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모두의 꿈,각자의 게임1

연천 미라클 선수들은 오늘도 각자의 야구를 한다.

BYESQUIRE2017.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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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야구장이 있어요?” 연천 미라클 경기를 취재하러 구의야구장에 간다고 하자 택시 기사가 되물었다. 가본 적이 없는 건 피차 마찬가지였다. 택시 기사는 내비게이션을 눌렀다. “있긴 있네.” 택시는 아파트촌을 지나 오르막길 앞에서 멈췄다. 근대문화재로 지정된 초기 수도 시설을 지나자 야구장이 나왔다. 평일 오후에 이런 곳에서 야구 경기가 열린다는 사실을 누가 알까 싶었다. 멀리서 야구 경기장에서 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여기서 연천 미라클 운영팀장 황형범을 만났다. 중계도 겸하고 있었다. 중계라고 해도 페이스북 라이브와 스마트폰 삼각대를 이용한 초간단 중계다. “저희 경기를 계속 보는 분들이 있어요.” 이날은 독립야구의 더비전이 열리는 날이었다. 저니맨 외인구단과 연천 미라클의 경기였다. 연천 미라클을 취재하고 싶다고 하자 마침 경기가 있으니 보러 오라고 한 것이었다. 2016년 5월 29일, 여름이 온 것처럼 더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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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미라클은 2015년 창단한 한국의 독립야구단이다. 고양 원더스에 이은 한국의 두 번째 독립야구단이다. 창단 3년 차인 올해는 연천 미라클에게 매우 중요하다. 한국 최초의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가 창단 3년 차에 해체했기 때문이다. 올해를 넘기면 존속 자체로 한국 독립야구의 역사를 쓰게 된다.

어느 조직이든 대충 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연천 미라클에는 그런 사람이 놀라울 정도로 적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바닥에서 올라오려 하는 사람들입니다.” 연천 미라클 단장이 내게 악수를 건네며 한 말이었다. “잘 써주세요.” 취재를 다니다 보면 잘 써달라는 말은 수도 없이 듣는다. 하지만 연천 미라클로부터 들은 울림은 조금 달랐다.

원래 야구팀 취재는 쉽지 않다. 야구장에는 흉기 수준의 빠른 야구공이 날아다니고, 프로야구 1군 선수들은 자타가 공인하는 액션 스타다. 더그아웃에 들어간다거나, 선수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듣는다거나, 훈련하는 곳 근처에 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연천 미라클의 김인식 감독 이하 모든 선수는 반대였다. 선수 전원을 인터뷰하겠다고 해도 오케이, 더그아웃에서 사진가와 함께 촬영을 하고 싶다고 해도 오케이였다. 언제 무엇을 물어봐도 친절하고 솔직하게 답해주었다. 지금 이들이 모두 절실하다는 사실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구의야구장에서 취재에 필요한 사항을 말하고 그다음 주에 서울 경기에서 만나기로 했다. 다음 경기는 목동이었다.

<strong>최유석(31번, 1992년생), 외야수</strong><br/>“다른 걸 떠나서 그라운드에서 뛰고 싶었어요. 그것 때문에 다시 시작했어요.”<strong>김광(42번, 1990년생), 투수</strong><br/>“경기를 통해서 매일매일 변하는 게 느껴져요. 몇 주 전까지만 해도 너무 힘들었거든요. 이제 그게 게임을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요.”<strong>동주봉(66번, 1991년생), 외야수</strong><br/> “야구라는 거, 운동장 있는 게 행복해서 지금도 나오면 그냥 재미있어요. 잘되든 안되든. 앞으로 제가 좋아하고 행복할 수 있는 걸 해야 해서 프로로 가야 될 것 같아요.”<strong>장동영(20번, 1993년생), 투수</strong><br/>“이제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하는 거니까요. 조금이라도 어릴 때 열심히 해서 프로라도 밟고 그만둔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습니다.”

<strong>최유진(23번, 1991년생), 외야수</strong></br>“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플레이를 하고 있습니다.”<strong>김영록(6번, 1991년생), 내야수</strong></br>“쉽지 않을 것 같아도 후회는 하고 싶지 않아서요. 그만두더라도. ‘아, 이만큼 했는데도 안 되는구나’ 싶으면 저 스스로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도전도 안 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요.”<strong>전승현(58번, 1996년생), 내야수</strong></br>“야구로 먹고살았으면 좋겠어요. 야구를 쉴 때 현실을 느꼈어요. 지금은 절실해요. 이렇게 하다가는 답이 없을 것 같아요.”<strong>이정암(18번, 1997년생), 투수</strong></br>“그냥 야구가 좋아서 했는데, 지금은 재미있는 게 많아졌죠. 같이 하는 팀 스포츠니까. 어떻게든 팀이 이기면 다 잘해서 이기는 거니까.”

<strong>박병우(55번, 1992년생), 투수</strong><br/>“제 장점요? 남들이 갖고 있지 않은 멘탈? 마운드에 올라가면 항상 자신감이 있어요.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strong>김선곤(5번, 1992년생), 내야수</strong><br/>“야구 그만두고 다른 일을 좀 했어요. 그때는 어려서 운동의 소중함을 몰랐어요. 이제는 제가 왜 운동을 해야 하는지 알아요.”<strong>조보빈(22번, 1990년생), 투수</strong><br/>“19삼진을 잡은 적이 있어요. 그 맛을 못 잊어서, 부모님을 위해서, 그리고 제 자신을 위해서 끝을 한번 봐야죠.”<strong>조원태(8번, 1992년생), 외야수</strong><br/>“이게 중독성이 있어요, 약간. 물론 다른 것도, 잘되면 기분 좋고 그런 건 다 있잖아요. 되게 많이 고민하고 하다가 약간 잘됐을 때의 희열이 있어요.”

<strong>김희준(3번, 1991년생), 내야수</strong><br/>“계속 야구를 하고 싶어요. 친구들은 질린다고도 많이 하는데, 저는 솔직히 말하면 하고 싶어요. 애들도 좋고, 가르치는 것도 그것만의 매력이 있고, 하는 것도 하는 것만의 매력이 있어요.”<strong>유지창(1번, 1989년생), 내야수</strong><br/>“자신 있어요. 어릴 때는 아직 제 야구가 없으니까 조급하기도 하고 걱정도 했어요. 지금은 들어가기만 하면 크게 걱정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제 야구가 있으니까.”<strong>장동웅(25번, 1988년생), 포수</strong><br/>“여기 온 이상은... 되든 안 되든 후회 없이 해보고 싶어요.”<strong>윤석주(21번, 1996년생), 투수</strong><br/>“처음에는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하면서 점점 재미가 들었어요. 이제는 너무 좋아해요.”

<strong>황건주(59번, 1989년생), 투수</strong><br/>“투구 폼을 연습하고 트레이닝해서 생각한 대로 됐을 때가 가장 좋습니다. 야구도 중요하지만 인성도 중요해요. 야구에 대한 열정이 있는 진지한 선수로 기억되고 싶습니다.”<strong>신승원(26번, 1994년생), 포수</strong><br/>“프로에 가는 게 목표가 아니에요. 바로 1군에 들어갈 실력을 쌓는 게 목표입니다. 야구는 제 인생의 전부예요.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strong>김병승(45번, 1989년생), 투수</strong><br/>“저는 항상 자신감이 제일 중요해요. 어떤 인터뷰를 하더라도, 누가 물어보더라도 항상 자신감이라고 말해요. 자신감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해요.”<strong>김태훈(51번, 1990년생), 투수</strong><br/>“주말에는 리틀 야구 코치 아르바이트를 해요. 현실에 안주할 때가 있고 쉽게 포기할 때가 있잖아요. 그때마다 아이들을 보면 처음 생각이 나요. 더 절실해지는 것 같아요.”

<strong>조성래(13번, 1990년생), 내야수</strong><br/>“제가 야구를 안 할 때도 야구장 가서 프로들 경기하는 것 보면 심장이 막 뛰더라고요. ‘내가 저기에 있었다면 이렇게 할 것 같은데’ 싶었고요. 절실한 마음으로 왔습니다.”<strong>강화영(11번, 1993년생), 투수</strong><br/>“류현진이랑 같은 수술을 했어요. 야구를 그만두려고 했는데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한번 더 해볼까 싶어졌어요.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strong>장시하(52번, 1992년생), 내야수</strong><br/>“처음 프로에 들어갔을 때는 절실했는데 실천은 못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달라요. 정신 차렸어요.”<strong>허유강(19번, 1986년생), 투수</strong><br/>“용기를 내서 연천 미라클에 들어왔어요. 제가 야구를 계속하기를 바라는 분이 많아서 그분들을 생각하며 합니다. 야구하면서 실보다 득이 많았어요. 열심히 살았던 친구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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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5일. 넥센 히어로즈가 빠진 목동 야구장에서는 이제 일정에 맞춰 이런저런 경기가 열리고 있다. 훈련은 경기를 약 3시간 앞둔 오후 3시부터 시작했다. 이날은 한국 독립야구사에서 아주 중요한 날이었다. 한국 독립 리그 최초로 야간 경기가 열리고 방송 중계가 붙었다. 여기는 독립야구다. 한 푼이 아쉽다. 야간 경기용 조명을 쓰려면 한 번에 50만원 정도 든다. 다 돈이다.

연천 미라클에서 뛰려고 해도 비용이 든다. 연천 미라클은 지금 선수들에게 한 달에 70만원 정도의 돈을 걷는다. 연천에 있는 클럽하우스의 숙박비다. “처음에는 그걸로도 논란이 됐어요.” 황형범이 말했다. “그런데 선수들에게 그 비용을 걷지 않으면 운영이 안 돼요.” 사실이다. 연천 미라클의 연간 예산은 3억원이 조금 넘는다. 팀 운영을 책임지는 스태프의 인건비로도 모자라다. 그중 2억원을 연천군에서 낸다. 지방자치단체가 타이틀 스폰서인 셈이다.

연천 미라클은 필연적으로 고양 원더스와 비교된다. 고양 원더스는 연간 40억원에 달하는 운영비를 견디지 못하고 해체한 걸로 알려졌다. 그 예산에는 당시 감독 김성근의 억대 연봉, 김성근의 경호 및 의전 비용, 전체 이닝의 과반수 이상을 책임진 외국인 선수의 연봉 등이 포함되었다. 고양 원더스의 기묘한 운영이 연천 미라클에 피해를 주는 건 아닐까? 황형범은 고개를 저었다. “그 정도 있으면 선수들 연봉도 줄 수 있겠죠. 김성근 감독에게 돈을 많이 준다는 말도 있었지만, 사실 스타 감독을 데려오는데 그 정도 대우를 해야 하지 않나요? 대신 저희처럼 신생 독립야구단이 생기기는 조금 어려워지기도 했죠. 3년 만에 해체했으니까요. 그래서 저희에게 올해가 중요해요.”

연천 미라클은 존재 자체로 중요하다. 독립야구단의 큰 기능은 야구계 내에서의 안전망이다. 10구단 시대라고 해도 각 팀이 보유한 선수는 많아 봐야 100명 전후다. 지금 한국에서 직업 야구 선수로 사는 사람이 1000명 정도밖에 안 된다는 이야기다. 한 해에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하고 프로야구 선수가 될 수 있는 선수 중에서 단 6%만 프로야구팀과 계약한다.

꿈을 이루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게 그 꿈에서 미끄러지지 않는 것이다. 프로야구 선수도 마찬가지다. 연천 미라클에는 부상 경력이 있는 선수가 많다. 특히 어깨와 팔꿈치 등 주요 관절이 소모품인 투수조는 거의 부상 이력이 있다. 장동영, 김병승, 박병우 등은 모두 수술 후 재활에 성공했다. 하지만 프로의 세계는 냉혹하다. 한번 프로팀에 있다 나온 선수들이 다시 프로가 되기는 굉장히 힘들다.

몸을 다치는 것만이 부상이 아니다. 연천 미라클 투수 조보빈은 고교 시절 삼진 19개를 잡은 적이 있다. 그런데 대학교 1학년 때 입스에 걸렸다. 마음의 문제 때문에 일반인보다 구속이 나오지 않았다. 그가 입스를 떨치는 데에는 5년 정도 걸렸다. 문제는 마음이었다. “이 상황에 걸려본 사람은 알아요.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갑자기 풀리는 거예요. 거짓말처럼.” 그는 지금 연천 미라클에서 다시 투수를 준비하고 있다.

연천 미라클에서는 모두가 각자의 야구를 한다. 목표는 같다. 프로 진출. 그 안의 사정은 미묘하게 다 다르다. 많은 선수들이 “이거 말고는 할 게 없어서요”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 스포츠의 근본적인 고질병인 교육의 편중 문제와도 닿아 있다. 한국은 학창 시절 운동부 학생에게 학업을 시키지 않는다. 운동부가 되는 순간 학업에서 제외된다. 전체 졸업생 중 6%만 프로가 되는 상황에서 운동선수가 운동만 한다는 건 치명적이다.

“일본은 운동부 학생이 일반 학생보다 더 성적이 좋아요.”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일본 학원 야구를 경험한 장동영의 말이다. “일본에서는 정규 수업을 다 받았어요. 운동이 끝나면 숙소에서 개인적으로 공부도 했어요. ‘운동선수라고 학업에 소홀히 하면 안 된다’는 자세가 있어요. 일본 친구들은 거의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야구를 그만둔다고 생각해요. 회사에 곧장 취직하는데 회사에서도 (야구 경력을) 높이 평가해줘요. 단체 생활을 했다는 가산점이 붙으니까요.”

“어쩌면 이 선수들은 나머지 공부를 하고 있는 거예요.” 연천 미라클의 민간 기자단으로 활동하는 김재훈이 말했다. “어쩌면 야구를 계속하는 게 미련일 수도 있죠. 그런데 이 친구들도 이걸(야구를) 놓지 못하는 거예요. 저도 농구를 오래 해서 알아요. 운동을 한 선수들은 운동 말고는 할 게 없어요.” 그는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선수들을 돕고 있다. 선수의 동영상을 촬영해서 자세를 고쳐야 할 부분까지 알려준다. “확실히 절실한 선수들이 있어요. 그런 선수를 보면 제 마음도 움직여요. 제가 운동하던 때가 생각나기도 하고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열정에 끌리게 되어 있어. 자신이 잊은 걸 상기시키니까.” 영화 <라라 랜드>의 대사다. 그 말처럼 사람들은 조금씩 연천 미라클을 돕는다. 최훈 만화에 나온 말처럼 야구는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다. 장비, 배트, 스파이크, 장갑 등등. 사람들은 연천 미라클의 열정에 끌린다. 다양한 업체가 연천 미라클을 후원하고 있다. 연천 미라클에 스파이크를 후원하는 브리온스포츠 대표 임우택은 <마이데일리> 기사에서 “선수들의 두 번째 도전인 만큼 미련 없이 꿈을 향해 도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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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에디터|박 찬용
  • 사진|신 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