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꿈,각자의 게임2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연천 미라클 선수들은 오늘도 각자의 야구를 한다. | 연천 미라클,독립야구

모두의 꿈, 각자의 게임 1-모두의 꿈, 각자의 게임 3-goo.gl/u5vrmJ> 04인지도가 덜한 독립 리그라도 경기 순서는 똑같다. 선수들은 교대로 훈련하고 정해진 시간에 경기가 시작된다. 저니맨 외인구단은 아직 홈구장이 없어서 서울 지역 야구장은 모두 자신들의 홈으로 친다. 원정 팀이 선공인 것도 같다. 연천 미라클은 1회 초에 2점을 올렸다. 1회 말이 시작됐다. 선발은 김준. 김인식 감독의 아들이다. 그는 주자 2명을 내보냈지만 무실점으로 1회를 보내고 있었다.타석에 4번 타자 김상현이 올라왔다. 2009년 KBO MVP였던 그 김상현 맞다. 김상현은 2 대 2 상황에서 가볍게 배트를 휘둘렀다. 공은 해가 미처 지지 않은 목동의 하늘을 갈랐다. 2점 차 리드를 한 번에 뒤집는 3점 홈런. 김상현은 늘 하던 일이라는 듯 덤덤하게 베이스를 한 바퀴 돌아 홈에 도착했다. 연천 미라클은 그 후 4점을 더 허용했다. 1회 말 점수는 7 대 2까지 벌어졌다이날 목동야구장 관중석에는 야구 해설위원 허구연이 앉아 있었다. 한국 독립 야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기승전돔’이라는 별명처럼 돔구장 건립 주장으로 야구팬들에게 유명하지만 사실 하는 일이 더 많다. 허구연이 독립야구단 창립을 주도 했다는 이야기는 전부터 유명했다. 허민을 설득해 고양 원더스를 만들게 한 사람도 허구연이다.목동야구장 관중석에서 야구 해설위원 허구연을 만났다. 그는 “뜻깊은 날인데 나와봐야지”라고 말했다. 처음으로 독립야구가 TV로 중계된 날이었다. 목동야구장 관중석에서 야구 해설위원 허구연을 만났다. 그는 “뜻깊은 날인데 나와봐야지”라고 말했다. 처음으로 독립야구가 TV로 중계된 날이었다.“선수 생활을 더 하고 싶은데 구단에서 어쩔 수 없이 방출하는 선수들도 있어요.” 목동야구장에서 만난 허구연은 사전 약속이 없었음에도 연천 미라클에 대해 이야기해달라고 요청하자 시간을 내주었다. “아예 지명을 못 받는 선수도 있죠. 그래서 허민 구단주에게 이야기했더니 OK해서 만들어진 게 고양 원더스예요. 허민 그 사람이 참 멋쟁이인게, 이런 말을 했어요. “사람이 살다 보면 실패도 하지 않습니까? 한두 번 더 기회를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 기회의 장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독립야구단이 만들어진 거예요.”남자의 가장 큰 성공은 꿈을 이루는 일이다. 성공한 남자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은 후대를 신경쓰는 일이다. 허구연은 멋지게 성공한 남자였다. “우리가 대학 들어가려고 재수 삼수 하듯이 야구 선수도 재수 삼수 할 수 있어요. 부상을 당해서 못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프로니까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나갈 수도 있지. 하지만 그다음에 기량을 보여줄 장이 필요해요. 그래서 독립야구에 관심을 뒀죠. 후배 야구인들의 취업의 장이 상당히 좁아요. 야구판 청년 일자리 같은 거예요. 옛날에 우리가 운동할 때는 실업 야구가 있었어요. 야구를 그만두면 직장 생활을 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지금 선수는 중간 장치가 없는 거야. 프로에서 스카우트되지 않으면 야구를 더 할 수 있는 길이 없어요. 내가 1990년 미국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 코치를 할 때, 한 번씩 독립 팀하고 게임을 했어요. 난 그때까지 독립 팀을 몰랐죠. 그런데 독립 팀 출신이 프로에 진입하는 경우도 있고. 그때 ‘우리도 언젠가 저런 게 필요하겠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이제 그걸 하는 거예요.”05이야기를 다 듣고 더그아웃으로 내려올 때까지도 점수는 계속 7 대2였다. 1회의 빅 이닝 이후 저니맨 외인구단과 연천 미라클은 팽행한 0 대0을 유지하고 있었다. 2회부터 올라간 김병승은 내내 무실점 호투를 보였다. 다만 연천 미라클도 점수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패배의 분위기에서 외부인의 몸으로 앉아 있으려니 개미가 들어 있는 항아리에 손을 집어넣은 것처럼 마음이 불편했다. 이날 경기가 이렇게 끝나는 건가 싶기도 했다.그 안에서 계속 소리를 지르며 응원하는 선수가 있었다. 그는 “좋은 거 있잖아. 네 거 있잖아”라는 말을 마법의 주문처럼 반복했다. 투수 김태훈이었다. 경기 전 인터뷰에서 그는 꽤 수줍어했지만 할 말은 확실히했다. “지금은 주말에 리틀 야구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요. 그 아이들을 보면 제가 처음 야구할 때 생각이나요. 야구를 그만두고 사회에 나가면 돈을 벌 수는 있겠지만 꿈이란 건 한순간이잖아요. 이 순간을 놓치면 항상 후회하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몸이 조금 피곤해도 일단은 야구를 해요.” 그 말처럼 그는 열심히 선수들을 응원했다. 좋은 거 있잖아, 네 거 있잖아, 이 말로.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연천 미라클 선수들은 자신의 것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스포츠는 무서운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하고 있는지가 숫자로 드러난다. 연천 미라클은 2회부터 6회까지 점수를 내지 못했다.“야수조 모여봐.” 6회 말이 끝나자 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왠지 야구 선수처럼 생긴 주장 유지창이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우리 지금 너무 무기력하지 않아? 이렇게 지면 너무 창피하지 않겠냐? 나도 지금 잘못하고 있어서 할 말은 없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아? 질 수도 있어. 매번 이길 수는 없어. 그런데 이렇게는 지지 말자.” 소년 만화 같은 말이었다. 그다음부터 연천 미라클은 거짓말처럼 점수를 냈다. 7 대2에서 7 대7까지 따라 붙었다. 유지창이 선두에 있었다. 그는 이날 경기에서 5타수 3안타 1타점 1득점 1도루를 기록했다.8회말에 극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7 대7까지 따라 붙은 연천 미라클이 2사 3루 상황을 만들었다. 내야 안타만 치면 역전할 수 있는 상황. 마침 타선도 중심 타선이었다. 여기서 이긴다면 이날 경기는 할리우드 영화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할리우드 영화보다는 일본 영화에 조금 더 가깝다. 결과는 삼진. 경기는 7 대7로 끝났다. 따라간 건 대단했지만 아쉬운 상황이 적지 않았다.연천 미라클 매니저 이정기와 감독 김인식. 한국 독립야구의 역사적 인물들이다. 연천 미라클 감독 김인식. 한국 독립야구의 역사적 인물들이다.감독 김인식은 선수들 만큼이나 절실해 보였다. 국가대표 야구감독 김인식과 동명이인이다. 그 역시 한국 독립야구를 위한 사명감으로 이 일을 했다고 했다. 그 역시 실업 야구가 사라진 후 대부분의 선수가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김인식은 선수 시절부터 사사구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맹함으로 유명했다. 경기가 끝난 후의 미팅에서 그는 절실하게 이야기를 건넸다.“여러분에게 찬스가 왔을 때 어떻게든 해결해야해. 그런데 이번 경기에서 해결이 안 된 게 얼마나 많아? 다음에 언젠가 똑같은 찬스가 또 와. 그러면 무조건 해결할 수 있어야 해. 그게 해결이 안 되면 내가 바뀔 수밖에 없단 말이야. 내가 해결해서 이팀에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선수가 되어야 프로로 갈 수 있는거야. 누가 삼진 먹고 싶어서 삼진 먹나? 자신이 어떻게 살아나가고 어떻게 공이 들어올지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 준비가 안 되어 있으면 안 된다고. 여러분 모두 오늘 한번 꼭 복기해봐. 바둑에선 꼭 복기를 해본다고. 야구도 복기야. 야구 경기 끝나면 방송 하이라이트가 왜 나오겠어? ‘아, 내가 만약 그 상황에서 이렇게 했으면...’ 같은 생각을 하라고 하는 거란 말이야. 복기를 많이 하고 실수를 안 하려고 하면좋은 선수가 되는거야. 오케이? 수고했다.” 복기를 많이 하고 실수를 안 하려고 하면 좋은 선수가 된다. 세상 모두에게 하는 말 같기도 했다.06성공하는 사람은 아주 적다. 반면 모든 사람에게 실패한 경험이 있다. 그게 뭐든 간에, 얼마나 크든 얼마나 작든 간에 사람은 실패를 하고 극복하면서 살아간다. 야구장에서든 길거리에서든 삶은 냉혹하다. 다시는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없는 실패도있다. 하지만 적어도 연천 미라클 선수들은 자신들의 게임을 계속하고 있었다. 프로야구팀이라는 꿈의 무대로 돌아가기 위해서, 그게 아니라 해도 최소한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요.” 선수 전원과 인터뷰하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큰 부상을 세 번이나 당한 포수 장동웅도 그렇게 말했다. “나는 원래 운이 없어서 안 되나 보다 했는데, 그만두려 했는데, 너무 억울한 거예요. 그래도 대학교 때까지 했는데. 되든 안되든 후회 없이 해보고 싶어요. 만약 제가 열심히 하다가 그만두면 후회가 없을 것 같아요.”모두 각자의 게임을 하고 있다. 프로선수가 되고 싶은 건 모두의 꿈이지만 그 안에서 연천 미라클 선수들이 마주하는 게임의 모습은 조금씩 다르다. 누군가에게 승리는 목표지만 어떤 누군가에겐 승리가 수단이다. 자기를 증명하기 위한 수단. ‘연천 미라클의 파이어볼러’라고 말한 박병우의 답은 특히 흥미로웠다.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 “부상을 안 당하고 1년 동안 몸을 만드는 게 목표였어요. 그 목표를 달성했을 때는 당연히 좋은 결과가 나올 거란 생각을 갖고 있어요.”07연천 미라클의 홈구장인 연천에도 가봤다. 연천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진가와 함께 서울시 영등포구에서 출발했는데 교통체증을 겪지 않았는데도 꼬박 2시간이 걸렸다. 연천 베이스볼 파크에 도착하자 몸에 휘감기는 공기 자체가 달랐다. 연천 베이스볼 파크는 그야말로 깊은 산속에 있다. 야구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예 없는 것 같았다. 선수들도 그렇고 취재진도 그렇고, 연천에 야구팀이 없었다면 이곳에 올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연천 미라클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이 성공적으로 쓰인 예이기도 하다. 연천군 문화체육관광과가 연천 미라클에 지급하는 액수를 생각하면 연천 미라클은 확실히 투자 금액을 뛰어넘는 성과를 보이고 있다. 팀 이름인 연천 미라클의 ‘미라클’은 연천군의 슬로건인 ‘통일 한국의 중심 미라클 연천’에서 따온 것이다. 연천군 공무원께서 이 페이지를 보신다면 연천 미라클에 대한 타이틀 스폰서 계약 연장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 야구팀이 아니라면 에 ‘연천’이라는 이름이 이렇게 오를 일이 뭐가 있겠나. 20년 역사상 ‘연천’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들어간 기사가 이 기사일 게 확실하다.연천 베이스볼 파크를 찾은 날은 금요일이었다. 금요일은 오전 훈련만 있는 날이다. 연천 미라클의 일정은 보통 프로야구팀과는 조금 다르다. 프로야구팀이 주말 내내 경기하고 월요일에 쉬는 반면 연천 미라클은 주중에 경기와 훈련을 하고 금요일 오후에 해산한다. 이정기 매니저의 말에 따르면 금요일 오후는 모두 ‘빛의 속도로 집에 가는’날이다. 야구 선수인 동시에 20대 젊은이들이니 충분히 이해가 간다.어른의 꿈은 공짜가 아니다. 주중에 야구를 하고 주말에 돈을 버는 선수들이있다. 내야수 김선곤은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야구를 쉰 2년 동안 거의 안 해본 일이 없어요. 지금은 주말에 일해요. 그냥 왔다 갔다 하면서 쉬고, 쉬는 날은 딱히 없어요.” 김선곤 말고도 일과 운동을 병행하는 선수가 많다. 황형범도 구의야구장에서 이런 말을 했다.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친구들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연천 미라클 친구들도 똑같은 거예요. 자기 돈 내가면서 절실히 준비하고 있는 거예요.”연천 미라클 매니저 이정기. 한국 독립야구의 역사적 인물들이다.하지만 누군가에게 꿈은 돈을 벌고 쓰는 것 이상이기도 하다. 연천 미라클 매니저 이정기는 야구를 너무 좋아한다고 말했다. “선수 생활은 금방 접었지만 야구 쪽 직업은 계속 갖고 싶었어요. 호주에서 야구를 공부한 적도 있고요. 그래서 지금 연천 미라클 매니저를 하죠.” 새로운 경험 앞에서 사람의 꿈은 변하기도 한다. 이정기는 이번에 취재한 사람 가운데 가장 눈빛이 빛난 사람 중 하나였다. “사실 저도 여기서 경험을 쌓아 프로팀 프런트로 가고 싶다는 생각도 했죠. 그런데 하다 보니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여기서 제가하고 있는 건 다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이거든요.”3년 차 독립야구단인 연천 미라클 선수들은 모두 한국의 다른 선수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김병승에게도 연천 미라클은 처음이다. 그는 프로 팀을 나간 선수의 고충을 생생히 들려주었다. “프로 구단에 다시 들어가는 게 그 자체로 되게 힘들어요. 공개 테스트도 많이 없어졌어요. 팀에서 나오면 할 게 연습밖에 없잖아요. 나를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거예요.” 지난 경기의 투구 내용이 생각났다. 목동에서 열린 저니맨 외인구단과의 경기에서 김병승은 2회에 등판해 8이닝 무실점 5삼진을 기록했다.“야구는 멈춰 있는 시간이 긴 운동이에요.” 훈련장에서 훈련하는 선수들을 바라보며 매니저 이정기가 말했다. “축구나 농구 같은 건 계속 움직이니까 부정적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어요. 야구는 반대예요. 경기 끝나고도 멈춰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부정적인 생각을 하기가 쉬워요. 멘탈이 정말 중요해요.” 그런면에서 봤을 때 연천 미라클 선수들이 마주하는 가장 큰 적은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 이 산속에서, 아무도 봐주지 않는 듯한 느낌 속에서, ‘내가 잘할 수 있을까’라는, ‘내가 헛된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불안과 공포 같은 것. 그렇게 생각한다면 연천 미라클의 모든 선수가 놀랄 정도로 용감하게 자기 자신과 맞서고 있었다.“남들이 볼 때는 미련이라고도 해요.” 연천에서 마주 앉은 유지창이 말했다. 지난 목동 경기에서 멋진 연설로 팀을 다시 끌어올린 주장이다. 그 역시 눈빛이 단단했다. “저는 미련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미련 버리고 다른거 하라는 사람이 많이 있죠. 하지만 어차피 제가 사는 거고 한 번뿐인 인생이에요. 지금 안해서 후회하느니, 하고 나서 후회를 하더라도 그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도 계속 도전할 거예요.” 연천 미라클 선수들은 오늘도 각자의 야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