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는 누구인가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이효리라는 유명세와 반비례하는 이효리의 음악성에 대하여. | 이효리

여느 때처럼 인스타그램을 보고 있었다. 새우깡도 아닌데 습관적으로 손이 간다. 그런데 그날 따라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있었다. 여러 인스타 친구들, 특히 여성들이 입을 모아 상찬해마지 않는 그녀, 바로 이효리였다. 거꾸로 하면 리효이. 인스타그램 여기저기를 도배하고 있는 이효리의 캡처 사진을 보면서 나는 그녀의 현재가 갑자기 흥미로워졌다. 이효리는 과연 지금 우리 앞에 어떠한 사람으로 서 있는 걸까?그녀의 현재에 대해 말하기 전에 잠시 과거를 돌아보자. 이효리의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강렬했던 두 순간을 꼽는다면? 다양한 답이 나올 수 있다. 핑클이 데뷔한 순간, 핑클 빵 출시, ‘10 Minutes’로 솔로로 데뷔함과 동시에 섹시 아이콘으로 등극, 애니콜 광고 음악과 영상 등. 하지만 내가 꼽은 그녀의 가장 강렬했던 순간 첫 번째는 이 목록에 들어 있지 않다. 사실 그것은 즐겁지도, 영광스럽지도 않은 순간이다. 이효리를 떠올릴 때 생각나는 가장 강렬한 순간 첫 번째는, 미안하지만 표절 논란이다.이제 와서 논란을 다시 만들고자 함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이효리의 앨범이 표절 논란에 휘말렸던 당시 모두가 그녀에게 비난을 쏟아냈다. 기자와 평론가도 마찬가지였다. 일제히 그녀를 공격했다. 이효리는 당장이라도 은퇴해야 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때, 사람들에게 균형 잡힌 태도를 부르짖은 이가 있었으니, 바로 김봉현 씨였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말이다. 물론 표절은 표절이었다. 6곡의 명백한 표절 혹은 도용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었다. 원곡을 들어보면 번안 수준이었다. 앨범에 신선함을 입히고자 기용한 신인 작곡가로 인해 화를 당했다. 그 때문에 앨범의 총책임자였던 이효리가 책임을 져야 했다.하지만 황당한 주장이 많았다. 예를 들어 이효리가 예능 프로그램에는 출연하면서 정작 음악 공부는 게을리했기 때문에 네티즌도 찾아내는 표절 원곡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또 작곡가가 이렇듯 대놓고 베꼈음에도 표절된 원곡을 사전에 찾아내지 못한 것은 프로듀서로서의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말은 쉽다. 당시 표절 대상이 되었던 그룹은 위키피디아에조차 등록돼 있지 않은 캐나다와 그리스의 인디 뮤지션이었다. 또 표절 대상이 되었던 노래는 정식으로 발표된 게 아니라 그룹의 ‘마이 스페이스’에 올라와 있던 노래였다.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당시의 표절 논란은 꽤나 무지했고 꽤나 폭력적이었다. 그것은 나에게 한국의 음악 산업, 더 나아가 한국 사회의 기묘한 부조리와 갑갑함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이효리의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강렬했던 순간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직접적으로 이 글의 주제와 연결된다. 이효리가 장필순을 만났던 순간 말이다. 현 푸른곰팡이, 전 하나뮤직의 오랜 팬으로서 이효리와 장필순의 커넥션은 확실히 흥미로웠다. 사람은 누구나 복합적이기에 놀라거나 의외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흥미로운 건 확실했다. 결과적으로 장필순이라는 존재로 상징되는 새로운 세계는 사적 개인이자 뮤지션으로서의 이효리에게 여러모로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일단 이효리가 제주에 살게 된 데에는 장필순의 영향이 컸다고 알려져 있다. 또 장필순과의 친분이 알려진 뒤 발매한 앨범 의 수록곡 ‘노’는 두 사람의 연결 고리와 연관 짓기 좋은 노래다. 이 앨범의 또 다른 수록곡 ‘누군가’에는 조동희가 작사가로 참여했는데 그녀는 조동진, 조동익의 여동생이자 장필순의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를 작사한 인물이기도 하다.은 공교롭게도 음악이 아닌 메시지로만 남는 것 같다. 음악으로 온전히 즐기기가 쉽지 않으니 소리가 아니라 가사 내용으로만 남게 된다.이효리의 삶이 변화해온 과정을 영화 플롯 구성하듯 명쾌하게 정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삶에 늘 영화처럼 분명한 원인과 결과가 들어차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이효리의 삶은 대전환을 맞이했고, 그것이 일시적인 현상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런 맥락에서 그녀가 최근 발표한 앨범 은 다분히 상징적이다. 은 우리가 알던 이효리를 180도 돌려세운 뒤 지금까지를 통틀어 가장 멀리 보내버렸다. 에는 우리가 알던 댄스 가수도 없고 섹시 아이콘도 없다. 대신에 앨범 타이틀에서부터 의도적으로 화사함을 거부한 채, ‘예쁘고 주름 하나 없는 얼굴’을 위험하게 여기고 위안부 할머니를 위로하는 이효리가 있다. 그리고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제주도를 자궁 삼아 이번 앨범을 만들어냈다. 대체로 앨범 사운드는 좋은 편이다. 중심을 지키면서도 요즘 유행하는 것을 안배하려 했고, 편곡에서 큰 흠을 찾기도 어렵다. 이 정도면 조력자들은 할 일을 다 했다. 문제는 이효리다. 이 앨범에서 이효리는 9곡을 작사했고 8곡을 작곡했다. 물론 싱어송라이터가 되기 위한 노력과 열정은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남이 써준 노래를 부르든, 자기가 직접 노래를 쓰든, 중요한 것은 작품의 완성도와 매력이다. 아쉽게도 싱어송라이터가 되기 위한 이효리의 전면적인 시도는 이번 앨범에서 작품의 완성도와 매력에 기여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로 작동한다. 깊이 있는 주제를 담아내기에 가사는 단편적이고, 오래 흥얼거리기엔 멜로디가 단조롭다. 의도된 모양새가 아니라 역량 부족으로 느껴지는 것이 뼈아프다.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바로 이효리의 보컬이다. 앨범을 처음 다 들었을 때 나는 귀를 의심했다. 정말 이게 완성된 버전이란 말인가. 노파심에 말하지만 비아냥대는 것이 아니다. 진심이다. 물론 애초에 이효리의 보컬에 큰 기대를 하는 사람은 없었다. 데뷔 때부터 줄곧 이효리는 남들보다 뛰어난 보컬로 승부하는 가수는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이 앨범은 새삼스럽지만 ‘기본’이라는 단어를 꺼내 들게 만든다. 앨범이 흐르는 내내 이효리의 보컬은 감상과 몰입에 명백한 방해가 된다. 여러 번 다시 생각해도 이것은 취향이 아니라 기준의 문제다. 이효리의 보컬은 이 앨범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그 결과 은 공교롭게도 음악이 아닌 메시지로만 남는 것 같다. 음악으로 온전히 즐기기가 쉽지 않으니 소리가 아니라 가사 내용으로만 남게 된다. 이 지점에서 이효리의 현재에 관한 의문과 혼란이 발생한다. 음악이 메시지로만 남게 되어버린다면 우리는 그 메시지를 앨범으로 듣는 게 나을까, 아니면 로 듣는 게 나을까. 의 가사는 주로 이효리의 실제 삶과 생각을 반영한다. 유명인으로서, 제주도 주민으로서, 사회적 실천가로서, 여성으로서 그녀가 느끼고 고민한 것들이 가사에 녹아 있다. 하지만 은 음악으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이런 이야기는 그녀가 출연한 방송이나 인터뷰에서도 얼마든지 들을 수 있다. 그녀는 여전히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그렇지만 이효리의 음악은? 지금 그녀는 우리 앞에 어떠한 사람으로 서 있고 싶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