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의 5일밤 DAY4,DAY5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DAY 4 24 SAT JUNE ... | ESQUIRE,에스콰이어

DAY 424 - SAT JUNE—아크네오후 12시권 아크네 프레젠테이션은 정말 인상 깊었어요.신 그러고 보니 파리 패션 위크에서 권지원 에디터가 입었던 청바지가 전부 아크네였던 것 같아요.권 아크네 프레젠테이션은 옷을 보여주는 방식이 재미있었어요.신, 백 우리는 비즈니스 미팅 때문에 못 갔죠.권 꼼데가르송 쇼나 GmbH만큼 기발했어요.신 도대체 어땠는데요?권 모델들이 에디터나 관객처럼 앉아 있는 거예요. 에디터인 우리는 그 앞을 걸어가면서 모델들이 입은 착장을 살펴보는 거죠. 들어가는 입구부터 백스테이지처럼 꾸며져 있어요. 백스테이지에서 런웨이로 나오면서 앉아 있는 모델들을 바라보게 돼 있는 거죠. 그들한텐 우리가 모델인 거지. 심지어 메이크업을 한 흔적부터 모델들이 과일이며 샐러드며 주스를 먹은 흔적까지 다 만들어놓았어요. 보드엔 착장 사진이 쭈욱 붙어 있고. 우리가 보러 들어갈 때는 진행 스태프가 쇼를 하는 것처럼 큐 사인을 줘요.백 재밌다.신 부러우면 지는 거야.권 모델들은 다들 제각각 앉아 있었어요. 다리를 꼬고 있거나 팔짱을 끼고 있거나. 그러다 쇼가 끝났다 싶으면 자기네들끼리 박수 치고 옷 챙기고 짐 챙기고 그렇게 나가버리는 거죠.백 그걸 직접 경험해봤어야 하는 건데.신 졌다.백 이래서 쇼는 직접 봐야 한다니까요. 아무리 소셜 미디어의 시대라지만 절대로 현장에서 느끼는 감각을 대체할 수 없어요. 다만 전형적인 쇼 형식에선 벗어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야겠죠. 이미 많은 젊은 브랜드가 그렇게 하고 있고. 아크네도 그랬고.신 나는 패션쇼의 스토리텔링 방식이 진화하고 있는 것 같아요. 훨씬 인터렉티브하게. 브랜드는 결국 자기 스토리를 만들고 전달해야 하는데, 더 이상 런웨이에서 옷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는 스토리텔링이 안 되는 거죠. 그러고 보니 권지원 에디터는 무대에 서보니까 어떠셨나요?백 워킹하는데 떨리거나 하지는 않았나요?권 그럴 리가.신 정말 캣워크를 한 거?백 당당하게.권 게다가 아크네는 옷도 참 좋았어요. 스웨덴의 서머 하우스에서 영감을 받았대요. 스웨덴 사람들은 긴 여름휴가를 편안하게 보내기 위해 바닷가나 섬에 작은 집을 갖고 있대요. 별장 같은 느낌? 정말 휴식을 위한 공간인 거죠. 그 서머 하우스 안에서도 입고 물가에서도 입을 수 있는, 느긋하고 여유로운 옷이었어요. 물처럼 흐르는 옷.디올 옴므오후 3시권, 백 디올 옴므는 어땠나요? 편집장님 앞으로만 표가 딱 한 장만 나와서 우린 보고 싶어도 보러 갈 수가 없었네요.신 난 쇼도 보고 리시도 봤다고.백 그렇게 사랑하시는 디올 옴므는 어땠어요? 궁금.신 칼 라거펠트를 봤어. 에디 슬리먼이 없는데도 칼 라거펠트가 디올 옴므 쇼에 왔더라고.권 에디 슬리먼의 후임자였던 크리스 반 아쉐가 디올 옴므를 맡은 지도 벌써 10년이 됐어요.신 이번 시즌의 주제는 여름밤이라고 하더라고요. 대학교에 막 입학한 젊은 남자들이 여름밤을 보내면서 입는 옷이랄까. 다양한 스포츠 테마로 변주를 줬고. 색은 검은색 바탕에 빨간색 포인트가 주를 이뤘고. 형태는 무엇보다 슈트의 변형이었고. 어쨌든 이번 시즌에 처음으로 변형된 형태로나마 슈트를 쇼장에서 봤던 듯.권 크리스 반 아쉐답네요.신 붉은색과 흰색 줄무늬가 바지와 블루종, 슈트 재킷과 스카프에까지 쓰였어요. 베스트와 슈트 재킷이 혼합된 스타일도 있었고.백 쇼장 분위기는요?신 잔디밭처럼 꾸며놓아서 실내 운동장 같았어. 스포츠 테마와 결합돼서 젊은 남자들이 가볍게 워킹하는 느낌이었달까. 아빠 패션이 나오고 워크웨어가 나오고 콜라텍이 나오는 파리 패션 위크에서 대학교 분위기가 연출됐달까. 흥미로웠네.발망오후 5시백 발망은 정말.신 드디어 발망 토크다.권 두고 보자.신 파리의 고성에 온 것 같은 고풍스러운 공간이었죠. 오래된 그림과 샹들리에까지 매달려 있고요.백 그런데 옷이 나오자마자 다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당황.신 좋게 말해서 귀족적이고 나쁘게 말해서 시대착오적인 옷.백 그래도 중국이나 두바이에서는 먹힐 거라고 생각해요.신 ‘나 귀족’이라고 말하고 싶어서 미치는 중국이나 중동 부자들.백 음악은 또 몇 번이나 바뀌는 건지. 그렇게 바뀌는데도 도대체가 그 음악이 그 음악 같고.권 착장도 무진장 많아.권 발망도 파워 숄더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때가 있었는데.백 발망 하면 바이커 진이지.신 그런데도 디자이너 올리비에 루스테잉은 쇼 끝나고 막 뛰어나오면서 모델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더라.백 원래 올리비에 루스테잉이 그런 사람이에요. 1985년생인데, 정말 젊은 나이에 발망 디자이너가 됐거든요. 쇼맨십도 강하고. 사실 전임자인 크리스토프 데카르냉이 훌륭하게 키워놓은 브랜드인데. 건강상의 이유로 데카르냉이 떠나게 되면서 갑작스럽게 발망을 맡게 됐죠.신 이번 프랑스 대선에서도 직접 TV 토크쇼에 나와서 마크롱 대선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혀서 화제가 됐던데.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가 460만 명에 달한다고 하고. 한마디로 올리비에 루스테잉은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걸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거죠.백 올리비에 루스테잉은 런웨이를 끝에서 끝까지 뛰어다니면서 인사를 했잖아요.신 그렇게 관심을 즐기는 성품이 디자인에도 고스란히 드러나는 거겠죠. 사치스럽고 화려하고 호사스럽고 귀족적이지만 우아하거나 세련되기보단 과시적이고 노골적이고. 우리가 이번 패션 위크에서 우아하고 세련되다고 표현했던 브랜드가 몇몇 있잖아요. 그런 브랜드와는 대척점에 있는 브랜드.백 르메르.권 드리스 반 노튼.신 그런데 올리비에 루스테잉 본인이 평소에도 매우 발망스럽게 옷을 입는다네요. 정확하게는 올리비에 루스테잉 본인의 스타일을 발망이라는 브랜드에 적용한 거겠지만. 자신의 평소 스타일을 발망 컬렉션에 적용하고 싶다고도 했대요. 자아도취적인 디자이너인 건 분명해 보여요. 이번 시즌 발망은 단연 최고로 자아도취적이고.백한 사람의 디자이너가 어떻게 브랜드의 DNA를 이렇게까지 바꿔놓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 같아요.베트멍오후 7시신 난 권지원 에디터가 베트멍 프레젠테이션을 보고 에르메스 쇼장까지 제 시간에 못 올 줄 알았는데. 그래서 나름대로 팀을 분리해서 각자 이동했던 거거든.권 (웃음) 그러나 제가 누군가요. 우버만 있으면 파리 시내도 서울 시내만큼이나 척척 다닐 수 있어요.백 하긴, 선배가 우리 중에 가장 생존력이 강해.신 권지원 에디터가 없었으면, 파리 특별 취재팀은 눈먼 봉사였을걸?백 그래서 베트멍 얘기 좀 해봐요. 다녀왔을 땐 많이 실망한 눈치였잖아.권 나는 옷을 정말 보고 싶었거든.백 그런데 옷은 없고 사진만 있었지. 뎀나 바잘리아도 너무하지.권 나중에 얘기를 들으니까, 프레스들한텐 옷을 안 보여줬지만 바이어들한텐 보여줬다 하더라고요.신 뎀나 바잘리아 넘나 너무하네.권 사실 한국에선 베트멍 옷을 직접 보기가 어려워요. 들어와봤자 편집매장에 소량만 들어오니까. 그런데 사진만 있었어. 심지어 이번 시즌에 프레젠테이션으로 선보인 옷은 이제까지 나온 베트멍 옷 가운데 핵심만 추려서 재생산하는 거였어요. 색을 좀 바꾸고 디테일을 좀 바꾸고. 사진이 아무리 베트멍답고 재미있어도, 나는 옷이 보고 싶었다고.신 그래도 에르메스까지 잘 찾아와서 다행이네. 에르메스 쇼까지 놓쳤으면 권지원 에디터 폭발하셨을 듯. 지원이 화났을 때 어떻게 돌변하는지 알잖아.권 (XXXX)에르메스오후 8시신 사실 에르메스 쇼장의 분위기가 참 신기하더라. 이날의 마지막 쇼답게 하루 전날 벨루티 쇼처럼 많은 패션업계 사람들이 우아하게 대화를 나누고 그러는 것 같았어. 그런데 다른 쇼와 달리 에르메스 쇼는 내가 이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어울리는 차림을 했는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백 저도 그랬어요.신 넌 어울렸어. 덥다는 핑계로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었던 내가 문제였지. 그렇다고 에르메스 옷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다른 쇼에선 쇼를 보여주는 사람과 보는 사람이 분리돼 있잖아요. 어차피 나는 이 공간에 속해 있지 않은 거야. 그런데 에르메스 쇼에선 내가 이 공간에 들어올 준비가 돼 있나 한 번쯤 생각하게 됐어요. 사회적 지위, 자격, 옷차림까지. 이런 게 에르메스라는 브랜드의 오라가 아닐까.백 에르메스는 에르메스인 게 티가 잘 안 난다는 게 특징이잖아요. 반면에 다른 브랜드는 티가 나고 티를 내죠. 그래서 다른 쇼에 에르메스를 입고 가면 어색하지가 않아요. 브랜드가 주는 힘이 있으니까. 반면에 에르메스 쇼장에 발렌시아가나 발렌티노를 입고 가면 티가 나죠.신 나는 에르메스가 정말 완성된 브랜드라는 걸 에르메스 파리 본사에 가서 느꼈어요. 정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에르메스답지 않은 구석이 하나도 없었어요. DNA가 완벽하게 정렬돼 있는 브랜드. 우리도 라는 브랜드지만 정작 사무실은 전혀 적이지 않잖아요. 전쟁터 같지. 반면에 에르메스는 사무실도 에르메스다웠어. 에르메스를 만드는 사람, 에르메스를 말하는 사람도 모두 에르메스적이고.백 그러니까 에르메스 쇼장에서도 스스로 에르메스적인 사람인지 생각하게 되는 거겠죠.권하지만 이번 시즌 남성복은 저한텐 기대만은 못했어요.신 색은 예뻤는데.권 스타일링에 성의가 없었어요.백 소재는 고급스럽지만 디자인은 예쁘지 않았어요.권 에르메스는 소재 측면에선 엄청난 특권이 있다고요. 다른 브랜드는 못 쓰는 소재를 여유롭게 쓰니까. 그렇게 좋은 특권이 있는데 왜 스타일링은 예스러운 건지.신 난 오히려 그렇게 크게 도전하지 않는 것도 에르메스답다고 생각해요. 디자이너 베로니크 니샤니앙이 에르메스 남성복을 이끌기 시작한 게 1988년부터예요. 그때부터 남성복을 선보였던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명명했죠. 그런데도 니샤니앙은 그런 변화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어요. 30년 동안 자리를 지켜온 니샤니앙의 눈에는 우리가 이제껏 떠들어댔던 파리 패션 위크의 경향 따윈 지나가는 바람에 지나지 않을까?권 그래도요. 변화가 없다는 게 꼭 좋은 걸까요?백 니샤니앙도 영해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감색 슈트는 니샤니앙적이고 에르메스스럽죠. 거기에 트랙 재킷을 같이 입는 건 젊어 보이지만 에르메스스럽지 않은 거였죠. 에르메스는 에르메스가 속한 시장에서 경쟁자가 없다시피 해요. 결국 자신과의 경쟁인 거죠. 그런데 에르메스 남성 라인의 주요 고객층은 에르메스가 변화하는 걸 별로 원하지 않아요. 니샤니앙도 패션의 흐름 속에서 젊어져야 한다고는 느끼겠지만 고객들이 급격한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죠.권 더 잘할 수 있는 최고의 브랜드인데. 다 가질 수 있는데.백 그렇지만 에르메스 고객들한테서 받는 피드백은 젊어질 필요도, 너무 트렌디해질 필요도 없다는 거죠. 지금 이대로의 에르메스면 충분하다.신 그래도 니샤니앙이 이번 시즌 옷은 좀 더 가볍고 발랄하게 만들려고 했던 건 눈에 보이던데. 블루종이며 후드 티셔츠며 다양하게 활용했잖아요.백 지원 선배는 젊은 패션 에디터고, 편집장님은 에르메스 남성 라인의 주요 고객층과 나이가 가까워지고 있으니까. 그래서 같은 쇼를 보고도 서로 견해가 다른 듯. •••••DAY 525 - SUN JUNE—폴 스미스오후 4시신 마지막 날엔 리시까지 보느라 더 정신이 없었어요. 발렌시아가, 에르메스, 디올 옴므의 리시를 다 봤으니까. 쇼에서 봤던 옷을 직접 설명을 들으면서 만져볼 수 있어서 난 리시가 큰 도움이 되던데.백 리시 보느라 폴 스미스 쇼에 못 오셨잖아요.신 리시는 브랜드 담당자들과 스킨십을 늘리는 비즈니스기도 하니까요. 난 편집장이잖아. 폴 스미스 쇼는 정말 산뜻했다면서? 내가 놓치는 쇼는 전부 다 재미있는 것 같아.백 일단 유쾌했어요. 폴 스미스 할아버지는 언제나 유쾌한 게 장점 같아요. 보는 사람도 무대에 서는 사람도 모두가 유쾌하달까.신 영국 남자의 위트. 그런데 개그와 위트는 다른 것 같아요. 개그는 웃기려 드는 거고, 위트는 웃기려고 하지 않았는데 웃기는 거고. 폴 스미스라는 브랜드에 위트가 있는 것도, 분명 포멀한 슈트인데 안감이나 디테일에 약간의 변주를 넣어서 유쾌하게 만드는 거니까요.권 그래서 폴 스미스는 생각보단 전위적인 디자이너가 아닌 거죠. 큰 틀은 안 건드리니까.백 이번 시즌 폴 스미스 쇼에도 클래식한 옷이 많이 나왔어요. 라펠이 큰 재킷이나 셔츠. 그런데 화사하고 다양한 색감을 곁들여서 폴 스미스다운 스타일이 완성됐어요.신 이번 꼼데가르송 쇼에서 레이 가와쿠보가 내세운 주제가 ‘내면이 중요하다’였다면서. 그래서 재킷을 뒤집어 입은 모델들이 등장했고. 폴 스미스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숨겨진 것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을 해왔던 것 같아요.권 정작 유명한 폴 스미스 스트라이프는 안 나왔어요. 쇼장의 배경으로만 사용하고. 그것도 늘 쓰던 폴 스미스 스트라이프의 톤이 달라졌죠.톰 브라운에선 하이힐을 신고 긴 치마를 입고 캣워크를 하는 남자 모델들이 시종일관 이어졌어요. 남자 모델들은 런웨이 가운데에 놓여 있는 신발을 슬쩍 바라보곤 지나갔죠.백 사실 우리도 폴 스미스를 좋아하잖아요.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오랫동안 자기 길을 걸어온 디자이너고. 하지만 그래서 폴 스미스를 좋아한다고 하면 올드하게 느껴질 수도 있죠.신 개인적으론 이번 파리 패션 위크에서 폴 스미스 쇼를 놓친 게 가장 안타까워. 나도 좋아하는 브랜드거든. 비즈니스를 하느라. 급변하는 패션계에서 폴 스미스가 여전히 쇼를 하고 그 쇼를 여전히 유쾌하게 모두가 즐긴다는 거.백 다만 폴 스미스는 쇼에서 보여주는 쇼 피스와 국내 매장에서 판매하는 제품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커요. 쇼에서는 그렇게 위트 있고 세련된 브랜드인데 매장에서는 십수 년째 비슷한 제품만 바잉되어 있거든요. 그러니 소비자들한텐 폴 스미스가 올드한 브랜드라는 인식이 있을 수밖에요. 쇼에서 보면 이렇게나 젊고 명랑한 브랜드인데.톰 브라운오후 6시백 Whynot?신, 권 Oh, no.백 톰 브라운은 이번 쇼를 통해 ‘Whynot?’이라고 묻고 싶었대요.신 톰 브라운이 무슨 정주영이야? 솔직히 이번 쇼를 봤더니,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더라.백 왜 남자에게 여자 옷을 입히면 안 되는가? 왜 여성적인 스타일과 디테일을 남성복 디자인엔 적용하면 안 되는가?신 안 된다고요.권 백퍼 동의.백 우리 모두 어릴 적엔 남녀 옷의 구분이 없이 입었잖아요. 그땐 그랬는데 왜 어른이 되고 난 다음에 남녀 구분이 있는 옷에 갇혀 사는가?권 그건 영감을 위한 영감이야.백 그런데 여자는 남자 슈트를 입었을 때 멋지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왜 남자가 여자 옷을 입으면 이상하다고 하는가?권 톰 브라운에선 하이힐을 신고 긴 치마를 입고 캣워크를 하는 남자 모델들이 시종일관 이어졌어요. 남자 모델들은 런웨이 가운데에 놓여 있는 신발을 슬쩍 바라보곤 지나갔죠.백 메시지인 거죠. 젠더 구분이 없이 옷을 입던 시절을 기억한다는 거지, 남자가. 사실 중동 남자들이 입는 튜닉 같은 옷은 사실상 여성복의 원피스 같은 거잖아요. 하지만 톰 브라운 쇼에서처럼 남자가 플리츠스커트를 입고 힐을 신으면 많이 갔다고 하죠. 왜 그럴까?권 안 예쁘니까.신 톰 브라운은 그것이 안 멋지고 안 예쁘다는 우리의 미의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어한 거지. 와이 낫? 그것만큼은 파격적이긴 했어.백 정작 쇼를 보면서 내내 예쁘고 안 예쁘고를 떠나서, 남자의 체형을 너무 고려하지 않은 옷이란 생각을 했어요. 불편한 거야. 입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신 백진희 에디터의 말에 동의해요. 남성복은 남성성을 드러내는 게 1차적 목적이었다기보단 실용적인 목적이 늘 우선해서 발달했다고 봐요. 군복이나 데님이 대표적이겠죠. 이번 파리 패션 위크를 관통한 일상이라는 주제 역시 실용적인 일상복을 패션으로 해석하는 노력이잖아요. 여성복이 성성을 드러내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과는 다르죠. 그래서 실용성을 앞세운 여성복이 파격이었던 거고. 다만 여자가 바지를 입고 재킷을 입었던 건,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늘어나는 시대적 상황이 반영된 결과였잖아요. 일개 패션 디자이너의 도발적 질문이 아니었고. 그런 면에서 이번 시즌 톰 브라운의 ‘Whynot’은 사회적 맥락이 없는 뜬금없는 질문처럼 들려요.백 전 톰 브라운의 트레이드마크인 윙 팁 구두가 하이힐로 탈바꿈한 걸 보고 많이 갔다 싶었어요.신 난 젠더나 섹슈얼리티에 대해 보수적인 사람이 아니에요. 오히려 아주 개방적이죠. 그런데도 톰 브라운 쇼가 실망스러웠던 건 질문이 잘못돼서였어요. “남자는 왜 여자 옷을 입으면 안 되냐”라고 물으니까 답이 이렇게 나오는 거야. 질문이 틀렸는데 답이 제대로 나올 리가 있나. “여자는 왜 여성미를 드러내는 옷만 입고 실용적인 옷을 입으면 안 되냐”라는 질문은 옳았으니까 답이 제대로 나왔잖아. 똑같이 “남자는 왜 실용적인 옷만 입고 남성미를 강조하는 옷을 입으면 안 되냐”를 묻고, 더 남성미를 강조하는 옷을 제안했어야죠. 그런데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미 다른 브랜드들이 내놓고 있잖아요. 남자는 여자 옷을 입고 싶어 하는 게 아니야. 남자만의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드러내는 옷을 입고 싶어 할 순 있어도. 여자가 남자 옷을 입고 싶어서 바지를 입는 게 아니듯이.백 솔직히 전 톰 브라운의 질문까지는 들어줄 만했어요. 그런데 쇼의 피날레에서 웨딩드레스까지 등장하는 걸 보고 질려버렸죠. 지원 선배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더라.권 모두가 할 말을 잃었죠. 앞은 검은 턱시도고 뒤는 하얀 웨딩드레스인 옷. 아수라 백작도 아니고. 톰 브라운이 오답을 써 냈다는 명백한 증거 같았어요. 그렇게 날카롭고 아름다운 테일러링으로 이렇게나 오류투성이인 옷을 내놓다니. 톰 브라운 특유의 똑 떨어지는 테일러링은 여전했는데 그걸로 남자 여성복을 만들어놓았으니 그런 게 보일 리가 있나요. 마지막 웨딩드레스는 이번 파리 패션 위크에서도 가장 최악의 착장이었던 듯.신 난 이번 쇼를 보면서 일본 패션지 편집장님 한 분이 걱정되던데.권,백 (박장대소) 그분? 모든 쇼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톰 브라운만 입고 나오시는 분?신 다음 시즌부턴 그분이 치마에 하이힐을 신고 오시는 걸 볼 수 있는 건가?알렉산더 맥퀸오후 7시 30분신 알렉산더 맥퀸 쇼는 파리 뤽상부르 공원에서 열렸잖아요. 공원이 참 한가롭고 좋더라. 나도 잘 아는 공원인데. 오랜만에 와보니까 좋았어. 파리에서도 가장 시적인 공간.권 안 그래도 알렉산더 맥퀸의 수장 사라 버튼은 이번 시즌 쇼의 영감을 시에서 받았다고 하더라고요.신 그래서 셋이서 공원을 산책하다가 쇼를 보러 들어가길 잘했던 것 같아요. 시를 감상할 준비를 한 셈이었으니.권 초대장에도 시가 쓰여 있었어요. 제임스 톰슨이 1728년에 쓴 ‘봄’이라는 시.신 제임스 톰슨이 누군데요?백 스코틀랜드 시인인데 사계를 표현한 네 편의 시를 지었다고 하더라고요. 특히 시간이 자연과 인간한테 미치는 영향에 관한 시였다던가?신 사라 버튼은 키플링의 시도 좋아했다던데. ‘탐험가’라고. 이번 시즌 옷도 다들 탐험가나 이야기꾼을 모티브로 삼은 거라고 하더라.백 그래서 런웨이도 그렇게 길게 지그재그로 배치했던 걸까요? 마치 도보 여행을 하듯이.신 알렉산더 맥퀸이 살아 있던 시절의 브랜드와는 많이 다른 거죠?백 정말 많이 다르죠. 알렉산더 맥퀸 시절엔 파괴적 로맨티시즘이 브랜드를 지배했거든요. 다들 그 분위기에 매료됐고. 쇼 역시 극적인 요소가 강했어요. 반면에 사라 버튼이 이끄는 알렉산더 맥퀸은 피괴적인 대신 시에서 영감을 얻는 브랜드로 바뀐 거죠.신 한국 프레스 중에는 우리만 갔잖아요. 덕분에 우리만 맥퀸 코리아 신임 지사장과 인사도 했고.권 그러게요. 맥퀸 코리아가 생긴다고 하더라고요.백 그래도 전 알렉산더 맥퀸이 디자이너였던 시절이 그리워요. 유학 시절에 맥퀸이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학교 전체가 상가집처럼 변해버렸던 기억이 나요. 그만큼 우리 세대에게는 맥퀸의 존재감이 컸는데.신 알렉산더 맥퀸이 살아 있던 시절엔 오히려 브랜드가 힘들었다고 하던데. 죽기 직전의 쇼들은 혹평도 들었고. 그것에 비하면 사라 버튼은 선방하고 있는 게 아닌가?백 그땐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죠. 지금은 안전한 브랜드가 된 것 같아요.권 더블브레스트 턱시도나 슬림한 바지 같은 것. 탐험가라는 주제를 정했는데 정작 브랜드는 너무 멀리까지 탐험을 나가지는 않는 것 같아요.겐조오후 8시 30분권 겐조 쇼는 정말 길었어요.신 마지막 쇼였는데. 정직하게, 난 땡땡이를 쳐서. 겐조 쇼까지 보면 파리 패션 위크에서 개근상이라고 줄까 걱정돼서.권 별 걱정을. 저도 이번 시즌 마지막 쇼여서 가벼운 마음으로 갔는데, 쇼가 너무 긴 거야.신 솔직히 다른 매체 에디터들하고 겐조 쇼에서 만나서 놀기로 해서 간 거잖아요. 편집장만 빼놓고.백 그래서 겐조 쇼는 어땠나요? 편집장님이 안 가셨으니, 정말 재미있었을 듯.권 뜻밖에도 재미있었어요. 길었지만. 쇼장 건물 옥상에서 무용수들이 외줄을 타고 낙하를 했거든요.신 역시, 내가 안 가면 왜 쇼가 재미있는 거야?백 기주의 법칙.권 1부는 남성복이었고, 2부는 여성복이었는데, 1부와 2부를 구분하는 지점에서 그런 퍼포먼스를 했어요. 쇼가 아니라 연극 한 편을 보는 느낌이었달까. 옷은 옛날 무용수들한테서 영감을 얻은 것 같았고. 발레 슈즈 같은 것도 등장해서. 쇼가 끝나고 나서도 모델들이 들어가지 않고 서 있었어요. 관객들이 직접 가서 옷을 만져볼 수 있게 했어요.백 겐조 특유의 호랑이며 구름 문양은 안 나왔잖아요.권 그래서 아주 좋더라고요. S/S에 어울리는 적당한 패턴.신 겐조 쇼를 끝으로 이번 파리 패션 위크도 끝. 여러분과 함께해서 즐거웠어요. 이번 파리 패션 위크의 도드라진 흐름을 하나씩만 꼽자면?권 일상.백 더위.신 일상.권 이번 시즌 파리 패션 워크에서 가장 좋았던 쇼는?권 루이비통.백 꼼데가르송.신 벨루티.백 하나만 더. 2018S/S 파리 패션 위크 최고의 디자이너는?신 하이더 아커만.권 킴 존스.백 뎀나 바잘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