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의 괴짜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제정신으로, 맨 정신으로 주방에서 버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 푸드,박찬일

원래 요리사용 모자를 고안한 사람은 프랑스인 에스코피에로 알려져 있다. 그는 프랑스 현대 요리의 아버지로 불린다. 요리사를 파트별로 나눠 효율을 높이고, 코스 요리를 전면 시행한 셰프로도 유명하다. 그럼 그 전엔 달랐나?그렇다. 한 상에 이것저것 다 차려놓고 덜어 먹었다. 우리처럼 숟가락을 푹푹 담그지는 않았지만. 그가 모자를 고안한 건 아마도 위생과 전문성을 부여하려는 의도였으리라. 그런데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이들이 있다. 에스코피에가 모자로 자신의 키를 ‘캄플라지’(이거, 원래 불어 맞다)했다는 얘기다. 그는 키가 160cm 정도였다고 하며 30cm짜리 키 높이 모자를 썼다. 당시 에스코피에의 부엌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다. 파리 리츠 호텔의 현장이다. 현대 주방과 흡사했다. 그런데 팬과 덕트가 안 보인다. 전기를 쓰지 않거나 쓸 형편이 아니었나 보다. 창으로 연기가 빠져나가는 구조였다. 덕트가 없으니 높은 모자를 써도 일하기 불편하지 않았을 테다.요즘 주방은 30cm짜리 모자를 쓰면 일을 못 한다. 그런 모자를 쓰는 건 그저 뒷짐 지고 잔소리하는 총주방장이나 가능하다. 당신이 고급 뷔페에서 봤던, 주름 하나 없는 하얀 옷에 앞치마를 두른 채 높다란 모자를 쓴 이 말이다. 그런 총주방장도 아니면서 늘 높은 모자를 쓰는 선배가 있었다. 덕트에 모자가 부딪혀 벗겨지면서도 악착같이 썼다. 그의 모토는 늘 이랬다. “요리사가 돈이 있냐, 여자가 있냐, 모자라도 높은 걸 써야지.”요즘 요리사는 돈도 있고 여자도 있는 분이 많으니 역시 옛날 얘기가 돼버렸다.복식 관련해서 요리사에 관한 이야깃거리가 참 많다. 러닝셔츠는 물론이고 팬티도 안 입는 선배가 있었다. 땀 차면 쓸린다는, 천 리 행군하는 군바리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일을 열심히 한다고 팬티에 땀까지 차느냐고? 탈의실에서 그가 바지를 쑥 벗었을 때 어머나.... 그때 그의 ‘쓸림론’을 들었다.일하다 말고 도망가는 요리사도 숱했다. 최근에는 내가 일하는 어느 냉면집에서 면 짜는 일을 하는 녀석이 사고를 쳤다. 참고로 냉면은 ‘뽑는다’고 안 하고 ‘짠다’고 한다. 나는 이쪽 요리사가 아니어서 용어도 잘 몰랐다. 하루는 막내가 내게 이랬다. “주방장님, 메밀 배합 바꿨는데 새로 한 그릇 짜드릴까요(뽑아서 말아드릴까요)?”하여튼 그 녀석이 아침에 지각을 하기에 뭐라고 짜증을 내더니(물론 내 욕이었을 것이다. 메밀 배합을 매일 바꿨으니 실무자인 그가 좀 힘들었을 것이다) 그냥 집에 가버렸다. 어김없이 월급날 전화가 왔다. 어떻게 그럴 수 있니, 뭐 이런 훈시를 좀 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제가 병이 좀 있어서요.”그런 병, 나도 있어 이 사람아. 고등학교 결석이 300일이 넘고, 대학교 평균 평점이 당시 선동렬 방어율과 비슷했다고. 1.2인가 그랬으니. 교수가 내 얼굴 좀 보자고 학교에 비상을 때린 적도 있었다고.그렇게 사라지는 녀석들, 이해한다. 주방 일은 뭐 같으니까. 아침에 와서 부엌문을 열고 금속성의 냄새(주방 집기는 다 스테인리스 스틸이다)를 맡는 순간 짜증이 날 수 있지. 아니, 아침에 배달된 식재료들을 보는 순간 확 엎어버리고 집에 가고 싶은 마음 안다고. 나는 지금도 그래. 그러니 사장과 주방장을 위해서 좀 참아주기 바란다. 그래도 확 ‘날라버리고’ 싶으면 어쩔 수 없겠지만(나는 너를 응원한다).과거 요리사들, 술 먹는 특징이 하나 있다. 열 시에 끝나서 아무 데나 문 연 집에서 마시는데, 각자 소주 한 병씩 앞에 깔고 알아서 마셨다. 빨리 먹고 막차 끊기기 전에 집에 가야 하니까. 얼른 취해서 자리를 파해야 하니까. 술들 잘 마셨다. 컵으로 네 잔, 그러니까 소주 두 병을 마시는 게 보통이었다. 일 끝나고 폭음하는 건 다음 날 버벅거리는 문제 정도로 끝난다. 더러는 일하면서 마신다는 거다. 일식집은 정종으로(청주가 맞는 표현이지만 일식집 현장에서는 그렇게 안 부른다), 중국집은 배갈로.한번은 일식집 주인이 이를 알고는 못 마시게 정종병을 치워버렸다. 요리할 때 허락받고 가져가라고. 그러자 한 선배가 미림을 마셨다. 그것도 술이다. 맛이 끔찍해서 그렇지. 한 달 후 미림 발주량을 보고 주인이 알아챘다. 한 박스 쓰던 게 두 박스로 늘어났으니까. 하긴, 중동에 요리사 파견 나가서, 술이 없어서 스킨로션 마셨다는 전설의 ‘사우디 시절 요리사’ 선배들도 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