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미더머니라는 거짓말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쇼미더머니>는 여전히 래퍼를 착취하고 힙합을 왜곡한다.어쩌면 더욱 심각하게. | 힙합,쇼미더머니

여섯 번째 시즌이다. 가 생긴 지 벌써 6년이 지났다. 늘 하는 말이지만 를 좋아하지 않거나 반대할 수는 있어도 그 존재감과 영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누군가가 한국 힙합 역사를 쓴다면 를 중요하게 기록해야 한다. 조금 과장하면 한국 힙합은 ‘비포 ’와 ‘애프터 ’로 나뉜다. 엠넷의 이 예능 프로는 힙합을 가장 각광받는 음악으로 만들었고, 수많은 논란을 자초해 문제를 일으켰으며, 무엇보다 래퍼들을 먹여살렸다. 한국 힙합과 사이에는 변화, 왜곡, 희망, 부작용, 대중화, 염증, 성공, 돈, 이슈, 기회 같은 단어가 잔뜩 뒤섞여 있다. 세월이 흐른 뒤 우리는 이 몇 년간의 일을 다행이라고 추억하게 될까, 후회하며 원망하게 될까.뒷짐 진 채 이분법으로 비판하며 나의 옳음과 순수함을 증명하는 것은 를 대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반면 ‘균형’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이 프로그램을 다각도로 고민하는 일은 차라리 고통이었다. 어느 한 방향으로도 명쾌한 결론이 나지 않지만 그 찝찝함이야말로 내가 받아들여야 할 숙제였기 때문이다.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가 굳은 채로 고정돼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시즌 1과 시즌 6는 같지 않다. 는 시즌을 거듭할수록 시행착오를 거치며 조금씩 변해왔고 그에 따라 나의 판단 역시 변해왔다. 다행히 판단이 긍정적으로 바뀐 부분도 있지만 동시에 여전히 견딜 수 없는 부분도 존재한다. 전자가 후자보다 크길 바라지만 아쉽게도 장담할 수는 없다.시즌을 거듭하며 두드러진 의 미덕 중 하나는 바로 무대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힙합의 멋과 매력을 날것으로 보여주는 퍼포먼스가 늘었다. 어떤 래퍼는 무대에 지폐를 뿌리며 랩을 했고, 어떤 래퍼는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자기 삶을 누구보다 진실하게 뱉었다. 한편 도끼가 그동안 보여준 무대는 오직 비트와 랩으로만 채워졌다. 여성 보컬리스트의 참여나 멜로디 있는 후렴, 화려한 무대 장치 없이 오직 비트와 랩으로만 승부할 수 있는 음악 장르는 힙합뿐이다. 도끼는 얼마 전 나에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무대 올라갈 때도 우리는 밴드고 뭐고 아무것도 안 하고 마이크만 잡고 올라가서 멘트도 안 하고 랩만 해보자, 이랬죠.”이런 맥락으로 볼 때 이번 시즌에서 가장 인상 깊은 무대는 다이나믹 듀오 팀의 ‘N분의 1’이다. 이 노래는 흡사 제이 콜(J. Cole)의 ‘Note To Self’를 연상시킨다. 제이 콜은 이 노래에서 동료 래퍼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15년 전에 우린 형들을 보면서 저렇게 되고 싶다고 했지. 그런데 지금 우리가 그 자리에 올라와 있잖아. 그러니까 이 모든 건 사랑이라는 걸 보여줘야지. 사람들은 우리가 서로 디스하고 싸우길 원해. 하지만 우린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 우린 계속 같이 갈 거야.” 에이셉 로키(ASAP Rocky)의 다큐멘터리에도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 “요즘 젊은 래퍼들이 하는 생각은... 우리끼리 서로 도와줘서 다 대박 내자는 거야.” 미국의 젊은 래퍼들이 힙합 문화를 바꾸어나가는 광경은 ‘N분의 1’을 통해 한국에서도 전파된다. “이 판을 먹어치워 가볍게/ 그다음엔 사이 좋게 나눠 내/ 여긴 경쟁이 아니야/ 나눠 먹는 거지 우리끼리.” 이 노래에 있는 것은 야망, 긍정적 태도, 좋은 기운, 화합이고, 없는 것은 시기, 반목, 나쁜 기운이다.그러나 견딜 수 없는 것은 여전히 견딜 수 없다. 는 이번 시즌에도 변함없이 견딜 수 없는 몇몇 순간을 나에게 안긴다. 특히 편집이 그렇다. 물론 편집은 방송에 필요하다. 또 편집은 기본적으로 제작진의 고유 권한이기도 하다. 하지만 의 경우는 좀 다르다. 대사 열 마디를 다섯 마디로 줄인다든지, 넘치는 분량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떤 장면은 삭제하는 경우와는 확실히 다르다. 최근 논란이 된 해쉬스완의 사례가 좋은 예다. 는 해쉬스완이 자신의 랩 배틀 상대로 진돗개를 지목하며 “편하게 가고 싶어서”라고 말한 장면을 내보냈다. 이 다음에는 진돗개의 굳은 얼굴 표정이 이어진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편하게 가고 싶어서 쉬운 사람 고르려 했는데, 뽑을 때 되니까 생각이 바뀌어서 잘하는 사람 뽑았습니다”라고 말한 것이 진실이었다.제작진은 래퍼들을 재료로 삼아 일종의 ‘모자이크’ 혹은 ‘콜라주’를 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허구로 채워진 가상 세계인 셈이다. 문제는 대중이 를 리얼리티로 인식한다는 데에 있다.이것은 편집권과는 무관한 명백한 왜곡이다. 말의 의도를 완전히 정반대로 바꾸어놓은 것이다. 는 곳곳에서 이 같은 편집을 자행한다. 말의 방향을 완전히 뒤틀어놓거나 A라는 장면에 대한 반응으로 C라는 장면에서 나온 말을 이어 붙인다. 제작진이 래퍼들을 재료로 삼아 일종의 ‘모자이크’ 혹은 ‘콜라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허구로 채워진 가상 세계인 셈이다. 문제는 대중이 를 리얼리티로 인식한다는 데에 있다. 물론 래퍼들의 랩과 무대는 실제지만 제작진이 만들어내는 스토리와 대립 구도, 래퍼들의 캐릭터는 가짜가 많다. 하지만 다른 어떤 장르보다 리얼리티의 쾌감을 무기로 하는 힙합에 익숙해진 대중은 의 모든 것을 진짜로 믿어버린다. 사람들은 래퍼들이 솔직하고 자신감이 넘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기에 자기도 모르게 가 보여준 모든 것을 진짜로 여긴다. 그러나 가 안길 커다란 과실 때문에 모두가 그것을 감내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킵 잇 리얼(Keep It Real)’을 부르짖으며 늘 진짜 이야기를 하고 자신에게 진실할 것을 강조하던 힙합은 의 콜라주 앞에서 오히려 더 세게 이용당한다.에 나가지 않겠다는 선언을 번복하고 나온 래퍼들에 대한 리스너들의 비난, 또는 평소의 음악과 태도로 미루어볼 때 에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여겨졌으나 예상을 깨고 나온 래퍼들에 대한 리스너들의 배신감 역시 이런 맥락으로 바라볼 수 있다. 물론 한번 뱉은 말을 지키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언뜻 멋있어 보이기는 하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은 바뀔 수 있고, 때로는 뱉은 말을 지키지 못할 사정이 생기기도 한다. 실제로 래퍼들은 나이를 먹어가며 변화를 겪고 있다. 꿈을 이루지 못하면 실패한 삶이라고 외치던 래퍼는 이제 꿈보다 더 중요한 건 삶 자체라며 어떠한 삶이라도 존중하고 응원한다는 가사를 쓴다. 또 줄곧 언더그라운드의 태도를 강조하던 JJK는 이번 시즌에 지원한 동기로 나에게 이런 말을 전해왔다. “가장이자 아버지로서 제 아들 결이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예전의 저는 정말 힙합밖에 모르던 사람이었는데 이제 제 꿈은 가족의 삶과 아이의 삶을 책임지는 것으로 바뀌었어요.” 이 말은 나에게 래퍼도 래퍼이기 전에 한 명의 생활인이자 평범한 인간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물론 굳이 책임을 지우자면 래퍼들에게 책임이 있다. 거의 모든 래퍼가 어릴 때 자신의 순수함을 영원히 지키겠다는 맹세를 랩으로 한 적이 있다. 그것이 힙합 음악으로부터 그들이 배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부러질 것 같은 선언적 태도야말로 많은 사람을 매혹시킨 힙합의 주된 무기였다. 그러나 어른이 된 래퍼들은 이제 진짜와 가짜의 이분법으로만 세상을 보진 않는다. 대신에 균형감을 터득했고, 수많은 가능성을 고민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리스너들이 래퍼들을 당사자 입장에서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이 비극을 만든다. 래퍼들이 떠난 자리에 리스너들은 여전히 머물러 있고, 래퍼들의 현재는 자신이 과거에 만들어놓은 유령에 발목 잡힌다. 더불어 또 다른 어린 래퍼들이 등장해 ‘변질’된 기존 래퍼들을 비판하고 리스너들은 그에 열광한다. 또 다른 어린 리스너들이 유입됨은 물론이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지원을 둘러싼 이 같은 논란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과 별개로 보다 근원적인 질문을 나에게 안긴다. 힙합은 결국 젊은이를 위한, 젊은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음악인가? 힙합은 아직 미국에서도 한 세대가 지났다고 단언하기 어려운 음악이기에 이 고민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