샴페인의 진가를 알 무렵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파이퍼 하이직의 와이너리에선 누구나 이유 없는 여유를 누리게 된다. | 샴페인

샴페인 와이너리를 방문한 건 평생 두 번째였다. 첫 번째 방문의 기억은 이제 희미해진 지 오래다. 파리에서 샹파뉴 지방까지 차를 타고 가던 기억. 몇몇 샴페인 와이너리를 순례하던 기억. 홀짝홀짝 시음하다가 조금씩 취해가던 기억. 돌아올 땐 군데군데 기억이 끊겼던 기억. 10년 전 기억을 더듬어 두 번째 샴페인 와이너리 순례 여행을 떠났다.도착한 곳은 낯익은 랭스였다. 프랑스 국왕의 대관식이 열리는 랭스 대성당으로도 유명한 샴페인의 본고장. 여왕의 샴페인으로 불리는 파이퍼 하이직의 와이너리와는 천생연분 같은 도시다. 샹파뉴 지방의 부유한 수도답게 도시는 프랑스의 맑은 하늘만큼이나 청명했다. 파이퍼 하이직의 와이너리는 랭스에서도 한 시간 정도 이동한 곳에 있었다. 파이퍼 하이직의 와이너리 하우스는 기대보다 훨씬 모던했다. 강렬한 버건디로 포인트를 준 와이너리 하우스의 로비는 파이퍼 하이직의 고귀함을 웅변하고 있었다. 세 종류의 파이퍼 하이직이 준비돼 있었다. 레어, 빈티지 브뤼, 퀴베 브뤼였다. 역시나 2002년 레어가 준비돼 있었다. 이름 그대로 모든 것이 드물게 완벽했던 좋은 해인 2002년에 생산된 파이퍼 하이직을 뜻한다. 첫맛은 강렬했고 피니시까지 은은하게 향이 이어졌다. 레어의 라벨은 왕관 모양이다. 최고의 파이퍼 하이직만을 위한 왕관이다. 2008년 빈티지 브뤼도 훌륭했다. 파이퍼 하이직에서 준비해준 아뮤즈 부셰와도 훌륭한 마리아주를 이뤘다. 비록 화려한 연도에 태어난 건 아니었지만 퀴베 브뤼는 파이퍼 하이직의 깔끔한 블렌딩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샴페인이었다. 기본기가 탄탄했다.첫 번째 와이너리 투어 땐 어렸다. 아직 샴페인의 풍미를 몰랐다. 두 번째 와이너리 투어에서 마침내 샴페인의 매력을 알아버렸다. 왜 모두가 파이퍼 하이직을 샴페인 중에서도 최고로 치고 즐기는지 비로소 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상쾌하지만 가볍지 않게 살짝 영혼을 일깨우는 느낌. 인생의 즐거움을 뒤늦게 깨달았다는 아쉬움 혹은 반가움. 삶을 낙관하게 되는 이유 없는 여유. 모두가 파이퍼 하이직을 머금었을 때 느낀 심상이었다. 샹파뉴의 하늘은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청명했다. 올해도 참 좋은 해였다. 10년 동안 많은 것이 변했지만 이제 곁에 파이퍼 하이직이 있다. 파이퍼 하이직에서 술을 배워왔다. 인생을 배워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