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 버블 시대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낮은 국제 유가가 글로벌 버블을 일으키고 있다. | 유가,오일 버블

최근 들어 많은 언론사 경제 섹션에서 ‘각국 중앙은행의 고민’이란 제목의 기사가 심심찮게 보인다. 내용은 이렇다. 2008년 말 세계 금융 위기 이후 중앙은행들이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뿌렸고, 10년쯤 지난 현재 분명 경제는 살아났다는 것이다. 각종 경제 지표가 호조를 보이고, 세계 증시는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고, 세계 부동산 가격 또한 누가 더 오르나 경주하듯 뛰어오르고 있다. 미국의 경우엔 고용 지표도 최상이다. 실업률이 4.4% 수준인데 지표만 보면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황이다.그런데도 중앙은행은 딱 한 가지가 맘에 걸린다. 바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률)이다. 이쯤 되면 분명 인플레이션은 연 2%대를 넘어 2.5% 위에서 형성돼야 하는데 미국도 유럽도 일본도 한국도 물가가 꿈쩍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는 금리를 인상하며 본격 긴축정책을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지표만 보면 반대로 경기 부양을 더 해야만 할 것 같다. 그렇다. ‘중앙은행의 고민’이란 기사 제목은 경기 회복에 대한 ‘확신’이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범인은 바로 국제 유가도대체 왜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이 나타나지 않는 걸까? 학계에선 여러 이야기를 하지만 난 딱 한 가지를 꼽고 싶다. 바로 국제 유가 때문이다. 정확히는 낮은 국제 유가 탓이다. 우리도 그렇고 세계 어디든 물가 지표를 측정하는데 직접적인 석유류 제품 비중은 6~8% 정도지만, 공업 제품 등 간접적인 영향의 품목까지 합치면 절반 정도의 영향력을 미친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국제 유가는 2013년 9월 배럴당 110달러(이하 WTI 기준)에서 현재 45~50달러로 반 토막 났다. 세계 금융 위기가 터지기 직전인 2008년 7월엔 배럴당 145달러까지 갔으니 그때와 비교하면 거의 4분의 1토막이 난 것이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선 인플레이션이 나올 수 없다.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 가격은 버블(거품) 초입까지 왔는데도 소비자 물가 상승률 통계치는 지속적으로 1%대에 묶여 있는 묘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이 대목에서 우리는 국제 유가가 왜 이렇게 급락했는지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그냥 딱 한 가지 요인만 보면 된다. 미국의 셰일 오일이다. 2016년 2월 국제 유가는 배럴당 30달러가 깨지며 순간 26달러까지 폭락했다. 이렇게 되자 중동 산유국에선 초비상이 걸렸고, 달러 부자 사우디아라비아는 급전이 필요해 역사상 최초로 국채를 발행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그때도 산유국들은 감산 카드를 꺼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원유 생산량을 더 늘렸다. 그리고 이즈음 미국 셰일업계는 줄도산이 일어났다. 당시 셰일 가스의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60달러 선이었다. 쉽게 말해 기름이 필요한 소비자에게 아무리 싸게 공급해도 배럴당 60달러는 있어야 자신들도 공장을 돌릴 수 있다는 것. 그런데 중동 산유국들의 원유가 배럴당 30달러에 팔리니 수요는 다 그쪽으로 몰렸고, 미국 셰일 오일 회사들은 연쇄 부도가 날 수밖에 없었다.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좌장 사우디아라비아는 그때쯤 상황 종료가 된 줄로 알았던 것 같다. 마치 잘 구성된 시나리오처럼 작년 말 드디어 감산 이야기를 꺼냈다. 극적인 감산 합의를 도출해냈고 국제 유가는 다시 50달러로 뛰어올랐다. 그런데 아뿔싸! 다 죽은 줄 알았던 미국 셰일 오일업체들이 좀비처럼 살아 돌아온 것이다. 게다가 초특급으로 업그레이드까지 됐다. 기술 개발과 비용 절감 노력을 통해 세일 가스의 손익분기점을 42~43달러까지 낮춘 것. 일각에선 단기적으론 배럴당 40달러 이하까지 버틸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국제 유가는 다시 미끄러졌다. 세간에선 감산 합의가 깨져서 그렇다는 둥 말이 많지만 다 셰일 오일 때문이다. 이젠 뭘 어떻게 해볼 수단도 없다.멈춘 국제 유가, 정체된 긴축, 커지는 버블그래서 현재 국제 유가는 배럴당 45달러를 기준으로 지루한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중동 산유국 입장에선 지난 2016년처럼 한 번 더 유가를 폭락시켜 셰일업계를 공격하고도 싶겠으나 이번엔 사정이 다르다. 지금 미국 셰일 회사들은 강한 내성과 자본으로 중무장돼 있다. 그렇다면 유가는 이 수준에서 꽤 정체돼 있을 거라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약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유가가 이렇게 낮은 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인플레이션이 나타나지 않는다.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상을 미루거나 속도를 늦추거나 인상 폭 자체를 줄여버려서다. 실제로 지난 7월 초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미 하원 청문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지금 미국 금리는 현저하게 낮지만 점진적으로 올릴 것이고, 또한 아무리 많이 올려고 과거 연방기금금리 최고치의 절반 정도에 그칠 것이다.”지금 세계 자산 시장은 분명 버블 초입에 발을 내딛었다. 멈춰버린 국제 유가로 인해 한순간 긴축 정국이 버블 장세로 돌변하는 것이다.1990년대 이후 미국 기준 금리는 한때 연 6%가 넘은 적도 있다. 그렇다면 미국이 앞으로 2년 후까지 계속 금리 인상을 한다 해도 최고치가 연 3.5% 정도밖에 안 될 것이란 이야기다. 이렇게 되자 탐욕스러운 자본은 본격 머니 게임 랠리에 돌입했다. 금리 인상은 더 이상 악재가 아니다. 연 1.5%? 연 2.5%? 연 3.5%? 그것도 2~3년에 걸쳐서? 괜스레 걱정할 필요 없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현재 세계의 유동성이 중앙은행 금고로 돌아가는 대신 한국의 IT 기업 주식에, 호주와 일본과 중국의 부동산에, 미국과 독일 증시에 대거 몰려들고 있다. 불과 5개월 전까지 ‘박스피’로 놀림받던 코스피는 2400선을 그대로 넘었고, 삼성전자 주가는 1년 만에 80% 올라 주당 250만원이 넘는다. ‘버블은 끝날 때까지 알 수 없다’는 명제에 따라 버블 여부를 확신할 순 없지만 지금 세계 자산 시장의 모습을 보면 분명 버블 초입에 발을 내딛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 멈춰버린 국제 유가로 인해 한순간 긴축 정국이 버블 장세로 돌변하고 있는 것이다.국제 유가와 한국 경제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으로선 국제 유가가 조금씩 꾸준히 오르는 우 상향 곡선을 이루는 게 최적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 입장에선 유가가 왕창 떨어져야 원가 부담이 적어져 더 좋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일단 우리의 수출 주력품이 반도체 외에는 대부분 석유와 연관된 사업이 많아 국제 유가가 올라야 명목 지표가 잘 나오게 된다. 또 하나, 최근 우리가 수출을 늘리고 있는 신흥국들은 자원 부국이 많아 유가가 올라야 이들의 살림살이가 좋아지고 우리 제품을 더 많이 수입한다. 2016년 상반기에 ‘유가 대폭락’이 발생했을 때 한국 경제, 특히 수출이 타격을 입은 것도 다 이런 이유다.한국의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선 지금처럼 유가가 낮은 영역에서 등락을 거듭하는 게 좋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유가가 이 정도 수준에서만 움직인다면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 없고 금리 인상 트라우마가 사라져 외국인 투자자들이 뭉텅이 자금을 들고 계속 한국 주식과 부동산을 매입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주식 투자로 수십억원을 벌었다는 한 부티크 관계자는 “국제 유가가 한 10년만 배럴당 45달러에 머물러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부동산 가격도 결국 국제 유가와 연관이 깊다. 유가가 멈춰 있으면서 인플레이션이 나오지 않고 미국이 금리 인상에 뜸을 들이자 한국은행도 금리 인상을 외면하고 있다. 요즘 시중의 대출금리가 좀 올랐지만 미미한 수준이다. 게다가 원/달러 환율이 계속 떨어지자(원화 강세/달러 약세) 한국은행이 금리 인상을 내년 상반기까지 미룰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부동산 시장은 희희낙락이다. 6·19 부동산 규제 대책? 8월 가계 부채 종합 대책? 정말 부동산을 잡고 싶으면 금리 인상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이다. 대출금리가 폭발적으로 오르지 않는다면 한국인의 특성상 어떻게든 집을 지킬 것이고, 부동산 시장을 잡는 건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반면 미국 달러화 가치가 오르기를 원하는 달러 투자자는 현 상황이 답답하다. 이들이 원하는 건 국제 유가가 급등하는 것이다. 국제 유가가 대폭등해서 과거처럼 배럴당 100달러, 120달러, 140달러로 가버리는 거다. 물론 지금까지는 대부분 ‘유가 급등-달러값 급락’의 공식이 성립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상 처음으로 겪는 예외의 상황이다. 현재 달러의 몸값을 다시 올리는 유일한 수단은 인플레이션을 만들어 금리를 폭등시키는 방법밖에 없다. 가령 지금부터 국제 유가가 배럴당 60달러, 70달러, 80달러로 올라서면 2개월 후쯤 인플레이션이 바로 연 2%를 돌파할 것이고 중앙은행은 완전 다른 모습으로 변할 것이다. 더 이상 고민 없이 무섭게 금리를 올릴 텐데, 이런 긴축 상황에서는 기축통화인 달러로 전 세계 수요가 몰리게 된다.석유 자본은 석유에서 탈출해야 한다1880년대까지만 해도 석유는 집 안에 등불을 켜는 데 필요한 끈적거리는 ‘검은 액체’에 불과했다. 특히 1879년 에디슨이 백열전등을 발명한 후 석유는 등불 역할마저 잃고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이런 석유의 운명을 바꿔놓은 건 바로 자동차였다. 1886년 독일의 고틀리프 다임러와 카를 벤츠가 세계 최초로 휘발유 자동차를 발명하자 상황은 급반전됐다. 1895년 프랑스의 미슐랭 형제가 자동차용 타이어를 발명하면서 자동차는 산업이 됐고, 석유는 인류의 화려한 슈퍼스타가 됐다. 그렇게 100년이 넘게 석유 시대가 이어지고 있다. 국제 유대 자본의 양대 축인 유럽의 로스차일드 가문과 미국의 록펠러 카르텔은 석유 자본 피라미드의 최고 정점에 위치하는 집단이기도 하다.하지만 현재 많은 학자들이 석유 시대의 종말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류 에너지원의 대전환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눈에 띄는 소식이 전해졌다. 스웨덴 볼보자동차의 내연기관 종식 선언이다. 볼보는 2년 후인 2019년부터 모든 신차에 내연기관 대신 전기모터를 장착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으로 다가올 전기차 쓰나미의 징조다. 이럴 경우 원유 수요 감소-국제 유가 급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추론해보면 이제 유가는 대추세에 따라 하락하게 된다. 그럼 물가는 더 하락할 것이고 금리 인상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진다. 하지만 맘에 걸리는 것이 있다. 전지전능(?)한 국제 유대 자본이 함께 몰락하기 때문이다. 원유와 석유를 양손에 쥐고 흔들어온 이들인데, 유가와 달러값이 모두 폭락한다는 건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다. 오히려 현실적인 추론은 이유는 몰라도 대반전을 통해 국제 유가와 달러 가치가 단기 급등하는 상황이 나올 것이라는 쪽이다. 아마도 거대 자본은 이 시기를 노려 석유와 달러에서 탈출해 또 다른 숙주인 재생에너지나 새로운 기축통화(디지털 화폐) 등으로 갈아탈 것으로 보인다.중동 지역의 영험한 이슬람 선지자들은 오래전부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낙타를, 난 자동차를, 그리고 내 아들은 제트기를 몰고 다닌다. 그러나 내 손자는 다시 낙타를 타고 다닐 것이다.”올겨울까지는 매일 아침마다 국제 유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역설적이지만 석유 시대는 유가 폭락이 아니라 폭등 시기에 사라진다. 배럴당 60달러가 상향 돌파되면 의심을 좀 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