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수집가가 만든 가방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모이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라메시 나이르에게 형태는 가장 마지막이다. | 모이나,가방,라메시 나이르

30년간 잠들어 있던 모이나를 LVMH가 인수했다. 디렉터로서 부담이 컸을 것이다. 브랜드를 되살리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무엇인가?오랫동안 완전히 멈춰 있던 걸 깨우려면, 차로 비유하면 엔진부터 바꿔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브랜드의 역사와 존재 이유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세 달 동안 역사를 파고들었고 그 과정에서 단어를 수집했다. 최고의 가방을 만들어 내겠다고 아르노 회장과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단어를 모으는 건 어떤 의미인가? 당신이 주목한 단어는 예를 들면 어떤 것인가?어딜 가든 항상 노트를 가지고 다닌다. 영감을 주는 광경을 봤을 때 떠오르는 단어를 기록한다. 트렁크 하나에서도 수십 가지 단어를 발견할 수 있다. 내가 모이나에 처음 합류한 2010년 12월에 트렁크 이음매에 촘촘하고 반듯하게 박힌 못을 보고 쓴 단어는 ‘정확성’과 ‘품질’이었다. 그리고 12월 30일에 첫 프로토타입 ‘폴린’ 백을 만들었다. 여기서부터 디자인이 시작된다. 단어는 내게 표현의 수단이다. 어떤 단어를 모으느냐에 따라 내가 만드는 문장과 이야기가 달라진다.보통 디자이너들은 그림을 그리지 않나. 단어를 기록하는 건 생경한 접근법처럼 보인다.옷 디자인은 가방 디자인에 비해 판타지 요소가 많다. 가방은 축약해야 하고, 건축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내가 현상을 관찰하고, 단어를 기록하고, 거기서부터 디자인을 시작하는 과정은 추상적인 접근법인데, 그래야 아름다운 형태를 완성할 수 있다. 사물을 완전히 다르게 봐야하고. 예술 관련 책을 많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모이나의 디자인은 전형적이지 않다. 당신이 우아한 곡선을 만드는 데 탁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스케치 대신 기록을 통해 영감을 받는데도.단어에서 시작할 뿐이지 그림을 그리지 않는 건 아니다. 먼저 쓰고 그 다음에 그리는데, 그리는 방식이 다르긴 하다. 일반적으로 가방 디자이너들이 토트백 디자인을 스케치한다고 하면, 전체 형태를 먼저 그린 후에 손잡이나 지퍼, 덮개, 덧대는 주머니 같은 장식을 넣고 빼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나는 가방 버클처럼 아주 작은 부분에서 시작한다. 그 후에 그것과 어울리는 작은 부분을 모아 완성시켜 나간다. 내게 형태는 가장 마지막이다.당신은 디테일에 강박적일 만큼 예민한 사람이 틀림없다.모이나는 곡선과 디테일이 만든 브랜드다.가장 아름다운 곡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인간의 몸. 디자이너가 되기 전에는 대학교에서 생물학을 공부했다. 아는 패션 브랜드가 하나도 없었고 난당연히 의사가 될거라고 생각했다.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엄청난 패션 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나? 혹시 죽도록 사랑했던 사람이 패션 디자이너였나?내가 살았던 도시는 패션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곳이었다. 심지어 그때는 1986년이었으니 아무도 패션을 몰랐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신문에서 인도에 생긴 첫 패션 스쿨이 1기를 모집한다는 광고를 봤다. 그 순간 운명처럼 패션 디자이너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이토록 디테일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성향 덕분에 마케트리 기법을 활용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마케트리는 가죽 위에 프린트한 평면 그림처럼 보이지만 실은 가죽 조각을 퍼즐처럼 맞춘 기법이다. 17~18세기 이탈리아에서 대리석이나 타일에 처음 활용 했고, 프랑스 궁전에서는 나무 테이블에 사용했던 기법이다. 지금도 가구를 만들 때 쓴다. 이걸 가죽에도 적용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십 번을 시도해 결국 성공했고 지금은 모이나를 대표하는 특징 중 하나다. 아름답고 정교하지만 장인들에게는 무척 고통스러운 작업이다.마케트리처럼 오래된 기술을 맘보처럼 젊은 아티스트와 협업해 구현한 부분이 흥미롭다. 두 번 째 협업에서는 트렁크를 활용했다고?파리의 어느 갤러리에서 맘보를 처음 만났다.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눴고, 문득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메일을 보냈다. 기쁘게도 그가 흔쾌히 동의했다. 첫 작업 때는 맘보의 그림을 클러치백과 여권 지갑, 백 참에 마케트리로 표현했는데 사람들 반응이 좋았다. 이번에는 ‘아티스트 트렁크’를 만들었 다. 이젤과 그림 도구를 넣을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해 맘보가 편하게 사용할 수 있을 거다.모이나는 여행에서 시작된 브랜드다. 당신은 어떤 여행을 좋아하나?내게 이상적인 여행은 한 도시에서 적당한 집을 빌려 2주쯤 머무는 거다. 그곳에서 사귄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함께 저녁을 먹거나, 하루 종일 특별한 일정 없이 시간을 충분히 누리는 게 좋다. 그 보다 더 최고의  여행은 내 머릿속에서 이루어진다. 누구든 만날 수 있고, 아무런 제약도 없고, 가장 아름다운 그 무엇이든볼 수 있다. 이런 상상은 인간만 할 수 있으니 정말 멋진 여행이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