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는 산뜻하게 배신한다 | 에스콰이어 코리아 (Esquire Korea)

작가의 의무일까, 고마운 천성일까? 덕분에 우리가 자유로워졌다. | 알쓸신잡,김영하

누구나 그래야 한다고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규칙 같은 게 있다. 도덕인 체하는 삶의 방식부터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 목록까지. 그런 게 우릴 은근히 구속할 때, 김영하는 아랑곳 않고 배신한다. tvN 통영 편은 상징적이었다. 점심 메뉴에선 황교익의 장어탕과 유시민의 복국이 붙었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은 말했다. “맛없는 음식, 위험할 수 있는 음식 먹을 거예요? 그냥 저 따라갑시다.” 꽤 길었던 두 사람의 왈가왈부 끝에 김영하가 말했다. “저는 OO네 해물짬뽕이라는 데를 가보려고요.”2013년 10월부터 매달 쓰던 칼럼을 2014년 5월에 그만뒀다. 소설집 의 ‘작가의 말’에는 이렇게 썼다. “‘이 사건(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은 그 이전과 완전히 다른 나라가 될 것이다’라고 썼는데 팩트와 근거를 목숨처럼 생각하는 편집자가 그 발언의 근거를 물어왔다. ‘근거는 없다. 그냥 작가로서 나의 직감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이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라고 답했더니 그런 과감한 예단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한 인터뷰에서는 말했다. “작가는 팩트를 확인하고 인용할 근거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대신하여 ‘잘 느끼는’ 사람이다.”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스스로 정함으로써, 팩트와 근거의 세계에서도 홀가분하게 빠져나왔다.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라는 말은 또 얼마나 산뜻했나.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걸. 잠을 자거나 음악이나 들을걸. 그냥 거리를 걷든가”라는 말은?김영하는 갑자기 시원해진 밤바람처럼 배신한다. 이토록 강박적인 세상에 면도칼로 삭 그은 틈 같다. 그 사이로, 꼭 그렇게 살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단단하다. 덕분에 우리 호흡이 좀 더 후련해졌다. 혼자 앉은 방에서 모두의 삶을 사는 사람, 소설가의 힘이었다.