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을 위한 식당은 없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진상 손님의 만행을 무턱대고 참는 시대는 끝났다. | 진상 손님

내 페북에 ‘진상’ 손님의 사례를 모은다고 알린 적이 있다. 알다시피 내 페북 친구들은 상당수가 요식업과 서비스업에 종사한다. 그러자 댓글과 메시지로 수많은 사례가 쏟아졌다. 책을 하나 써도 될 정도의 양이었다. 차마 더 자세히 물어보지 못한 제보도 있었다. 어떤 손님이 바지 지퍼를 내리고.... 아, 더 이상 쓸 수 없다. 당신이 상상하는 거, 그거 맞다. 그런 요구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암스테르담의 홍등가에서 1000달러쯤 필요한 서비스를 밥 한 상 시키고는 요구했다는 거다. 더구나 식당이나 카페가 홍등가는 아니지 않은가. 먼저 하나 알아둘 게 있다. ‘진상’이라는 낱말이다. 아무개 호텔의 지배인에 의하면(호텔은 진상의 집합소다), 10년 전부터 널리 이 용어가 퍼졌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무슨 뜻이에요?“진짜 상놈의 준말이라는 게 정설이네. 또는 옛 봉건시대에 임금에게 바치는 물건이 진상 아니었나. 그처럼 일방적이고 강제적인 요구를 하는 경우에서 따온 것이라고도 하네.”여성 페북 친구들이 제일 많이 쏟아낸 제보(?)는 한국 남자들의 성 평등 의식 내지는 잠재적 범죄 의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으레 반말을 하거나 은근히 신체 접촉을 꾀한다. 하기야 우리나라는 국회의장 출신의 인사가 골프장에서 경기 보조원이 귀엽다고 가슴을 더듬는 나라 아닌가.나는 주로 주방에서 일하니 홀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 알지 못한다. 10년 전 일인데 한번은 어린 여직원이 울고 있었다. 어느 나이 지긋한 공직자 새끼가 그이의 치마 속에 손을 넣었다는 것이다. 엉덩이를 툭툭 치는 정도로는 울 일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지금도 그 녀석을 두들겨 패거나 고소하지 못한 걸 통탄한다. 인권 의식이 나아지면서 요즘은 그 정도 일은 덜 일어난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 딸들은 언제든지 다가오는 손을 피할 준비를 하면서 서비스를 해야 한다. 손이 몇 개는 더 달려 있어야 한다. 술 따르고 접시 나르는 손, 포크 나이프 제공하는 손, 엑스트라로 진상의 불결한 접촉을 차단할 손.... 돈 몇 푼으로 밥 팔아준다고 추악한 손을 내미는 이들 때문에 말이다.상상도 할 수 없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건 사건화되어서 알려지지 않는 까닭이다. 업주들은 매출에 영향을 줄까 봐 쉬쉬한다. 비행기 일등석을 타는 일부 악질 손님들의 태도가 달라진 건 그들이 개과천선해서가 아니다. 왕 상무 사건이 결정적이었다(컵라면 사건은 항공사에서 기념비적인 일이다. 항공기 고도와 라면 물의 비등점의 상관관계에 대한 국민적 학습이 이루어졌으니까. 마치 세월호 사건으로 우리가 ‘변침’과 ‘화물 고박’을 익히고 김연아 때문에 트리플 악셀의 점프 유효 고도를 학습한 것과 비슷하다).어쨌든 이 글을 읽은 현장의 매니저들, 셰프와 업주들은 더 이상 범죄를 대충 틀어막지 않길 바란다.한 작은 사건이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는 걸 인정한다면 말이다.진상은 예약과 관련해서 많이 존재한다. 고백하자면 당신이 내는 음식값의 몇 %쯤은 예약 부도 손님이 저지른 비용이 그쪽으로 넘어간 것일 수도 있다. 황금 같은 주말 저녁에 일어나는 일 때문이다. 보통 매니저들은 낮에 그날 예약을 다 체크한다. 그러나 틀림없이 온다고 한 손님이 오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화가 갑자기 불통된다. 그 손님이 갑자기 제트기를 타고 북국의 어느 하늘을 날고 있을 가능성이 있겠는가. 당일 취소도 사실 식당 측에서는 타격이다. 심지어 직전 취소라는 말이 있다. 7시 예약에 6시 반쯤 전화를 걸어 취소 통보를 하는 거다. 이건 말이 좋아 취소지, 실은 부도다. 은행 거래에서 이자 납입이 늦거나 부도를 내보라. 신용이 어떻게 되는지. 만만한 식당에서는 이런 부도가 꽤 많이 일어난다.강남 주요 식당 셰프들은 단체 카카오톡을 통해 이런 사람들의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물론 이름 바꾸고 다른 사람 전화로 예약을 하면 알아낼 길이 없지만. 준비해둔 재료야 사실 눈물을 머금고 이렇게 돌리고 저리 돌려서 써먹을 수 있다. 문제는 그날 매출이다. 식당도 월급 줘야 하고, 월세 따박따박 내야 한다. 겨우 채산을 맞춰가는데 이런 경우가 반복되면 폭탄이다. 열 명쯤 들어가는 룸에 열 명 예약하고 다섯 명만 와서 제일 싼 메뉴를 시키는 경우도 사실상 예약 부도와 흡사하다. 흔히 이런 손님이 서비스 나쁘다고 인터넷에 막글을 싸지른다.어쩌면 경기 불안이나 매출 하락보다 더 무서운 게 진상이다. 요식업은 매일 진상과 투쟁한다. 어제도 내 후배는 손님의 바지 세탁비 명목으로 음식값을 맞바꿨다. 서버가 실수로 흘린 와인 몇 방울 때문이었다. 레드 와인도 아니었고, 그저 무색의 화이트 와인 몇 방울이었다. 아아, 힘들다. 그래도 여러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