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면서 웃을 수 있는 자 누구인가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방송 노동자의 현장은 비참하다. 어떤 삶의 현장이 그렇지 않겠느냐고 되물으면 입을 다물어야 할까? 그럴수록 더 말해야 하는 게 아닐까? | 방송 노동자,혼술남녀,PD

잠시나마 기자로 일하던 시절, 가장 기분이 이상한 취재처는 드라마 기자 간담회 현장이었다. 드라마 방영 기간 중에 열리는 기자 간담회라는 게 참 오묘하다. 시청률이 높아 연일 화제가 되는 드라마는 따로 기자 간담회를 마련하는 일이 드물다. 굳이 그런 걸 하지 않아도 알아서 기사가 나오고 이슈가 되니까. 기자 간담회는 만듦새에 비해 화제가 덜 되고 있어서 언론 보도가 하나라도 더 나왔으면 싶은 작품들의 몫이다. 이런 행사를 열게 된 저간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으니 기분이 이상할 수밖에. 기분을 더 이상하게 만드는 건 배우와 PD의 인사말이다. 다크서클이 인중까지 내려온 주연배우가 “연일 이어진 밤샘 촬영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있지만 그만큼 많은 사랑 받으니 괜찮습니다” 따위의 발언을 하고, 연출을 맡은 PD가 감지 못한 머리를 눌러쓴 모자로 감춘 채 마이크를 건네받아 “저를 비롯한 스태프 전원이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마음 하나로 고생을 견디고 있으니 부디 많이 사랑해주세요”라는 식의 당부를 할 때마다 뭔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시청자들의 즐거움은 정말 밤샘과 초과 노동 없이는 불가능한 걸까? 물론 내 노동도 밤샘과 초과 노동으로 점철되어 있었으므로 당장 코앞에 닥친 기사를 쳐내느라 바빴던 나는 그 이상한 기분을 빨리 떨쳐내고 기사를 쓰러 자리를 이동하곤 했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하면서, 반짝이는 눈을 지닌 신인들의 인터뷰와 거장들의 작품을 찬미하는 기사를 쓰는 업무로 돌아갔던 것이다.이상한 기분을 그런 식으로 넘겨선 안 됐다는 후회를 하기 시작한 건 부끄럽게도 아주 최근의 일이다. 서울시일자리센터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흥미로운 제안을 받은 것이다. 그는 자신이 청년 활동가들을 대상으로 노동 인권 관련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데, 예능 프로그램 속에 반영된 스태프들의 노동에 대해 강연해주지 않겠느냐 물었다. 별생각 없이 제안을 수락한 나는, 강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간 간과했던 현장의 상황이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대부분의 TV 프로그램 제작 현장에서 방송사에 직접 고용된 정규직 직원은 연출과 조연출 한두 명 정도이고 의상과 세트, CG 등의 미술 파트와 편집은 방송사가 세운 자회사에 사내 하청 형식으로 넘어가며 나머지 촬영, 진행, 조명, 지미집, 헬리캠, 음향 등은 외주 프로덕션의 몫으로 아웃소싱 된다. 방송사 자회사와 외주 프로덕션에 고용된 사람들도 정규직의 비중은 높지 않고, 비정규직 스태프들은 대부분 노동시간 단위 대신 건별로 임금을 계산해 받는다. 방송계에서 가장 고단한 프리랜서 중 하나인 방송 작가의 평균 월급은 2016년 기준 170만원, 막내 작가의 시급은 3880원이다. 자료를 조사하면서 난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사람 사는 게 다 그렇다지만, 그게 이런 부조리가 계속되도록 눈을 감는 핑계가 되어선 안 됐다. 왜 내가 그냥 넘겼을까. 나는 부끄러움에 휩싸여 강연을 마치고는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아마 고인도 그런 고민을 한 게 아니었을까. tvN 드라마 (2016)의 조연출로 근무했던 고 이한빛 PD의 소식을 들으며 제일 자주 떠올렸던 건 기자 간담회 현장에서 피곤한 눈빛으로 호소하던 PD들과, ‘스태프 전원이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마음 하나로 고생을 견디고 있다’는 그들의 말이었다. 좋은 작품을 만들겠다는 마음은 같았을지 몰라도 견뎌야 할 고생은 메인 PD의 그것과 촬영감독의 그것이 달랐을 것이라는 점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유가족과 대책위에 따르면, 이한빛 PD는 외주 프로덕션에 선지급한 임금 중 차액을 돌려받는 일을 했다고 한다. 반 사전 제작으로 진행하던 에 참여한 계약직 스태프들은 전체 임금의 절반가량을 선지급받고 작업에 임했는데, 내부 시사 결과 초반 촬영 분량이 만족스럽지 않다는 의견이 나오자 방송사 측은 기존 업체들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새로운 업체와의 계약을 추진했다. 이한빛 PD가 맡은 업무는 계약직 스태프들에게 연락해 ‘일한 만큼만 받아 가고, 나머지는 계약을 파기하게 되었으니 되돌려 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안 그래도 형편이 어려운 계약직 스태프들에게 어떻게든 돈을 받아내야 한다는 업무의 잔인함에 심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는 것이 유가족 측의 주장이다. 이한빛 PD는 그런 업무가 ‘자신에게 몰렸다’고 호소했고, 선배들은 ‘일이 몰리긴 뭘 몰리냐, 원래 신입 사원이 그런 일 하는 거’라며 이한빛 PD를 ‘드라마 할 자격도 없는 놈’으로 몰고 갔다. 고인이 남긴 스마트폰 속 메신저 대화 기록과 음성 녹음에는 “진짜 한 대 후려 갈길 뻔했다” 같은 말이 빼곡하게 쌓여 있다.업무의 성격도 성격이었지만 업무의 강도는 더 살인적이었다. 55일간의 촬영 기간 동안 고인이 쉴 수 있었던 날은 단 이틀, 새벽 4시에 집에 들어온 그는 옷만 갈아입고는 새벽 6시에 다시 집을 나서야 했다. 영수증 처리와 자료 정리, 촬영 준비, 현장 정리 등 응당 분담해서 진행하는 게 옳아 보이는 일들이 계통 없이 이한빛 PD 앞에 쌓였다. 과도한 업무에 짓눌린 그가 지각이라도 하면 선배들은 ‘다시는 드라마 바닥에 발을 못 붙이게 하겠다’며 윽박질렀다. 선배들의 집요한 조롱과 괴롭힘 속에서 혼자가 된 그는 방영 막바지쯤 비제작 부서로 원치 않는 발령을 받았다. 일터는 그를 밀어냈고, 밀려난 그는 의 마지막 촬영이 끝난 직후 실종됐다. 회사에서는 함께 일하던 동료가 사라진 지 4일째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의 실종을 눈치채고 찾기 시작했다. 그의 안위가 궁금했던 게 아니라, 그가 실종되면서 들고 간 법인 카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니라 카드를 찾다가 실종을 알게 된 것이다. 이한빛 PD는 실종 5일째 되던 날, 유서와 함께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됐다. “나를 버티게 했던 동력이 더 이상 공급되지 않으니 남은 선택이 없어요.” 그를 버티게 했던 동력이 무엇이었을까. 동시대 시민들에게 즐거움을 전달한다는 방송 노동자로서의 꿈?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착취하지는 않겠다는 삶의 신조? 그 모든 게 의 제작 현장에서 사라져버렸다. 그의 나이 스물여덟의 일이었다.“촬영장에서 스태프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건네는 ‘노동 착취’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 팠어요. 물론 나도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그네들 앞에선 노동자를 쥐어짜는 관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문제는 이한빛 PD가 유서에서 이야기한 이 ‘가장 경멸했던 삶’이 드라마 제작 현장의 표준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KBS에서는 2002년 파견 계약직 조연출이 과로로 촬영 현장에서 세상을 떠난 일이 있었고, 2008년엔 SBS에서 과중한 업무 부담을 이기지 못한 막내 작가가 새벽에 23층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사건이 있었다.tvN 앞에서 열린 추모 집회에는 취재를 위해 현장을 찾은 다른 방송사 카메라가 심심찮게 보였지만, 정작 그들도 이러한 열악한 노동 환경과 착취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KBS에서는 2002년 파견 계약직 조연출이 과로로 촬영 현장에서 세상을 떠난 일이 있었고, 2008년엔 SBS에서 과중한 업무 부담을 이기지 못한 막내 작가가 새벽에 23층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사건이 있었다. 스물두 살이던 막내 작가가 참여하던 프로그램은 역설적이게도 각종 사건과 사회의 부조리를 추적하고 고발하는 시사 보도 프로그램이었다. 마치 이한빛 PD가 참여했던 작품이 고단한 청춘들과 공시생들의 어깨를 다독여주는 드라마였던 것처럼.“TV를 보면서 이제 여자 눈치도 보고 외국인 눈치도 보고 장애인 눈치도 봐야 합니까.” 내가 칼럼에서 TV 속에 반영된 여성 혐오, 제노포비아, 비장애인 중심의 방송 콘텐츠를 지적하며 제작진의 적극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할 때마다, 포털 뉴스 댓글난엔 어김없이 그런 투의 댓글이 달리곤 했다. 안 그래도 힘든 세상인데, TV 하나라도 좀 큰 고민 없이 속 편하게 보고 싶은 게 그리 큰 욕심이냐고. 그럴 때마다 난감해지곤 했다. 그게 아니라 여성도 외국인도 장애인도 모두 다 불필요한 모욕을 당하는 일 없이, 당신이 그렇듯 큰 고민 없이 속 편하게 TV를 보면서 세상 시름을 잊게 하는 게 목표라고. 누구는 웃고 누구는 웃지 못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질수록 TV를 편한 마음으로 보는 것조차 특권이 되어버리지 않겠느냐고. 마음 같아서는 댓글난에 뛰어들어 함께 댓글을 달며 싸우고 싶었던 날이 많았다.이제 설명해야 하는 것이 더 늘었다. 한국의 방송 콘텐츠가 대체로 대동소이한 고용 형태를 유지하며 제작된다고 생각하면, 이제 그 어떤 프로그램을 보든 ‘이 프로그램은 또 누구의 삶을 쥐어짜낸 결과로 만들어진 것일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는 이제 TV를 보는 일 자체에 죄책감이 들도록 만들 셈이냐고 따져 물을지 모른다. 그래, 피곤하다. MBC 에 등장하는 ‘해골아재’나 ‘불상아재’, ‘홍익인간’ 등의 스태프들을 보며 깔깔 웃는 일이 불가능해진 세상이란, 정말이지 피곤한 세상일 수밖에 없다.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제 즐거움을 생산해내는 이들이 공정한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방송계만큼이나 노동 착취가 만연했던 영화 현장은 꾸준한 문제 제기와 논의를 거쳐 도입된 표준 근로계약서가 자리 잡는 중이고, ‘노예 계약’이라는 말이 만ᄂ연했던 아이돌 산업조차 표준 전속 계약서가 도입된 지 오래다. 방송 콘텐츠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현장의 방송 노동자들에게도 연대와 조직화라는 숙제가 주어졌겠지만, 화면 너머 콘텐츠를 소비하는 우리에게도 방송사에 더 인간적인 제작 환경과 공정한 노동 기준을 마련할 것을 요구할 숙제가 남겨졌다. 모르고 보면 몰라도, 알고 난 뒤에도 몰랐던 시절처럼 죄책감 없이 방송을 즐기기만 할 수는 없다. 눈치채셨는지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이 글은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건넨 빨간 약 같은 것이다. 진짜 방송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