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계절의 옷엔 새 감정이 담긴다. 작년과 얼마나 다를까 싶지만, 또 순간마다 새롭다. 스웨트셔츠 한 장 입고 땀 나게 걷거나, 창문을 내리고 셔츠를 펄럭이며 드라이브를 하거나. 그때가 아니고선 느껴보지 못할 감정. 옷 하나로 감정은 무장해제된다.
슈트를 입고도 마음이 가뿐해질 수 있을까? 스스로를 엄격하게 만드는 슈트에서 여유를 찾는 건 어불성설일까? 핏과 색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는다면 다른 얘기가 될 수 있다.
이를테면 구조가 유연한 재킷과 물 흐르듯 유연한 바지로 구성된 슈트. 재킷 길이는 평소보다 조금 더 내려오고, 바지의 폭은 걸을 때마다 출렁이는. 색은 평소라면 손사래 칠 그런 색으로.
보테가 베네타의 토마스 마이어가 만든 이 크림색 슈트는 1940년대풍이다. 요즘 슈트에 없는 한량, 신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하지만 술잔을 빙글빙글 돌리고만 있을 그런 옷은 아니다. 느끼하지 않지만 날이 서 있지도 않다. 토마스 마이어가 담백하게 만든 덕분이다.
어떤 최적의 지점에서 담담하게 여유로워 불현듯 우아하다. 그는 여기에 큐번 칼라 셔츠와 크림색 더비를 더했다. 소품은 생략했다. 없어서 더 완벽하니까. 이런 슈트라면 봄을 붙잡고만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