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스미스라는 이름의 경쟁력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폴 스미스는 7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매일 아침 6시에 자신의 매장으로 출근한다. | 폴 스미스

폴 스미스 경은 스트라이프로 이미 오래전에 영국의 빼놓을 수 없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었다. 70세의 폴 스미스는 우아한 재킷 소매 안에 아직도 많은 비밀을 감추고 있다.폴스미스랜드, 스미시랜드폴 스미스 본사인 스미시랜드는 코벤트가든의 예전 청과 시장 자리 끄트머리에 있다. 원래는 창고로 쓰던 멋진 빨간 벽돌 건물이다. 깔끔한 외관에 과시적이지 않은 응접실만으로는 이 건물의 별난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폴 스미스의 특징인 둥글둥글한 서명이나, 폴 스미스가 만들었지만 너무 널리 퍼진 나머지 그 자신이 없애야만 했던 가늘고 선명한 스트라이프 무늬도 없다. 폴 스미스가 오랜 시간 행운의 부적으로 삼은 토끼 그림 역시 없다.어쨌든 토끼가 부적 역할을 톡톡히 한 것만은 확실하다. 70대에 접어든 폴 스미스는 불안하기로 악명 높은 패션계에서 50년 동안 정상의, 혹은 정상에 가까운 자리를 지켜왔으니까.간판이 없는 본사는 ‘나를 폴 경이라 부르지 마시오’ 하는 폴 스미스의 겸손한 태도를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다.사실 눈썰미가 좋은 탐정이 아니더라도 조금만 둘러보면 여기가 폴 스미스의 공간임을 알 수 있다. 안내 데스크 뒤에 있는 캐비닛엔 에디 메르크스(역사상 최고로 꼽히는 사이클 선수) 포스터, 미니 로봇, 데이비드 보위 기념품 등등 증거가 될 물건이 가득하다.폴 스미스의 사무실까지 다섯 층을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며 수백 개의 사진 액자를 지나가게 된다. 폴 스미스가 찍은 사진이거나 그가 공감하는 사진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숨을 조금 헐떡이면서 바로 그 사람 앞에 서게 된다. 숨을 고르기까지 몇 초가 더 걸릴지 모르지만 괜찮다. 폴 스미스가 말을 먼저 시작할 테고, 쉴 새 없이 말할 테니까.폴 스미스를 만나다"홍차? 커피?"그 목소리에는 노팅엄 사람의 기질이 그대로 담겨 있다.“베이컨, 달걀, 콩? 뭘 드실래요?”폴 스미스의 소굴을 묘사하는 기자나 방문객으로 내가 첫 번째 사람도 아니니, 나는 그곳을 제대로 묘사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사방에 책이 삐뚤빼뚤 탑처럼 높게 쌓여 있다. 책이 너무 많아서 그 책을 관리하기 위해 소규모의 대출 도서관을 운영할 정도다.미술품들이 벽에 걸려 있고 더미로 쌓여 있다. 르코르뷔지에의 그림, 이브 생로랑의 스케치, 세실 비튼의 사진 등 아주 값진 것이 많다. 9시 수업에 지각한 학생들이 마구 던져놓은 듯 자전거가 쌓여 있다. 이 자전거들은 브래들리 위긴스, 마크 캐번디시, 크리스 프룸 등이 타던 것이다. 폴 스미스가 한 손을 흔들며 말한다.“전에 어린 여자아이가 여기 와서 자전거를 셌는데 20대였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아이가 20이 넘는 숫자는 몰랐던 것 같아요.”그러나 무엇보다 최고인 것은, 폴 스미스가 모아서 지구 상의 누구도 할 수 없는 모습으로 진열한 이색적인 고물들이다. 한 예로 익명의 팬이 30년 동안 보낸 것이 있다. 폴 스미스는 그 팬이 남성인지 여성인지도 모르며, 우편물의 소인이 미국에서 찍혔다는 것만 안다.이 선물은 포장도 없이 물건에 그냥 우표를 붙여 보낸 것들이다. 스노보드, 봉제 닭 인형, 사다리, 2미터 길이의 해바라기. 최근에 도착한 선물은 여성 흉상으로, 이 부분이 중요한데, 밝은 분홍색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이다. 폴 스미스가 낄낄거리며 말한다.“우체부가 어디를 잡아야 할지 난감해하더군요. 그리고 우리 안내원은 그냥 ‘아, 폴 앞으로 온 거죠?’라는 말만 했고요. 퍼포먼스 작품처럼 됐어요. 탐욕스럽고 균일화된 현대 사회에서 맛볼 수 있는 더없이 큰 즐거움이죠. ‘좋아해요’, ‘싫어해요’, ‘돈 내놔요’, 이런 메시지는 하나도 없어요. 전혀 없어요.”위기에 대처하는 법잠시지만 폴 스미스가 심각해진다. 우리가 만난 시점은 일 년의 마지막 시기, 태양이 병가를 내고 집에서 쉬고 있는 것같이 흐린 12월의 어느 날이다. 그리고 2016년은 폴 스미스 개인에게도, 폴 스미스 브랜드에도 힘든 해였다.“네, 골치 아팠죠. 브렉시트, 트럼프, 이탈리아 총선, 그리고 테러도 있었죠. 프랑스에서도 파리를 찾는 관광객이 30퍼센트 줄었어요. 실제적인 문제죠. 세계 전반으로 불경기는 사라지지 않았어요. 그저 사람들이 부인해왔을 뿐이죠. 저희 사업은 안정적이지만 저조하게 유지되고 있어요. 안정적이지도 않고 저조한 브랜드가 많은데 그보다는 나은 거죠. 그런 브랜드는 직원이나 매장 수를 줄여야 할 처지에 놓여 있죠. 다행히 저희는 아직 직원이나 매장 수를 줄일 계획이 없습니다.”이런 환경에서 윌리 웡카 초콜릿 공장 같은 스미시랜드는 잔혹한 세계에서 도피소 같은 곳이 되어왔다. 폴 스미스는 여기가 ‘순수한 곳’이지만 ‘유치한 곳’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한다.“점심때 사람들을 여기로 불러서 샌드위치를 대접했을 뿐인데 사람들이....”폴 스미스는 한숨을 쉬고 말을 잇는다.“이러더군요. ‘이런 사무실에도 감사하고 이런 대화에도 감사합니다. 아주 편안했어요. 기분이 다 상쾌해지네요.’ 저는 1980년대 탄광 노동자 파업 때 제 사업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일주일에 3일은 탄광 파업이어서 나머지 4일 동안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고, 집에선 발전기를 돌려야 했죠. 이런 일이 벌어질 때에도 저는 늘 잘 대처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발적으로 어떤 일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저희는 아주 탄탄합니다. 다만 지금 이 시기는 지금까지 사람들이 보아온 것과 다를 뿐이죠.”우울한 비전이다. 그러나 분위기 메이커인 폴 스미스가 다시 쾌활하게 말했다.“저는 매일 아침 6시에 출근합니다. 미화원들과 아주 친하게 지내요. 여기를 청소할 때는 기술이 필요하죠. 미화원은 진공청소기로 공기를 내뿜어요. 숙달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자칫 처음부터 흡입 버튼을 켤 수 있어요. 여기 미화원은 공기를 ‘푸우우’ 내뿜어서 허공에 먼지를 날리고, 진공청소기 기능을 흡입으로 바꿔서 공중에 있는 먼지를 싹 빨아들이죠.”1위의 1인 브랜드폴 스미스는 늘씬하고 잘생겼다. 자신의 옷을 광고하는 데에 최고의 모델이다. 오늘은 진주 단추가 달린 데님 셔츠와 인디고 치노 바지 차림이다. 이런 폴 스미스가 갑자기 나비채를 들고 열정적으로 희귀종 나비를 뒤쫓는 곤충학자처럼 벌떡 일어난다.“계속 ‘푸우우’ 하고 ‘크으으으윽’ 하죠.” 폴 스미스가 상상의 진공청소기 노즐을 다스리려고 애쓰며 방을 뛰어다니는 모습은 아주 짧고 재미있는 촌극이다. 기사 작위를 받은 폴 스미스 경이 이렇게 재미있는 사람인 줄 누가 알겠는가.“아주 효과가 좋아요!”패션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도 폴 스미스 이야기는 흥미로울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어쩌면 앞으로는 다시 없을 사업 모델이다.일인 브랜드가 2015년 1억2900만 파운드의 매출을 올린 세계적 제국이 된 비결은 무엇일까? 노팅엄의 창문도 없는 벽장에서 시작해 39개 직영점과 60개국의 180개 체인점을 운영하며, 일본에서는 오자처럼 보일 만큼 믿기지 않는 250개 스토어를 운영하게 된 비결은 또 무엇일까?게다가 이 모든 게 그리 길지 않은 재단 수업과 난독증에도 불구하고 이뤄낸 성취이며,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회사에서 대부분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상태다. 오늘날 패션 산업계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1970년 폴 스미스는 고향에서 자신의 첫 번째 매장으로 이름도 거창한 ‘폴 스미스 베트망 푸르 옴므’를 열었다. 그의 나이 23세였다. 폴 스미스가 디자인한 옷은 아직 없었지만, 후에 폴 스미스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요소들이 있었다.대부분의 옷 가게는 단위 면적당 매출을 높이는 데에 주력하지만, 폴 스미스의 부티크는 항상 ‘특별한 느낌’을 만드는 데에 더 주력했다. 첫 매장에선 옷과 함께 음반과 잡지를 팔았다.이후 야망은 점점 커졌다. 메이페어 알버말 스트리트 9번지에 있는 폴 스미스 플래그십 스토어에는 2만6000개의 도미노로 벽이 뒤덮인 방이 있다. 이 방은 직원과 고객 사이의 대화를 끌어내는 것이 주목적이다. 폴 스미스가 말한다.“파리의 편집 매장인 꼴레트와 밀라노의 편집 매장인 10 꼬르소 꼬모 대표가 각각 제게 말하길, 단순히 옷만 팔지 않는 운영 방식이 제 매장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하더군요. 몰랐는데, 제가 그 부분에서 선구자였나 봅니다.”폴과 폴린폴 스미스는 1970년대 중반부터 자신의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21세 때 런던에서 온 폴린 데니어를 만났다. 폴 스미스보다 다섯 살 연상인 그녀는 로열 칼리지 오브 아트에서 의상을 전공한 사람이었다.그들이 함께 살던 아파트에서 폴 스미스는 폴린 데니어에게 재봉과 재단을 배웠고, 야간 학교에서 군복과 기념식 드레스 전문인 사람에게 강의를 들었다. 이렇게 두 가지 다른 방식을 접한 폴 스미스는 흔히 ‘살짝 비튼 클래식’이라고 불리는 접근법을 만들어냈다.나는 폴 스미스 스스로가 말하는 ‘허튼소리가 아닌 옷’이라는 표현이 더 마음에 든다. 폴 스미스는 1980년대에 조르지오 아르마니와 함께 편안한 실루엣의 슈트 경향을 주도했고, 복서 속옷을 다시 인기 아이템으로 만들었다.많은 독자들이 그렇듯 성인이 된 이래 내 옷장 한쪽은 폴 스미스가 차지하고 있다.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은 작은 것부터 구입했다. 주로 복서였다. 그리고 형에게 물려받은 옷도 있었다.폴 스미스 옷은 유행의 흐름에 상관없이 영원히 살아남는다. 어떤 면에서도 잘 만들어진 옷이다. 빨간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체크무늬 폴 스미스 셔츠가 있는데, 내 옷장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자주 입은 옷일 것이다. 딱 보았을 때 멋지다고 탄성을 지를 만한 옷은 아니지만, 단추는 뿔로 만든 것이며, 소맷부리는 미묘하게 대조를 이룬다.남자들은 굳이 옷에 대한 칭찬을 들으려 하는 마음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밋밋해 보이기도 싫어한다. 혹은 입은 사람만 알 수 있을 정도로 티 나지 않는 장식만 있는 옷도 싫어한다. 이런 남자들의 마음을 폴 스미스는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다.폴 스미스도 사업 초창기부터 탄탄대로를 걸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폴린 데니어를 만났을 때 폴린에게는 두 명의 어린 자녀가 있었다. 폴과 폴린은 아프간하운드 두 마리와 장모종 고양이 두 마리도 함께 키웠다(폴 스미스는 그 반려동물들과 자신을 구별하기 힘들었을 거라고 농담한다. 모두 머리카락이 길고 심한 난독증이 있었으니까).폴 스미스는 열다섯 살 때 정규 교육을 중단해 아무 학위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어린 자녀와 두 마리의 반려동물을 책임져야 하는 현실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돈을 벌 수 있는 일은 뭐든 했어요. 덕분에 여러 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열두 살 때부터 열여덟 살 때까지 사이클 경주를 했어요. 경쟁심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팀워크도 배웠죠. 이 건물에서 180명의 직원과 함께 일하는 데에 엄청난 도움이 되었어요. 저는 제가 경쟁심이 큰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생존 본능은 있어요. ‘음, 그럼 이걸 꼭 해내야 해’ 이런 거죠.”힘든 시기마다 그의 생존력은 빛을 발했다.“프랑스 파리로 오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온라인으로 더 많이 팔아보기로 했죠. 그렇게 했죠. 사이클을 탈 때 항상 듣는 말이 있어요. 피곤해지면 깊이 파고들어라. 2008년의 불경기나 그 비슷한 상황을 겪을 때 ‘잘 안되네. 그럼 이렇게 해볼까’ 하는 거죠. 가령 그때 저희는 인도에 점포 세 곳을 열었는데 어떻게든 대처해갔죠.”결정을 내리다지난 5월에 70세가 된 폴 스미스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의 컬렉션은 주의력 결핍 장애에 가까운 다채로움으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한 시즌에 600여 개의 아이템을 디자인해 많은 양을 생산하는 데 반해, 폴 스미스는 시즌마다 1600여 가지 아이템을 소량 제작한다.폴 스미스는 자신의 셔츠를 구입한 고객이 술집에서 똑같은 셔츠를 입은 사람과 마주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늘 말해왔다. 그러나 2015년 12월, 폴 스미스는 기존 12가지 라인을 ‘폴 스미스’와 조금 더 가격이 낮은 ‘PS 바이 폴 스미스’ 두 가지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버버리와 마크 제이콥스가 그들의 라인을 축소한 것과 같은 이유다.‘폴 스미스 런던’과 ‘폴 스미스 진’은 ‘PS 바이 폴 스미스’로 통합되었다. 그 결과 그룹 전체 매출은 8.4퍼센트 감소했지만 인터넷 판매 수익은 12퍼센트 증가했다.폴 스미스는 사업의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서 힘든 결정도 내릴 수 있는 사람이다. 그의 ‘아내’ 폴린이 삼촌 같고 유쾌한 이 디자이너의 강철 같은 면을 암시하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폴린이 1995년에 했던 말을 폴 스미스에게 들려준다.“우리는 늘 우리 일을 ‘접시 돌리기’라고 묘사합니다. 폴이 돌아가는 접시를 떨어뜨린 적이 있느냐고요? 아뇨. 그러나 드물지만 접시를 없앤 적은 있어요. 대개는 불신 때문이었죠. 사람들이 잘 모르는 폴의 다른 면이 그럴 때 드러나죠.”폴 스미스는 웃는다.“하하. 아주 좋은 말이군요.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몰랐어요.”화가 났을까? 폴 스미스가 대답한다.“아뇨, 전혀. 저는 화를 낸 적이 없어요. 아마 평생 두 번 있었나. 아주 드문 일이죠. 폴린과 저는 말다툼도 전혀 안 합니다. 그리고 1967년부터 쭉 함께 살고 있어요.”유명한 폴 스미스 스트라이프는 그가 추구하는 실용주의의 예다. 애초부터 옷과 액세서리에 계속 쓰이도록 만든 것은 아니었다. 사실 폴 스미스는 그 점을 늘 경계했다. 자기 이름을 프린트한 티셔츠도 만들지 않는다(폴 스미스가 “저는 늘 브랜드가 안 보이게 하려고 애씁니다”라고 말한다).그렇지만 스트라이프는 너무 잘 팔려서 다음 시즌에도 다시 쓸 수밖에 없었고, 그다음 시즌에도, 또 그다음 시즌에도 그랬다. 폴 스미스가 알아채기도 전에 스트라이프는 복서에, 지갑에, 여행 가방에까지, 어디에나 나타나게 됐다. 그래서 3년 전쯤 폴 스미스는 자신의 디자인에서 스트라이프를 완전히 뺐다. 폴 스미스도 인정한다.“수백만 파운드를 포기하는 결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용감해지지 않을 수 없었죠. 전진하기 위해서는 후퇴해야 한다는 재미있는 표현이 있지 않나요? 그런 거죠.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제가 내린 결정 가운데 현명하지 않은 것도 있었고, 스태프 중 누가 ‘이런 맙소사, 폴이 저걸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한 것도 있었을 겁니다. 독선적이지 않고 주위의 의견을 들으려고 애쓰지만 어떤 시점에서는 저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있어요. 변죽만 울릴 수는 없으니까요. ‘그건 당분간 중단합시다. 그리고 조금 더 생각해봅시다.’ 이렇게 말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이제 스트라이프가 다시 돌아왔다. 프랑크 아우어바흐 같은 표현주의 화가들의 승인과 함께 다시 디자인한 스트라이프를 지금 컬렉션의 몇몇 아이템에 조금씩 쓰고 있다. 폴 스미스가 말한다.“저희는 잠시 한숨 돌린 뒤 스트라이프를 서서히 다시 소개하고 있어요. 어떤 게 너무 많이 퍼져 있으면, 결국 개성을 찾는 젊은 이들은 형이나 아빠, 혹은 스포츠신문을 읽는 사람이 입던 것을 원하지 않게 되겠죠.”폴 스미스는 말을 계속 잇는다.“열여덟 살 때는 중요하게 여겼던 브랜드와 레스토랑과 패션 레이블인데 이제는 존재하지 않거나 덜 중요하게 여기게 된 것이 20개씩은 있을 겁니다. 대중의 기호가 얼마나 쉽게 변하는지 저희는 확실히 경험했습니다. 그러니까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다행히 저희는 잘 해내고 있습니다.”앨버말 스트리트 9번지폴 스미스와 처음 만나고 일주일 뒤, 퇴근 시간 즈음에 폴 스미스를 또 만나기 위해 스미시랜드에 다시 왔다. 보통 저녁에 폴 스미스는 미니 쿠페를 타고 코벤트가든에서 자신의 집이 있는 노팅힐로 가면서 중간에 앨버말 스트리트 9번지에 들러서 영업 상황을 확인하고 얼굴을 내민다.오늘 저녁 나는 폴 스미스와 동행한다. 키가 190센티미터쯤 되는 폴 스미스가 본사에서 계단을 내려와 안내 데스크 쪽으로 몸을 뻗는다. 그리고 우리는 배트맨으로 변하는 브루스 웨인처럼 뒷문을 통해 도로로 나간다.벽돌과 모르타르로 지은 상점들이 온라인 판매에 점령당하는 시기에 앨버말 스트리트 9번지 상점을 확장하기로 결정하고 2013년 9월 화려하게 재단장을 마친 것은 이상한 결정처럼 보일 수도 있다. 왜 그랬을까? 폴 스미스가 말한다.“상점을 좋아합니다. 사람이 장사하니까요. 저는 사람들이 좋아요.”우리는 대로와 나란히 이어진 좁은 길을 지나간다.“여기가 작은 샛길이죠. 이런 걸 아는 건... 25년 동안 택시를 몰았어요. 주말에만 했죠!” 폴 스미스는 웃으면서 아무도 없는데 경적을 울린다.폴 스미스는 매장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유명 디자이너가 자신의 매장에 자주 발걸음하는 일은 흔할 리 없다. 하지만 폴 스미스는 토요일이면 앨버말 스트리트 9번지에 적어도 두 시간은 모습을 비춘다. 폴 스미스가 설명한다.“자기 급여의 원천이 되는 사람들을 존중해야죠. 많은 디자이너들이 명성을 얻은 뒤에 상아탑 안으로 들어가는 실수를 범합니다. 아부하는 사람들에게만 둘러싸인 곳으로요. 차도 전속 운전사가 모는 것만 타죠. 그러고 나면 일고여덟 해쯤 뒤엔 쇠락하기 시작합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그러니까 제가 제 매장에 가는 이유는 첫째, 제가 상점을 좋아하고 손님을 만나는 게 즐겁기 때문입니다. 둘째, 배울 게 많습니다. 가령 ‘빅 실루엣 슈트를 만들면 어때요?’ 혹은 ‘긴 실루엣의 슈트를 만들면 어때요?’ 같은 거죠.”주차 공간을 발견한 폴 스미스가 미니 쿠페를 휙 돌려 주차하며 말한다."빅 실루엣이나 롱 실루엣 같은 게 우연히 나오지 않죠.”앨버말 스트리트 9번지는 폴 스미스 사무실의 기운을 이어받았다. 데번 지방에서 온 250년 된 오크 나무 판에 옷이 놓여 있다. 쇼핑객들이 조각가 닉 래미지의 작품인 배터리에 붙은 레진 캐스팅 손가락을 넋 놓고 본다.멀티컬러의 머시안 자전거가 진열되어 있는데 다섯 자릿수의 가격이 붙어 있다. 폴 스미스는 그 가격에 자전거를 살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언제까지든 진열할 수 있어 붙인 가격이라고 인정한다.폴 스미스의 비결폴 스미스와 함께 폴 스미스 숍을 돌아다니는 것은 초현실적인 경험이다. 품질에 자신만만한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불만을 제기하는 손님을 끝없이 마주해야 할 테니까. 폴 스미스가 대답한다.“눈을 한 대 맞아서 멍이 들겠죠! 그렇지만 손님들이 하는 말은 이런 겁니다. ‘20년 전에 산 구두를 아직도 신어요. 아주 잘 만든 구두예요!” 폴 스미스는 스스로를 유명인이라고 여기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일본 관광객들이 폴 스미스를 두 번이나 흘깃거린 점은 특기할 만하다. 폴 스미스는 1982년 이후 100번 넘게 일본을 다녀왔다. 그리고 일본에서 폴 스미스 매출은 전체 매출의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사람들이 저한테 왜 일본에서 그렇게 인기가 높은지 묻습니다. 저는 늘 고무 닭 인형을 예로 들죠. 제가 처음 일본에 갔을 때, 앵커리지를 경유해 18시간 동안 비행하는 이코노미석을 타고 혼자 갔습니다. 2주 동안 머물면서 정말 지치고, 영어를 쓰는 사람을 만날 수도 없었죠. 그래서 회의할 때 가끔 타이밍이 적당하면 가방에서 ‘웩!’ 하면서 고무 닭 인형을 꺼냈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와!” 하죠. 그리고 다음 회의 때 사람들이 크게 흥미를 보입니다.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고 제가 재미있는 사람임을 깨닫게 만드는 거죠. 나머지의 경우엔 옳은 말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도 그 정도는 웃고 넘겨요.”폴 스미스는 계속 말을 잇는다.“저는 엉뚱한 농담을 아주 잘 합니다. 공손하고 예의 바르고 올바르게 행동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까다롭고 재미없고 건방지기도 하죠. 때때로 조금 연극적이기도 합니다. 다우닝 스트리트에서 아침을 먹으려고 앉아 있을 때였어요. 옆에 애플의 조너선 아이브가 있었죠. 조너선 아이브가 조그맣게 속삭이더군요. ‘폴, 장난치면 안 돼요. 알았죠?’” 폴 스미스는 웃고 나서 말을 잇는다.“조너선은 벌써 알고 있어서 그런 말을 했죠. 제가 냅킨을 달라고 해서 거기 코를 풀거나 뭐 그런 장난을 칠 걸 알고 있었던 거죠.”이제 6시가 다 되었다. 늘 그렇듯 로열 오토모빌 클럽에서 아침 5시 15분에 수영을 하며 시작한 하루가 끝나간다. 긴 일과지만 폴 스미스는 꾀부리지 않을 것이다. 70대 사람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힘든 일이다.그리고 지금 시기가 패션 회사 전체에, 또 폴 스미스에게 힘들고 복잡한 때지만, 폴 스미스라면 꼭 필요할 때에 가방에서 고무 닭 인형을 꺼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폴 스미스가 잘해나갈 것을 바라게 된다. 이 우울한 시기에 요란스럽고 유치한 일을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직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가슴 훈훈해지는 일이니까.“저는 시간을 많이 들입니다. 몇 년 전에 텔레비전에서 보고 제가 좋아한 사람이 있어요. 누가 그 사람한테 ‘그렇게 일을 잘해온 비결이 뭔가요?’라고 묻자 그 사람이 이러더군요. ‘예전에 존경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을 보면서 생각했죠. 내가 그 사람보다 뛰어날 수는 없어도 그 사람보다 오래 일할 수는 있다.’ 그래서 저는 생각했죠. ‘나도 저렇게 해야지!’ 어느 누구보다 오래 또 열심히 일하자. 시간을 더 들이고 그게 효과가 있는지 보자.” 폴 스미스는 크게 웃은 뒤 집으로, ‘아내’와 함께 지낼 조용한 밤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