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식당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식당 주인들은 의외의 사고도 감당해야 한다. | 박찬일

며칠 전 내가 일하는 업장에서 한 손님의 음식 그릇에 물이 떨어졌다. 물론 우리 업장이 흥부네도 아니고 지붕이 샜을 리는 없다. 천장을 살펴보니 에어컨이 주범이었다. “더울 때도 습할 때도 알아서 해주니까”라던 TV 광고 카피는 ‘구라’였다. 혹시라도 공기 중에서 모은 습기를 물로 만들어서 손님 음식 그릇에 떨어뜨린 것이 알아서 해주는 것이었다면 모를까. 결국 음식 값을 못 받게 됐고, 손님은 화가 났다. 막 마시려던 냉면 육수에 ‘에어컨의 땀’이 떨어진 셈이었으니까. 에어컨을 만든 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우리가 입은 손해에 대해 불평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고객님, 많이 불편하셨죠”라는 말밖에 더 듣겠는가.내가 이 얘기를 이 동네의 누군가에게 했더니 그가 웃으며 말했다. “형, 그건 약과예요. 우리도 그런 일이 있었어요. 문제는 그 땀방울이 샤토 라투르 디캔터에 떨어졌다는 거죠.” 그나마 그 샤토 라투르가 82년산이었다고 말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고 나할까. 샤토 라투르 82년산 한 병을 마시려면 적어도 5백만원은 지불해야 하니까. 어쨌든 당신이 습하고 더운 날씨에 어느 식당에 가거든, 직원 한 명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장면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설령 그렇거든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기계가 바둑으로 사람을 이기는 세상에도, 손님 상 위로 에어컨 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진짜 웃기는 세상이다. 그러나 내가 들은 제일 무서운 이야기는 에어컨 물방울이 아니다. 손님이 식사하다가 조용히 하늘의 부름을 받은 것이었다.식당에서는 의외의 사건들이 벌어진다. 우리가 일상을 치르는 현장이기 때문이다. 일상은 태어나고 죽고 다치며 병드는 것의 연속이기도 하다. 물론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아무래도 이런 일이 제일 잦은 건 호텔이다. 호텔에서는 투숙한 손님이 체크아웃을 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마스터키를 들고 방에 들어갈 준비를 해야 한다. 술에 취해서 자고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종종 잠을 자다 조용히 하늘의 부름을 받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 거래하는 여행사들이 현지의 온천이나 목욕탕으로부터 급한 콜을 받는 것과 비슷하다. “귀하의 손님이 우리 탕에서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직원과 유족에게 알려주십시오.” 당신도 탕에 들어가서 이런 경우에는 늘 조심하라. 조금이라도 숨이 답답하거든 얼른 밖으로 나와서 거울을 보라. 너무 홍조를 띠고 있는지 혹은 창백해졌는지 확인해야한다. 당신이나 나나 아버지에게 붙잡혀 탕에 앉아 있는 일곱 살짜리 꼬마는 아닐 테니까.한번은 내가 일하던 식당에 어느 남자가 들이닥쳐 테이블을 홀랑 엎어버린 적이 있다. 그가 여자 손님의 따귀를 후려치더니, 종국에는 남자들끼리 주먹질이 오갔다. 홀 직원이 들은 낱말은 지구상에서 가장 치사한 상황에서 나오는 것들이었다. 양다리, 불륜, 두 탕... 그런 말들. 왕년의 나이트클럽에서는 맥주병이 날아다녔다. 한때 어느 호텔에서는 병맥주 대신 캔맥주만 팔았다. 깨진 병에 찔려 사망 사건이 일어난 후였다. 수컷들은 늘 싸운다. 싸우기 위해 태어난 게 수컷인지라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클럽이랑 나이트클럽, 어느 소줏집에서는 치고 받는 일이 벌어진다. 고급 식당에서는 드물다. 잘 차려입고 음식값이 비싼 곳에 오면 대개 거친 수컷도 얌전해지고 매너가 좋아진다. 하지만 언제든 폭발할 준비는 되어있다. 와인이라고 해서 소주보다 매너 있게 취하는 건 아니다. 한도를 넘어 꼭지가 돌면 샤토 라투르 82년산이든 처음처럼이든 똑같다. 싸우는 건 좋은데, 제발 상에 차려진 와인 잔을 쓸어버리지는 말자. 내 후배가 운다. “셰프님, 엉엉. 손님이 소믈리에 시리즈 잔 5개를 깼어요. 테이블보를 뒤집어버렸거든요. 디캔터도 한 개 날아가고요.” 소줏집에서 잔을 깨면 도매상에 전화해서 다시 한 박스 받으면 된다. 그러면 언제든 웃는 얼굴의 아이유가 있는 소주잔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소믈리에 시리즈를 다시 채워주는 수입 회사는 보지 못했다. 참고로 리델 소믈리에 시리즈의 와인 잔 하나는 대략 10만원 정도다. 그러니 만약 싸우고 싶으면 소줏집에 가서 싸우는 게 좋겠다.어떤 젊은 친구가 튀김 솥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붕대를 친친 감고 있는 그에게 왜 그랬느냐고 물었다. “제 손가락이 튀김인 줄 알았어요.”강남에서 식당 장사 하려면 몇 가지 문제를 늘 해결해야 한다. 거꾸로 이런 문제가 해결되면 할 만하다. 그중 내가 생각하기에 제일 심각한 것이 주차다. 발레파킹을 맡겨도 해결되지 못할 일이다. 보험을 들어놨다는데도 정작 사건이 터지면 대개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심한 경우 사고를 크게 친 발레파킹 업체는 아예 종적을 감춰버린다. 그들이 사무실 집기가 있겠는가, 무슨 설비가 있겠는가. 그냥 사라지면 그만이다. 롤스로이스나 마이바흐 같은 차는 기사가 딸려 있게 마련이니까 발레파킹도 안 맡긴다. 얼마나 대단한 차인데 생면부지의 주차 요원에게 키를 내주겠는가.하지만 벤틀리가 벤츠 600을 받는다든가, BMW가 벤츠를 받는 일 정도는 언제든 일어난다. 아니면 골목길에서 그냥 차 옆구리를 긁어먹기도 한다. 문짝에 흠만 나도 갈아줘야 하는데, 어지간하면 경차값이 나온다. 한 달 장사해서 이런 사고에 한숨 쉬는 사장들 많이 봤다.주방에서 일어나는 사고도 제법 있다. 나는 튀김 솥만 보면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어떤 젊은 친구가 튀김 솥에 손가락을 집어 넣었다. 붕대를 친친 감고 있는 그에게 왜 그랬느냐고 물었다. “제 손가락이 튀김인 줄 알았어요.” 주방은 늘 ‘빨리빨리’를 외치고, 재빨리 반복해야 하는 일이 생긴다. 그런 와중에 딴 생각하다가 제 손가락을 기름에 집어넣는 것이다. 이런 일을 해야 먹고사는 우리들 운명은 여러 가지로 끔찍하다. 딴 얘기지만, 예전 내 동료는 오븐에 홀랑 팔뚝을 태워먹고는 진물이 줄줄 흐르는 팔뚝으로 주방에 다시 나타났다. 일하겠다고. 왜 주방에서는 이렇게 충성심 넘치는 육탄 용사 같은 사람들이 만들어지는 걸까. 나는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