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어디로?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자동차의 길에서 사람의 길로, 서울로 7017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 | 서울,서울로

1970년 서울지금 서울의 모습은 일정 부분 김현옥의 산물이다. 김현옥은 1966년부터 1970년까지 서울시장이었다. 박정희의 육군사관학교 후배였으며 국군수송사령부의 전신인 제3항만사령부 사령관을 거쳤다. 제3항만사령부 수송사령관 출신 남자가 30대 후반에 수도의 시장이 되었다. “도로는 혈관이다. 그 혈관이 튼튼하고 활달하여야 도시가 건강하다” 같은 말을 할 만했다.시장은 도로라는 혈관을 뚫을 힘이 있다. 혈관을 짜는 머리는 건축가가 쓴다. 김현옥에게는 김수근이 있었다. 1966년 11월 시장이 되고 해외 시찰을 다녀온 김현옥은 고가도로라는 답을 찾았다. 복잡한 도시 위를 가로지르는 고가도로는 수송사령관 출신 시장에게 꿈 같은 새 핏줄이었을 것이다. 김현옥은 김수근에게 고가도로 건설 계획을 맡겼다.김수근은 두 가지 답을 냈다. 첫째는 연희동에서 시작해 마장동에서 끝나는 방사형 고가도로였다. 둘째는 사대문 밖을 도는 일종의 순환로였다. 순환형 고가도로와 방사형 고가도로를 적당히 섞었다. 도쿄를 닮았다. 도쿄 수도고속도로 도심상환선은 1962년에 최초로 개통됐다. 일본에서 건축을 공부한 김수근이 고가도로 도시계획을 짤 때 도쿄를 참고했을 거라 예상할 수 있다. 도쿄형 서울의 시작이었다.1970년대는 안전모에도 ‘돌격’이라는 말이 쓰이던 때였다. 김현옥은 불도저라는 별명과 같은 기세로 서울에 고가도로를 쌓아 올렸다. 아현동부터 홍제동까지, 서울에 20개 가까운 고가도로가 만들어졌다. 이때만 해도 고가도로는 첨단 기술과 희망의 상징이었다. “시원스런 소통과 건강미 있는 씩씩한 도로로 만들 것이다”라는 김현옥의 말처럼 긍정적인 부분밖에 없었다.서울역고가도로는 김현옥이 주장한 시원스런 소통과 건강미 있는 씩씩함의 일환이었다. 만리동에서 시작해 회현동에서 끝나는 그 길은 김현옥×김수근이 구상한 서울을 동서로 꿰는 꼬치 같은 길의 일부이기도 했다. 2014년 서울역사박물관에서 낸 전시 도록에 자세한 경과가 실려 있다.김현옥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1970년 와우아파트가 붕괴됐다. 철근 70개를 넣어야 하는 기둥에 철근 5개만 넣어 아파트 한 동이 무너진 사고였다. 이를 계기로 시민 아파트의 안전도를 점검하자 총 405동 중 349동이 안전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김현옥은 빨리 지었지만 튼튼하게 짓지는 못했다. 그런 쪽에는 큰 관심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김현옥은 서울시장 자리에서 물러나 내무부 장관을 지내다 부정 축재 혐의로 정계를 떠났다.2002년의 서울서울처럼 성장한 대도시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서울을 둘러싼 모든 것이 너무 많이 빨리 변해버렸다. 고가도로 건설 등의 대형 공사 예산을 마련하려 서울시는 한강 변 남북의 모래톱을 메우고 주택 부지로 건설사에 팔았다. 여의도, 동부이촌동, 압구정동, 구반포가 그렇게 개발됐다. 강남이라는 신흥 부촌이 생기며 서울의 각종 축이 서북권에서 동남권으로 넘어왔다.개발 시대의 총아 고가도로는 잠깐만 잘나갔던 가수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김현옥 시대의 유산인 부실 공사가 고가도로 곳곳에 남아 있었다. 주한 미군 차량은 청계고가도로에 오르는 게 금지되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오늘의 주인공 ‘서울로 7017’ 역시 서울역고가도로 시절 안전 평가 등급에서 D를 받았다. 고가도로 주변 환경도 문제였다. 고가도로는 땅에 그늘을 만들고 주변 건물의 시야를 가린다. 서울의 고가도로 주변은 점차 슬럼화되고 있었다. 청계고가도로가 있던 시절 청계고가도로 인근의 땅값은 다른 지역에 비해 20% 정도 낮았다.2002년의 서울엔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랬지 싶은 일이 많이 일어났다. 월드컵이 열렸고 우리나라가 4강까지 진출했다. 노무현이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그리고 전농동의 떡전고가차도가 철거됐다. 김현옥이 발주한 도시의 핏줄과 김수근이 구상한 도쿄형 서울이 공식적으로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서울은 하드웨어뿐 아니라 소프트웨어도 아주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고가차도는 차량을 위한 시설이다. 도시계획은 차가 아니라 사람을 챙기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전 세계의 대도시는 이미 도심에 차량을 몰고 들어오기 어렵도록 도시 계획을 바꾸는 중이었다.그 세계적인 흐름의 냄새를 맡은 남자가 있었다. 평생 성공과 돈 냄새를 맡는 데 탁월한 재주를 보인 사람이었다. 그는 서울시장이 되어 강북 도심을 대표하던 고가도로를 헐어 인공 개천을 만들고 넓은 도로 가운데 버스 전용 차선을 심었다. 그때의 강렬한 이미지에 힘입어 이명박은 대통령이 되었다. 이명박 이후 서울시장은 대통령직을 노려볼 수 있는 자리가 되었다. 큰 건을 하면 눈에 띄니까. 후임 시장 오세훈도 세빛섬을 만드는 등 나름 노력했지만 대통령이 되는 대신 에 세빛섬을 노출시키는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2017년 서울정식 개장을 1주일쯤 앞둔 5월 초순에 서울로 7017에 올랐다. MVRDV 시니어 프로젝트 리더인 건축가 이교석과 함께였다. 김현옥에게 김수근이 있었다면 이 프로젝트를 총괄한 박원순에게는 위니 마스가 있었다. 서울시는 서울역고가도로를 공원화한다는 발상으로 현상설계를 맡겼다. 1위는 네덜란드 MVRDV의 위니 마스가 차지했다. MVRDV는 GOD의 ‘어머님께’처럼 건축가의 성 맨 앞 글자를 딴 네덜란드의 스타 건축 사무소다. 위니 마스가 M이다. 이교석은 이 프로젝트의 현장 실무자였다.MVRDV 이교석 실장. 서울로 7017을 통해 서울의 건축 수준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MVRDV 이교석 실장. 서울로 7017을 통해 서울의 건축 수준이 높아졌다고 말했다.김현옥과 박원순은 흥미로운 대조군이다. 김현옥은 병참과 수송이라는 물류에 집중하는 군인 출신 개발주의자다. 박원순은 인권 변호사 출신 사회사업가 겸 운동가다. 이 둘이 지향하는 서울은 다를 수밖에 없다. 김현옥은 박정희의 명을 받아 일본의 영향을 받은 건축가와 머리를 맞대고 도쿄가 떠오르는 고가도로를 지었다. 박원순은 자신의 뿌리인 시민의 뜻을 받아 서유럽 건축가를 초빙해 서구형 재생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나와 사진가 표기식과 이교석은 만리동 쪽 출구에서 서울로로 들어갔다. 정식 개장을 앞두고 마무리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서울로 7017의 영어 이름은 ‘서울 스카이가든’이다. 그 이름처럼 서울로 7017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식물 화분이 있다. 각자의 식물은 ᄀ부터 ᄒ까지의 순서로 배치된다. 시작점은 회현동, 끝점이 만리동이다.서울로 7017은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와 비교된다. 하이라인 파크는 뉴욕의 폐선로를 개조해 만든 공원 겸 산책로다. 차나 기차가 다니는 길을 사람이 다니는 길로 만들었다는 것, 그 길에 식물을 심었다는 것이 둘의 공통점이다. 공통점은 거기까지일 뿐, 둘은 굉장히 다르다. 하이라인 파크는 전체가 흙인 반면 서울로 7017은 파이프를 자른 듯한 화분이 쭉 늘어서 있다. 공원이라고 하기엔 흙이 좀 모자라 보인다. 왜 이런 방식을 택했을까?이교석은 그림을 그려 설명해주었다. “하이라인 파크는 지상 8m 높이에서 두 개의 기둥으로 지탱되고 있어요. 서울역고가는 지상 17m 높이에서 한 개의 기둥으로 지탱되고요. 하이라인 파크에는 약 30cm 두께의 흙층이 있어요. 계산해보면 안전 하중 한계 내에서 서울로 7017에 덮을 수 있는 흙은 약 10~15cm밖에 안 돼요. 이러면 잔디밖에 못 심어요. 우리는 나무를 심고 싶었는데.” 서울로 7017이 하이라인 파크를 세심히 벤치마킹한 것만은 확실한 디테일이다.서울로 7017의 디자인에는 확실한 건축적 논리가 있었다. 이교석의 말은 이렇게 이어졌다. “하이라인 파크가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은 주변 건물들과 붙어 있는 구간이 있다는 점이에요. 이러면 자연스럽게 그늘이 생겨요. 그리고 서양인들은 햇빛을 좋아해요. 반면 서울로 7017은 회현동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붙어 있는 건물이 없어요. 한국 사람들은 서양인만큼 햇빛을 좋아하지도 않고요. 나무가 자라면 그늘이 생길 거예요.”자란다는 건 서울로 7017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서울로 7017에서는 나무와 식물뿐 아니라 길도 자라날 수 있다. 건축계 일각의 논란을 넘어 MVRDV의 모델이 선정된 이유도 이 모델의 확장성 때문이었다고 이교석은 말했다. “저희는 이 건축 자체가 주변 건물과 연결될 수 있다는 걸 강조했어요. 서울역을 지나면서 롯데마트와 연결 통로가 생기면 시민들이 더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 테니까요.” 서울로 7017 자체가 새로운 동선이 될 수 있다.지금 서울로 7017과 직접 이어지는 통로가 있는 건물은 둘이다. 대우재단빌딩과 호텔 마누. 호텔 마누의 신기준 이사는 “멋있고 재미있는 걸 해보고 싶었어요”라고 말했다. “저희 입장에서는 타격이 있죠. 호텔은 장치산업이니까 굳이 연결 통로를 만들 필요는 없었어요. 심지어 연결 통로가 생기는 호텔 건물 2층은 저희 객실이었어요. 객실을 없애고 통로와 연결시킨 거예요. 기회비용이 컸죠. 돈만 봤다면 하지 않았을 거예요. 서울시에서 받은 것도 없어요.” 그는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통로를 놓는다고 저희 호텔이 잘되는 걸 바라는 게 아니에요. 그냥 더 많은 사람이 이 길을 이용했으면 좋겠어요.”호텔 마누 신기준 이사. 서울로 7017과 연결 통로를 내는 용단을 내렸다. 호텔 마누 신기준 이사. 서울로 7017과 연결 통로를 내는 용단을 내렸다.대신 그의 바람대로 ‘뭔가 재미있는 것’을 할 수도 있게 됐다. “서울로 7017 건너 만리동에 멋진 레스토랑들이 생기고 있어요. 그 레스토랑과 함께하는 패키지를 구상 중입니다. 결혼을 앞둔 아가씨들이 레스토랑에서 멋지게 저녁을 먹고 서울로를 걸어 돌아와서 우리 호텔에서 자는 거예요.” 신기준의 말이다.모두가 신기준처럼 서울로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서울로 7017에 협조적이었던 호텔 마누에서 걸어서 3분만 가면 서울로 7017에 가장 적대적인 집단을 만날 수 있다. 남대문시장 상인들이다. “박원순이 돌았지.” 시장에서 만난 한 아저씨는 세면기를 튼 것처럼 불만을 쏟아냈다. “이명박이가 청계천 하니까 자기도 이거 해놓고 대통령 해보겠다는 거 아니야. 하늘 위에 무슨 공원이야. 차라리 헐어버리던가.” 남대문시장 상인은 서울로 7017 프로젝트의 가장 큰 피해자층에 속한다. 도로 교통망이 상징하던, 차량을 통한 물류 공급이 차로가 막히며 덜 원활해졌기 때문이다. 길 건너 만리동의 분위기는 다르다. 서울역고가도로 시대에는 도심을 빠져나가는 과정일 뿐이던 만리동은 이제 보행자의 종착점이 됐다. 마침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젠트리피케이션 이전 도시의 모습도 갖췄다. 길도 길이지만 서울로 7017의 만리동 쪽 출구에는 청소차를 대던 공간이 있었다.혐오 시설이라 불린 그 공간도 서울로 7017 계획과 함께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살기 좋은 공간이 되면 동네의 값이 오른다. 서울역 리가아파트는 매매가가 1억원쯤 올랐다. 부동산 유리 벽에 붙은 매물 정보 문구에도 공원이라는 말이 일제히 추가되어 있었다. 서울의 힙 타운은 도시 정책과 밀접히 얽힌다. 만리동이 이 프로젝트 최대 수혜자다.서울로 7017이 만드는 효과는 단순하지 않다. 이교석은 서울로 7017의 건축을 진행하며 가장 많은 이야기가 오갔던 세 개의 관청을 꼽았다. 어디일까? “철도청, 경찰청, 문화재청입니다.” 각 관청은 각자의 사정에 따라 서울로 7017에 합리적인 우려를 표했다. “철도청 입장에서는 기차의 안전한 통행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철도청의 건의를 받아들여 경부선 구간에는 펜스를 더 높였어요.” 문화재청은 숭례문의 시야를 가리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이 있었다. “그래서 숭례문 쪽으로 나가는 연결로는 일단 만들지 않았습니다.”경찰청의 문제 제기는 서울로 7017의 가장 큰 쟁점인 교통과 맞물려 있다. 경찰청은 서울의 교통을 책임진다. 남대문시장의 상인들이 화난 이유 역시 차도가 보도가 되며 차를 몰고 오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2015년에 배포한 기자 설명회 자료에 따르면 구 서울역고가도로를 오가는 차량 중 60%가 통과 차량이다. 서울은 도심에 사람을 끌어들이고 차량은 오기 힘들게 하는 식으로 약 20년 동안 변화해왔다. 적어도 이 부분에서 청계천과 서울로 7017은 같은 출발점을 갖게 된다.서울역고가도로에 얽힌 차량의 흐름은 김현옥의 유산이기도 하다. 서울역고가도로는 동대문과 공덕동 사이 고속화도로 구간의 일부였다. 크게 보면 그 구간은 군자동과 마포대교를 잇는 서울의 동서 통과로였다. 군자동은 워커힐 호텔 옆에 있고 마포대교에서 한강을 건너면 김포공항에 닿는다. 즉 시점을 확대해보면 서울역고가는 서울과 세계라는 큰 축선의 한 부분이었다. 그 축선은 틀어진 지 이미 오래됐다. 군자교와 마포대교는 강변북로로 연결된다. 서울시는 동대문과 공덕동 사이의 우회 경로도 4개 더 제시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서울과 세계는 인천공항과 서울역을 잇는 공항철도로 한 번에 연결된다.이교석은 이 프로젝트를 무척 좋아하는 듯했다. “보통 개발 중인 도시는 마천루나 신규 건축 단지 같은 대형 토목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해요. 재생 프로젝트를 한다는 건 그 자체로 도시의 문화가 성숙해졌다는 의미예요. 저희들끼리는 ‘이번 프로젝트로 서울의 건축적인 수준이 올라갈 거다’라는 이야기를 나눠요. MVRDV에서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지만 이 프로젝트에 아주 많은 관심을 쏟고 있어요.”이교석은 서울로 7017이 당장 초래할 교통량 변화 역시 조금 다른 의견을 보였다. “지금 전 세계의 대도시는 차량이 들어오기 힘들게 하는 방향으로 도시 계획을 바꾸고 있어요. 대중교통과 도보로 도심에 들어오기 쉬워지고 도심에 차량이 적어져서 사람들이 더 안전하게 다닐 수 있다면 이게 시민들에게 더 필요한 변화 아닐까요?”이교석에게 서울로 7017에서 가장 좋은 부분이 어디인지 물었다. 그는 잠깐 생각하다 답했다. “서울로가 꽤 높아요. 지상 17m예요. 그 높이에서 숭례문과 서울역을 바라보는 경험은 시민들이 기존에 해본 적 없는 일일 거예요.” 서울로 7017 위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은 뭐랄까, 기묘했다. 조선 시대의 숭례문과 일제강점기의 경부선과 급속 개발 시대의 서울역고가와 호황기의 대우빌딩(서울스퀘어)과 이명박 시장 시기의 중앙 차로와 그 사이에서도 빠지지 않는 롯데의 로고가 한눈에 있었다. 이게 서울이 아니면 무엇이 서울이겠나 싶었다.사방으로 뻗어나가는 MVRDV의 모델처럼 서울로 7017은 도시의 온갖 이슈와 맞닿아 있다. 서울로 7017은 김현옥의 서울이 끝났다는 상징이다. 재생과 친환경을 키워드로 삼는 박원순식 서울의 랜드마크다. 박원순식 대권 야심의 다리일 수도 있다. 고가도로의 출발점이자 목적지였던 회현동 일대에는 나쁜 신호다. 도로의 중간점에 불과했던 만리동에는 호조다. MVRDV와 위니 마스에게는 새로운 도전이다. 지금 구글에 위니 마스의 이름을 영어로 검색하면 가장 먼저 완성되는 연관 검색어가 SEOUL이다. 그 도시에 사는 우리에게 서울로 7017은 무엇일까. 무엇이어야 할까. 한번 걸어보면 조금 더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서울로 7017은 5월 20일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