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지만 공평하진 않은 그래미상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또 한번의 그래미 시상식이 끝났고, 또 한번 논란이 가열됐다. | 음악,뮤직,칼럼,그래미상,그래미

제59회 그래미상이 끝났다. TV에 나온 배철수와 임진모를 보고 비로소 1년이 또 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이번 시상식에는 비욘세가 아홉 개 부문, 드레이크와 리한나, 카니예 웨스트가 여덟 개 부문, 찬스 더 래퍼가 일곱 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기대를 모았다.이 중에는 예상된 영광을 얻은 이도 있고 빈손으로 돌아간 이도 있다. 또 쌍둥이를 임신한 채로 앞줄에 앉아 있었을 뿐인데 누군가에게 ‘영광 폭격’을 당하며 수상하지 못한 부문의 트로피 절반을 가져간 이도 있다. 뭐가 어떻게 됐든 모두 다 부럽다.결과적으로 올해 역시 ‘공정성’ 논란이나 ‘화이트 그래미’라는 비판을 피해 갈 수 없게 됐다. 아니, 잠재우기는커녕 더욱 증폭시킨 양상이다. 핵심은 아델의 ‘싹쓸이’다.아델은 애초 다섯 개 부문 후보에 올랐는데 다섯 개 부문 모두 수상했다. 중요한 점은 그중 시상식의 하이라이트인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가 포함되었다는 사실이다. 강력한 경쟁자인 비욘세가 있었기에 논란은 더 심했다.솔직히 말해보자. 올해 시상식에서 아델은 그냥-아델이었지만 비욘세는 최강-비욘세였다. 비욘세가 무려 를 냈는데도 이런 결과라니. 초현실적이다.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차분하고 정교한 논의가 필요하다. 사실 그래미상을 향한 논란을 접할 때마다 그 문제의식에 동의하면서도 동시에 그래미상 입장에도 남들보다 조금 더 깊이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나는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10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대중음악상이 받아온 혐의(?)는 그래미상이 매년 받는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특정 음악가를 편애한다’, ‘특정 장르를 배척한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특정 노래를 후보로 올렸다’ 등이 대표적이다.하지만1) 특정한 집단이 2) 일관된 의도와 목표로 3)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것이라는 전제야말로 실은 가장 허망한 것이다.단언컨대 어떤 분야의 어떤 집단이든 열에 아홉은 그렇지 않다. 한국대중음악상 역시 외부에서 제기하는 비판의 정반대 지점이 오히려 고민이라면 고민인 조직이다. 제발 기본적인 단합이라도 잘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나부터 반성한다).또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한국대중음악상의 시스템 자체가 이미 그런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그래미상도 마찬가지일 것이다.그래미상은 ‘백인 우월주의를 내면화한 소수 늙은이들의 밀실 야합’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당장 그래미상 선정 기준과 심사인단에 대해 구글링만 해보아도 알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비욘세의 수난(?)에 관한 세간의 ‘음모론’은 말 그대로 음모론일 가능성이 높다.그러나 게임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이 지점에서 필요한 건 균형 감각이다. 시스템은 과연 만능일까. 시스템화되어 있으니, 외부의 비판은 음모론에 불과하니, 어떠한 고민이나 성찰도 필요하지 않은 걸까.이와 관련해 음악학자 존 빌라노바의 주장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지난 10년간 그래미상 ‘올해의 앨범’ 부문에는 총 열일곱 명의 비백인 음악가가 후보에 올랐다. 그러나 그중 수상자는 허비 행콕 단 한 명뿐이다. 또 수상한 그의 앨범은 백인 포크 음악가 조니 미첼의 노래를 커버한 작품이었다.”그는 이것이 체계화된 인종차별주의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그래미상에 시스템은 있지만 그것이 본질적으로 인종차별적 결과를 도출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는 이야기다.실제로 어떤 이들은 그래미상 심사인단에 ‘고연령의 백인 남성’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한다. 또 ‘백인 팝 음악 산업에 주로 분포한 심사인단의 성향’도 간과할 수 없다고 말한다. 즉 심사 과정이 투명하고 민주적이라고 해도 이미 그 시스템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나는 그래미상이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인지하고 고민은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궁극적인 해결책이 그래미상의 변화나 혁신 따위는 아니라는 입장이기도 하다.어쩌면 이것은 그래미상의 성향이자 색깔일 수도 있다. 완전무결하거나 완전히 공평한 시상식이란 애초에 성립이 불가능하다. 고로 만약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면 그 해결책은 그래미상과 또 다른 성향을 지니되 그래미상만큼 권위와 영향력을 지닌 새로운 시상식을 키워내는 일이지 않을까.백인 위주의 미국에서 백인 위주가 아닌 시상식이 그래미상만큼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지는 물음표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