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스 101 시즌 2, 소년들의 잔혹거탑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프로듀스 101 시즌 2'는 한국 사회가 품은 그릇된 논리의 답습이다. | 음악,TV,아이돌,뮤직,프로듀스 101 시즌 2

알고 들어도 그 무게감에 매번 놀라는 단어가 있다. 예컨대 ‘죽음’이랄지 ‘탈락’ 혹은 ‘패배’ 같은 것. 여기 앉아 있는 101명의 남자들에게도 그런 단어가 있다.“여러분은 앞으로 총 다섯 번의 평가를 받게 될 거고요. 매 평가마다 100% 국민 프로듀서의 투표를 통해 등수가 결정되고, 순위권 밖 연습생은 방출됩니다.” 이미 다 알고 있었을 내용에도 스튜디오를 가득 채운 연습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얕은 탄식을 내뱉는다. ‘등수’, ‘순위’, ‘방출’과 같은 단어의 연쇄. 무겁게 내려앉은 공기를 뚫고 보아가 말을 잇는다.“참 씁쓸하죠. 저도 이 잔인한 룰이 바뀌지 않아서 너무 슬퍼요.” 의례적인 아쉬움 뒤에 본론이 나온다.“하지만 여러분이 가고 싶어 하는 현실 속 세계의 가요계는 훨씬 더 가혹합니다.” Mnet 의 시작을 알리는 일성은 그렇게 노골적인 메시지로 시작했다. 우리도 잔혹한 거 안다. 그런데 현실은 더 잔혹하다. 맞다. 이는 비단 만의 일은 아니다.패자 부활을 꿈꾸며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거위의 꿈’을 부르는 참가자들 사이에서 최종 탈락자를 골라내는 그악스러운 미션을 진행한 Mnet 처럼 현실의 잔혹함을 훌쩍 상회하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현실의 가요계는 오디션 프로그램보다 더 잔혹하다.영미권이나 일본처럼 시장이 세분화되어 있어서 전 국민이 알아보는 아이돌이 되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설 수 있는 무대와 시장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얘기가 좀 달라지겠지만, 한국은 가수가 되고자 하는 사람에 비해 그 인원을 소화할 수 있는 시장이 지나치게 협소하다.의 기획은 거기에서 시작했다. 이 많고 많은 연습생들을 데리고 쇼를 만들어보자.의 핵심 테마는 ‘데뷔가 끝이 아니더라’다. 그 길고 기약 없는 연습생 생활 끝에 데뷔를 해도, 이 경쟁 과잉의 시장에서 살아남아 사람들에게 제 얼굴을 각인시키는 건 또 다른 문제다.그래서 이번 시즌엔 이미 데뷔 과정을 거친 이들이 대거 참여했다. 지난 시즌에도 퓨리티 출신의 윤채경이나 남녀공학 출신의 허찬미가 참여해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이번 시즌에는 101명의 참가자 중 35명이 데뷔 경험이 있다.2012년 일찌감치 데뷔한 그룹 뉴이스트의 멤버도 있고, 연습생이라 소개했지만 사실 2년 전 싱글 앨범으로 데뷔한 바 있는 그룹 원펀치의 멤버 김사무엘도 있다. 이미 두 장의 싱글 앨범을 발매한 장문복은 스튜디오에 입장할 때부터 벌써 유명인 대우를 받는다. 이들을 모아 다시 연습생 신분의 경쟁을 시키는 Mnet의 메시지는 자명하다.‘현실은 잔혹해서 데뷔가 끝이 아니지만, 우리 말을 잘 들으면 너희를 다시 데뷔하게 만들어줄 수 있지.’ 글쎄, 입가에 쓴웃음이 맺힌다. 당신들 말마따나 데뷔가 끝이 아니지 않나?방송이 시작되기도 전 일부 언론에서, A등급부터 F등급까지 반이 나누어진 순서대로 인터뷰, 전화 통화, 화장실 사용, 식사 배식이 이뤄지는 탓에 낮은 등급의 연습생들은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Mnet은 극구 부인했지만, 해명 직후 참가자 두 명이 건강 문제를 이유로 들며 중도 하차해 의혹이 더 커졌다.해당 매체는 일주일 뒤 방송사 측이 연습생들에게 ‘누가 외부에 발설한 거냐’며 추궁했다는 후속 보도를 냈다. 제작 발표회에서 한 차례 더 ‘인권침해는 없었다’는 방송사 측의 주장이 되풀이되긴 했지만, ‘누가 외부에 발설한 거냐’는 추궁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해명을 듣는 기분은 점점 더 질척해졌다.제작진은 설마, 현실이 훨씬 더 잔혹하니까, 실력별로 대우를 달리하는 카스트 제도 같은 등급반 운영이 정당하다고 믿는 걸까?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이들이 공동체의 미래를 걱정하고 사회적 대안을 고민해가며 프로그램을 만들 의무를 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태도가 어딘가 한국 사회가 자신의 허물을 합리화하던 오래된 논리와 닮았다는 건 매우 의미심장하다.학생들에게 체벌을 자행하며 “군대 가면 이거보다 더해”라고 말하는 선생들, 사회에 나가면 더한 일도 겪을 텐데 어떻게 적응할 거냐며 부조리를 눈 감으라 말하는 동아리 선배, 현실은 이보다 더 가혹한 거라며 논문을 도둑질당해도 참으라 말하는 지도교수....현실이 잔혹하다면 현실 자체를 바꿀 생각을 하거나, 자신의 재량으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서라도 덜 잔혹한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상식적인 일이다. 그러나 현실의 잔혹함을 핑계 삼아 “난 그거보단 나으니까 참아”라고 말하며 면피하는 이들이 많은 곳에선 그 상식적인 일이 좀체 일어나지 않는다.이제 그런 이들이 연습생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당신의 소년을 구하라”고 말하고 있다. 정말이지 엔터테인먼트치곤 너무나 비루한 엔터테인먼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