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고 멋진 신세계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정경화의 섬세한 선율과 카라얀의 열정적인 카리스마를 느낀, 이 달의 클래식. | 클래식,정경화,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빈 필,드보르작

정경화, 워너클래식스이번 앨범은 2012년 작업을 시작해 지난해 6월에야 마무리됐다. 정경화는 1974년 오랜 파트너이자 명프로듀서인 크리스토퍼 레번과 함께 바흐 무반주 파르티타 2번, 소나타 3번을 녹음한 바 있으나 전곡 녹음은 이번이 처음이다. 단일 음반 녹음으로 4년은 꽤 오랜 시간이지만, 정경화와 바이올린이 함께한 64년 세월의 일부일 뿐이기도 하다.정경화는 평생을 아주 부자연스러운 악기인 바이올린과 함께했고 그 바이올린으로 세계 최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피아니스트가 의자에 앉아 이미 조율이 끝난 악기의 건반을 때려 음을 낼 때, 바이올리니스트는 중력에 저항하듯 턱 끝까지 악기를 받쳐 들고 한 음 한 음 찾아가며 연주해야 한다. 피아노 소리가 연주자의 시선 저편에서 울려 퍼질 때, 바이올린 소리는 연주자의 귓전을 아주 세게도 때린다. 그 유별난 악기를 어깨에 지고 가슴에 품으며 정경화는 완벽하고자 했다.2012년 바흐 프로젝트를 시작할 당시 정경화는 타고난 재능과 젊음을 양손에 쥐고 있었던 자신의 젊은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내가 늘 모자라다 생각해서 연주가 끝나면 가슴을 쥐어뜯으며 속상해했어요. 바이올린에 미쳐서 그렇게 안달을 했어요. 그때 나는 나 자신을 못 봤어요.” 5년의 공백,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세월은 완벽에 대한 정경화의 가혹한 집착을 희미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연습에 임하는 자세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고 한다.정경화에게 연습이란 각 음이 지닌 뜻을 잡기 위한 시간이다. 기본적인 스케일로 연습을 시작하며, 악기의 울림에 집중해서 완벽한 인토네이션과 컬러를 찾아간다. 이 과정은 명상에 가깝다고 그가 말했다. 연주자가 맨몸으로 맞설 수밖에 없는 작품인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담은 이번 음반에서도 정경화의 ‘어쩔 수 없는 완벽’은 여전하다.글_박용완(국립극장 홍보팀장)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 빈 필드보르작 교향곡 9번 , 도이체 그라모폰누가 이 교향곡을 싫어할 수 있을까? 낯설고 새로우며 희망으로 가득하다. 세상이 온통 이렇게 새로운데 지치는 일이야말로 죄라는 듯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쓸쓸할 틈이 없다.1893년 고향 체코에서 막 미국에 도착한 드보르작의 마음이 이랬을까? 그럼 2악장 라르고의 평온은 돌이켜 생각하는 고향일까? 회상이 늘 따뜻한 건 아니지만, 고향의 이미지 만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평화로울 수 있다. 고향에서 우린 어렸으니까. 엄마, 아빠와 떨어지기 전이니까. 그 부드러움 안에서 세상이 이렇다는 걸 미처 알기 전이라서. 어떤 멜로디는 가요처럼 익숙하다. 듣다가 가사를 붙이거나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게 되는 순간이 생각보다 자주 생길지도 모른다. 3악장의 에너지와 활기야말로 긍정적이고, 4악장에는 이 교향곡의 모든 승리와 쾌락이 집중돼 있다. 그 의지만으로 모든 배경을 초월한다. 집중해 들을 수만 있다면 거기가 황야이거나 우주라도, 내 작은 방이거나 콘서트홀이라도 괜찮다.카라얀이 지휘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질서 정연하다. 그러다 갑자기 펑, 차마 예측 못 했던 순간에 터지는 거대한 힘. 낯선 것과 더 낯선 것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아주 가끔 뒤돌아보면서 위안을 얻을 수 있으니 괜찮다고 긍정하는 웅변 같다. 고향은 떠날 수 있으니까 고향이니, 승리한 자여, 다시 돌아갈 수도 있는 거라는 우렁찬 주장 같기도 하다. 의지도 힘도 바닥난 것 같은 새벽에 가끔 이 곡을 찾는다. 온통 낯선 것들의 파티 같은 이 도시와 세상을 다시 한번 긍정하자는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인다.글_정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