만했고 심판하는 일을 좋아했고 스스로에게 도취돼 있었다. 또 자신만만했다. 나는 정의 그 자체보다 내가 이기는 것에 더 몰두했다. 바로 나 자신이 모든 걸 망쳤다.” 통렬한 반성이었다.박준영 변호사는 대한민국 사법 체계가 3심제의 환상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다. 마티 스트라우스 검사도 지적했다.“우리 스스로가 실수할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완벽한 제도를 만들 수 없다.” 법의 잘못은 사람의 잘못에서 비롯된다. 박 변호사는 자신이 맡고 있는 재심 사건이 완벽하게 마무리되려면 무죄판결과 국가배상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사람이 잘못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도 이거 한번 해보자는 겁니다. 인정하자. 관용이 사라진 사회잖아요. 관용이 사라진 건 잘못을 인정하면 작살난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그냥 깨끗하게 인정하면 국민들이 용서해주는데. 마티 스트라우스 검사도 당사자한텐 용서받지 못했지만 미국민들에겐 용서받았어요. 용감했으니까. 세상은 틀림없이 그들을 관용해줄 겁니다. 세상은 마음으로 움직이니까요.”얼마 전 박준영은 삼례 사건의 최후 변론을 했다. 법의 잘못으로 각자의 인생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역설했다. 법의 잘못을 깨끗이 인정할 때 얼마나 더 나은 세상이 열릴 건지 상상했다. 측은지심이 통하고 관용이 통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뜨고 싶었던 변호사는 그렇게 뜨겁게 호소했다.006어쩌면 박준영이 대한민국 사법 체계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었던 건 그가 태생적으로 비주류이기 때문이다.박준영은 전라남도 노화도에서 태어났다. 땅끝 해남에서 배를 타고 가야 닿을 수 있는 섬이다. 노화도 너머엔 보길도가 있고 그다음엔 제주도다. 대한민국의 변두리 중의 변두리다.성장 환경도 불우했다.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어머니를 때렸다. 어머니는 암으로 일찍 돌아가셨다. 박준영은 어머니를 때렸던 아버지가 그렇게 미웠다. 가출을 밥 먹듯이 했다. 한번은 가출해서 배를 타고 육지로 가는데 하필이면 그 배에 아버지가 타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5만원을 찔러 넣어줬다. 굶고 다니지 말라는 얘기였다.박준영도 여느 고시생들처럼 출세욕과 열등감과 부채감이 뒤범벅돼서 신림동으로 흘러들었다. 인생 역전을 꿈꿨다. 정작 고시가 뭔지도 몰랐다. 집안 할아버지는 박준영한테 감히 고시 공부를 한다고 나무랐다.신림동 고시촌에선 고졸 출신인 그를 거들떠도 안 봤다. 아무도 박준영과 스터디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혼자서 카세트테이프를 들으면서 공부했다.오히려 박준영은 자신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이해하는 편이었다. 자기 같아도 자기와는 함께 공부하지 않으려 할 것 같았다. 박준영은 주류의 논리를 인정하는 비주류였다.그나마 2차에 패스하고 사법연수원에 들어갔을 땐 달랐다. 사법연수원은 별천지였다. 머리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사람투성이였다. 심지어 집안도 좋고 학벌도 좋고 배경도 좋았다. 박준영도 그 안에 있었지만 결코 그들과 같아질 수 없었다. 법조인으로서 박준영은 시작부터 법의 가장자리에 있었다.인맥도 학맥도 돈도 없는 박준영이 스스로를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유명해지는 길뿐이었다. 비주류에서 주류를 지향하는 사람에겐 너무나 당연한 선택이었다. 고시를 공부할 만큼 출세욕이 있는 사람이라면 변호사가 된 다음 뜨고 싶은 속물이 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웠다.재심은 결코 자신이 속하지 못하는 주류 사회의 오점을 찾아내는 일이다. 어쩌면 주류에 대한 도덕적 우월감을 얻으려는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른다.정작 재심 사건은 박준영의 내면을 변화시켰다. 박준영은 재심 의뢰인들에게 절대로 말을 놓지 않는다. 그들은 사건 조사 과정에서 경찰과 검찰과 판사한테 맞고 욕먹고 반말을 들었던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은 한글도 제대로 쓸 줄 모른다.박준영은 그런 사람들 앞에서 오히려 자신을 낮춘다. 박준영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자신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박준영도 의뢰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변호사 자격증만 하나 더 가졌을 뿐이다. 박준영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박준영은 유명 인권 변호사와 함께 일할 뻔했다. 자기 혼자 힘으로는 여러 사건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박준영은 이들 사건의 선장을 맡아달라고 머리를 조아렸다. 정작 인권 변호사는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얽힌 게 많았다. 박준영이 말한다.“거기서 실망했어요. 제가 익산 사건 스토리펀딩을 하면서 자기소개 글에 “세상을 바꾸는 힘은 잘난 사람의 호령이 아니라 작고 왜소한 소시민들의 연대하는 힘이다”라고 썼어요. 왜 그런 줄 아세요? 힘 있는 사람들은 잃을 게 많거든요. 주변에 판검사도 많고 대형 로펌도 많기 때문에 고민할 게 많아서 안 돼요. 힘 있는 사람이 큰일을 하는 줄 아십니까? 국회의원도 힘이야 있겠지만 고려해야 할 요건이 너무 많은 겁니다. 힘없는 사람들이 모여서 큰일을 해내요.” 주류에 있으면 절대 주류를 비판할 수 없다. 아무리 비주류적인 생각을 갖고 있어도 말이다. 입버릇처럼 정치적 올바름을 말하는 진보적 지식인들과 서민 변호사 박준영의 결정적 차이점이다.정치적 올바름을 말하는 지식인들은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사회적 약자들과 섞이지는 못한다. 생각에 동의하긴 쉽다. 노력하면 감정을 공감할 수도 있다. 아무리 애써도 생활을 공유하긴 어렵다. 박준영은 다르다.사법 고시까지 패스한 영감이 지체 장애까지 있는 피해자들과 같이 먹고 잔다. 박준영도 한때 그렇게 희망 없는 청소년이었고 피해 의식 가득한 청년이었다. 박준영은 피해자 입장에서만 바라보는 게 아니다. 피해자의 마음으로 바라볼 줄 안다.불쌍하다는 얘기가 그래서 자꾸 나온다. 위만 바라보면서 출세욕으로 달려온 비주류 변호사가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게 되면서 다시 아래를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는 아래로만 향하기 시작했다.한때는 자신이 속하고자 했던 주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한때는 자신이 속했던 계층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됐다. 위로 올라갔던 자가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박준영은 말한다.“돈도 안 되는 재심 사건을 도대체 왜 계속하느냐고요? 똑같은 질문을 7년 전에 누군가 제게 했어요. 그때의 대답과 6년 전, 5년 전, 그리고 지금의 대답이 다 다른 것 같아요.” 이젠 아무도 하지 않아서, 그들이 불쌍해서 한다.007낭떠러지로 떨어진 피해자를 다시 끌어올리는 재심은 결코 낭만적인 일이 아니다.피해자는 불쌍한 사람이면서 절박한 사람이다. 물에 빠진 사람은 살기 위해서 지푸라기라도 붙잡는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놓으면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할 수도 있다.박준영도 어떤 의뢰인한텐 그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 마음이 움직여서 일을 맡았지만 마음이 다치는 일투성이였다. 측은지심을 느낀 탓에 온갖 심적인 고통도 함께 느껴야만 했다.그래서 박준영은 인권 변호사라는 표현을 싫어한다. 인권 변호사라는 개념 안엔 결국 도와주는 사람과 도움받는 사람이라는 구도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 변호사들은 의뢰인과 거리를 둔다. 인권도 그들에겐 일이다.박준영은 의뢰인과 얽혀버리기 일쑤였다. 감옥에서 변호인 접견을 할 때면 접견실 의자를 바꿔줬다. 딱딱한 피고인 의자에 박준영이 앉았고 푹신한 변호인 의자를 의뢰인한테 내줬다.의뢰인의 고통에 공감하려고 영화까지 봤다. 같은 영화들이다. 일부러 한 뼘 작은 방에 갇혀 있는 상상을 하면서 잠이 들 때도 있었다.의뢰인과 얽히는 고통을 알게 되면서 일부러 수임하지 않은 사건도 있었다. 굉장히 불쌍하고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억울하고 공권력이 더러운 짓을 한 건 맞았다. 도와줬을 때 이용당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번뜩 스쳤다. 안 했다. 타인의 불행을 함께 감당한다는 건 불행한 일이다.울기도 많이 울었다. 몇 년을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웠다. 살기 위해 변호인한테 거짓말을 하는 의뢰인도 있었다. 박준영은 그런 의뢰인과는 싸웠다. 무죄라고 믿었지만 무죄라고 믿고 짜 맞춘 논리로는 법정에서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박준영은 말한다.“진실은 사실과 거짓의 담장 위를 걸어가는 겁니다. 세상은 모순이거든요. 완벽한 무죄를 주장하면 완전한 유죄를 받기 쉬워요. 아이러니죠.”박준영을 인터뷰하는 동안 선의를 가진 자가 선행할 때 겪는 고통을 절감할 수 있었다. 약자를 도와준다는 건 법률적 조언과 돈 몇 푼 던져주는 게 아니다. 자신의 인생을 함께 수렁으로 빠뜨리는 일이다. 그럴 각오가 아니면 나설 수 없다. 선행은 거룩하기만 한 일이 아니다.대화를 나누는 동안 박준영이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삼례 사건의 피고인이었다. 전주법원까지 올 차비가 없다고 했다. 박준영도 돈이 없었다. 아내한테 연락했지만 잔고가 3만원뿐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박변은 여기저기 전화를 걸더니 겨우겨우 돈 10만원을 꿨다.당장 지갑에 있는 돈을 꺼내 박변한테 쥐여주고 싶었다. 주저됐다. 박준영의 인생을 들여다보면서 사람이 사람한테 측은지심을 느낀다는 게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이 바뀌지만 그래서 인생도 뒤바뀐다. 박준영이 특별한 건 그래서다. 박준영이 희생한 건 돈벌이만이 아니다. 인생 그 자체다.008박준영은 자신이 특별한 사람으로 비치는 게 두렵다.“전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특별해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아니에요. 오히려 제가 이런 일을 한다고 해서 특별해 보여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세상의 의미 있는 변화는 나와 별다를 바 없는 사람이 특별한 일을 할 때 일어나거든요. 그래야 나도 내 주변에서 실천한단 말입니다. 제가 여러 가지 세속적인 욕망에 대해 지나치리만큼 솔직하게 말하는 것도 그래서예요.” 그래서 박준영은 자신의 약점을 더 솔직하게 고백하지 못해서 안달이다.“저도 못난 짓 많이 했어요. 나중에 다 말씀드릴게요. 돈 때문에 사건도 많이 했고. 세금도.... 저는 저를 잘 알죠.”어쩌면 송호창 의원실에서 박준영한테 정치권 영입을 제안했다가 흐지부지됐던 게 이것 때문이 아닌가도 싶었다.정치는 상징을 만드는 작업이다. 상징이 될 만한 존재를 발굴해내는 것도 정치다. 박준영은 정치인이 되기엔 사회적 가면이 없다. 스스로 자꾸만 사회적 가면을 찢어버리고 민낯을 드러내려고 애쓴다.그런 태도는 거창한 명분을 들먹이는 지식인들을 무색하게 만든다. 인권이니 정의니 부르짖지만 진짜 삶은 사회적 약자와는 동떨어진 샴페인 엘리트들한테 박준영은 피하고 싶은 존재다.박준영을 인터뷰하는 내내 1993년에 개봉한 영화 를 떠올렸다. 키 작고 못생긴 더스틴 호프만과 전성기의 미남 배우 앤디 가르시아가 나온 영화다.비행기 추락 사고 현장에 갑자기 나타나서 수많은 사람을 구한 익명의 영웅이 있다. 사람들은 영웅을 찾으려고 난리다. 잘생기고 멋진 앤디 가르시아가 영웅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모두가 열광한다. 자신들이 찾던 영웅상이다.앤디 가르시아 역시 멋진 말로 사람들한테 희망을 준다. 전부 거짓이다. 사실은 더스틴 호프만이 진짜 영웅이었다. 키 작고 못생긴 부랑자 말이다.더스틴 호프만이 추락한 비행기에서 사람들을 구조한 건 대의명분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불쌍해서였다. 자기 말고는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귀찮지만 조금 도와준 것뿐이었다.박준영 변호사는 의 더스틴 호프만과 닮았다. 평범하고 때론 실수도 하지만 내면에 선의가 있어서 결국 선행을 하고야 마는 사람 말이다.박준영은 분인을 얘기한다.“모든 인격체에 하나의 마음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분인이라고 하데요. 사람마다 수많은 분인이 있다고 합디다. 실제로 저도 제 안에 있는 악한 성격 때문에 스스로 놀랄 때가 있어요. 삶이란 좋은 분인의 영역을 넓혀가려고 노력하는 과정 같기도 해요. 지금도 제겐 나쁜 분인이 있죠. 그런데 이 나쁜 분인이 또 언제 되살아나서 제 대부분을 차지하게 될지 몰라요. 우린 한 사람을 어떤 사람으로 규정짓고 싶어 해요. 하지만 그건 아니라고 봐요. 그 속엔 수많은 분인이 있거든요. 그리고 분인은 끊임없이 변하죠.”의 결말은 아이러니하다. 사람들은 앤디 가르시아가 가짜 영웅이라는 걸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더스틴 호프만이 진짜 영웅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앤디 가르시아는 멋진 외모와 아름다운 언변을 지녔고 그건 선행 자체보다 더 매력적이다. 더스틴 호프만도 그걸 인정한다. 세상의 영웅이 되려 앞으로 나서기보단 조용히 뒤로 물러난다.그런데도 더스틴 호프만의 선행은 계속된다. 지나가다 또 사람을 구한다. 불쌍해서다. 우리가 필요한 영웅은 더스틴 호프만이지만 우리가 보고 싶은 영웅은 앤디 가르시아일지도 모른다.안철수 현상과 박준영 현상의 차이점도 이것이다. 안철수 현상을 통해 등장한 안철수는 높은 곳으로 임했다. 대중은 안철수를 선망했다. 안철수는 세상을 바꾸겠다고 약속했다.박준영 현상을 통해 등장한 박준영은 낮은 곳으로 임했다. 그는 높은 곳과는 어차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사람들을 이끌거나 매료시키는 인물이 아니다. 박준영은 세상을 조금씩 치료할 뿐이다.안철수는 자신이 새사람이고 새정치라고 말했다. 박준영은 자신도 똑같은 사람이고 별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박준영은 리틀 빅 히어로다.009최근에 박준영 변호사는 새로운 재심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부산 엄궁동 살인 사건’이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두 남자가 형을 살았다. 두 사람 모두 21년씩 형을 살고 출소했다.박 변호사가 보기엔 100퍼센트 무죄다. 전형적인 사법 조작 사건이다. 경찰은 죄 없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폭력을 써서 자백을 받아냈다. 그런데 이 사건의 변호사가 유력 대선 후보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다. 어마어마한 사건으로 커질 가능성이 있다.박준영은 지금 대한민국 전체와 맞서려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을 할 때 박변의 흥분이 느껴졌다. 그는 여전히 뜨고 싶다. 그가 말한 분인이 떠올랐다. 박변은 말한다.“문재인 변호사를 탓할 수만도 없어요. 그런데 재심 사건이 돼버렸다는 것 자체가 타격이 커요. 문 변호사님 입장에선 그 정도면 잘했어요. 더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지 못한 게 아쉽긴 하지만 잘했어요. 그래도 이번 재심 건은 안 도와주면 안 돼요. 그러면 다칠 수밖에 없어요.”잇따른 법조 비리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법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다. 박준영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오랜 세월 쉬쉬해온 법의 잘못이 드러나고 있다. 법치국가의 불완전함이 드러나고 있는 사회현상이다. 수십 년 동안 공고하게 유지돼온 법의 신화가 깨지고 있다.법의 민낯과 법의 잘못을 진심으로 받아들여야 비로소 한국 사회는 법치2.0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박준영 현상은 더 인간적인 법치를 원하는 시대적 요구다.인터뷰가 끝나가고 있었다. 하루 종일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했지만 아직도 ‘불쌍해서’라는 대답 말고는 속 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박 변호사와 돌아가신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였다. 갑자기 박변이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개인적으론 두 분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게 가장 큰 불행이지만 저는 운명 같은 상황에 의해서 지켜졌고 보호받았다고 생각해요. 그 운명 같은 상황이야말로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의 희생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짧게 살다 가셨는데 대신 자식한테 기회를 줬지 않았나. 두 분의 삶을 생각하면 많이 불쌍해요.”비로소 답을 얻은 것 같았다. 박준영의 부모님은 못 배우고 못 가진 분들이었다. 박준영은 그들을 그리워했고 또 미워했다.박준영이 사회적 약자들을 하염없이 불쌍하다고 느끼는 건 그들에게서 세상을 떠난 부모를 발견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고통을 타인의 고통이 아니라 가족의 고통이자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기 때문이었다.박준영은 ‘부모님이 불쌍하다’고 말했다. 한번 터진 박준영의 눈물은 그칠 줄을 몰랐다. 출세욕으로 가득 찼던 속물 국선 재벌이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재심 전문 파산 변호사가 된 건, 눈물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