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민,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정소민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았다. 가짜는 금방 들통난다. | 인터뷰,배우,정소민,아빠와 딸,아버지가 이상해

두 작품이 비슷한 시기에 세상에 나오게 됐잖아요. 둘 다 명확하게 딸 역할이에요. 와 에서 각각 어떤 딸이에요?정반대예요. 성격적인 것보다 아빠와의 관계가 그래요. 의 미영은 사회적으로 부족하지만 심성은 착한 딸, 의 도연은 나쁜 딸. 심성이 나쁘다는 건 아니고 한창 사춘기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아빠랑 마찰이 심하죠. 불편하고 어려워하다가 싫어하는 감정까지 생긴 그런 거예요.사춘기를 겪어봤잖아요. 그때는 어떤 딸이었어요? 저는 미영이보단 도연이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전혀 안 그런데, 그땐 어려운 아빠였어요. 보수적이세요. 무서웠다고 해야 되나? 근데 무섭다는 티를 내긴 싫으니까 그냥 멀리하고.사춘기 때 자존심인가요? 자존심? 그랬던 것 같아요.지금은요? 사실 저도 저지만 아버지가 많이 변하신 것 같아요. 좀 더 유해진 부분도 있고요. 저도 나이가 들면서 조금 철이 든 것도 있을 거고. 뭔가 큰 사건이 있었다기보다 그냥 자연스럽게 변화가 생긴 것 같아요. 반드시 극적인 변화가 필요한 건 아니에요.도연이랑 더 가까웠다면 연기할 때 옛날 생각 많이 나겠어요. 아빠랑 싸우는 연기할 때 은근히 편했던 것 같아요.은 아빠랑 몸이 바뀐 거잖아요. 결국 중년 남성을 연기한 거네요. 당연히 어려웠죠? 어렵더라고요. 시나리오 봤을 땐 ‘재밌겠다’, ‘하고 싶다’ 생각했는데 막상 연기를 하려니까 되게 막막했어요. 그래서 일단 몸, 행동, 자세 같은 외적인 걸 먼저 공부했는데 그런 게 조금 적응되니까 내적인 고뇌가 왔어요. 아빠로서의 고민, 책임감, 무게, 그리고 직장에서 만년 과장인 한 남자의 무게. 이런 건 제가 경험할 수 없는 거잖아요. 단순히 이해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의 일로 생각해야 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정말 새로운 경험 아니에요? 중년 남자를 연기하는 건 상상해본 적도 없을 거 아니에요. 그렇죠. 정말 드문 기회죠. 제 입장에선 저와 정말 먼 캐릭터인 것 같아요. 근데 그래서 재밌게 할 수 있었어요. 어린아이가 놀이하듯 연기한 것 같기도 하고요.소꿉놀이? 역할놀이? 맞아요. 어렸을 때 역할놀이에 빠지면 모래도 밥이라 생각하고 퍼먹고 그러잖아요? 그 정도의 몰입? 소름 돋을 정도로 역할이 붙었던 순간이 있었어요. 크게 좌절해서 뒷모습만 나오는 장면인데 진짜 감정이 느껴지더라고요. 감독님도 진짜 중년 남자의 느낌으로 착각할 정도로요. ‘등 연기’를 제대로 한 거죠. 묘한 경험이었어요.등 연기? (웃음) 가짜로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진짜. 제가 가짜라고 느끼는 감정을 관객이 진심으로 받아들일 리가 없잖아요.그러면 는 그에 비하면 편하게 연기할 수 있겠네요. 근데 그건 그거대로 어려워요. 매 작품이 다 어려운 것 같아요.30대 초반의 조금 늦은 취업 준비생이고, 게다가 의도치 않게 실패를 경험했고, 괴롭힘당한 상처도 있고. KBS2 주말 드라마에 이렇게 복잡한 캐릭터가 등장한 적이 있나 싶어요. 보통 직선적인 캐릭터들의 집합이잖아요. 신기했어요. 어느 정도 시대상을 담기도 했고요. 워낙 등장인물이 많으니 주·조연이 확연히 나뉘진 않지만 결국 미영이 주인공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되게 예리한 것 같아요. 작가님이 그런 말 하셨어요. 초반에는 구박데기에 존재감이 크지 않지만 들여다볼수록 정이 가고 회가 거듭될수록 극을 이끄는 중심 역할을 할 거라고 했거든요. 요즘의 그 나이대를 대표하는 것 같아요. 저 역시 이 캐릭터를 응원해요. 이 친구가 잘됐으면 좋겠다. 그게 사회적인 성공 그런 게 아니라, 당당했으면 좋겠다.주말 드라마니까 당연히 러브라인이 있겠죠?있어요.개인적으론 사랑에도 실패해서 러브라인도 없는 캐릭터라면 더 강렬할 텐데, 그렇게까진 만들지 않을 거고. 아직까진 모태 솔로인데 점점 잘 풀리게 될 듯해요.극 중에서 어쨌든 취직도 되고 그런 거니까요. 근데 취업 준비생의 기분을 알아요? 회사에 들어가려 한 적은 없지만 제 경우는 작품 할 때는 취업, 안 할 때는 백수죠. 오히려 보통 회사 다니는 분들보다 회전이 빠르다고 해야 하나.그걸 취직과 퇴직 개념으로 생각하니까 되게 재밌다. 일 안 하면 불안해요, 확실히? 그럴 때도 있죠.최근에는 거의 이어오지 않았어요?네. 3년 가까이 계속. 거의 이어오긴 했는데 두세 달 쉬거나 그럴 때는 불안해져요. 차라리 1년씩 쉬어버리면 확실하게 생활 리듬이 생기는데, 그렇지 않으면 공허하고 적응하기 힘들어요.그래도 연기가 좋아요? 어떻게 마음이 변할지 모르겠지만 아직은 오래오래 했으면 좋겠어요. 나이 들어가면서 할 수 있는 것이 계속 바뀌잖아요. 내가 하는 캐릭터랑 같이 나이 들어간다는 느낌이 좋아요.근데 생각보다 나이가 안 들었어요. 여전히 고등학생 역할도 하고. 제가 지금 스물아홉인데. 아직까진 캐릭터의 나이 폭이 변하진 않았는데 점점 나이 들어가면서 새 캐릭터랑 함께 성장해가지 않을까요?딸도 해봤고 아빠도 해봤으니 이제 엄마도 해봐야 되는 거 아니에요? 나중에 꼭 해봐야죠. 연기 시작할 때는 단순하게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그 마음은 변함없는데 더 중요한 걸 깨달았어요. 첫 작품에서 친해진 FD 오빠를 몇 년 후에 다시 작품에서 만났는데 진짜 좋은 거예요. 정말 반갑고요. 다시 만났을 때 반갑고 나중에 또 같이 하고 싶은 마음이 엄청난 행복이었어요. 사람들이랑 잘 지내자 굳게 마음먹었어요. 스태프들 모두 나와 언젠가 또 만나서 같이 작품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들었으면 해요.다시 일하고 싶은 배우가 되고 싶단 건 정말 처음 들어보는 것 같아요. 굉장히 바른 생각인 것 같고요. 물론 기본적으론 제 몫을 다 해내는 사람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