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비통, 여행의 시작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루이 비통은 여행을 통해 끊임없이 새로 태어난다. | 루이 비통,루이 비통 VVV

우리는 루이 비통이 사람의 이름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전시장 맨 앞에는 아주 크게 그린 젊은 루이 비통의 초상화가 걸려 있다. 지금 전 세계로 퍼진 패션 제국이 바로 이 사람으로부터 시작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처럼. 사실 젊은 루이 비통의 얼굴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그림은 중국 화가 얀 페이밍이 중년 루이 비통의 사진을 보고 상상해서 그린 것이다. 이 얼굴 그림이 현대 명품 산업의 본질을 보여준다. 과거를 재료로 신화를 만들어 높은 마진을 붙여 판매하는 것.루이 비통의 고향은 프랑스 앙셰(Anchay)다. 퍼거스 메이슨이 쓴 에 따르면 ‘마을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곳’이다. 앙셰는 상업 시설이 전혀 없는 산간 벽촌이다. 루이 비통의 교육 수준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퍼거스 메이슨은 루이 비통이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을 거라고 추측한다. 동네에 학교가 없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앙셰에서는 프랑스어도 아닌 프랑스어와 스위스어와 이탈리아어가 섞인 독특한 방언을 쓴다. 그런 곳에서 1821년 루이 비통이 태어났다.소년 루이 비통은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루이 비통은 시골을 좋아하지 않았다. 앙셰에서 할 거라고는 눈도 잘 녹지 않는 산속에서의 농업뿐이었다. 상황도 나빴다. 당시 프랑스 여성의 기대수명은 30대에 불과했다. 루이 비통의 어머니는 루이가 어릴 때 세상을 떠났다. 그의 아버지자 비에르 비통은 곧 재혼했다. 계모는 루이를 챙기지 않았다. 소년 루이는 떠났다. 걸어서. 앙셰에서 파리까지의 거리는 약 400km다. 루이 비통의 전시 자료에 따르면 그가 파리에 도착하는 데에는 2년이 걸렸다.파리도 급격히 움직이고 있었다. 새로운 계급과 새로운 정치 체계와 새로운 기술이 도시를 꽉 채웠다. 원래 격동기의 대도시에는 일이 많다. 걸어서 1837년 파리에 도착한 산골 소년 루이도 일자리 하나쯤은 구할 수 있었다. 상자 제작이었다. 손님의 수요와 상황에 맞춰 상자를 만들고 그 안에 맞는 칸막이를 만드는 등의 일이었다. 당시 유럽에서 상자 제작은 기술이 필요한 전문직이었다. 루이 비통은 파리의 상자 제작자 무슈 마레샬 밑으로 들어갔다. 손재주가 좋았는지 그는 금방 자리를 잡았다.루이 비통에게 결정적인 기회는 대형 고객이었다. 프랑스 왕비 외제니 드 몽티조가 루이 비통을 상자 제작자로 고용했다. 페낭 출신의 구두공 지미 추는 고 다이애나비와의 친분 덕에 명품 업계의 스타가 되었다. 19세기의 루이 비통도 프랑스 왕비라는 손님을 만나 상류사회의 손님을 끌어들였다. 1852년 나폴레옹 3세가 즉위하고 1854년 루이 비통은 무슈 마레샬로부터 독립했다.벽촌에서 온 기술자 루이 비통을 성공의 길로 이끈 바로 그 가방이 VVV에서 처음 만나는 전시품이다. 당신이 도슨트 투어를 한다면 이 가방의 결정적인 혁신이 평평한 뚜껑이라는 설명을 들을 것이다. 뚜껑이 평평하다는 것은 가방을 쌓기가 편리하다는 의미다. 기존의 가방은 해적 영화에 나오는 보물 상자처럼 위가 볼록해서 쌓기가 힘들었다. 궁금증이 남는다. 그러면 왜 기존에는 여행 가방에, 만들기도 힘든 아치 뚜껑을 달았을까? 답은 수납 방식의 변화다. 기존의 가방은 외부 노출을 전제로 만들었다. 비를 맞을 수도 있었다. 아치 형태는 빗물을 잘 흘려보내기 위한 수단이었다. 뚜껑이 평평한 상자는 쌓아서 운반할 수 있다는 걸 뜻하는 동시에 상자가 비를 맞지 않고 어딘가의 창고 안에서 실려 간다는 걸 뜻하기도 했다. 즉 운송 수단의 발달이 상자 뚜껑 모양을 바꾼 계기다.운송 수단의 발달은 기술의 발달을 뜻한다. 전시 이름에도 쓰는 ‘비행’과 ‘항해’와 ‘여행’은 기술의 산물이기도 하다. 산업혁명의 발달로 증기선과 철도와 자동차와 비행기가 개발됐다. 대체로 새로운 기술은 국가 단위의 대규모 프로젝트로 개발해 부자를 초기 고객으로 모신다. 지금의 우주 여행처럼 증기선 여행도 부의 산물이었다. 루이 비통 여행 가방이 살아있는 예다. 루이 비통 여행 가방에는 손잡이만 있고 바퀴가 없다. 이 가방을 들고 나르는 짐꾼이 있었다는 뜻이다.루이 비통이 자신의 뿌리인 여행 가방을 계속 선보이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럭셔리 브랜드는 부유한 느낌을 유지해야 한다. 여행은 처음부터 부자의 유희였다. 전시는 그 사실을 반복 학습처럼 강조한다. 전시 부스 4B ‘요트 시대의 도래’가 좋은 예다. 이 전시관에는 당시 여행을 떠나던 여자가 하루에 입었던 옷이 모두 전시되어 있다. 열 벌쯤 된다. 기상 상황과 날씨에 따라 계속 옷을 갈아입었기 때문이다. 초기 여행의 모습은 그 자체로 호사스러운 일상이며 루이 비통 여행 가방은 그 일상의 일부였다. 루이 비통은 당시의 인류학적 일상을 전시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끌어올린다.VVV는 아주 세심하게 설계되어 있다. 전시장에 들어간 관람객은 먼저 왼쪽에 있는 루이 비통의 얼굴을 보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첫 트렁크를 본다. 트렁크를 본 뒤엔 몸을 돌려 나무 냄새가 나는 전시장으로 들어간다. 루이 비통 트렁크의 재료인 나무를 보여주는 전시장이다. 재료를 보여줬으니 물건을 보여줄 차례다. 다음 전시장에 각종 클래식 트렁크가 전시되어 있다. 루이 비통의 클래식 트렁크를 다 보고 왼쪽으로 두 번 꺾어 돌면 이 전시의 하이라이트가 나타난다. ‘여행의 탄생’이다.‘여행의 탄생’은 다섯 가지로 나뉜다. ‘머나먼 곳으로의 탐험’, ‘요트 시대의 도래’, ‘자동차’, ‘항공’, ‘기차’다. 이 부분은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일상을 어떻게 바꾸었는지에 대한 생생한 기록이다. “당시의 여행 가방은 고급품인 동시에 고기능성의 특수 제품이었어요.” 전시를 함께 돌아본 이 전시의 큐레이터가 말했다. 기계식 시계 역시 당시에는 첨단 계측기였다. 첨단 계측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은 귀족이나 군인 등 고급 직종에 한정되어 있었다. 한정된 부유층, 특권층이 사용했다는 역사 덕분에 기계식 시계는 기능적 장점을 잃었음에도 귀금속으로 다시 포지셔닝할 수 있었다.루이 비통 여행 가방도 똑같은 역할을 한다. 여행은 귀족과 부자의 취미였다. 여행 가방 역시 귀족과 부자의 물건이었다. ‘여행의 탄생’ 부분을 지나면 나오는 전시품은 여행의 사치스러운 이미지를 증폭시킨다. ‘부재의 시간’,‘페인팅 트렁크’,‘진귀한 트렁크’ 코너에서는 루이 비통이 고객의 특수한 요청에 따라 만든 가방이 전시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르네 짐펠의 그림 가방이다. 르네 짐펠은 유명한 아트 딜러였다. 그는 루이 비통의 대형 트렁크 안에 별도의 액자 케이스를 넣어 다니며 그림을 팔았다. 지금의 펠리칸 케이스 같은 역할을 루이 비통이 한 셈이다.VVV의 동선은 계속 기억나는 멜로디처럼 유려하다. 세계적인 무대 연출가 로버트 칼슨의 솜씨다. 그는 VVV의 첫 전시인 파리 전시에서의 인터뷰에서 “전시를 한 편의 여정처럼 꾸미고자 했습니다. 또 관람객이 그 여행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는 동시에 영감과 감동을 받게 하고 싶었죠”라고 말했다. 와의 인터뷰에서는 “세 도시에서 이 전시를 열었는데 한국에서의 전시가 가장 마음에 들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으레 하는 말은 아닌게 이유가 확실했다. “파리나 도쿄 전시는 상당히 직선에 가까운 공간에서 열렸습니다. 하지만 DDP에서는 공간 두세 개를 지나면 방향을 꺾고 또 꺾으면서 금세 어느 방향인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더욱 흥미로운 여정이 되었습니다.” 칼슨의 말처럼 적절하게 꺾이는 동선 덕분에 VVV 전시가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듯한 느낌이 든다.칼슨의 동선 사이로 루이 비통은 신묘한 솜씨를 부린다. VVV 전시에서는 앤티크 트렁크 사이에 끼여 있는 신제품 가방이 계속 보인다. 초기 트렁크 옆에 마크 제이콥스가 디자인한 트렁크가 놓여 있다. 전시 말미에는 슈프림의 시뻘건 색을 입힌 트렁크도 있다. 루이 비통은 전시 내내 이런 식으로 루이 비통의 현재와 역사를 꿰맨다.사실 루이 비통 가문과 베르나르 아르노의 LVMH 사이에는 이제 별 상관이 없다. 원할머니보쌈 주인이 원씨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루이 비통은 초창기 여행의 사치스러운 이미지를 지금의 루이 비통에 조심스럽게 겹쳐놓는다. 사람들은 칼슨의 동선을 따라 루이 비통의 트렁크를 보며 자연스럽게 이런 이미지를 갖게 된다. ‘루이 비통이 이렇게 전통적이면서도 혁신적인 브랜드구나.’ 전통과 혁신이라는 모순된 이미지가 전시장 코너를 돌수록 계속 합쳐진다. 이거야말로 루이 비통을 비롯한 서유럽 명품 브랜드의 월드클래스 원천 기술이다. 브랜드에 온갖 좋은 이미지를 갖다 붙이는 것.서울에서 열린 VVV 전시는 세계에서 세 번째다. 첫 번째는 파리, 두 번째는 도쿄에서 열렸다. 서울의 VVV 전시는 기존 전시와 몇 가지 면이 다르다. 첫째, VVV 전시 역사상 가장 크다. 선보이는 전시품도 가장 많다. 둘째, 한국관이 다르다. 결혼 함으로 쓴 루이 비통 가방과 김연아의 스케이트 가방, 윤여정의 메이크업 상자 등을 볼 수 있다. 셋째, 카카오프렌즈와의 협업이다. 카카오프렌즈와 함께 제작한 스티커와 패치 등을 살 수 있다. 프랑스 본사에서도 이 협업에 굉장히 만족스러워했다고 한다.훌륭한 것이 대개 그러하듯 VVV 전시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이 전시는 크게 봤을 때 기술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 가에 대한 기술사적 전시다. 초기 여행에서 루이 비통의 역할을 보여주는 전시이기도 하다. 루이 비통이라는 고가품 브랜드의 아카이브를 보여주는 브랜드 전시인 것도 사실이다.이 전시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진귀한 요소가 있다. 쿠르베의 진품 회화다. 2번 섹션 ‘나무’에, 루이 비통 트렁크 위에 쿠르베의 그림이 걸려 있다. 이 그림을 보기 위해서라도 한 번 더 갈 것 같다. 물론 그 그림을 보려면 루이 비통이 전하는 메시지에 한 번 더 노출되어야 한다.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 루이 비통에게 경배하라. 전시는 DDP 알림 1관에서 열린다. 오전 10:30부터 오후 6:30까지. 금요일·토요일·공휴일은 오후 9:00까지 연장 운영한다. 전시장 말미의 서점에서는 애술린이 만든 전시 도록과 카카오프렌즈와의 협업 스티커도 살 수 있다. 8월 27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