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은 매력적인 지성의 본보기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지적인 남자가 되면 뭐가 좋은지 박찬욱을 보면 알 수 있다. | 영화,감독,박찬욱

박찬욱의 최근 작 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 특정 장면이나 주제를 넘어선 그의 균형 감각이다.누군가에겐 이 영화의 아름다운 장면이 중요할 수 있다. 다른 누군가에겐 이 영화의 진취적인 성 의식이 중요할 수 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겐 사랑하는 사람이 끝내 이기고 마는 이 영화의 희망적인 이야기가 중요할 수 있다.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이 모든 걸 다 담아야 한다. 거기에 더해 돈도 벌려야 한다.가 개봉한 뒤 진행한 박찬욱의 인터뷰는 그의 지적 수준을 보여주는 청문회 같았다.영화 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박찬욱은 영화광 출신의 지식과 감각을 보여줬다.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는 영화에 관심 없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쉬운 말로 이야기했다. 라이프스타일 잡지와의 인터뷰에서는 예술성을 묻는 질문에 상업적 성공의 가치를 들려줬다.똑똑해지는 방법은 많다. 똑똑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와 그들이 찾아낸 규칙을 익히면 된다. 보통 그런 건 책에 쓰여 있다. 혼자 책을 많이 읽는다고 똑똑해지지는 않는다.사람의 지성은 독방에서 혼자 쌓을 수 없다. 오늘 지금의 세상을 늘 마주해야 한다. 선과 악 사이에서, 순진과 순수 사이에서, 당기순이익과 손익분기점 사이에서 늘 최적의 지점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지적인 박찬욱은 그 점을 찾았다. 상업 영화를 만들려면 돈 되는 일에 돈을 쓰는 투자자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작가니까 자신의 예술을 담아야 한다. 그렇게 박찬욱은 영화 에서 나오는 별명처럼 ‘깐느박’이 된다. 진짜 중요한 부분은 여기서부터다.박찬욱은 깐느박이 되고도 현실적이다. 여자 둘이 연인이 되는 성인영화로 500만 명에 가까운 관객 수를 기록한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후 “무엇인가를 깨뜨리고 담을 넘고 달려 꿈꾸는 다른 장소에 가기 위해 싸우는 이야기”라는 멋진 설명을 붙인다.영화제의 상에 대해서는 “영화제 경쟁 부문에 뽑혀 간다거나 상을 받는다거나 하면 혹시라도 한국에서의 흥행에 도움이 될까, 홍보 효과가 있지 않을까 기대를 갖게 된다”고 말한다.남자의 지성은 여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한 액세서리가 아니라 엄연한 스스로의 기능이 있는 도구다. 물론 지성이라는 도구의 모양은 굉장히 우아하다.예술을 하되 현실을 산다. 그 밑에는 박찬욱이 오랫동안 쌓아온 지식이 있다. 그는 영화 에세이를 펴낼 수 있을 정도로 글을 잘 쓴다. 150권이 넘는 동서미스터리북스의 모든 시리즈를 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그는 영국 스릴러 소설가 존 르 카레가 지금보다 훨씬 유명하지 않을 때도 한국에서 인지도가 거의 없는 의 추천사를 보냈다. 의 사운드트랙 레퍼런스로 비발디를 떠올릴 정도로 문화적 소양이 깊다.깐느 박이라고 처음부터 예술계와 속물계를 개구리처럼 오가지는 않았다. 그의 초기 영화인 과 는 상업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실패했다. 그는 를 찍기 전까지 8년 동안 각종 영화 프로그램에 출연하거나 글을 써서 팔며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그래서일까, 그는 지금 깐느박이 되고도 게임 광고를 찍는다. 작가가 되고도 영화가 개봉하면 홍보 목적으로 온갖 인터뷰를 한다. 이런 창작자는 지금 한국에 박찬욱밖에 없다.책 같은 거 읽어봐야 뭐 하느냐는 말을 하는 남자들이 종종 있다. 그 말이 맞다. 성공이 현금 보유량과 비례한다면 세상엔 독서나 윤리나 전략 없이도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이 너무 많다. 하지만 어느 순간이 지나면 성공의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지적인 깊이는 그 순간에 중요하다.이른바 지적 소양은 응급 구조 시스템이나 헌법의 짜임새처럼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순간에 중요한 판단을 내려야 할 때, 둘 다 매력적인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 할 때 결정적인 근거는 남자가 지금까지 살아오며 스스로 쌓아온 지성뿐이다.남자의 지성은 여자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한 액세서리가 아니라 엄연한 스스로의 기능이 있는 도구다. 물론 지성이라는 도구의 모양은 굉장히 우아하다. 어떤 여자는 그 우아함을 좋아할지도 모른다.박찬욱처럼 지적인 남자가 되려면 관찰한다.박찬욱은 영화 촬영장에 카메라를 가져온다고 한다. 뭔가 계속 관찰한다는 뜻이다.많이 읽는다.그의 놀라운 지적 레퍼런스는 그가 접한 책, 특히 소설에서 온다. 그의 영화에는 소설을 많이 읽은 사람 특유의 튼튼한 스토리 전개가 있다.세상에 귀 기울인다.박찬욱은 영화계 인권이나 정치적 이슈 같은 문제에 자기 목소리를 꾸준히 냈다. 그가 무엇을 지지하느냐보다 자신이 속한 사회의 현재와 계속 싱크로를 맞추려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윤리를 생각한다.많이 본다고 전부가 아니다. 거기서 어떤 게 맞는지를 끝없이 고민해야 한다. 박찬욱은 여성 배우의 인권 같은 이야기에도 계속 관심을 기울인다.현실을 본다.그는 게임 광고를 찍으며 “운영 중인 영화사 모호필름의 직원들 월급을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현실은 중요하다.감수성을 유지한다.그는 가 순하다는 말에 “조진웅이 문소리와 아이의 얼굴을 쥐고 흔드는 장면은 내가 만든 영화의 그 어떤 장면 못지않게 잔인하고 폭력적이다”라고 말했다. 현실을 맨눈으로 쳐다보면서도 품 안엔 감수성을 갖고 있는 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