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바람을 탄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마음 맞는 사람끼리 모여 모터사이클을 타고 떠난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챙겨주다 보면 어느새 무리는 바람이 된다. | 모터사이클,모터

모터사이클 투어는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자유다. 세상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나는 일이니까. 그러니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목적지만 정할 뿐이다. 사실은 목적지도 큰 의미는 없다. 달리다 보면 날씨나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경로가 바뀔 수 있다. 함께 달리는 사람이 많을수록 더더욱 그렇다. 누구든 자연스럽게 일행에 합류하기도 하고 헤어지기도 한다.마음 맞는 여섯 명이 모여 그룹 투어를 떠나기로 했다. 투어 당일 저녁까지 정해진 것은 ‘속초에서 1박’이 전부였다. 기상청은 강원도 일부 지역에 비나 눈이 내릴 것이라 예측했다. 그러니 주행 방향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잠자리나 음식점을 미리 알아볼 필요가 없다.1박 2일 일정이지만 일행 모두가 가벼운 복장이다. “며칠씩 걸리는 전국 투어 때도 큰 짐은 없었어. 매일 티셔츠와 속옷을 사서 입었거든. 그리고 빨랫감이 모이면 집으로 택배를 보냈다니까.” 누군가의 말에 일행 모두가 고개를 끄덕인다. 생각부터가 진짜 자유롭다.투어에서 호흡을 맞춘 바이크는 KTM1290 슈퍼듀크 R이다. 슈퍼 네이키드다. 투어를 목적으로 만든 구성은 아니다. 하지만 200~300km 주행은 슈퍼듀크에게 순식간이다. 스로틀을 강하게 비틀면 그 누구도 앞에서 서성일 수 없다. 그만큼 빠르다. 심지어 바람도 얌전히 비켜준다. 혼자서 오롯이 즐기기에 이만큼 즐거운 바이크도 없다.‘양만장에서 아침 9시.’ 그룹 투어는 목적지와 경로가 같아도 출발점은 모두 다르다. 그러니 시작은 지방 국도로 이어지는 첫 휴게소가 좋다. 보통 서울에서 동쪽으로 떠나는 투어는 양평 만남의 광장에서 모인다. 오전 9시 반, 모두가 모여 기름을 넣고 출발한다. 여섯 명의 라이더가 줄지어 달린다.그룹 투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규칙이 많다. 핵심은 서로를 배려하고 흐름을 맞추는 것이다. 여러 명이 함께 달릴 때 맨 앞에 서는 사람은 길잡이고 맨 뒷사람은 서포터다. 길잡이는 길을 결정하고 주행속도를 정하면서 그룹을 이끈다. 반대로 서포터는 일행을 챙기며 계속해서 따라붙는다. 갈수록 변수가 많아지고 주행 패턴이 바뀌기 때문에 마지막 라이더는 그룹에서 가장 빠른 사람이 담당한다.양평에서 국도를 따라 홍천군청과 소양호를 연달아 지난다. 곧 저 멀리 점봉산 봉우리가 보인다. 주변 산과 다르게 높은 산 정상에 하얗게 눈이 내렸다. “알프스 같은데!” 블루투스 헤드셋 너머로 누군가 소리쳤다. 탁 트인 하늘, 날씨도 화창하다. 도심에서 맛볼 수 없는 공기가 폐 속을 가득 채운다. 상쾌하다.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감싼다. 가슴이 벅차오른다.인제군에 들어 미시령로를 신나게 달렸다. 도로 옆으로 우뚝 솟은 선바위가 일행에게 인사를 보낸다. 우리는 곧 미시령 터널로 빨려 들어갔다. ‘부아앙!’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 속도를 높였다. 다시 맑은 하늘과 마주했다. 저 멀리 반짝이는 바다가 보였다. 도로 옆으론 커다란 울산바위가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다. 수십 번 지나온 길인데도 매번 다른 느낌이다.오후 1시. 바다가 보이는 속초의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뭘 할 것인지 결정한다. 일행의 일부는 속초에 남아 바다를 구경하기로 했다. 나머지는 해안가를 따라 남쪽으로 달려 울산까지 가겠단다. 저마다의 길로 헤어질 시간이다. 모두가 가볍게 인사하고 각자의 목적지로 다시 떠난다. 모든 게 자연스럽다. 마치 처음부터 이 순간을 알았던 것처럼. 그날 저녁, 속초 대포항에 들러 싱싱한 회로 배를 채우고 근처 게스트 하우스에서 잠을 청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모터사이클은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을 즐긴다고 했다. 그러니 집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즐겁게 달려야 한다. 이제 겨우 반 왔다.가장 재미있는 네이키드, KTM 1290 슈퍼듀크 R1290 슈퍼듀크 R은 괴물이다. 1301ccV2 엔진은 끝을 알 수 없는 힘을 토한다. 스로틀 레버를 비틀면 엔진이 최대 1만rpm까지 회전하며 공간에서 공간으로 점프한다. 코너링도 환상적이다. 마치 칼로 베듯 코너를 찌른다. 속도가 붙기 시작하면 190kg의 몸무게는 잊게 된다. 다루기 쉽다. 앞머리의 움직임이 가볍다. 두 다리로 모터사이클을 꽉 잡고 원하는 방향을 쳐다보는 것만으로 앞바퀴가 반응한다. 초보자부터 레이서까지 모두가 쾌락을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장난감이다. 2600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