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벌거벗겨야 한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미국과 일본 언론은 이렇게 권력을 견제하고 있다. 배울 건 배워야 한다.

대통령, 언론, 견제 - 에스콰이어

2017년 4월 3일 오후 2시, 워싱턴 백악관 기자회견장에서였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을 상대로 기자들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미를 앞두고 어떤 논의가 이뤄질 것인지를 집중적으로 물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대만에 친화적인 것으로 알려져왔는데, 이번에 정말 ‘하나의 중국’ 정책을 시진핑 주석에게 재확인해줄 것이냐”라는 질문을 던진 기자는 스파이서 대변인의 답변이 시원찮자 재질문에 나섰다.

“이건 인권 문제와도 연결되는 문제다. 중요하니 다시 정확히 답하라.”

최고 권력자에 대한 견제, 알 권리에 대한 접근이 얼마나 공개적으로, 그리고 자유롭게 이뤄지는지는 기자회견장에서 확연히 구분된다.

워싱턴을 취재하면서 피부로 가장 먼저 느끼는 부분이다. 길게는 한 시간 넘게 계속되는 질의응답에서 기자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손을 들고 질문권을 얻으려고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정해진 순서에 따라 ‘사전 공유된’ 질문을 하는 청와대 회견과는 다르다. 별별 기발한 질문들 사이로 신경전이 치열하다.

2년 전 워싱턴 취재를 시작하면서 가장 흥미롭게 느낀 건 백악관이나 국무부, 국방부 모두 한 차례의 ‘질문→응답’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질문한 기자가 대통령이나 대변인의 응답이 끝나면 꼭 추가 질문을 한다. 다른 기자들도 이를 용인해준다. ‘질문→응답→추가 질문→추가 답변’이 기본이다. 경우에 따라 세 차례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형식적인 답으로 피해가려는 것을 용납치 않는 것이다.

권력자가 의도적으로 동문서답, 수박 겉핥기식 답변을 해도 ‘참석 기자들 간 형평성’ 차원에서 응답이 끝나자마자 다음 질문자 순서로 넘어가는 우리 청와대 회견 방식과는 너무나도 다르다.

언론을 ‘적’으로 표현하며 미증유의 언론 탄압, 언론 길들이기에 나서고 있는 트럼프 시대를 맞아 많은 미국 언론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미국 언론은 ‘권력 감시’의 절정기를 맞이한 것이나 다름없다. 트럼프의 변칙 개인기를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뿌리깊은 언론 감시 시스템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 공간이 좁다며 기자들을 백악관 밖으로 쫓아내려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결국 무산됐다. 아무리 막 나가는 트럼프라 할지라도 80년 넘게 뿌리내린 미국 언론의 감시 기능을 말살하진 못했던 것이다.

백악관은 널리 알려진 대로 웨스트 윙 건물 안에 대통령, 비서실장, 대변인, 선임 고문 등 참모들이 함께 있다. 언론이 상주하는 기자실도 이와 연결된 부속 건물 안에 있다. 아무 때나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수시로 건물 내에서 취재하며 권력이 숨기고 싶어 하는 특종을 터뜨리기도 한다. 때로는 권력의 암투를 직접 목격하기도 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한국의 권력 감시의 장이라 할 수 있는 청와대 기자들이 청와대 경내 밖 춘추관에 머물면서 청와대 내 대통령은 물론 참모들에게까지 일체 접근이 불가능한 것이 얼마나 후진적인지를 보여준다.

권력 감시의 빈 공간에 기자들이 놓여 있는 것이다. 기자가 취재원을 만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까다로워지면 만남의 횟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권부에선 기자를 기피하는 풍조가 생겨나고 결국 권력에 대한 감시자로서 언론의 역할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또한 백악관은 대통령이 백악관 안에 있을 때는 물론이고 주말이나 휴가로 백악관을 비울 때도 대통령이 있는 곳에 늘 언론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대통령뿐 아니라 영부인, 가족도 결코 예외가 될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저도로 여름휴가를 가서 뭘 했는지, 누구와 지냈는지, 어디서 어떤 사진을 찍었는지를 3년 넘게 지나 비선 최순실의 태블릿 PC에서 감 잡을 수 있었던 우리 사정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이다.

일본의 권력 감시도 대체로 미국과 비슷한 방식을 취한다. 도쿄 특파원 당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매일 아침 신문에 나오는 ‘총리 동정란’이었다. 최고 권력자 총리의 아침 출근 때부터 퇴근, 아니 퇴근 이후의 만찬이나 술자리, 휴일 일정까지 낱낱이 공개한다.

또 일정 시점에 이를 정리해 분석까지 한다. 이런 식이다. 올 2월 초 <니혼게이자이 신문>(이하 닛케이)에 실린 1개 면 기획 기사 일부다.

“2012년 12월 다시 총리로 컴백한 아베 신조의 4년을 분석하니 헬스장 이용 67회, 골프 라운딩 56회. 가장 많이 만난 이는 기타무라 시게루 총리 내각정보관으로 총 659회. 2위는 514회의 사이키 아키타카 전 외무성 사무차관. 아베 총리의 최대 관심사가 정보·외교인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외부 식사 장소로 가장 많이 이용한 곳은 도쿄 아카사카의 캐피털도큐 호텔 1층 레스토랑 오리가미로 총 40회. 최고로 많이 주문한 메뉴는 2730엔짜리 파코면(고기튀김을 얹은 면 요리)....”

거의 발가벗겨진다고 보면 된다. 총리가 어디서 뭘 했다는 것뿐 아니라 누구와 자리를 함께했다는 내용까지 다음 날 조간신문에 발표된다. 일본 언론계 동료들에게 들어보니 이 같은 총리 일정 공개는 이중 체크 시스템으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먼저 총리 관저의 내각홍보관실이 공식 일정 등의 큰 얼개를 언론에 알려준다. 하지만 구체적인 참석자 면면, 소요 시간 등은 각 언론사의 총리 전담 기자들이 발로 뛰어 얻어내는 정보다. 체력 소모가 많은 만큼 보통 ‘주니어’ 기자들이 담당한다.

이들은 아침 6시경부터 도쿄 나가타초의 총리 관저 1층 현관 앞에서 계속 대기하며 출입자를 체크한다. 우리에 비유하면 청와대 본관 집무실 입구에 기자들이 죽치고 대기하며 일일이 출입자를 체크하는 것일 테니 너무나도 다른 세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일본의 경우 총리가 재계 인사들과는 주로 요정, 문화계 인사와는 이탈리아 레스토랑, 정계 인사와는 호텔이나 중국요릿집을 이용한다는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공개된다.

아베 총리가 2007년 건강 문제 때문에 사임으로 몰렸던 것을 의식한 ‘건강 문제’도 언론이 심도 있게 다루는 부분이다. 이에 따라 아베가 헬스클럽을 며칠에 한 번씩 찾고 몇 시간 동안 운동하는지도 감시한다.

최순실 사태가 터졌을 때 일본 언론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던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최고 권력을 계속 접해왔던 비선 인물이 뒤늦게 수면에 올라오는 일이란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 언론이 권력, 구체적으로 말하면 총리의 동선을 일일이 체크하는 데 대한 반대론도 있었다. 수년 전 집권 자민당의 정조회장을 지낸 고이케 유리코 현 도쿄 도지사가 “일본 총리의 세세한 일정을 언론이 매일 공개하는 건 국민의 알 권리의 영역을 넘어서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 적이 있다.  “다른 국가 같으면 이는 국가 기밀 사항”이란 설명도 곁들였다.

하지만 이는 해프닝에 그쳤다. “고이케 의원이 말한 ‘다른 국가’는 중국 아닌가. 그렇다면 일본이 (언론을 통제하는) 중국과 같다는 말인가”란 언론의 질타에 고이케는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당장 당사자인 아베 총리까지 ‘언론의 기능은 중요하다’고 선을 긋고 나섰다.

도쿄 특파원 시절에 언론과 권력 사이에서 느낀 건 무엇보다 일본 정부 스스로 ‘우린 언론을 통제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는 점을 전제로 깔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권력의 투명성은 다소의 희생이 있더라도 수호해야 한다는 믿음이 일본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언론의 투명성에 대한 집착이 더해진다. 정확성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건 기본이다. 확인되지 않으면 쓰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정부, 언론 간 불문율은 “권력은 언론에 의해 ‘늘 정확히 감시되어야’ 한다”라는 한마디로 규정할 수 있을 듯하다.

우리 대선 후보들도 “당선되면 청와대가 아닌 정부종합청사에서 근무하겠다”, “청와대 구조를 확 뜯어고쳐 비서들과 같이 일하겠다”고 외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 사례에서 배울 만한 건 바로 도입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물리적 변화보다 ‘난 임기 내내 당당히 언론과 국민에게 감시당하겠다’는 의식과 각오다. 그게 없다면 몇 년 후 또 다른 최순실이 등장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그때는 우리 모두 선진국 따윈 꿈도 꾸지 말아야 할지 모른다.

미국과 일본 언론은 이렇게 권력을 견제하고 있다. 배울 건 배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