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자 없는 나라, 습관적인 코미디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정치 풍자의 탈을 쓰고 약자에 대한 혐오로 웃음을 파는 작금의 TV 코미디들의 문제에 관하여.

풍자 없는 나라, 습관적인 코미디 - 에스콰이어 코리아 2017년 3월호

작년 말부터 급속도로 정치 풍자 코너를 늘려온 SBS <웃찾사>의 최근 야심작은 아마 ‘애들의 세상을 키우자’일 것이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퀴즈 쇼를 진행하는 사회자 이종규는 매회 진땀을 뺀다.

‘같은 값이면’ 뒤에 올 문장을 완성해보라는 말엔 ‘대포폰’이라 답하고, 신데렐라 삽화를 보여주면 백마 탄 왕자님은 말을 선물하는 재벌 회장이고 요정 엄마는 주인공이 입을 옷을 대신 골라주는 비선 실세라 이야기하는 소년 형준 때문이다.

그 주의 뉴스 헤드라인을 아이(를 연기하는 코미디언 김형준)의 입을 통해 복기하는 수준의 코미디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기발하다. 세상 모든 일을 정치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소년의 존재라니.

어른들의 행동을 보고 배우며 아이들이 동심을 잃었다는 식의 접근은 지금까지 <웃찾사>가 보여준 정치 풍자 코너치곤 신선한 편이었다. 자칫 재미있을 뻔했던 코너가 다시 뻔해지는 순간은 옆에 앉은 다른 소년 선민(이선민)이 입을 열 때다.

아버지가 불광동에서 힘 좀 쓰는 건달이라는 다섯 살 소년 선민은, 백설공주 삽화를 보여주면 ‘불여시 하나가 호구를 일곱 명이나 낚은 이야기’라 해석하고, 신데렐라 삽화를 보여주면 ‘호박 나이트에 12시 전에 입장하면 과일 안주가 공짜인 줄 귀신같이 아는 나이트 죽순이’라 말한다.

선민의 세계는 온통 여성 혐오로 가득 차 있는데, 놀랍게도 아버지가 건달로 설정됐다는 이유 하나로 이런 농담 중 일부는 극 중에서 조롱이나 지탄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나이트가 아니라 무도회장이라고 정정하는 모범생 송희(한송희)에게 선민은 대꾸한다. 무도회장이든 나이트클럽이든 넌 얼굴 때문에 입구에서부터 저지당할 거라고. 전형적인 미인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송희는 매회 선민에게 외모 지적을 당하고 관객들은 박수를 치며 웃는다.

시국이 풍자를 허락했다. 개그맨들도 모처럼 기를 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게 아닌데 싶은 마음. 풍자는 소재로 휘발됐다. 습관 같은 혐오만 남았다.

KBS <개그콘서트>라고 상황이 좀 다를까?

가장 인기 있는 코너 ‘대통형’을 보자. 별생각 없는 대통령 서태훈과 툭하면 종북 세력을 이야기하는 국무총리 유민상, 그리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각료들이 모인 국무회의는 매번 산으로 간다.

농축산부 장관(홍현호)은 달걀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창조경제부 장관(이현정)과 협의하라는 대통령 말에 ‘예전에 썸 타던 사이라 같이 일하기 어렵다’ 이야기하고, 그나마 개중 제정신이라는 창조경제부 장관도 할 수 있는 거라곤 “사퇴하세요!”라고 외치는 것 정도가 고작이다(맞다, 바른정당 이은재 의원의 패러디다). 문화융성부 장관(김대성)이란 자는 1회부터 6회까지 늘품체조를 빗댄 각종 체조를 선보이며 10억이 어떻게 허공에 날아갔는지만을 반복해서 보여줬다.

매회 그 주 이슈가 된 뉴스의 헤드라인을 게으르게 나열하고, 정치인과 각료는 죄다 한심한 사람이라는 식의 안전한 정치 혐오만 보여주고 마무리된다. 물론 ‘병신년이 가고 정유라가 왔습니다’ 식의 뻔하고 게으른 혐오 농담도 빠지지 않는다.

그럼 케이블은 좀 다를까?

tvN 의 새 시즌을 알리는 뉴스마다 ‘수준이 다른 정치 풍자를 기대해볼 법하다’는 홍보성 멘트가 따라붙지만 여기라고 딱히 더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박근혜 게이트가 터진 직후 이들이 선보인 코미디는 김민교를 최순실처럼 차려입힌 다음 세입자에게 갑질하는 건물주 역할을 맡긴 게 고작이었다. 세입자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명품 신발 한 짝이 벗겨지는 일이 벌어지자, 승마 모자를 쓴 유세윤이 등장해 ‘엄마 신발을 찾으러 왔다’고 말하는 이 콩트 속 어디에 구체적인 정치 풍자가 있을까?

공적인 선출 과정이나 임명 과정을 거친 적 없는 일반인이 사적인 친분을 이용해 국정을 멋대로 좌지우지했다는 죄의 맥락은 사라지고, 갑질하기 좋아하는 명품 걸친 드센 사모님이라는 식의 뻔한 스테레오 타입만 살아남았는데.

의 정치 풍자를 이야기하며 ‘여의도 텔레토비’ 시절을 언급하기엔 몸을 사리며 순치되어온 역사가 너무 길다. 피차 민망한 노릇일 것이다.

풍자 코미디는 쉬운 일이 아니다. 당대의 핫한 이슈를 단순히 반복하고 언급하는 것으로 풍자가 완성된다고 친다면, 거리의 택시 운전사들이 TV 속 코미디언보다 더 훌륭한 정치 코미디를 선보이고 있을 거다.

레임덕에 접어든 정권을 욕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제대로 된 풍자 코미디라면 정치가 왜 망가졌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시청자로 하여금 대책을 고민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힘 있는 대상을 향해 조롱의 중지를 제대로 세워본 적 없는 코미디언들은, 늘 하던 대로 상대적으로 약하고 소수인 이들을 조롱하는 안전한 길을 벗어나지 못한다.

그놈의 ‘병신년’ 타령에 습관적인 장애인 혐오와 여성 혐오 위에 정치인은 다 무능한 사람이라는 정치 혐오를 끼얹고, 그 주의 헤드라인 몇 개 고명으로 올리는 게으른 코미디. 대체 언제까지 이런 걸 정치 풍자 코미디로 쳐줘야 하는 걸까?

정치 풍자의 탈을 쓰고 약자에 대한 혐오로 웃음을 파는 작금의 TV 코미디들의 문제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