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기계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20세기의 기계들에게는 21세기와는 다른 정신이 있었다. | 20세기,기계

손잡이가 돌아가는 감각은 그 자체로 완벽했다. 건전지 네 개를 넣었더니 24년 전의 그 전원에 다시 빨간 불이 들어왔다. 명백한 혁신의 기록이자 역사인 물건, 지금은 재현할 수 없는 완성도를 지닌, 크고 작은 기계를 모으고 또 모았다. 장인 정신과 패기, 놀라움과 시대정신, 쓸모와 아름다움이 그 안에 다 있었다. 지금도 미치도록 갖고 싶은 너와 나의 20세기.1969올리베티 발렌타인 타자기혁신과 아름다움을 모두 성취한 기계식 타자기다. 영국 디자이너 페리 킹과 이탈리아 디자이너 에토레 소트사스가 같이 만들었다.들어보면 놀랍도록 가볍다. 철 대신 ABS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서다. 발렌타인은 어디서나 쓸 수 있는 가뿐한 타자기였다.층층이 배열된 자판을 누르는 느낌은 어쿠스틱 피아노를 칠 때와 비슷하다. 힘의 세기에 따라 타격감과 소리가 다르고, 해머가 종이에 닿기까지의 그 기계적 부드러움은 사랑스럽다. 기계적 혁신이 없었던 데다 가격도 비싸서 상업적으로는 실패했지만 그 자체로 전설이 된 타자기. 여전히 수집가들의 리스트 상위에 올라 있는 귀한 모델이다.“시작은 빨간색 타자기였다. 올리베티가 만든 아름다운 물건이었다. 나는 이 타자기로 수많은 가사를 썼다.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데이비드 보위의 말이다.영화 속 알렉스의 방에도 올리베티 발렌타인이 놓여 있었다. 런던 디자인 박물관과 뉴욕 현대미술관에도 영구 소장돼 있다.글_정우성1998소니 MD 워크맨 MZ-R55미니 디스크는 1991년에 소니가 개발한 매체였다. 작고 매혹적이며 음질도 훌륭했다. 휴대용 카세트플레이어로 역사를 쓰고 CD 플레이어로 승리를 이어가던 소니의 다음 도전이기도 했다.소니 MDMZ-R55는 CD의 차세대가 MD라고 굳게 믿었던 시절의 플레이어이자 리코더다. 결과는 비극적이었다. MP3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혁신해버렸다.글_정우성1989닌텐도 게임보이게임보이는 휴대용 게임기 시장을 실질적으로 개척했다. 당시의 첨단 기술이 동원됐다.8비트 4.19 메가헤르츠 CPU에 2.6인치 반사식 흑백 액정을 달고 카트리지 교환 방식을 썼다. 그래서 기계 하나로 여러 가지 게임을 즐길 수 있었다.특히 그래픽이 눈부시게 진보했다. 픽셀 하나하나를 격자 모양으로 깐 도트를 통해 거의 모든 그래픽을 표현할 수 있었다.글_김태영1925싱어 재봉틀방적기와 방직기가 실과 천을 대량생산할 때도 바느질은 인간의 몫이었다. 그 고단한 시대를 단숨에 혁신한 기계가 재봉틀이었다.1846년 미국 매사추세츠의 기술자 일라이어스 하우가 최초로 특허를 냈고, 본격적인 혁신과 대중화는 1851년 뉴욕의 기계공 이삭 메리트 싱어가 이뤄냈다. 그가 만든 회사 싱어 앤 컴퍼니의 모토는 “한 집에 한 대의 재봉틀을!”이었다. 그때 미국에선 재봉틀로 옷을 만드는 것이 유행이었다.한국에 최초로 들어온 재봉틀도 1877년, 싱어의 것으로 추정된다. 1960년경 완전히 대중화됐을 때도 재봉틀은 가보이자 혼수 목록 1위였다.이 재봉틀은 1925년에 싱어 앤 컴퍼니가 생산한 2만3000대 중 하나다. 나무는 영원히 늙지 않을 것처럼 단단하고, 오른쪽의 손잡이는 여전히 부드럽고 옹골차게 돌아간다. 게다가 보란 듯이 화려하고 예쁜 금장 장식이라니. 과연 풍요와 혁신의 20세기에 대한 견고한 상징이다.글_정우성2006 탄노이 오토그래프 미니런던 새빌 로의 양복점은 워털루 전투의 군복을 맞춰주며 성장하기 시작했다. 롤스로이스는 대영제국의 고위 관료 자동차였다. 영국산 고급품은 제국 경영의 산물이다. 제국 단위 납품이라는 막대한 시장과 고위 관료의 고급스러움에 대한 속물적 취향이 영국산 고급품의 뿌리였다.탄노이도 이 흐름 위에 있다. 탄노이는 영국의 확성 기술을 대표했던 기술 회사였다. 새빌 로가 제국의 제복이었고 롤스로이스가 제국의 바퀴였다면 탄노이는 제국의 성대였다.대영제국의 힘은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를 기점으로 쪼그라들었다. 냉전기의 주인공은 미국과 소련이었다. 영국은 한발 물러나 괴팍하고 개성 있는 고급품을 만들었다. 탄노이 오토그래프 같은. 고운 소리를 내는 탄노이만의 오디오 유닛을 장착하고, 풍부한 소리를 구현하기 위해 모니터 케이스 안에 복잡한 미로를 설치했다.미로를 통과시켜 풍부한 소리를 낸다니 그야말로 20세기적이다. 이 풍만한 고급품이 ‘현악의 탄노이’를 이끌었다.영국 물건의 멋은 크기가 아니라 품위에서 나온다. 탄노이는 오토그래프의 개념과 정신을 계승하되 크기를 대폭 줄였다. 높이 1.5미터, 무게 85킬로그램에 달하는 대형 스피커가 높이 34.5센티미터, 무게 4킬로그램으로 압축됐다.하지만 이 스피커에는 영국산 고급품의 꼬장꼬장한 고집이 그대로 살아 있다. 티크 케이스, 그 색과 원목의 질감, 그 질감을 살린 마무리, 영국산 트위드가 떠오르는 볏짚색 그릴과 그 거친 촉감, 앰프를 물리고 볼륨을 키우면 여전히 울리는 탄노이 사운드.21세기 고급품의 문법은 타협과 대량생산과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춘 친절이다. 탄노이 오토그래프는 반대다. 이 스피커가 모든 소리를 완벽하게 재생한다고는 할 수 없다. 대신 이 물건에는 소품종 생산 시대의 엄격한 퀄리티 컨트롤이 남아 있다. ‘이게 우리다’라는 생산자의 고집이 남아 있다.그래서였을까, 탄노이는 작년에 오토그래프 미니를 단종시켰다. 20세기가 진짜로 저물고 있다.글_박찬용1934앵글포이즈 오리지널 1227이전의 탁상 조명은 한 곳만 비출 수 있었다. 조지 카워다인은 자신의 자동차 공장에서 사용하기 위해 자유롭게 움직이고 그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조명 장치를 고안했다.팔의 관절 구조를 흉내 냈다. 원활한 구동과 고정을 위해 스프링을 달았다. 이 디자인을 1931년 특허 등록한 후 다음 해에 탁상 조명으로 응용했다. 지금도 원형 그대로 출시한다.글_김진호1969오메가 스피드마스터1969년 6월 21일 인간이 달에 도착했다. 버즈 올드린의 우주복엔 손목시계가 감겨 있었다. 오메가 스피드마스터다. 오메가는 이 일로 세계 최고의 시계 마케팅 신화를 갖게 되었다.오메가는 1969년 판과 거의 같은 스피드마스터를 출시한다. 이 안에 20세기 기계식 시계의 본질이 있다. 전자 장비가 세상을 휩쓸기 전의 기계식 계측 장치.글_박찬용1967스타일로폰영국에서 ‘스타일로폰’, 러시아에서 ‘테르민’이란 이름의 전자악기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다. 스타일로폰은 전압을 이용했고 테르민은 전파를 이용해 소리를 냈다. 두 악기는 전기가 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다.특히 스타일로폰은 신시사이저의 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지금 음악 생태계를 지배하는 전자음의 시초인 셈이다.하지만 처음 출시했을 때는 악평이 지배적이었다. 애들 장난감 정도로 치부됐다. 실제로 음악인을 위한 물건도 아니었다. 첫발자국이었던 건 맞지만 위대한 발자취는 아니었다는 뜻이다.그래도 그 특유의 지글거리는 음감에는 자극적인 감성이 있다. 2007년에 재발매했다.글_김진호2013브라운 계산기그 유명한 브라운 계산기 ET66의 복각 모델이다. 액정의 종류를 제외하면 완전히 같다. 살아 있는 전설 디터 람스가 1987년에 디자인했고 2013년에 다시 만들었다.아이폰의 계산기 앱 디자인도 2008년까지는 브라운 ET66과 같았다. 애플 최고 디자인 책임자 조너선 아이브가 디터 람스에게 헌정한 것이었다.글_정우성2012일광전구클래식 시리즈 ST641879년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하기 전까지 인류가 어둠을 밝히던 방식은 대부분 촛불이었다. 일광전구는 지금 백열전구를 만드는 유일한 회사다.이 전구는 일광전구의 클래식 시리즈다. 과연 빛 없이도 아름답고, 전원을 켜면 더 아름다운 노란빛이 들어온다. 19세기 말에 발명해 20세기를 밝혀오다 21세기에 부활한, 어쩌면 모든 혁신의 시작이었던 그 고운 빛이다.글_정우성1983금성 전기밥솥버튼만 누르면 잘 지은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건 무슨 의미였을까? 쌀과 물의 양을 맞추고 불을 조절해가며 뜸 들이는 시대가 끝난 건 아니라 해도, 직접 공들여 지은 밥보다는 맛이 좀 없더라도 전기밥솥이야말로 부엌의 신세기였다.전기밥솥의 시작은 중일전쟁이었다. 한국 최초의 전기밥솥은 1965년 금성사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역시 1983년 금성이 만든 전기밥솥이다. 부엌의 노동력을 획기적으로 절감시킨, 그야말로 ‘굿 라이프’의 효시다.글_정우성1999혼다 S2000 AP120세기 말, 기술적 측면에서는 일본 자동차 회사가 세계 정상을 넘보고 있었다. 스포츠카 분야에서 특히 도드라졌다. 투철한 장인 정신과 도전 정신이 바탕에 있었다.때론 무(無)에서 완전히 새로운 수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이윤에 집착하지도 않았다. 모터스포츠에 참가하거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자연스럽게 좋은 스포츠카가 태동한 시절이다.기술과 혁신이라는 관점에서 그 시절의 으뜸은 혼다였다. 혼다는 다양한 제품으로 스포츠카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대표적인 것이 2인승 경량 로드스터 S2000이다. S2000은 1995년 콘셉트카로 공개된 후 1999년 4월 양산형으로 데뷔했다. 20세기의 끝, 21세기의 시작이라는 의미에서 차 이름도 밀레니엄의 단위를 썼다.S2000에는 혼다의 도전 정신과 모터스포츠의 영혼이 잘 담겨 있다. 현재로선 혼다의 마지막 뒷바퀴 굴림 소형 스포츠카이기도 하다.S2000은 완벽에 가까운 균형을 추구했다. 다양한 신소재와 최신 설계로 오픈 보디 구조에도 가볍고 강한 차체를 실현했다. 앞뒤 무게 비율도 50 대 50으로 맞췄다.특히 인상적인 것은 고회전 엔진이다. 초기형(AP1)에 장착한 자연 흡기 엔진은 배기량 2.0리터에 최대 9000rpm까지 회전하며 최고 출력 240~250마력을 냈다. 지금의 기술 기준에서도 자연 흡기 2.0리터 엔진으로 리터당 120~125마력이 넘는 출력을 발휘하는 양산 차는 전무하다. 게다가 막대한 스트레스를 받는 엔진임에도 내구성이 상상을 초월했다.물론 단점도 있었다. 엔진이 저회전에서 고회전으로 이어질 때 파워가 급상승하며 신경질적이고 날카롭게 반응했다. 그런데도 초기형 모델엔 주행 안전 장치가 없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과격하게 코너링을 시도하면 뒷바퀴부터 여지없이 미끄러졌다. 요즘의 자동차 기준으로는 분명 ‘위험한 물건’이었다.이 차는 양산 차로서 실패작이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일반 소비자를 위한 제품이라면 어디까지나 안전하고 다루기 쉬워야 한다. 하지만 혼다는 고집스럽게 모터스포츠의 경험을 추구하며 경주 차도 양산 차도 아닌 이상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S2000은 출시 후 9년간 유럽, 미국, 일본 등을 대상으로 3개 버전으로 생산하면서 수십 차례나 부분 개선을 거쳤다. 엔진은 2.0리터에서 2.2리터로 늘어나고 최대 회전수는 9000rpm에서 8000rpm으로 낮아졌다. 자세 제어장치 같은 안전 전자 장비도 꾸준히 추가했다.모든 개선의 목적은 더 순수한 운전 성능이 아니었다. 다루기 쉽고 안전한 차로 길들이기 위해서였다. 개선하면 할수록 기술적 순수함에서 멀어졌다는 뜻이다. S2000의 본질을 생각하면 개선이 곧 퇴보였다.글_김태영1984니콘 FM220세기 정밀기계의 역사는 서유럽에서 태어난 원천 기술을 동아시아의 일본이 따라잡은 역사이기도 하다. 일본은 쿼츠 무브먼트로 스위스 시계업계를 거의 질식사시킬 뻔했다. SLR카메라를 간소화하고 소형화시키며 광학 강국을 넘어 카메라의 표준이 되었다.1952년 펜탁스가 첫 일본산 SLR 카메라를 발명한 지 32년 후 니콘이 SLR계의 기념비 FM2를 만들었다.FM2가 위대한 기계인 이유는 둘이다. 첫째는 내구성이다. 작은 방아쇠가 철컹거리는 듯한 니콘 특유의 셔터 감각은 이때가 더 훌륭하다. 영문 위키피디아의 ‘FM2’ 항목에는 ‘아직도 많은 프로페셔널 사진가가 FM2를 백업 카메라로 쓴다’고 쓰여 있다. 튼튼하기 때문에, 그리고 노출계를 제외한 모든 게 기계식이라 배터리가 없어도 작동하기 때문에.더 중요한 건 대중성이다. 보도사진가와 프로들이 쓰던 고급품 F 시리즈와 달리 FM2는 사진에 입문하는 사람도 살 수 있을 정도로 가격이 적당했다. 일문 위키피디아의 ‘FM2’ 항목에는 ‘사진 학교 학생들의 간판 모델’이라고도 쓰여 있다.고급스러운 대중형 제품 혹은 대중성을 갖춘 고급품. 20세기의 가장 특수한 계층인 중산층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글_박찬용1991젠하이저 오르페우스음향 기기 분야에서 완벽한 소리란 없다. 완벽한 소리를 찾는 여정만이 있을 뿐이다. 젠하이저가 오르페우스를 만든 이유도 그거다.오르페우스는 전통적인 진공관 기술과 디지털 기술이 결합된 앰프로 음 왜곡률을 최저로 유지했다. 그래서 자연 음에 가장 가까운 소리를 냈다.출력은 헤드폰(HE90)으로 처리한다. 헤드폰 프레임에는 최고급 너도밤나무를 썼고 벌집 모양의 이어피스 망은 도금했다. 모두 수작업이었고 전 세계에서 단 300대만 생산했다. 출시 당시 가격은 1540만원 정도. 현재는 약 4220만원이다.글_김태영1959금성 A501A501이란 이름은 교류(AC)를 이용하는 진공관 다섯 개로 만든 1호 라디오란 뜻이다. 이름 그대로 최초의 국산 라디오다. 당시 산요에서 생산하던 라디오 SF-78과 디자인이 거의 흡사하다.불량률은 높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래도 상징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한국은 반세기 만에 세계에서 가장 전자 제품을 잘 만드는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금성 A501이 그 첫걸음이었다.글_김진호1954폴라로이드 랜드 카메라 모델 95A1947년 애드윈 랜드가 즉석카메라를 개발해 시험 모델을 내놓았고 폴라로이드사에서 그의 이름을 그대로 딴 ‘폴라로이드 랜드 카메라 모델 95A’를 출시했다. 출시와 동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사진이 기록을 위한 수단에서 일상과 예술로 파고든 것은 폴라로이드 랜드 카메라의 등장과 역사를 함께한다. 기술은 개념과 사고를 바꾸기도 한다.글_김진호1913우르 라이카35밀리미터 필름 포맷 최초의 스틸 카메라다. 라이츠 베츨라 직원이자 사진의 선구자인 오스카 바르낙이 개발했다. 크기가 작아 휴대성이 좋을 뿐 아니라 35밀리미터 롤필름을 이용해 한 번에 36장을 촬영할 수 있었다.이전의 카메라는 크고 무거웠다.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우르 라이카의 등장으로 카메라가 대중적으로 더 사랑받기 시작했다.글_김태영1980롤랜드 TR-808발매 당시에는 호평받지 못했으나 이후 재평가받아 세계적 명기의 반열에 올랐다. 디트로이트 테크노 창시자인 후안 앳킨스, 초기 힙합의 중요한 인물인 아프리카 밤바타가 사용하며 존재감을 드러냈고, 마빈 게이의 히트곡 ‘SexualHealing’의 리듬도 TR-808로 만들었다.우리가 듣는 전자 드럼 음색의 기초가 모두 롤랜드 TR-808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될 정도다.글_김진호1992혼다 NR750‘기술의 혼다’라는 말을 뒷받침할 대표적인 작품이다. 단언컨대 NR750에 사용한 엔진 기술은 앞으로 그 어떤 모터사이클 회사도 도전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기술자들의 광기가 녹아 있다.시작은 1979년 영국 GP에 참가할 경주용 모터사이클 제작이었다. 단순한 구조로 높은 출력을 낼 수 있는 2스트로크 엔진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분위기에서, 혼다는 엔진 기통 수를 최대한 늘리는 방법으로 500cc 엔진으로 130마력의 출력을 내고자 했다.하지만 당시 규정상 경주 차의 피스톤은 네 개로 제한됐다. 이에 혼다는 8기통 같은 4기통 엔진을 만들고자 두 개의 피스톤을 타원으로 붙인 오벌 피스톤을 개발해 오벌 피스톤 네 개가 달린 4기통 엔진을 탑재했다.더 놀라운 것은 최대 2만 rpm까지 엔진이 회전하는 경주 차를 양산형으로 만들었다는 것. 최종 시판 제품의 배기량은 750cc에 최대 1만4000rpm으로 회전했다. 미쳐도 단단히 미쳤었다.글_김태영2017베이퍼룩스 M1B제2차 세계대전은 독일산 랜턴과 영국산 랜턴의 대결이었다. 서유럽의 양대 기술 강국이 각자의 랜턴으로 전선의 어둠을 밝혔다. 독일은 페트로막스, 영국은 베이퍼룩스. 베이퍼룩스의 영국 측 연합군이 전쟁에서 이겼다.승리는 다각도로 달콤하다. 패전국의 페트로막스는 상표권을 주장할 사람이 없어 아무나 그 이름을 쓴다. 승전국의 베이퍼룩스는 60년이 넘도록 살아남았다.요즘은 빛을 사서 쓰기가 너무 쉽다. 그런 눈으로 보면 등유 랜턴은 한숨이 나올 정도로 불편하다. 기름통 아래 달린 손잡이로 푸슉푸슉 압력을 넣어줘야 한다. 기화기 부분을 알코올로 예열해야 불이 붙어 빛이 난다.그런데도 왜 이 기계가 살아남았느냐고? 매력 때문이다. 요령이 생겨야 불을 밝힐 수 있는 베이퍼룩스 랜턴에서는 작은 소리와 기름을 때는 열기가 난다. 사람이 열이 없는 빛을 만들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베이퍼룩스 랜턴엔 빛과 열이 하나이던 때의 기술이 스며 있다.20세기 랜턴이 살아남은 비결 역시 20세기 적 고집이다. 놀랍게도 이 랜턴은 한국산이다. 한국의 랜턴 애호가 원재정이 매물로 나온 베이퍼룩스를 샀다. 100년 가까이 된 생산 라인 전체를 영국에서 떼어 와 부천 테크노파크의 공장에 집어넣어버렸다. 원재정은 지금도 아내와 단둘이 그때와 같은 방식으로 베이퍼룩스를 만든다. ‘도면에 답이 있다’는 자세로.한국은 물건의 품질만으로 대접받기 힘든 나라다. 원재정은 홍보가 어렵고, 한국산 황동은 품질이 나쁘고, 또 시간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들에게 “너한테 쪽팔릴 짓은 안 한다”고 말하며 랜턴의 품질을 지킨다. 멋진 고집 아닌가.글_박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