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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메이커 뱅상 샤프롱과 함께 돔 페리뇽 로제 빈티지 2005를 시음해보았다. | 와인,뱅상 샤프롱,돔 페리뇽 로제 빈티지 2005

피노 누아는 까다롭다. 어떤 포도 품종보다 기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매년 품질이 다를 확률이 높다. 하지만 피노 누아만의 은은한 향은 그 어떤 품종도 표현해낼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와인인 로마네콩티가 바로 단일 포도밭의 피노 누아만을 사용해 만든 것이다.피노 누아는 샴페인을 만드는 주요 품종이기도 하다.돔 페리뇽의 경우 좋은 피노 누아를 수확한 해에는 어김없이 로제 빈티지를 만든다. 2005년은 8월에 찾아온 무더위로 훌륭한 피노 누아 수확에 대한 기대가 컸다. 1986년이 떠오를 만큼 기후가 피노 누아에 적합한 해였다. 1986년은 돔 페리뇽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로제 샴페인만 생산한 해다. 로제를 생산하지 않고 블랑만 생산하는 경우는 흔하다. 아쉽게도 9월의 잦은 비와 낮은 기온으로 기대감이 꺾였다. 수확량은 확연히 줄었지만 선별해 빈티지를 만들기에 적합한 수준의 포도를 소량 확보할 수 있었다. 돔 페리뇽 로제 빈티지 2005가 10여년 간의 숙성을 마치고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돔 페리뇽 로제 빈티지 2005는 돔 페리뇽의 와인 메이커 뱅상 샤프롱이 모든 과정에 참여한 첫 번째 로제 빈티지이기도 하다. 그만큼 애착을 가진다. 제품을 소개하고 시음을 돕기 위해 그가 직접 한국을 찾았다. 생산량이 많지 않은 만큼 시음 행사는 프라이빗하게 진행했다.확실한 시음을 위해 돔 페리뇽 로제 빈티지 2003과 2004를 함께 준비했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4년 연속 빈티지가 이어져 매년 생산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몇 년 동안 좋은 품질의 피노 누아가 생산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2005년 다음의 빈티지가 어떤 제품일지 아직 알수는 없지만 최소한 2006은 아니라고 했다.딸기, 라즈베리 등 붉은 과실의 향이 상큼하게 퍼지는 동시에 시나몬의 스파이시한 느낌과 감초의 달콤한 맛이 혀를 감싼다. 쌉싸름한 마무리가 임팩트를 준다. 말린 장미 향도 느껴진다. 상당히 역동적이다. 뱅상은 샤르도네를 블렌딩해 피노 누아의 파워풀함을 보다 조화롭게 풀어낸 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가볍고 힘차면서 재기발랄한 맛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단단하게 쭉 뻗는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확실히 로제 샴페인은 블랑 샴페인에 비해 풍미가 복합적이다.2003년 빈티지는 신선한 느낌보다는 깊고 풍부한 풍미가 강하다. 잘 익은 무화과 같은 과일 향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바닐라 향, 오크 나무 향 등이 전체적인 맛을 지배한다. 돔 페리뇽은 오크통에 숙성시키지 않는다. 유리병에 병입해 숙성했는데 이런 풍미가 완성된 것이다. 신기할 따름이다.2004년 빈티지는 부드럽고 화려한 풍미와 함께 섬세하게 다른 향들이 더해진다. 세 가지를 함께 시음하니 맛의 차이가 확연하게 구분된다. 뱅상은 세 가지 정도를 한꺼번에 시음하는 게 시음의 기본이라고 설명한다. 테루아르도 확실히 이해하게 되었다. 2003년이 셋 중 가장 더운해였고 2004년이 기후가 가장 온화한 해였다. 2005년은 덥다가 마지막에 기후의 변수가 생겼다. 동일한 지형과 토양에서 서로 다른 기후로 인해 이 정도 맛의 차이가 생길 수 있다.로제 샴페인은 어여쁜 빛깔 때문에 가볍게 즐기기 좋은 술로 오해 받는다. 제대로 비교 시음을 해보니 상상 이상으로 복잡하고 묵직한 풍미를 지녔다. 뱅상은 로제 샴페인 맛을 건축물에 비교한다. 질감, 깊이감 등 구조적인 맛을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설명한다. 음식과의 페어링에도 적합하다. 맛과 향뿐만 아니라 촉감의 복잡성이 음식과 함께 즐길 때 훨씬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는 ‘음식과 와인은 서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말을 덧붙였다.뱅상은 본인을 모험가라고 표현했다. 샴페인을 만드는 일은 변수와의 싸움이다. 특히 로제 빈티지의 경우 10년의 숙성 기간 동안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알 수 없다. 오크통에서가 아닌 병입 후 숙성하기 때문에 결과물이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다. 와인 메이커의 역량이 중요한 이유다. 목표를 위해 매순간 다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 축적된 데이터를 경험에 맡게 해석하고 대처할 줄 알아야 한다. 통제하느냐 당하느냐는 결국 숙련도의 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